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3(목)
 
빈 집 後記
 정 신 재 
새벽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등을 꼬집었다. 아버지의 손끝에는 빠알간 찔레꽃이 피어났다. 해무처럼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하얀 꿈결을 타고 지나가고 출세하여야겠다는 청춘의 욕망이 내 거시기에 용두질을 해댔다. 42년의 퇴직 생활을 마감하고 얻은 아버지의 퇴직금은 그의 친구인 척 가장한 사기꾼에게 몽땅 날아갔다. 밤마다 아버지는 이력서를 끄적거렸지만 아픈 몽상은 오후가 되면 물거품처럼 사라져 갔다. 종이짝 앞에서의 한숨은 빈 구들장 앞에서 콜록거렸다. 석유 파동으로 석유 난로는 언제나 풀이 죽었고 해가 성냥갑 방을 기웃거리면 독일에 간 누나가 보내 준 작은 청바지를 꿰입고 나는 아버지가 책장에 숨겨 놓은 비상금을 바람과 함께 집어든다. 한때 이백 마지기 지주였던 아버지의 뒤주는 고물상에 단돈 사천원에 팔려 나갔다. 모처럼 거금을 손에 쥐고 아버지는 지하실에서 하루종일 흥얼거렸다. 고양이가 울고 어머니가 던진 대야 소리에 좁은 마당이 모처럼 한가로워지는 저녁 세든 남자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한기로 머리를 감았고 어머니가 건네준 더운 물 한 바가지는 따뜻한 온기로 마당을 푸르게 적셨다. 다음 날이면 성냥곽 모양의 이층집 위에 햇살 한 조각이 다시 노닥거릴 것이다.

세월은 비수처럼 흘러 빈 집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양지 바른 거실에 아버지는 없었다. 나 또한 언젠가는 이 집을 떠날 것이다. 빈 집이여 영원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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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필자는 대학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하여 가난의 설움을 겪어야 했다. 나의 누나는 가난에 지쳐 독일에 가서 간호사로 나갔다. 그때 누나가 동생을 위해 보내 준 청바지가 나에게는 매우 작았다. 내가 중학 시절 누나가 출국하였으니 대학생이 된 내 몸집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러나 옷을 사 입을 만큼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을 생각해서 나는 그 옷을 내 몸에 맞춰 입기로 하였다. 허벅지가 조일 뿐만 아니라 아랫도리의 거시기도 매우 아팠지만, 나는 그 옷으로 대학 4년을 견뎌냈다. 내가 그런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다.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 고통을 겪으신 주님의 심정을 헤아리면 웬만한 고통은 참아낼 수 있었다. 나는 작은 개척 교회의 주일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열심히 성경 말씀을 읽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때 얻은 성경 지식이 오늘의 내가 신앙시를 해독할 수 있는 배경 지식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니 행복이 멀리 있지가 않았다. 행복은 내 옆에서 나의 일상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나를 죄악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였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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