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우리의 강토와 민족은 해방 반세기가 넘도록 휴전선으로 반 동강이 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이념의 갈등보다도 조국이 먼저 있었다. 정치적 대립보다도 민족이 먼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념과 정치에 사로잡혀 조국도 민족도 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분단과 대결이라는 수치스러운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같은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대지 않았는가! 우리는 강대국의 대결 사이에서 우리의 갈 길을 가지 못하고 무력의 대결이 곧 평화의 길인 줄 잘못 알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돌이켜 보면 해방이후 54년간 우리는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동안 우리는 국내외에서 몰아치는 이념과 정치대결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을 겪었다. 이처럼 해방과 더불어 싹트기 시작한 민족적 분열과 증오가 심화되면서 우리는 일제 잔재의 청산이니, 민족적 정통성의 확립이니 하는 것들은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게 되었다.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일로 삼게 되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경력과 민족적 단합과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원시 되었을 뿐 아니라 위험시되기 까지도 하였다.이제 우리는 역사 앞에 죄인으로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 재를 뒤집어쓰고 민족과 조국을 분단으로 밀어 넣은 우리의 잘못을 통회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부끄러움을 털어놓아야 한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는가? 분단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죽이며 살아왔다. 상대방의 피 흘림을 보면서 그것이 승리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왔다.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여 상대방이 쓰러질 때 우리는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고 상대방이 무너질 때 우리는 축배를 들었다. 과연 그것은 누구의 승리이며 누구의 기쁨이 될까? 우리가 남의 힘을 빌려 자기 형제를 죽음의 길로 몰아넣었으니 이 세상 어디에 이런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여기에 우리는 분연히 역사의 새벽을 밝혀야 한다. 이 지구상 또 어디에 분단의 땅이 있는가? 이 세상 또 어디에 분단의 민족이 있는가?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한 그 땅은 우리의 땅이 아니며 그 조국은 우리의 조국이 아니다. 우리의 땅은 만주벌판까지였으며 우리의 조국은 하나의 조국이었다. 북은 남의 반쪽이었고, 남은 북의 반쪽이었다. 우리가 나뉘어져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제 남(南)은 북에게, 북(北)은 남에게 그 땅을 되돌려 주어 원래대로 회복시켜야 한다. 분단 자체를 악으로 보지 않고 분단의 결과들에 대해서만 비극의 원인을 보려고 할 때 분단극복의 길은 트이지 않는다. 반평화적인 분단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민족의 통일은커녕 민족의 존립이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에 악으로 악을 갚아서는 아니 된다. 오늘 우리는 형제가 형제를, 동족이 동족을 배반하고 죽였던 골육상잔의 비극 앞에 서있다. 이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소원한다.
이제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크게 다섯 가지의 원칙아래 진행되어 왔다. 그것은 7.4남북공동성명이 제시한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이라는 세 가지 원칙에 인도주의 원칙과 민중우선의 원칙을 덧붙인 것이다. 남북 간의 교회는 이러한 5대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신뢰 회복을 위한 실천 과제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신뢰관계의 구축, 평화구조의 정착, 각종 교류의 계속적인 추진이라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민족이 분단된 지 반세기를 넘기면서도 아직도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한국교회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다.
그동안 남과 북의 교회는 8.15 직전 주일을 평화통일을 위한 공동 기도주일로 정하고 공동의 예배문을 가지고 함께 기도해 왔다. 그 동안 드려온 기도의 성과를 모아 8.15광복절을 계기로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영적 일치를 이루어 분단의 벽을 허무는 대사역을 시작했다.
이러한 취지아래 1993년 8.15에 KNCC 등 종교계를 비롯한 민간 통일운동단체 회원 5만 여명이 독립문에서 임진각까지 48Km에 이르는 인간 띠를 만들어 우리의 통일 염원을 담아 가지고, 49개 개신교 교단과 13개 사회단체들이 각계각층을 총망라하여 남북 인간띠 잇기 대회를 가지고 시위(示威)를 했다. 평화통일의 인간 띠로 예수 그리스도를 평화의 주로 고백하는 이라면 누구나 다 같이 손에 손잡고 참여 했다. 신앙의 진보와 보수를 떠나 민족의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소중한 소망임을 고백하면서 누구나 다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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