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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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회 논평] 새로운 가치로 건국된 대한민국 역사를 돌아보아야
    올해로 광복 78주년과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국 75주년을 맞게 된다. 우리나라는 수천 년 동안 왕이 다스리는 전제주의(專制主義) 국가였다(세계 많은 나라들도 대부분 그랬다) 그러다가 1910년 일제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게 된다. 그 후 식민지로 36년을 지내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열강들에 의한 해방을 1945년 맞이하게 된 것이 벌써 78년이 되었다. 그리고 3년 후 대한민국의 헌법을 만들고 새로운 나라, 국민이 주인 되고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졌다(이런 나라들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으로 성공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38선 이북에는 소련의 지지를 받은 김일성이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소중히 알고, 모든 국민들이 이런 국가의 정체성 속에서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의 비교는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세력들은 여전히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하여 술수를 부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오랜 동안의 전제주의 국가 체제를 지양(止揚)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분은 당연히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신(神)의 섭리가 있었던 인물이다. 이승만은 1875년에 태어나 21세 때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독립협회와 연루되어 7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는 1895년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향(志向)하는 미국으로 건너가, 1907년 조지워싱턴대학교 정치학 학사, 1908년 하버드대학교 석사, 그리고 1910년 프린스턴대학교 국제정치학박사를 받는다. 이때가 35살 때였다. 이렇듯 그는 망한 조선의 몰락한 왕손의 가문에서 태어나, 개혁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민주주의 본산인 미국에 가서 공부하므로, 새로운 국가 질서와 토대를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과정과 그에 따른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한국 독립을 위한 외교적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방된 나라에 돌아와서는 1948년 제헌의회 의장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질서를 상징하는 헌법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또 같은 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반제국주의를 내세운 저항적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된 상태였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정부를 원하던 때, 이승만 대통령은 그렇게 되면 공산화가 된다는 것을 알고,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주장하여 공산화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였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이승만 대통령이 추구한 가치는 민주 모범국가 건설, 모범적 기독교 국가 건설, 반소•반공의 보루, 평등사회 구현, 문명한 부강국가 건설이었다. 이 중에 기독교 국가 건설을 빼고는 모두 그가 뜻하던 나라로 이루어진 셈이다. 1948년 당시 우리나라는 인구 2,002만 명, 예산 54억 3,230만 원, 1인당 국민소득 50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세계에서도 최빈국이었다. 이를 북한과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 1950년 6.25때 만해도 남한은 인구가 2,019만 명인데, 북한은 975만이었으나, 무역총액은 남한이 1억 4천만 달러, 북한은 우리보다 4배 가까이 많은 5억 1천만 달러로 차이가 났다. 그러나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2023년 현재, 총인구 5,155만 명, 국가 1년 예산 639조원, 국민 1인당 소득 32,661달러이며, 경제적인 면에서 세계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의 비교에서도 국가의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혹독하고 부정적으로 매기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본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1953년 6월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석방한 것을 두고, 당시 미 국무부 극동 담당 차관보였던 월터 로버트슨은 ‘이승만은 빈틈이 없고 책략이 풍부한 인물이라’고 하였다. 또 미국의 37대 대통령을 지낸 리처드 닉슨은 당시 부통령으로 한국을 방문한 후에 ‘나는 이승만의 용기와 뛰어난 지성에 감명을 받았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시카고 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사학과 석좌교수는 ‘그는 포커꾼으로서의 타고난 기술로 최대의 자릿세를 뽑아냈다’고 역설적 언어로 칭찬하였다. 마크 클라크 전 유엔군 사령관은 ‘한국의 애국자 이승만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반공 지도자로 존경한다’고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도 이승만 대통령이 서거한 후, ‘조국 독립운동의 원훈(元勳)이요, 초대 건국 대통령이라’고 인정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전문가들은 ‘이승만은 외교의 달인이다. 그렇기에 세계를 알고, 여러 민족을 알고, 다양한 문화를 알았다. 나라를 지키는 능력이 비범했다. 세계 정세에 해박했던 것은 미국 동부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을 평가한 것에서도 국민들의 지지는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높았다. 2002년 한국대통령평가위원회가 역대 대통령들의 자질을 5개 분야로 나누어 평가하였다(비전 제시, 인사 관리, 위기 관리, 민주적 정책 결정 및 실행, 도덕성) 그런데 1위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62.70, 두 번째는 김대중 대통령으로 58.45, 다음이 이승만 대통령으로 56.95점을 받았다. 당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이었다는 점,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이 씌워진 상태에서의 조사였음에도 그 정도 평가를 받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공과 과로 나뉜다.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에서도 공을 7로, 과를 3으로 본다. 이는 3선을 한 것과 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부정선거가 이뤄진 것 때문으로 본다. 즉 이승만 대통령은 1956년 3선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이로 인하여 탁월한 지성과 고결한 도덕성이 감퇴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전문가들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1950년 북한의 남침에 의하여 3년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루웠지만, 정치는 안정되지 못했고, 당시 야당은 이승만 대통령을 위기에 몰려고 끈질기게 내각책임제를 주장하였고, 1956년 치뤄진 3대 대통령 선거에서 과거 공산주의자였던 후보를 중심으로 진보•좌파가 무섭게 결집하고, 건국•호국 세력의 통일 방안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출마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공산화되었을 것이라는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한 예측이 있다. 6.25전쟁 이후에도 한미동맹, 교육 혁명 등 대다수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의존했다는 평가이다. 그러므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공과 과가 7:3이라는 것도 마땅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올해로 해방 78주년과 정부설립 75주년을 맞는다. 우리들은 이런 일들에 대하여 기념하고 기뻐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그사이 잃어버리고 바르게 정립하지 못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올해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바른 평가와 함께 국민들의 힘으로 기념관을 세운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승만을 ‘신격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역사적 진실과 실체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해방과 함께 이뤄낸 건국에 준하는 업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8-1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시설보다 중요한 것들
    저는 지난주부터 한교총 사무총장에게 “폭염 때문에 잼버리 대회가 난항을 겪고 있으니 한국교회에서 해야 할 게 뭐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선 ‘생수 5만 병 보내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1만 병을 지원했는데 이것 가지고는 너무 허전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주최 측으로부터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할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용은 수천 명도 할 수 있지만 샤워시설이 따르지를 못합니다. 더더구나 우리 교회는 지금 여름수련회 집회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관을 개방하면 바닥에 침구를 깔고 500명 이상은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간작업을 해서 화장실을 샤워시설로 개조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날 480명이 입소를 했습니다. 애들이 교회 들어오자마자 “야,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느냐.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교회에서 밥만 제공한 게 아니라 간식까지 제공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캐리비안베이를 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새만금에서 흘린 땀을 캐리비안베이에서 다 식혀 버리도록 한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모든 경비를 다 제공했고요. 그런데 다음날 연락이 왔습니다. 교회보다는 용인시를 비롯해서 다른 숙박 시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2인 1실이고 샤워 시설도 제대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솔하는 대장들이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그쪽으로 가고 싶은지 설문조사를 하니까 10분의 9가 교회에 남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청소년 수련원이나 기업체 연수원에 가면 훨씬 시설이 좋죠. 그렇지만 캐리비안베이를 비롯해서 교회에서 하는 행사와 프로그램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화요일부터 마지막날까지 이재훈 목사님 주도로 메디컬처치를 오픈하였습니다. 실제로 의사와 간호사들이 직접 하얀 가운을 입고 무료 진료를 해 주고 약을 주니까 아이들이 더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종민 목사님을 비롯해서 모든 스텝들에게 “최대한으로 잘 섬겨 주세요. 특별히 중국에서 온 아이들은 새만금 잼버리의 폭염의 기억들을 다 지워버리고 우리 교회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도록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 주세요”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회에 남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방송에서 우리 교회라고 콕 집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강당 바닥에서 잠을 자도록 했다는 부정적 보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아침을 먹으러 나온 아이들이 핸드폰을 켜들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 뭐래요? 왜 이렇게 썼대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쓰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단장님들도 서류 뭉치를 들고 와서 걱정스럽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사는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가 기자회견이라도 할까요?” 그러나 우리 스텝들은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단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합시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보고를 받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빠른 뉴스와 정확한 보도를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뉴스를 할 때 심층 취재를 좀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니 우리가 원해서 아이들을 숙박하게 한 것도 아니고 갈 데가 없으니까 우선 종교시설과 여러 교육시설을 알아보고 우리한테 요청해서 온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밤을 새워서 샤워시설을 만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점이 있었겠지만. 그런 부분만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인가, 언론은 균형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더 좋은 시설이 있으니까 가지 않겠느냐고 묻고 그들이 가면 정말로 환송을 잘 해주려고 했는데 그들은 끝까지 교회에 남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MZ세대와 기성세대의 차이가 대단한 줄 알았는데 MZ세대라고 별 차이가 없구나. 그들도 시설보다 중요한 게 친절이고 환대고 섬김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지금 바깥에선 아무 행사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시원한 실내 공간에서 재미있는 레크레이션을 하고 심지어는 CCM 율동까지 하면서 완전히 디쇽(영원한 불꽃은 없으니 빛날 때 만끽하라)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떤 청소년은 진짜 어렸을 때 교회에 나갔었는데 처음으로 교회로 와서 숙식을 해봤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정성을 다해서 사랑해 주고 섬겨주는 것을 보면서 교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나가고 안 나가고를 떠나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애와 인류애를 실천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는 반드시 이런 일을 해야 됩니다. 저는 수련회 집회 중에도 비전홀과 각 교육관 시설을 개방하여 화장실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성도들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교회 화장실을 들리지 않고 집회를 마친 후에 집에 가서 용변을 보신 성도들에게 한없이 송구하고 추앙합니다. 그리고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재정을 투자하여도 모든 걸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신 장로님들과 성도님께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역시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살아남는 길은 처치 션샤인을 해야 합니다. 무조건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 교회가 앞장서서 사회적 돌봄과 시대적 아우름에 앞장서야 교회가 산다고 생각합니다. 퇴소하는 마지막 날까지 그들이 행복한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부정적 성향의 보도를 한 언론은 이런 것을 알고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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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8-13
  • [언론회 논평] 정치 지도자들의 말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혁신위원장으로 활동하는 김은경 씨가 노인을 비하•폄하 발언하여 전 국민들의 질타를 받고, 특히 노인들이 한탄어린 사과를 요청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가 있게 된 것은 그들도 모두 노인인 부모들을 통하여 태어났고, 또 그분들의 지금까지의 온갖 희생과 헌신의 바탕위에서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을 모르는가? 그런데도 공당(公黨)의 중요 요직에 있는 책임감 있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노인들의 마음과 자존감을 무참하게 짓밟아 놓고서도, 처음에는 사과할 일이 아니라는 혁신위 대변인 입장을 보면, 큰 실망이다. 그리고 위원장은 4일이 지난 후에 마지 못해 국민들에게 사과한 것은 국민을 국민답게 여기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월에도 혁신위원장을 세웠지만, 그가 전에 ‘천안함은 자폭’이라는 발언이 문제가 되어 사퇴한 일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김은경 위원장은 노인들을 비하하여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젊은이들과) 똑같이 표결을 하냐’는 인용으로, 반민주적, 반인륜적인 물의를 빚었다. 그런데 민주당쪽 인사들의 노인 비하•폄하 발언은 전에서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2004년 3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60,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하였다. 또 2004년 9월 천정배 원내 대표는 ‘노인들은 곧 돌아가실 분이다. 무슨 힘이 있나’라고 하였다. 그해 11월 국회의원이었던 유시민 씨는 ‘50대에 접어들게 되면 죽어 나가는 뇌세포가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많다. 사람이 멍청해진다’고 하였다. 역시 그해 김용민 총선 후보는 ‘시청에 에스컬레이트를 다 없애면 노인들이 엄두가 나지 않아 시청에 안 와’라는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2011년 조국은 트위터에서 부모님을 투표 못하게 여행을 보내드렸다는 말에 ‘진짜 효자’라고 하였다. 2014년 10월 국회의원 설훈은 ‘나이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져’라고 하였다. 그리고 2020년 국회의원 김한규는 ‘부모님 투표소 못 가게 하라’고 하였다. 2022년 1월 국회의원 최강욱은 ‘노인층 맹목적, 청년층 화풀이 지지 염려’라고 하였다. 그리고 윤호중 2022년 5월 비상대책위원장은 ‘일흔 넘어 뭘 배우나’라고 하였다. 거기에다 이번에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노인 비하•폄하 발언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편 2015년 12월 당시 새정치연합 대표 문재인 씨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노인 세대는 박근혜 정권을 지지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어르신 세대는 바꿔야 한다는 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지난 해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층이 901만 명이다.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그런데 이렇듯 시시때때로 노인층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분명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하여 민주당 쪽 인사들도 우려를 표한다. ‘민주당 쪽 사람들이 계몽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고, 국민들을 가르치려는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민주당쪽은 노인층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연령대가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고, 젊은 세대와 갈라치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어찌 우리가 부모 없이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부모 세대를 홀대하고 비하하고 낮춰보는 것은 패륜(悖倫)이다. 아무리 정치권이 자기들이 지지하는 세력들을 결집·충동시키려 한 것이라지만, 이것은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잃는 것이다. 성경은 백발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한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언16:31) 또 하나님과 같이 공경하라고 하신다. “너는 센 머리(백발)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위기19:32) 노인을 얕잡아보고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것은 마치 물 없는 강에 있는 배와 같다. 열매 없는 가지와 같다. 추락하는 비행기와 같다. 정치에 앞서 수신(修身)을 하라. 이후로 정치권에서 자기들의 부모 세대, 조부모 세대를 비아냥거리고 무시하는 비인간적 비인륜적 발언은 다시 나오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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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8-12
  • [언론회 논평] 성소수자를 옹호한 낯뜨거운 아동용 도서들
    최근 충청남도 본회의에서는 모 도의원이 제기한 일선 학교와 공공도서관에 아동용으로 비치된 도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에 대하여 충청남도지사가 공감한다는 취지의 답변이 있었다. 그 내용은 충남 지역의 홍성, 천안, 서산, 예산, 아산, 공주, 서천 등 관내 여러 곳의 학교 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 아이들이 보라고 비치된 책들 가운데 성소수자를 옹호하고, 수간(獸姦-짐승과의 변태적 성행위)과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한 표현들이 낯이 뜨거울 정도의 것들이 있는데, 이에 대한 충청남도와 충남교육청이 깊이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이를 질의한 지 모 도의원은 충남 도내 학교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 비치된 수백 권의 도서에서 에넬 섹스(항문성교) 동물과의 수간, 항문 애무, 쓰리썸(다자간 성행위) 동성끼리 성행위를 하는 방법이 표현된 책들이 다량 비치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책들은 생명의 존엄함과 건전한 성교육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오히려 자라나는 세대들을 마치 인간성을 버린,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만들려는 악행으로 본다. 이런 행위는 주로 진보•좌파 교육감들이 득세하면서 뿌린 독초이며 독아(毒蛾)처럼, 언제 촉수를 드러내어 찌를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이미 2020년에 학부모 단체들의 항의로 인하여 여성가족부가 아동들에게 부적절한 도서들을 일부 회수한 바 있지만, 아직도 학교 곳곳에 뿌린 악서(惡書)들이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민들은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열심히 교육세를 냈는데, 정작 진보 교육 당국에서는 이런 낯부끄러운 책들을 다량으로, 무한정으로 보급하여 아이들의 정신과 영혼을 망치게 해 온 것으로, 통탄할 일이다. 차제에 전국의 모든 학교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 비치된 이런 종류의 책들은 모두 수거하여 폐기해야 한다. 교육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것을 왜곡하고, 인권이라는 빌미로 우리 아이들을 망가트리는데 앞장선 ‘더러운 교육’은 학교 일선에서 몰아내야 한다. 또 이런 교육과 그에 따른 잡서(雜書)들이 횡행하는 것은 모두 ‘학생인권조례’의 위력이다. 지난 27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이 설문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사 대상 교사 32,951명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83.1%를 차지했다. 결국 학생인권조례는 교사들에 대해서는 교권을 크게 추락시켰고, 이를 추구하는 전교조의 지원을 받은 진보•좌파 교육감과 그 세력들은 악서들을 만들어 일선 학교와 공공도서관에 마구 뿌리는 역할을 해 온 것이다. 현재 충청남도는 ‘주민 발의’에 의하여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나온 상태이며, 향후 토론회 등을 거쳐서 충청남도 본회의를 통하여 표결되는 과정이 남아 있는데, 전국에서 가장 먼저 악법을 폐지하는 기록을 남기기 바란다. 학생인권조례는 처음에는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신장(伸張)해야 한다는 다소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면 할수록 교육과 인성과 건강한 자아실현을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조례는 가장 빠르게 폐지되어야 한다. 또 일선 도서관에 비치된 악서들은 속히 전량 수거하여 폐기함으로, 우리 교육 방향이 ‘참된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주머니 속에 감추어진 흉기는 언젠가는 자신을 찌르고, 남을 찌르고, 우리 모두를 찌르게 할 것이다. 좌파•진보 교육감들이 만든 학생인권조례는 마치 주머니 속의 흉기와 같다. 이것은 교육의 미래를 찌르고, 건강하게 자라 나야 할 미래 세대들의 앞날을 찔러, 정상적 사고(思考)의 불능과 불구(不具)를 가져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8-12
  • [언론회 논평] 7초마다 법안을 통과시키는 신(神)의 영역 국회의원들
    지난 17일 국회 앞에서는 국민들의 대규모 궐기대회가 있었다. 국회의원들과 고위공직자들이 지나치게 특권을 누리면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제대로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함성이 있었다. 이날 모임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뜻을 같이 하였다. 이 행사를 주관한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상임대표: 장기표 박인환 최성해, 이하 특권폐지)에서는 특히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예우와 186가지에 이르는 특권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특권 폐지’가 자료로 낸 것을 보면, 우리나라 정치권은 전 세계에서 신뢰도가 아주 낮은 나라로 평가 된다고 한다. 영국의 국제개발연구소이며, 싱크 탱크인 레가툼(Legatum Institute for Global Development)이 전 세계 16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사법부 신뢰도는 155위, 정치권은 114위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과 법관, 행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온갖 특권은 누리면서, 국민들이 신뢰할만한 일과 정치는 하지 않는다는 통계이다. 국회의원의 경우 연봉이 1억 5천만 원이다. 거기에다 1년에 1억 5천만 원을 후원받을 수 있고(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받음) 여기에다 해외 여행경비, 자동차 유류비, 자동차 유지비, 운전기사, 항공기•KTX 무료, 국회 안의 각종 시설 무료 사용, 입법활동비, 정책자료 발간비, 정책자료 발송비, 문자메시지 발송료, 야근 식대, 업무용 택시비, 그리고 직원 9명까지 채용할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면책특권’(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 것)과 ‘불체포특권’(국회의원이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으며, 체포된 상태라도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석방되는 특권)을 가져, 국회에서 유언비어성 발언을 하여 정치의 질을 떨어뜨리는데도, 여기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범죄의 혐의가 있어도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않는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다. 그러니 국회의원들이 범죄 혐의를 받고 있어도 자유롭게 활동하고, 죄를 짓고서 국회에 나오지 않아도 세비를 모두 받아가고,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어도 월급은 모두 받고 있는 것이다. 일반직 공무원은 구속되면 월급의 반밖에 받지 못하고, 지자체장들도 70%밖에 받지 못하는 것과는 딴판으로 특권을 누린다. 이렇듯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200여 가지에 가까운 특권을 누리는 집단이다. 그런가 하면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범죄를 국회의원들이 저질러도 사법부가 무죄를 선고하는 등, 정치•사법 기득권 카르텔이 깊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GDP(국내총생산) 대비 세계 최고의 예우와 특권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얼마나 일을 잘하고 있을까? 최근에 법률소비자연맹이 조사한 것을 보도한 바에 의하면, 21대 국회의 지난 3년 간에(2020.5~2023.5) 국회의원들의 재석률(회의 시작에서 마칠 때까지 자리 지키는 것)은 70.27%였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70% 정도만 회의에 참석하고, 10번에 3번씩은 빠진다는 것이다. 이는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이 아니다. 또 법안 발의는 2만 94건으로 역대 최다이지만, 가결된 것은 956건으로 가결율은 4.76%였다. 이는 역대 최저이다. 그 법안의 실효성이나 필요•충분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다고 본다. 거기에다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448개 법안을 불과 57분 만에 통과시켜, 한 건당 7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민을 위하여 법안을 제대로 검토하고 민생에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를 충분히 검토해야 하는 것을 졸속으로 처리해 버린 것이다. 또한 그 법률들이 국민들의 민생과 생활을 위한 일에 얼마나 도움이 되며 필요한 것인지 의문마저 든다. 법안 제목조차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통과시킨 것은 아닌가? 이는 신(神)의 신통력을 가지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가 하면 국회법 제57조 제6항에 보면, ‘소위원회는 폐회 중에도 활동할 수 있으며, 법률안을 심사하는 소위원회는 매월 3회 이상 개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4개 상임위원회의 25개 소위원회가 개최한 회의 평균은 1.56회에 불과했다. 즉 법안 심사를 충실히 하고 자세히 검토해 보아야 하는데 국회법에서 정한 규정만큼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일하지도 않는 것이다. 어떤 소위원회는 아예 한번도 모이지 않은 곳도 수두룩하다. 거기에다 일부 의원들은 상임위원회 출석율이 60%대인 경우가 있다. 우상호, 김태호, 주호영, 권성동, 박용진, 윤상현, 윤영석, 김두관 의원 등이다. 출석율이 90% 이하인 경우에는 온갖 특권을 박탈해야 한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으로 뽑아줬는데, 국회에 제대로 나가지도 않고, 국회에 앉아서 코인 투자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을 일삼고, 괴담이나 늘어놓고, 국가의 외교와 체면을 구기는 외유(外遊)나 여행 등을 가고, 당리당략에 의하여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의원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런가 하면 국회의원 보좌관이 국가보안법 위반(간첩죄)으로 들통나 국가의 중요한 기밀을 빼돌리는데 국회를 이용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도대체 우리 국민들은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사람들도 먹여 살리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된단 말인가? 국민들은 이런 의원들에게 세비를 주기 위하여 막대한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고, 국회에서 비생산적인 일에 몰두하고, 자기 개인 투자를 일삼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을 일군으로 세운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 한 회기가 끝나면 국가 예산 4~5조 원이 들어간다. 그 비용을 출산율을 높이는데 사용해야 한다. 또 북한의 핵위협과 협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방비에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우리나라는 국회가 변화되고 달라져야 국가가 산다. 우리 국민들도 일하지 않고 특권만 잔뜩 누리는 의원들을 국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불필요하게 특권만을 누리는 권력자들의 퇴행성 행보를 고쳐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들의 분명한 의지로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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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2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강성률 목사의 ‘차악을 허락하신 하나님’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19:8-9).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고전7:38). 이처럼 혼인 문제에 있어서 최선의 길은 ‘주님을 위하여 시집가지 아니하고, 장가가지 아니하고 독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주님을 위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둘째,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둘 가운데 하나라도 맞지 않는 것이라면 이기적으로 되거나 탈선하기 쉽습니다. 혼인에 있어서 최선의 길은 아니지만 차선이 되는 것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입니다. 혼인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부합한 일이며, 사회 구성원을 존속시킬 뿐만 아니라 역사를 계승 발전시키는 원동력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혼인 문제는 최선과 차선의 차이일 뿐 모두가 선입니다. 선택 문제에 있어서 최선과 차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투표를 하거나 일이 어그러질 때 우리는 ‘일단 최악만 피하자’하는 심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차악이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마음입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후에 마음에 자책하고 통회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혹 삼년 기근일지, 혹 네가 석 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길 일일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일지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 것을 결정하소서.”(대상21:11-12).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리신 벌 세 가지는 모두 다윗에게 고통을 가져오는 것들이었습니다. 다윗은 모두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덜 고통스러운 것으로 온역의 징벌을 택하였습니다. 다윗은 결국 가장 지혜로운 선택을 한 것입니다. 한 번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하여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마19:3). 이 질문의 의도는 이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을 가리켜 예수님 앞서 보냄 받은 자라고 하신 일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가르침이 비슷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헤롯 안디바와 헤로디아의 이혼과 부정한 결혼을 반대하다가 결국 참수형을 당하였습니다(마14:3-12). 이에 바리새인들은 이혼 문제를 예수님께 질문함으로써 만일 예수님께서 이혼을 금지하신다면 이를 정치적인 쟁점으로 삼아 결국 세례 요한과 같은 운명에 빠뜨리고자 획책한 것입니다(Schaff). 이혼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4-6).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혼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마19:7)라고 다시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본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19:8-9). 예수님의 말씀은 비록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아내 버림을 허락하셨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본뜻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간음 외에 이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완악한 사람들에게 이혼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들은 이혼하지 않는 테두리에서 이혼보다 더 심한 악행을 저지를 것입니다. 곧 아내를 학대하거나, 구타하거나, 타인하고 정을 통하거나, 아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맡길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자비의 하나님께서 여인들이 당할 수도 있는 최악을 피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차악(이혼)을 허락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예를 들어 잘 알 수 있습니다. 완악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유교의 영향을 받았던 조선은 한 번 시집가면 이혼할 수도 재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나 가문에 큰 수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속아서 하게 된 혼인이더라도, 남편이 간음한 경우가 명백한데도,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살아가는데도, 시모의 시집살이가 심함에도 불구하고 참아가며 살아야 했습니다. 간혹 친정으로 돌아간다면 동네에서는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들의 이러한 일들을 막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으로 인한 최악보다는 차악인 이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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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2
  • [언론회 논평] 교권 침해의 핵심과 주범은 학생인권조례이다
    최근에 서울의 모 초교에서 20대 초반의 새내기 교사가 극단적 선택으로 교사의 무거운 짐이 있음을 항변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소중한 직임을 가진 교사들을 위로하며, 학교 내에서 교사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원인을 찾아서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 최근 5년간(2018~2022년) 교원 사망자 수는 623명이다. 그중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는 11%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상당수가 교사로서 학내에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 교사 11,37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근 1년간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한 교사가 무려 87%에 달한다고 한다. 실제적으로 지난 1년 사이(2022.3~2023.4)에 퇴직한 교사가 12,000명으로 역대 최다라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가? 한 마디로 교권이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권이 없는데, 어찌 교사가 어린 학생들을 통제하면서 정상적인 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이는 2010년부터 시작된 학생인권조례에 의한 것으로 본다. 이 조례가 있으므로 학생들의 인권은 무한정 보호받는지 몰라도, 교사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심각한 시달림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2009년 진보 성향으로 경기도 교육감에 당선된 김상곤 씨는 경기도에 ‘학생인권조례제정위원회’(위원장 곽노현-나중에 서울시 교육감이 됨)를 만들어 준비하여, 2010년 9월 16일 경기도 의회를 통과하게 된다. 이것이 학생인권조례의 시작이다. 그 이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2012년 1월 26일에 공포되고, 광주광역시가 2012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고, 전라북도가 2013년 7월 12일 공포하고, 충청남도가 2020년 7월 10일 공포하고, 제주특별자치도가 2021년 1월 8일 시행되고, 인천광역시가 2021년 9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모두 좌파•진보교육감들이 있을 때 제정된 것이다. 이 학생인권조례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는가? 대략 23가지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중에는 임신과 출산, 가족 형태,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의 조항이 들어간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는 성소수자 인권단체, 여성 인권단체, 노동단체, 편향된 정치 정당이 요구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세부적 내용을 살펴보면 학생들에게 체벌 금지, 보충수업 강제 금지, 복장 용모 자율 보장, 휴대폰 사용 등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오히려 학습 능력과 학생들의 입장에 맞는 교육 환경을 망가뜨리고, 지나친 학생 권리만을 강조한다. 이 학생인권조례로 인하여 교사들이 어려워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때문에 잘하는 아이들을 칭찬할 수 없다. 그러면 차별을 했다고 신고가 들어온다. 또 ‘휴식권’이 있다고 수학여행을 같이 가지고 하여도 교육 활동을 강요했다고 아동학대로 신고가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사생활의 자유’라고 하여 학생이 교사 옆에 누워서 전화를 사용해도 말릴 수가 없다. 그러니 학생들이 잘못을 해도 책망하고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고, 잘한 학생은 잘했다고 칭찬할 수도 없다. 교사들은 교육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학생인권조례에 걸리지 않나 조심해야 하는 형편이다. 그야말로 날마다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좌파•진보 교육감들에 의하여 도입된 학생인권조례 10여 년이 가져온 엄청난 부정적 파장이며 폐해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매를 맞고, 학생들에게 온갖 폭언과 욕설을 듣고, 거기에다 학부모들에 의한 과도한 민원과 학폭은 날로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사명감으로 일할 교사들은 교육현장에서 모두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올바른 인권이라면 남의 인권을 해치지 말아야 하는데, 자신들을 가르치는 스승의 인권을 학생들이 해치는 법을 만드는 것이 정상적 사고인가? 한 조사에 의하면, 교사 8,655명을 대상으로 교권 침해 상황을 조사했을 때, 그중에 1.4%만이 교권 침해를 당한 일이 없다고 했다 하니, 이는 건강한 교육현장이 아니라 아수라장이 된 느낌이다. 학생인권조례를 포함한 ‘조례’는 지방자치단체가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각 지방자치단체는 현행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경우, 교육현장을 황폐화시키는 이 조례를 폐지해야 한다. 또 이를 추진 중에 있는 곳에서는 중단해야 한다. 학생이 우위적 권리를 가지고 교사를 압박하는데 어떻게 교사들이 학생들을 인성과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는가? 정부에서도 신속하게, 교권을 강화하여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매를 맞지 않으며, 학부모들에게 학폭을 당하지 않으면서 교사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 국회에서도 여•야를 따지지 말고, 교사들의 지위권을 보장하는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는 학폭 학생은 수업권을 박탈하거나 합당한 징계를 받는다. 뿐만이 아니라, 그 부모들에게도 벌금을 물리는 등 매우 엄격하다고 한다. 또 교사에게 피해를 입힌 학생은 즉시 경찰에 신고하여 인도한다.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에게 매를 맞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말이 되는가? 그리고 우리나라만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미국은 일부 주에서만 직선함) 교육감 직선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교육감들에 의하여 오히려 교육현장이 망가지고 있다. 그들은 교육가가 아니라, 정치를 교육현장에서 실험하려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교육감직을 선출직에서 임명직으로 속히 바꾸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살아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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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0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이상길 목사의 ‘기도의 결국은 감사와 유익입니다’(골 4:2)
    성도라면 누구나 기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해야 한다는 대해서 모두가 공감하며 총론적으로는 다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이유로든 자기를 합리화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옳지 않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시 72:15, 시 141:5, 눅 18:1, 눅 21:36, 행 10:2). 기도는 영적 호흡이요, 영적 생명줄과 같습니다. 또 기도는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이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길이고, 삶에 활력을 얻는 은혜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아닙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명하셨습니다. 좋을 때나,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에나 어떤 처지와 형편이든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소망이 생기고, 환경도 상황도 인생도 바꾸어 놓습니다. 환경과 현실만 보고 구하지 말고, 앞을 바라보며, 입을 크게, 넓게 열어야 합니다(시 81:10). 저희 교회 집사님 중 한 분이 8년 전에 아내가 병으로 위경에 처했을 때, 담당의사가 장례준비를 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낙망이 되어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2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2년만 더 살아도 어디 입니까? 그 후 정확하게 2년을 더 사시고 하나님나라에 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루고 나서 집사님께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때 5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할 껄’ 후회가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이성으로, 자기 판단으로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들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히 11:1)? 믿음으로 확신을 갖고 담대하게 구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십니다(약 5:15). 그런데 기도의 응답이 더디거나, 간구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실망하며 시험에 들거나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열심히 기도했는데, 정반대의 결과를 마주칠 때, 혼란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기도자로서 옳지 않은데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시니, 우리는 기도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간구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망하거나 무력감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시험에 들거나 낙담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줄 알고, 소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진정한 기도는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간구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으면 감사할 일이 아닙니까? 또 기도에 열중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갔고, 그 만큼 신앙의 성장과 진전을 이루었잖습니까? 기도의 응답이 있기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훈련도 받지 않았습니까? 이런 유익을 놓치고 탄식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어떤 결과가 나와도 감사와 유익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도로 이끄시어,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나가시는 선하시고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눅 18:1). 오히려 하나님의 더 큰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었기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을 존중해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항상 온전히 기도에 힘쓰고, 기도할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골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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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0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디쇽, 빛날 때 만끽하라.”
    지난 수요일 저녁에 저는 태백시 황지교회에서 열린 성시화대성회의 강사로 갔습니다. 제가 어지간하면 전교인 수련회를 앞두고 외부 집회를 가지 않지만, 태백시는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가 있는 곳이고 제가 즐겨 보았던 드라마 ‘에덴의 동쪽’의 배경지로 각인이 되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함백산이 바로 보이는 숙소에서 하루 저녁 묵고 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예약했던 숙소를 취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새벽에 병원 중환자실에 가서 故 강정식 장로님의 임종을 지켜보며 마음이 심란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임종 직전에 들리는 소리로 “장로님, 천국에 잘 가세요.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곳은 더 이상 눈물도 고통도 질병도 없는 곳입니다. 천국에 가서 평안히 쉬세요”라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질타를 하였는지 모릅니다. 강 장로님은 생전에 당뇨병을 앓으면서도 운동하기를 그렇게 싫어했습니다. 한여름에 팥빙수, 아이스크림 겨울에는 꿀호떡, 호빵 등 온갖 달달한 것을 가리지 않고 먹고 살았습니다. 공복 시에도 당 수치가 250, 300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얼마나 잔소리를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강제로 산에 끌고 다니면서 운동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오대산을 한번 가고 나서는 다시는 산행에 따라오지 않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저런 험한 산은 못 오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몇 년 동안 투병을 하시다가 죽음을 맞이하시게 되었습니다. 강정식 장로님은 정자동과 구미동 목회시절에 제 가까이서 섬기고 봉사를 했던 분입니다. 그런 분의 임종을 지켜보니 마음이 심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수요일 오후에 위로예배를 드리고 빈소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겨우 집회시간에 맞게 태백에 도착했습니다. 도착을 해보니 공기가 수도권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정말 가을 날씨고 바람이 스산할 정도로 시원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잠깐 움직였습니다. “이곳에서 하룻밤 자면 어떨까.” 그런데 순간 전교인 여름수련회 생각이 났습니다. 그 긴장감과 강박감이 마음을 억눌러서 결국 하룻밤도 쉬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시간이 되는 대로 강 장로님의 조문소를 지켰고 발인예배까지 인도했습니다. 다행히 강 장로님이 전교인 여름수련회 전에 돌아가셔서 제가 빈소를 지키고 모든 장례 절차를 집례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수련회 기간에 돌아가셨으면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장례식장을 지키고, 강정식 장로님의 영정사진을 볼 때 계속 떠오르는 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엘리멘탈’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불의 세계의 언어인 ‘디쇽’이라는 단어입니다. ‘디쇽’은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언어인데 “영원한 불꽃은 없으니 빛날 때 만끽하라”는 의미입니다. 강정식 장로님이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를 드실 때 제가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면 이런 말을 했거든요. “목사님,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짧은 세상 사는데 먹고 싶은 거 먹는 것이 만끽이고 즐거움이 아니겠습니까?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아세요? 저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막 먹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고 즐거움이고 만끽이었을까요? 그분이 좀 더 먹는 걸 절제하고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를 잘했더라면 72세의 연세에 돌아가셨을까요? 그러니 건강 100세 시대를 추구하는 세상에 장로님의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영원한 불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빛날 때 만끽해야지요. 그러나 그 만끽은 방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절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불꽃이 없으니 빛날 때 좀 더 절제하고 건강을 지켰다면 더 행복한 삶을 만끽하고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전교인 여름수련회에 대입을 해 보았습니다. 어떤 인생이든 영원한 불꽃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병들고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영혼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하여 은혜를 받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받고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늙고 병들면 은혜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성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원한 불꽃, 영원한 삶은 없으니 조금이라도 삶이 젊고 빛날 때 은혜를 만끽하자”고 말입니다. 며칠 전 산행을 할 때 늦은 여름까지도 울어대는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제 글의 한 문장 속에 다시 깃을 치는 듯합니다. 소쩍새 역시도 영원한 불꽃은 없으니 빛날 때, 젊을 때 은혜를 받고 만끽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은혜받고 삶을 만끽하다가 언젠가 아름답게 죽음을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8-0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잊지 않겠다는 약속”
    우리 교회는 17년째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해 왔습니다. 처음에 행사를 시작할 때는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국가가 할 일을 왜 교회가 하느냐”고 말입니다.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하는 이유는, 첫째, 보은과 보훈의 차원에서 하는 것입니다. 보은이 한 개인의 인격을 말한다면 보훈은 국가의 품격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난날 역사의 수치를 기억하고 미래의 평화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셋째, 더 나아가 민간 외교를 넘어서 공공외교 차원에서 하는 것입니다. 공공외교란 ‘정부 대 정부의 외교’(기존의 정무 외교)를 넘어서, 우리 정부와 민간이 상대국 국민들의 여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외교활동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새에덴교회와 같은 비정부 민간 행위자들도 외교에 뛰어들어 상대국 국민의 여론을 자국에 유리하게 변화시킴으로써, 상대국 정부의 정책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모든 외교활동을 공공외교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새에덴교회도 17년 동안 공공외교를 통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한ㆍ일 간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우리 교회 참전용사 행사에 참석했던 미국 참전용사들이 “독도는 우리가 싸워 지킨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서한을 아들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적도 있습니다. 또한 참전용사들이 힘을 모아 세리토스 조재길 시장이 선출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의 보훈청이나 보훈병원에 가면 새에덴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이러한 새에덴교회의 공공외교의 기록을 다큐로 제작하여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을 하였습니다. 물론 재방, 삼방도 해준 적이 있지만 방송으로만 끝나니까 좀 허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유튜브로도 남겨서 방송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봐야 할 텐데, 올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우리 교회가 자체적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박소현 작가가 대본을 쓰고 나유진 간사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처음에 다큐 시사회를 하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정말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절대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우리 교회 실력으로 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유튜브에 올리기 전에 교계 방송에 내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CBS, CTS, C채널, GOOD TV까지 재방, 삼방을 하였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본방을 보았는데 시사회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었습니다. 방송을 이미 봤는데도 더 새롭게 느껴지고 더 감동적이고 매력 있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박소현 작가와 나유진 간사의 연출이 아주 돋보였습니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자마자 교계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17년 동안 너무 수고 많았습니다. 새에덴교회와 소 목사님께 박수와 응원을 보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은혜받은 사람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박종삼 목사님을 비롯해서 광주신학교 다닐 때 조금이라도 빚을 진 사람들을 잊지 않고 찾아갔고, 구정 때는 내려가서 세배까지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 개인에 관한 보은의 마음이었는데, 차츰 은혜를 잊지 않고 받은 사랑을 보답하겠다는 의식과 안목이 더 넓혀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 저는 새에덴교회를 담임하는 지역교회 목사가 아니라 한국 교회를 섬기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의식하고 시대와 사회를 보듬고 깨우는 선각자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 것입니다. 특히 마틴 루터킹 국제평화상 전야제에서 만난 흑인 노병, 리딕 나다니엘 제임스와의 만남을 통해 저의 눈이 떠진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 의식과 시각으로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참전용사들의 초고령화로 국내로 초청하는 것은 마지막이라고 하지만, 그걸 우리가 어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마지막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할 수 있고, 또한 “나는 한국을 한 번도 못 와봤으니 제발 초청해 달라”는 분이 많이 계시다면 이 부탁을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하나님과 저 스스로에게 “한 분의 참전용사라도 살아 계실 때까지 잊지 않고 찾아가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다”고 약속하고 공적으로 선포를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 역시 끝까지 함께해 주실 줄 믿습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성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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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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