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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11월의 가을 단상
    지난 목요일 점심에 몇 분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그 기관의 회장은 아니지만 어느 기관의 정기총회 일로 저를 찾아와 의논을 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입을 모아 저에게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는 것입니다. “소 총회장님, 요즘 얼마나 힘드세요. 과거에 소 총회장님이 배려하고 베풀어 주었음에도 그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 보고 있을 텐데요. 어쩌면 소 목사님의 영향력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닙니다. 누가 저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고 전화도 했지만, 전혀 일말의 관심도 없습니다. 그 뒤로는 전화도 안 받고 그런 문자도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일에 신경 쓸 여지도 없고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를 세울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아직도 한국교회는 코로나의 상흔이 있고 후유증이 있는데 이 상흔과 후유증의 안개를 뚫고 어떻게 교회의 새로운 영토를 확장해 나갈 것인가. 어떻게 한국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될까 고민하며 ‘뉴트로 전략, 핵처치(사도행전적 원형교회)’라는 책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도대체 언제 그런 책을 쓰셨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빨리 책을 쓸 수가 있습니까?” “저는 원래 아침형이 아니라 저녁형이어서 날밤을 새워서 책을 썼지요.” 이런 덕담을 나누면서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그들을 교회 정문까지 배웅해드리고 나서 잠시 거리를 걸었습니다. 얼마 안 남은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내렸습니다. 문득 이런 시상이 떠올랐습니다. “가을나무 한 그루 / 차가운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 애타는 얼굴로 / 팔을 휘젓고 서 있다 / 햇빛 쏟아지는 / 거리에서 / 바닥에 떨어진 / 나뭇잎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 하나 하나 / 이름을 부르고 있다.” 제가 부총회장에서 총회장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어떤 분이 집요하게 반대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개혁측 출신이 그렇게 쉽게 총회장을 하느냐. 좀 어렵게 총회장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분이 어느 노회 소속인가 알아봤더니, 파악한 바에 의하면 21 당회도 갖추지 못한 미조직 노회라는 것입니다. 교회 실사위원회를 맡았던 분이 저에게 그걸 알려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원칙적으로는 총회에 나올 수도 없고 총대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제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그분이 알고 먼저 총회에 고소했던 것부터 취하하고 부랴부랴 저의 접견실로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어떤 분이 소 총회장님이 너무 잘나가고 쉽게 총회장이 되는 거 같아 곤경을 선물로 줘야 된다고, 그래야 소 총회장이 날뛰지 않고 겸손하게 될 거라고 저를 뒤에서 컨트롤을 했습니다. 어쩌면 자격지심일지도 모르죠.” 그러면서 녹음된 통화 내용을 저한테 들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장 책상을 치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선배님,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었습니까? 왜 이렇게 나이답지 않은 행동을 하십니까? 그런 걸 들려준다고 제가 들을 사람입니까? 그런 일로 왔으면 어서 가십시오. 저는 그런 거 개의치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에게 교통비까지 줘서 보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행동했던 저를 생각하면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를 수행하는 유송근 장로님이 전철역까지 그분을 태워다 드렸는데 그분이 차 안에서 들려주더라면서 유 장로님이 그 내용을 저에게 보고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장로님께 그랬지요. “장로님, 저한테 보고하지 마세요. 저도 사람인지라 그런 얘기 들으면 편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장로님,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줄 아십니까? 그 편견과 선입견이 잘못 표현되면 꼴불견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난 꼴불견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때 유 장로님이 오히려 저한테 감동받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저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떨어진 낙엽을 밟는데 지난 여름 푸르른 나뭇잎들과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무성하고 푸르렀던 나뭇잎도 결국 가을이 되니까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제가 떨어지는 낙엽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어찌 낙엽뿐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저와 관계했던 사람들, 얽히고설켰던 사람들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생각하며 축복을 하였습니다. 저를 정말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생각하며 축복을 하였습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1-12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강성률 목사의 ‘적극적인 순종’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마26:30). 감람산은 올리브 산입니다. 거기에는 겟세마네 동산이 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제자로 택함을 받았던 가룟 유다의 배반과 대제사장들의 하속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올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한 사람도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고 달아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과 함께 습관을 따라 기도드렸던 곳, 척하면 예수님이 계시는 위치를 짐작할 만한 곳, 그러기에 유다가 대제사장의 하속들과 함께 올 수 있는 곳입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있는 힘을 다하여 피하고 싶은 곳이겠지만,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들을 미리 아시는 주님께서는 찬미하며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올라가십니다.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뜻에 맞지 않아도 아버지의 뜻이기에 찬미하며 올라가십니다. 순종은 적극적인 순종과 소극적인 순종이 있습니다. 찬미는 적극적인 순종을 드러냅니다. 소극적으로 순종하면 시험이 올 때 돌아서기 쉽습니다. 작은 일에도 유혹을 받아 넘어가고 맙니다. 소돔성이 악하여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소돔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롯을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소돔성을 멸할 계획을 말씀하시고 그 처와 두 딸이 성 밖으로 나와 산으로 도망할 것을 말합니다. 롯이 산보다 가까운 소알성으로 가겠다고 하자 그것까지 허락하십니다. 순전히 삼촌 아브라함 때문이었습니다. 소돔에 유황불이 쏟아질 때 롯의 처는 성안에서 나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창19:23-29). 롯의 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은 하였지만 그 말씀을 자기의 말씀으로 받지 못하고 억지로 소극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 것입니다. 소극적인 순종은 이처럼 실족하기가 쉽습니다. 여로보암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그가 다윗같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집을 세워주시겠다는 약속을 굳게 믿지 않았습니다. 행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서 마음이 르호보암에게 돌아가 그를 죽이고 그 나라를 다윗왕조에게 돌릴까 봐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웠던 것입니다(왕상12:29). 이 소식을 멀리서 들은 유다에 사는 선지자는 매우 탄식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벧엘에 사는 늙은 선지자를 쓰시지 않으시고, 멀리 유다에 사는 선지자를 벧엘에 보내어 여로보암을 책망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내실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왕상13:9). 이 말씀에 유다에 사는 선지자는 ‘말씀을 받아 전하면 그만이지 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고 하셨을까? 왜? 가던 길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실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가 돌아올 때는 쉬면서 음식도 보충하고 이미 익숙한 길로 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니 순종하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억지로 소극적으로 순종하다가 그만 벧엘에 사는 늙은 선지자의 속임에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오던 길로 다시 가지 말라는 말씀,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는 말씀이 마음에 걸렸는데 자신보다 한참 선배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물과 떡을 주라고 하셨다.”는 말에 그만 마음이 녹아들고 만 것입니다(왕상13:19). 이처럼 순종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때 마귀는 그 틈을 노립니다. 그리고 넘어뜨리고 맙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성경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종종 보았습니다. 억지로 순종하는 사람, 마음이 상하여 순종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이 하지 말라고 그랬어.” “아버지께서 보지 말라고 그랬어.” 물론 소극적인 순종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런데 소극적인 순종 속에는 자신은 하고 싶은데,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에 대한 다소 섭섭한 감정과 원망 섞인 감정이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순종할 내용에 대하여 다소 왜곡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순종을 피해야 합니다. 어차피 순종할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해야 합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내 복음(롬2:16)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씀을 내 말씀으로 받아서 행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도 함께 주십니다(행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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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레드와 그린 사이에 있지만···
    지난 수요일 우리 교회 김미화 집사님이 개소한 하은상담소에 심방을 갔습니다. 김미화 집사님은 ‘내 마음의 별똥별’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한데요. 4년간 우리 교회 상담실에서도 봉사를 했고 학교에서 아동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신 분입니다. 가서 예배를 드리고 축복 기도를 해 주었는데, 김미화 집사님께서 갑자기 “CPTI라고 하는 비채컬러 성격 유형 검사가 있는데 검사 좀 받아보고 싶지 않으시냐”는 것입니다. “받아보면 뻔할 텐데요.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그랬더니 얼마 안 걸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검사지를 받고 체크를 했습니다. 검사하는 시간 보다 해설하는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더라고요. 비채컬러, 성격 유형 검사는 색깔을 통해서 성격을 나타내는 것인데, MBTI의 축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가 하면, 레드(빨간색)가 64점으로 제일 많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린(초록색)이 56점으로 두 번째로 나왔습니다. 레드는 적극적이며 진취적이고 실행력을 갖고 활기차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뿐만 아니라 통솔력과 결단력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개방적이고 외향적이며, 현실감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역작용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충동적이며 단순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중심적일 수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솔직하여 상대방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온 색깔이 그린이었습니다. 그린의 특징은 모범적이며 원칙에 공정하고 책임감과 충성심이 높은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변과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며 배려심과 관대함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린이 반대급부로 나타날 때는 이따금씩 인색하거나 냉담하며 관망의 성향을 갖고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감정을 억압하여 잘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미화 집사님에 의하면 제가 검사지에 체크를 하는 모습이나 태도, 중얼거리는 모습을 볼 때 타고난 기질은 오히려 그린이라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은 그린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삶의 환경과 상황이 레드를 만들어 냈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린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이고 레드는 후천적으로 길러진 성격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기복의 차이가 큰 사람도 많이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다른 색깔도 거의 원만하게 나온 것입니다. 엘로우(노란색)도 54점, 퍼플(자주색)도 54점이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블루(청색)도 50점이 나왔습니다.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레드가 주도적이긴 하지만 다 비슷하게 나온 것입니다. 엘로우는 명랑하고 낙관적이고 호기심이 강하며 관찰력이 높습니다. 사교적으로 수용하며 친절하고 희망과 기대로 변화를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퍼플은 창의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천성적으로 높은 직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창적 사고와 예술적 재능을 보입니다. 우아하고 고상한 품위로 격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엘로우와 퍼플은 같고 가장 적게 나온 게 블루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성격은 주도적이긴 하지만 모나지 않고 또 충돌하지 않으며 원만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심과 배려심도 많고 창의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합니다. 또 높은 직관력도 갖고 있습니다. 대체로 검사 결과에 저는 동의를 했습니다. 나름 성실하게 기록을 한 결과라고 믿어졌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색깔이 좋고 나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나쁜 것이 있으니까요. 가령 보라색에서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천성적으로 높은 직관력을 갖는 반면에 현실 도피 내지는 개인적인 우울감과 교만함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블루 같은 경우는 안정적이며 신뢰감을 갖고 인내심이 깊고 강한 의지력이 있지만, 반면에 엄격한 자신이 부동의 상태를 만들고 비사교적이며 내향적 관계의 도피를 갖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름 제 자신을 돌아보는 데 유익하였지만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성격과 기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성격과 기질이 성령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고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소신이기도 하지만 일찍이 팀 라헤이가 ‘성령과 기질’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런 주장을 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질과 성격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부정적 감정으로 표출되고 행위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레드와 그린 사이에 있고, 또 다른 색깔도 대부분 원만한 균형을 이룬다고 하지만, 성령의 지배를 받고 다스림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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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1-05
  • [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임희국 박사(1955-)
    ‘구술사’ 및 ‘미시사’ 통해 지역교회사 발굴에 공헌 역사방법론에 기여한 사가… 여성 교역자들의 역할 중요시 경북 김천 출신, 불름하르트 연구로 바젤대학서 학위 받아 임희국(林熙國)은 1955년 1월 17일,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삼락동은 일제 때 경부선 철도가 생기기 전에는 소위 양반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선비의 고장이요, 지역에서 가장 큰 유림촌(儒林村)으로 시가지 중심을 이룬 마을이었다. 일컬어 구읍(舊邑)으로 불리는 김천의 행정 교육 중심지였다. 임희국이 태어난 1955년은 6.25 전쟁이 3여년 만에 겨우 휴전으로 매듭 짓고 나라가 심히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러나 희국은 어릴 때부터 글을 읽고 쓰며 머리가 총명한 소년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초등학교 시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중고등학교는 당시로서는 대도시인 대구로 유학을 가 선교사들이 세운 계성(啓聖) 중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는 미션스쿨에서 학업과 신앙훈련을 받고, 계명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2월 24일?문학사(B.A)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이어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교역학 석사(M.Div) 과정을 마치고, 다시 대학원 석사(Th.M) 과정에 진학했다. 당시 상황을 임희국은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신학수업 3년으로 전임교역자가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판단해서 공부를 좀 더 하기로 했다. 전공을 교회사 분야로 선택했다. 대학원 수업은 세미나식으로 진행되었다. 석사학위 논문을 이형기 교수의 지도로 초기 칼 바르트(K. Barth)의 성경해석에 관하여 서술했다. 그런데 논문 작성 과정에서 바르트 신학사상이 불름하르트(Blumhardt) 부자(父子)의 영향 아래 새로이 출발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것이 몇 년 뒤에 바젤에서 불름하르트(아들) 연구에 연계되었다."(교회사연구, 이제는 한국과 아시아로, p.29). 이 연구로 장신대 대학원에서 신학석사(Th.M)학위를 받았다. 임희국은 1987년 9월, 로흐만 교수의 추천으로 스위스 바젤개혁교회 총회장학금을 받아 독일에서 어학연수를 거쳐, 바젤대학교 신학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하여,이곳에서 로흐만 교수의 지도로 불름하르트 연구로 학위논문을 쓰게 되었다. 학위논문 내용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독일어권의 교회사와 신학사상사로 전공 정체성을 여기에 두고, 불름하르트의 설교를 신학화 한 학문성을 인정받아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역사신학 강의하며 지역교회사 탐구 그의 논문은 지금까지의 불름하르트 연구를 한 걸음 넘어 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불름하르트의 우주적 이해(Universal Cosmic)를 밝힌 점이 특출하다는 평이었다. 학위를 마치고 귀국해 그 해에 경산에 있는 영남신학대학교에서 1995년 3월 학기부터 역사신학(교회사) 분야를 맡아 가르치기 시작해, 세계교회사와 함께 선택과목으로 영남지역교회사 과목을 병설했다. 이것이 그의 지역교회사 탐구의 디딤돌을 놓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를 중심해 경상도내 경산, 청도, 고령, 경주 등지의 역사있는 교회들을 대상으로 초기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며, 학생들에게 과제를 주어 연구케 했다. 이어 안동지역의 유림문화권, 경주지역의 불교문화권, 고령지역의 가야문화권을 대상으로 지역 교역자들과도 협력하여 지방교회사 연구에 기초를 다졌다. 그런 가운데 안동지역 선교에 큰 영향을 끼친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 이원영(李源永) 목사에 관한 자료와 정보협력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당시 안동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김기수 목사였고, 김 목사를 통해 그의 유족 중 대구 대봉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이정순 권사를 알게 되었다. 이원영 목사는 퇴계 이황 선생의 14세 후손으로 뼈속까지 유림사상이 가득한 인물이었으나 안동에 온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에 의해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1919년 안동과 예안 3.1독립운동 시에 만세 시위를 주동하고 투옥되어 경성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 중 성령을 받아 평생 향촌 안동에서 목사로 헌신하였다. 그는 지역사회와 교회가 존경하는 목사요, 독립운동가와 교육자, 그리고 선비의 삶을 산 실천가였다. 임희국에게 이원영 연구는 스위스 바젤에서 배운 기독교의 보편성과 특성, 곧 그리스도교의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는데 주력한 것이었다. 이원영 연구를 통해 미시사(Micro-History) 연구에 천착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이것은 교회사 연구에서 거시적 연구 뒤에 가려져 있던 작은 규모의 역사를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즉 망원경으로 관찰하던 거시사(Macro-History) 작업에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미시사 작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안동 유림 출신 이원영 목사 연구로 서북지역과 영남지역 간의 개신교 선교 비교 영남지역의 장로교회는 역사 속에서, 한편 평안도 서북지역과 연계되어 그 영향을 받았고, 또 다른 한편 영남의 유림전통을 선별적으로 계승하면서 발전하였다. 서북지역은 조선시대에 중앙정부로부터 홀대를 받았기에 정치권력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중국 대륙에 인접해 있으므로 무역에 종사하는 상인층을 중심으로 대륙의 문물이 소개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을 겪은 평양주민들은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명치유신으로 국력을 키운 덕택에 중국을 이겼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서양문물을 한국에 가져오는 개신교 선교사에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비하여 경상도 북부지역에는 조선시대의 지배이념인 성리학(性理學) 전통이 뿌리깊게 자리 잡았으므로 서양종교와 문물이 쉽게 발을 붙이지 못하였다. 게다가 외세를 배격하는 위정척사(衛政斥邪) 운동이 1880년 안동유림의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를 시작으로 전국에 확산되었다. 이처럼 영남지역은 여러가지 면에서 평안도 서북지역과는 다른 환경이었다. 그런데 안동 유생 가운데 몇몇은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에 관한 연구가 지금까지 드물었는데, 이원영 연구를 통해 상세히 그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임희국은 임옥 목사와 그의 부인 이연옥의 생애와 리더십 연구로 계속 이어갔다. 김수만 장로 전기 통해 '구술사'의 중요성 발견 다음으로는 교회사 연구 형태 가운데 하나인 구술사(Oral History) 연구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그 실례가 된 주인공은 김수만(1901-1971) 장로 전기 집필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 연구의 단초는 영남신학대학교 재직시 김석구 학생이 수집 제공한 자료를 만나면서 부터였다. 김수만은 1946년부터 세상을 떠난 1971년까지 25년간 안동지역의 남후면, 임하면, 길안면 내의 여러 동네를 찾아다니며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10여 개 마을에 교회를 개척 설립한 전도자이다. 그의 실화를 근거로 그에 대한 이야기가 교인들만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그의 이름과 행적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확산되어 있는 사실을 수집 정리해 경상도 북부지역의 무명의 전도자 행적을 정리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역사 속에 숨겨져 잠자고 있는 실체를 증인들로부터 캐낸 살아있는 전도자의 이야기요, 선교역사 연구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임희국은 이름하여 교회사 속의 구술사 연구라는 장으로 만든 것이다. 임희국의 관심사는 한국교회사의 면모를 파악하며 연구할 수록 연구분야가 점점 확대되어 갔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큰 밑거름으로 작용한 여성교역자들의 연구와 여성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겠다는 사실의 인식으로 나간 것이다. 현역에서 은퇴해 물러나 있는 여교역자들의 삶과 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구술사로 서술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다. 이 일에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작업이라 임희국은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있는 세미나 참석자들을 '역사방법론' 과목의 실습의 일환으로 학생들을 도우미로 활용하였다. 연구대상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에 소재한 예장통합측의 여교역자 안식관에 기거하고 있는 은퇴교역자들이었다. 안식관에 거처하고 있는 11명의 왕년의 전도 사역자들에게 장신대 대학원생들을 1명씩 짝을 이루어 ①가족사항, (②학교 및 신학교, ③청소년 시절의 사회환경 및 겪은 역사적 사건, (④배우자 및 자녀, 사회경험, ⑤교역자로 사명 깨들은 계기, (⑥ 목회경력, ⑦내게 힘이 된 성경 및 찬송, ⑧다음세대에 전해주고 싶은 신앙유산 및 후배에게 남기고 싶은 말, ⑨사전에 이력서 작성 및 소장하고 있는 자료 수집 등을 정리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이들의 사역과 역사가 한국교회 부흥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파악하기도 하지만 귀중한 자료로 삼을 수 있겠기 때문이었다. 개교회사 및 지역 노회 역사연구로 확대 마지막으로, 임희국의 관심사는 마을 및 지역교회사 연구와 함께 개교회사 및 노회역사 연구로 관심의 폭과 연구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갔다. 구체적인 성과물로는 서울 동신교회 50년사, 소망교회 30년사, 평양노회 100년사, 강원노회 60년사 등을 집필하기에 이르렀고, 특이한 연구 프로젝트로는 제주지역 전통문화와 그리스도교 연구가 있고,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예장통합 역사위원회의 사업으로 장로교회 전수조사를 한 것은 큰 과제였고 보람된 일로 기억하고 싶다고 하였다. (같은 책, p.34-60 참조). 임희국 박사는 1995년 이래로 2019년까지 세계화 시대에 상응하는 지역교회사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가 진척되는 동안에 이 연구가 교회사 바깥 일반 역사학계에서도 담론으로 정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는 포스터모던 시대에 일반역사학에서 논의되는 새로운 연구방법을 살펴가면서 1995년 이래로 25년 간의 지역교회사 연구를 진척시켰다고 회고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불름하르트가 증언한 하나님나라(Ph.D 학위논문), 선비목사 이원영(2013), 여성지도자 이연옥(2011), 김수만 장로 절면서 10개 교회 세움(2004), 베이도의 선교와 사상(2013), 성효 최거덕 목사(2010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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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규 목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2023-11-02
  • [언론회 논평] 중앙선관위의 투·개표 시스템 해킹과 조작 가능하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가정보원, 그리고 한국인터넷진흥원이 공동으로 선관위의 6,400대 장비 가운데 317대에 대한 보안 점검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결과 외부로부터의 해킹과 그로 인한 조작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중앙선관위의 요청으로 시스템의 취약성 여부, 해킹 대응 실태, 기반시설 보안관리 등 3개 분야를, 국제 해킹 조직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수법을 통해 지난 7월 17일부터 9월 22일 사이에 중앙선관위 시스템에 침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인데, 상당히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국가정보원이 발표한 것을 보면, 국민들이 중요하게 주권 행사한 것에 대한 국가기관의 선거 관리에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이 행사한 주권과 그 결과 값이 달라진다면 이는 중대한 실책으로, 그에 대한 보완과 방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세 개 분야에서 점검한 것을 살펴보면, 첫째 시스템 취약성이 드러났는데, 투표시스템에서 통합 선거인 명부 시스템에 해킹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렇게 될 경우에는 유권자 등록 현황과 투표 여부를 외부에서 관리할 수 있고, 사전 투표자도 미투표자로 만들어 ‘이중 투표’를 할 수 있게 된다. 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정상적 유권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전투표 용지를 무단으로 인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한가? 사전투표 용지에 날인되는 청인(廳印 선관위)과 사인(私印 투표소) 파일을 절취(竊取)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전투표용지와 QR코드가 동일한 투표지도 인쇄 가능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비(非)인가 PC도 연결할 수 있어, 내부 선거망으로 침투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일종의 사전 투표인 ‘선상(船上)투표’의 경우 암호 해독이 가능하여 특정 유권자의 기표결과를 열람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개표 시스템에서도 ‘개표 시스템’ 내용이 안전하게 내부망에 설치되어야 하나, 보안 관리가 미흡하여 해커가 개표 결과 값을 변경 가능하다고 한다. 또 투표지 분류기를 해킹하여 투표 결과를 변경할 수 있다고 한다. 시스템 관리 측면에서도 내부 중요 전산망을 인터넷과 분리하여야 하나, 망 분리 보안정책이 미흡하여 내부 중요망에 외부의 침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거기에다 보안이 뚫리므로 대량의 개인정보 유출까지도 염려가 되는 상황이다. 두 번째로는 해킹 사고 후속 보안 강화 조치 점검인데, 최근 2년간 북한발 해킹 사고에 대하여 국가정보원에서 중앙선관위에 통보했으나, 그에 대한 사전 인지(認知)나 대응이 전무(全無)했다고 한다. 지난 2021년 북한 조직의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대외비 문건 및 업무 자료가 유출된 사례도 있다. 세 번째로는 선관위가 운영 중인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의 보안관리 실태 점검에서, 합동보안점검팀이 31개 항목에 대하여 재평가한 결과, 100점 만점에 31.5점을 받을 정도로 취약함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북한 등 외부 침투 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공격을 해 들어올 수 있다고 밝혀졌다. 그 동안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지난 해 대선 전까지 거대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심지어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 조차도 선거 시스템에 대하여 그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고, 안일한 태도를 취해왔다. 한국은 내년에 아주 중요한 총선을 앞둔 가운데 있는데, 이는 국운(國運)이 걸릴 정도로 중요하다. 따라서 정부, 여당, 야당, 중앙선관위 누구라 할 것 없이, 국민의 주권이 공정하고 정확하게 나타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반대를 하거나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며, 국민의 주권을 절도하는데 방임·동조하는 것으로 국가 반역행위와 다르지 않다. 우리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계에서도 이런 문제를 단순히 정치 문제로 간주하여 모른척하지 말고, 선거의 공정성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들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그것이 시스템 관리의 미비나 혹은 의도된 개입에 의하여 변질된다면 국민의 신성한 선택은 허망하게 사라지게 된다. 아무리 좋은 국가 정체성과 선거 관련 법률 체계가 있다고 하여도, 이를 지키지 못하고, 국민들의 민의(民意)로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서, 예상되는 부정과 조작에 대비하여 막아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을 온전한 국가로 지켜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한다.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잠언1장3절) 공의(righteousness)가 사람 간의 공평한 관계를 말한다면, 정의(justice)는 개인, 사회, 국가 구성원의 공정한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의와 정의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도 불의와 불공정을 알게 되거나 발견했다면, 이에 대하여 바르고 분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선거 시스템의 보안강화 제도의 미비점과 개선을 위하여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선거의 공정성을 확립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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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2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이상길 목사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살전 1:1-10)
    오늘날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파하는데, 그 열정과 수고에 비해 열매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와 그 일행은 데살로니가 지역에 대략 3주에서 한 달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거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이 같은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복음이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파되었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사람 앞에 보이는 외식적인 일이 아니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이루어진 진실한 일이었습니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렘 17:9)의 마음에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지금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아닌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의 감사는 근본적으로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덕행과 미덕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권면을 받기도 했기 때문입니다(4:1 ; 5:14). 그럼에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은 현상적인 면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자신과 교회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큰 소망을 두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살았기 때문에 반드시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2:13, 히 4:12).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할 때 말과 성령의 능력(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힘은 성령의 능력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강한 능력이 내 안에 더러운 것들, 추한 것들, 냄새나는 것들 쏟아내고 심령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영적변화를 이루게 합니다. 성령의 능력만이 우리를 강하게 하고, 우리를 은혜의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의 내주를 체험하였고, 성령의 한량없이 부어주시는 영적 기쁨으로 인해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환난을 당할 때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성령을 바라보며 담대한 마음을 가지며(요 17:22, 33), 성령의 기쁨으로 복음의 말씀을 듣고 고난 중에 하나님을 믿는 일과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려고 애쓰는 순종의 생활을 하십시다. 바울사도와 동역하는 전도자들이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산 결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훌륭한 신앙의 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한 성도들의 말과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이 주위에 저절로 퍼져나갔습니다. 또 데살로니가 교인은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소망 역시 오직 재림의 주님이십니다. 이것을 빼놓으면 우리의 신앙은 확신도 없고, 소망도 흐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막연히 수동적인 자세로 재림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자기의 신앙을 굳게 하며 기쁨으로 환난을 견뎌내는 적극적인 자세로 주님의 날을 예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의 승패는 영적 분별력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살아간다면 확신과 함께 온전한 믿음으로 설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로 참된 교회를 이루어 각 사람의 믿음의 확신과 소망이 분명해지며 사랑이 뜨거워지는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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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3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무 일도 없었던 어느 가을날
    한 달 전쯤 신델라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국립극장에서 본인이 단독 공연을 하는데 저를 특별히 VVIP로 초청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공연 중에 제가 작사한 노래 ‘주님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를 하면서 저를 소개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공연장에는 교계 방송에 관계된 분들, 그리고 교계 주요 인사들이 초청되었을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이 3분의 2가 넘을 정도인데 이런 자리에서 목사님 딱 한 분만 소개를 해 드리는 것은 자신에게도 영광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제가 기꺼이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교회 프라미스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그날 같은 시간에 포은아트홀에서 공연을 하기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새에덴교회 프라미스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을 가지 않고 딴 곳으로 갔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섭섭해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은 신델라 공연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입니까? 서울대 음대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태리 국립 음악원인 산타체칠리아를 최단기 코스로 마치고 졸업을 한 후, 유명 팝페라가수로 활동을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일 점심까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로서 프라미스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 쪽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집사람이 대신해서 우리 교회 총여선교회 회장이신 김옥경 권사님과 함께 그쪽으로 간 것입니다. 포은아트홀에서 진행된 청소년 오케스트라도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정말 공연을 잘했습니다. 그리고 정중앙 VIP석에서 바라보니까 아이들도 아이지만, 김연정 집사님의 지휘하는 뒷모습이 너무 품격 있고 우아하게 보였습니다. 이윽고 공연이 끝나자, 제가 집사람에게 어땠느냐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람 입에서 감탄이 나오는 것입니다. “공연이 너무 훌륭하고 품격 있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이곳에 와서 공연을 봤으면 집회를 하고 설교를 하는데 많은 영감과 지혜와 착상을 얻었을 것입니다. 대중가요 콘서트와는 또 다른 격과 결이 있고 감동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신델라 교수님께서 저희 집사람을 일어나라고 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께서 꼭 오시려고 했는데 다른 일이 있어서 사모님이 대신 오셨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작사를 소 목사님이 하셨습니다. 소 목사님 대신 사모님께 박수를 쳐 주세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저희 집사람만 소개를 하며 따뜻하게 맞아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넓은 공연장이 단 한 자리도 비지 않고 꽉 채워져 있었는데, 후문에 의하면 신델라 교수께서 가장 좋은 자리에 직접 앉아보고 그 중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저와 집사람에게 내어 줬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몇 몇 교계 인사들이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무슨 일이 그렇게 바빠서 못 오셨습니까? 오셨으면 완전히 목사님 자리가 될 뻔 했습니다.” 그날은 정말 많은 아쉬움이 있는 날이고 또 대견스러운 날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에 갔다는 건 담임목사로서 대견스러운 일이고, 또 신델라 교수 공연에 가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죠. 그래서 그런지 저는 다음날 다른 교회 집회를 갔는데, 그만 모르고 설교 원고를 안 가져가 버렸습니다. 물론 원고 없이 얼마든지 설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고가 있어야 든든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혹시라도 실수하지 말아야 할 텐데... 그래서 비서실에 그 원고를 찾아서 인터넷으로 보내라 했습니다. 일어나보니 꿈이었습니다. 물론 다음날은 제가 다른 교회 집회에도 가지 않고 우리 교회에서 설교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전 예배 때도 외부 강사가 오셨고, 저녁예배 때도 외부 강사가 오셨습니다. 저는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두 분이 오셔서 다 은혜를 끼쳤습니다. 두 분을 모두 베드로 동상까지 배웅했습니다. 그때 교회 직원이 가로수의 낙엽을 쓸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르신, 그 낙엽 안 쓸어내셔도 됩니다. 어차피 오늘 쓸어봤자 내일 또 떨어질 거 아닙니까? 그리고 지나가는 분들이 낙엽 밟는 낭만도 있어야지요.” 저녁까지 아무리 돌아봐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조그마한 일이라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쓸지 않은 낙엽을 밟으며 길을 걸어보았습니다. 그토록 아쉬웠던 마음과 대견했던 마음이 잘 융합이 되었는지 그날은 그저 낙엽을 밟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였습니다. 그 일 외에도 연말이 다가오고 할 일이 많아서 그런지 이따금씩 꿈속에서 뭔가 강박 같은 것을 느끼곤 합니다. 새 시집을 탈고하고 또 한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잠에서 깨고 나면 아무 일도 없는 나날이 계속됩니다. 부디 성도들의 가을도 행복했으면 좋겠고, 아무 일 없이 좋은 소식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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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0-29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인요한의 혁신위. 그 눈과 칼을 대통령과 측근들을 향하라!’
    “와이프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 “TK(대구·경북)·PK(부산·경남)의 스타는 (총선 때) 서울에 왔으면 한다.”, “희망이 없더라도 뚝심과 용기가 있는 계백 장군 같은 모습을 보고 싶다.”, “자신보다 국가와 당을 먼저 생각한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모두가 알 것이다.” 연일 쏟아지고 있는 인요한 국민의 당 혁신위원장의 일성들이다. 또 혁신위원회 1호 안건으로 ‘당내 화합을 위한 대사면’을 제안했다. 당원권 정지 상태인 홍준표 대구시장, 이준석 전 대표, 김재원 최고위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파란 눈을 가진 호남의 한국인, 인요한 박사가 한국정치의 중심에 오른 것이 신기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귀화자에게까지 집권당의 미래를 맡겨야 할 지경에 이른 정치의 현실이 한심하다. 어쨌거나 그는 당당한 한국인이고, 그의 선친들도 한국을 위해서 헌신하고 공헌한 분들이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도 그의 혁신위를 폄훼하거나 가볍게 보면 안된다. 다만 혁신위가 한국정치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위치에 있음을 자각하고 결코 실패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지금 여당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대통령이다. 필자는 윤 대통령의 능력이나 인간성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느 대통령보다 열정적이고 유능하게 일하고 있다. 그가 아니면 못할 일들을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이런 대통령이 박수받아야 하지만,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약점은 ‘검사 윤석렬’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검사의 마인드와 화법과 몸짓과 대언론 인식을 바꿔야 한다. 즉 혁신위는 ‘검사 윤석렬’에서 ‘대통령 윤석렬’로 바꾸어야 한다. 둘째 국민의 당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대통령에 충성하되 국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야당과 비판언론을 무시하며, 계파 중심의 세력확장과 차기 총선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강서구청장 보선은 그들이 보여준 최악이었다. 깔끔하게 포기해야 했지만, 그런데 ‘이재명 대표를 구속시킨 후 김태우를 당선시킨다’는 소위 이재명 리스크에 근거한 시나리오는 허무하게 끝났고, 그 결과가 혁신위까지 만들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혁신위는 그 무엇보다 대통령을 국민 속으로 밀어넣고, 대통령 옆에서 대선에서의 공헌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는 측근들을 격리시키고, 쓴소리의 직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유능한 사람, 야당 인사라도 끌어오는 혁신안을 보여야 한다. 선조의 어명을 거역하고 출정을 거부한 장수와 같은 혁신위, 수군폐지의 어명을 상대로 “아직 신에게는 13척의 배가 있다”고 항변하는 장수와 같은 혁신위여야 한다. 지금 집권여당은 혁신위를 향하여 현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출정을 명하는 것 처러보인다. 어쩌면 수군폐지령 같은 어명이 전달되었는지 모른다. 그렇다하더라도 혁신위는 백의종군을 불사하는 이순신의 기백이 필요하다. 우리가 아는 이순신은 결코 역심을 품은 장수가 아니라 진정으로 왕에게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했던 장수였다. 대통령에게 충성하면서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인, 우리는 이런 애국 애민의 정신에 충만한 대통령의 사람들을 혁신위가 찾아내야 한다. 인재를 찾음에 성분과 성향과 편을 가르지 말라. 누구든 그는 우리의 사람이다. 혁신위의 칼날, 그 정신은 가장 먼저 대통령과 용산, 두 번째 대통령의 측근으로 향하여야 한다. 어설픔 자리배치 같은 포퍼먼스로 여론의 눈을 가려서는 안된다. 잘못과 약점의 책임자는 따로 두고 애매한 정치 들러리들에게 ‘와이프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하면 아마 저 정권 핵심들, 대통령과 측근들은 아주 신이 나서 그 말을 아주 화음 맞추어 합창할 것이다. 그 소리는 국민의 귀를 가장 괴롭게하는 소음과 괴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국민들을 멀어져 갈 것이고 그러면 그 때는 정말 기회도 희망도 없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3-10-28
  • [언론회 논평] 종교개혁 506주년을 맞이하며
    종교개혁 506주년을 맞는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가톨릭 안에서 일어난 대립이나 기독교의 탄생이 이뤄진 종교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통하여 중세와 근세가 나누어지며, 가톨릭에 의하여 정치와 종교가 혼합되었던 것에서 유럽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세계사에도 변화를 주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고유명사를 써서 “the Reformation”이라고 한다. 당시 종교개혁은 마르틴 루터에 의하여 본격화되지만, 실제적인 종교개혁은 이미 그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기 100년 전,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는 성경의 내용으로 가톨릭교회의 부패상을 비판했었다. 루터가 가톨릭교회를 비판한 것도, 중세 신학과 교리가 교회를 잘못 이끌었다고 본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성공은 인쇄술의 발달로 급격히 확산될 수 있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성공 원인은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이뤄진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개혁 506주년을 맞는 우리 한국교회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첫째는 더욱 철저하게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세속적인 정치와 사상과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성경적 가치관과 세계관보다 이를 추종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교회 지도자들이 함부로 정치 지도자들과 결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과도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는 철저한 자기 회개와 하나님께로 향한 거룩의 모습들이 회복되어야 한다. 세상의 권력과 욕심과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경건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셋째는 세상의 악에 대하여 대항하여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다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성공주의, 물량주의, 세속주의가 들어와 있다. 또 교회를 둘러싼 악습들과 악법들이 있다. 여기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당시 권력자들과 잘못된 종교에 대하여 싸우셨다. 한국교회가 교세는 많고, 타종교에 비하여 숫자는 많지만, 악에 대하여 일사분란하게 싸우고 대응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506년 전 종교개혁은 사회의 부패와 교회의 불법에 대하여 동시에 비판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종교개혁을 통하여 두 가지의 개혁을 이루게 된다. 이 땅에 거룩한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교회가 바르게 됨으로 불의한 세상을 동시에 바로 잡아 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종교개혁 506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 앞에 새로운 도전과 과제가 있음을 잊지 말자. 21세기, 한국교회를 통하여 종교개혁의 기치가 새롭고 힘차게 들려지기를 바란다.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10-27
  • [언론회 논평] 자선과 기부에 대해서도 갈라치기 하는 사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문제가 대두되면서, 이에 동조하는 기부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승만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지난 7월 발족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이승만 대통령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6.25전쟁의 참혹함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킨 것만으로도 초대 대통령으로서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고, 벌써 했어야 할 일이 아니었나? 그런데 문제는 기부자들에 대하여 이념 성향에 따라 공격하는 일들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자선과 기부를 하는 것도 검열과 비판을 받는 사회가 된 것인가? 이는 아주 건강하지 못한 어두운 모습이다. 최근 모 유명 여배우가 기부한 것을 두고, 소위 말하는 좌파언론들과 유튜브에서 그녀를 비난하여 공격을 일삼고, 심지어 가짜뉴스까지 만들어 인신 공격을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자유대한민국이 맞는가? 이 여배우는 이승만 대통령뿐만 아니라,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재단에도 기부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기부 의사를 밝히면서, ‘그분 덕분에 우리 가족도 자유대한민국의 품 안에서 잘 살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또 ‘잘못한 것만 비난하며 국민을 갈등하게 하는 것보다 잘한 것을 칭찬하며 화합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더 평안하고 좋은 나라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고 하였다. 지극히 당연하고 소박한 바람이 아닌가! 그런데 좌파 언론에서는 ‘이승만의 과거, 이00 씨가 다시 꼼꼼하게 봤으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자 이런 선동적 기사에 넘어간 사람들이 비난과 욕설을 퍼붓는다. 여론을 선동하는 언론도 안되지만 이에 동조하는 것도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니다. 어찌 한 나라의 지도자를 성인(聖人)처럼 생각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이승만 대통령이 통치할 때에는 지금과 같은 국가의 발전이나, 국민들의 높은 의식 수준이 갖춰졌을 때가 아니었다. 또 나라가 해방이 되었다고는 하나,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경제 규모도 형편이 없었고, 국가를 위해 일할만한 인재들도 태부족할 때이다. 거기에다 공산주의자들이 국가 전복을 위한 준동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배부르고 등이 따뜻한 잣대로 재단하여, 이승만 대통령을 부정하고, 국민들이 뜻을 모아(국가가 벌써 했어야 할 일) 기념관을 세우자고 십시일반으로 모금하는 것까지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은, 이제는 높아진 의식과 국민들의 의지마저도 자신들의 저급한 이념의 테두리에 가두려는 몰지성이 아닌가? 이런 현상들이 지속 된다면 결코 우리나라는 건강한 시민사회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독단과 독재와 외눈박이와 색안경을 끼고 연출하는 선동가들로 인하여 불구(不具) 사회가 될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 존경의 염원을 이렇듯 무시한다면, 또 다른 갈등이 국민들 간에 증폭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지 않은가? 건국에 준한 업적을 남긴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충분히 존경과 인정을 받을 만한 지도자가 됨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분에게 과(過)가 있다면,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하고, 공(功)이 있다는 것은 당연히 떠받들고 기려서, 후대들이 지표(指標)로 삼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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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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