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2(일)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므로 모든 세상의 구조가 온통 바꾸어져서 원상태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이는 이 세상에서 사랑과 질서, 그리고 평화와 환희를 찾을 수 있기보다는 미움과 혼란과 분열과 불안을 더 절감하면서도 이 영역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가 보다.
대개의 경우 우리 사회는 이권(利權)과 불신(不信)의 요소 때문에 모든 분위기가 영점 이하로 전락하고 험악해진 정황에서 몸부림을 칠 수 밖에 없음을 하나님께 하소연을 해 본다.
권력이 명랑한 사회 형성의 큰 요소가 되는 때도 없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당리, 당략에 치우치거나 악한 경향으로 기울어지면 흉악한 냄새만 풍기기 마련이다.
이렇게 될 때 대립과 갈등을 벗어 날 수 없고 이에 따라 불신의 도는 확대되기 마련이다. 교회에서도 교권이 냉정하게 작용할 때 발전과 새 질서를 이루기보다 분열(分列)과 불목(不睦)과 파괴가 더 크게 작용한다. 사실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현대의 상황에서 교회가 제도화 되어 교회 정치화가 심화되면 형식과 신성(神聖)을 유지하는 것 같으나 대립(代立)과 갈등(葛藤)과 불신으로 인해서 내막은 고루(固壘)하게 되는가 보다. 그러나 수직적인 질서가 올바로 수립이 되면 무너지고 이즈러지고 깨어진 평면적인 질서는 바로 서리라고 확신한다.
이것은 성경의 원리다.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능력에 따라 이권 추구에서 십자가의 원점으로 돌아간 안목과 심정으로 기본에 충실 한다면 현하 개신교의 신뢰 추락으로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으나 이런 문제도 시간문제라고 확신한다.
요는 십자가를 중심한 바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믿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한국교회가 얼마나 귀를 기울이느냐에 달려있다.
어쩌면 한국교회가 그동안 성장은 하였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영력을 잃은 허약한 체질로 전락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교회의 양적 성장 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십자가 신앙을 중심으로 건강하게 성숙하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의인 열 사람이 필요한 때다. 에스겔 골짜기의 수많은 마른 뼈다귀보다 이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사명자가 더 필요한 때다. 아기들의 성격을 실험 할 때 기어다니는 아기 앞에 장애물을 두고 반응을 본다고 한다.
멈추어서는 아이, 돌아가는 아이, 치우고 돌아가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 이웃 종교의 수장이 다녀감으로 인기에 탓만 하고 있다거나 신세 탓, 남 탓, 조상 탓만 하기보다 이제는 허리를 졸라 맬 때이다.
본인은 그 중에 진취형을 선호한다. 이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며 그리스께서 가르친 삶을 사는 길이다. 평범한 것 같지만 한국 교회가 다시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교회부흥을 원하면 회개, 고난, 십자가라는 말은 가급적 적게 하고 성공, 축복, 내세의 메시지를 많이 외쳐라는 말도 공공연히 나도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주님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 검을 잡고 전투하는 병사로 살아야 한다. 분명한 선택과 온전한 헌신이다.
어떤 이가 술을 먹겠느냐, 밥을 먹겠느냐, 떡을 먹겠느냐 하니까? 술에 밥 말아 떡을 안주 삼아 먹겠다고 하더란다. 우리의 선택은 그러한 선택이 아니다. 오직 하나를 위하여 버릴 것은 버리는 선택이다. 절대가치를 위하여 상대 가치를 버리는 선택이다.
바울은 내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다(갈6:14).
하나님 나라의 후보 선수로 머물러 있을 한가한 때가 아니다. 주전 선수로 뛰어가는 새로운 다짐을 해보자. 그러한 때 한국교회의 희망은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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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넘어 희망으로 - 이선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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