인간은 누구인가? 그리스도교의 창조론은 인간의 피조적 삶으로 그 유한성, 개체성, 그리고 시간 안에서 삶의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선한 것을 확증하는 근거를 알게 한다. 또한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태어나고 죽으며 여기에 따른 삶은 고통과 고난을 수반한다고 창세기는 증언한다.
여기에 바울은 이러한 견해를 로마서에서 말한다. 성서의 육체적 죽음은 피조적 삶에 부여된 하나님의 질서에 따른 죄이지만 여기에 따르는 인간 구성으로 3요소인 육체, 영혼, 정신으로 살아야 하기에 선함이라는 창조자의 의도적인 사랑의 의지의 결과임을 믿음으로 이를 감당하게 한다. 여기에 ‘선함’이라는 창조자의 의도적인 사랑의 의지가 그 결과임을 뜻한다. 성서적 인간관은 다른 모든 피조물들에 이름을 붙이는 아담의 행위나 이를 지배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인간이라는 선언, 그리고 하나님과 계약을 약속받는 당사자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응성으로 여기에 인간의 자유는 계획하고 결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 인격적인 성품으로 삶을 두어야 함을 성서는 알게 한다. 이를 실증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의 전형으로 그려짐을 믿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그리스도 예수에 준하는 인간의 존재 형성, 본래적인 존재에로 회복되는 인간임을 믿음으로 이를 깨닫게 한다.
예컨대 어린 아이가 그의 부모의 형상을 닮은 것으로 알게 된 것과 같이 구원이라는 이해는 은총을 통해서 자녀로 입양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분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엡5:1-2)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실체”는 ‘사랑’임을 알게 한다. 예컨대 만물이 그 실체가 없음에도 삶에서 생명으로 보이듯이 나타난다.
폴 틸리히에 의하면 신앙은 ‘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이다. 신앙은 삶의 궁극적 의미에 관한 문제로 삶에서 궁극적 관심이 경험될 때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난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조차도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 관심을 갖느냐 안 갖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실존적인 존재 또는 비존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세상의 한정된 것에만 머물러 좋은 것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인 데, 그것은 인간을 비존재로 떨어지게 만든다. 그러면 신앙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폴 틸리히에게 있어서 신앙은 어떤 진리 또는 교리에 의식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직접적이고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 인 행동 속에서 궁극적이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경험되고 있다. 이 궁극적인 관심이 바로 유한하고도 실존적인 인간이 추구하는 믿음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사는가? 존재를 위해 사는가? 자기만을 위해 사는 생존은 가치와 무관하고, 존재의 가치를 알면 생존에만 연연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를 향상시키기 위해 생존은 필요하다. 그 삶에서 생명은 창조자에 의해 삶 속에서 사랑으로 삶을 유지한다.
성서는 이 가치를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설파하고 있다. 결국 ‘생존’과 ‘존재’는 사람의 실존을 위한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한 사랑의 관계임을 알게 한다. 생명은 관계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창조의 텍스트는 일차적으로 인간에 관해 말하기 보다는 인간창조에 관해 말하고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생명은 창조의 주관에 의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을 자신의 형상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기로 결심하신 창조 주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자신과 상응하도록, 다시 말하면,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서 무엇인가 일어날 수 있도록 관계를 맺게 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학적 개념이기 이전에 신(神)학적인 개념이다. 먼저 그것은 창조되는 사람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하기 전에, 자기의 형상을 스스로 만들고 그것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 십자가가 무엇인가를 말하려 함에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게 하여 그 다음에야 ‘하나님과 관계 맺는 인간과의 관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을 정복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신 창조자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인 사랑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 교회연합신문 & 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