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0(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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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로 3가에 있는 H음식점에서 열린 이희국 시인의 북-콘서트에 갔다. 손해일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장을 비롯한 시인들이 100여 석의 좌석에 앉아 시인의 시를 감상한다. 유명 낭송가들이 시인의 「다리」·「아버지」등의 작품을 낭송한다. “섬으로 가는 다리가 놓이고/ 사람들은 걸어서 바다를 건넜다/ 어린 시절 그런 대교 같은 선생님은/ 나의 다리였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시던 부모님/ 나는 어둑할 때가지 교실에 남아 책을 읽었다// 창밖에 눈이 내리던 날/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손,/ 국어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교무실로, 집으로 데려가 주셨다// 외진 구석에 피어 있던 꽃, 어루만지며/ 목말까지 태워주신 사랑은/ 겨울에서 봄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창밖에는 그날처럼 눈이 내리고/ 꼬리를 문 차들이 어둠을 밝히며 영종대교를 지나고 있다// 바닷길 위에 길이 훤하다”(이희국,「다리」전문). 어릴 적 시인의 외로움을 달래 주던 선생님의 다사로운 정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수천 명의 불임 여성을 임신하게 한 일로도 유명한 그는 약사 시인이다. 아마도 어릴 적 자신의 외로움을 감싸주었던 “국어 선생님”이 있었기에 그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는 지도 모른다. 그는 약국을 운영하여 많은 소외된 자들에게 희망의 싹을 심어 주기도 하였다. 필자가 이 북콘서트를 소개하는 것은 바로 그와 비슷한 문화를 영위해 가는 시인들의 삶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아직도 많은 시인들이 자비를 들여 시집을 상재하고 북-콘서트를 연다. 유명 가수가 노래를 하고, 낭송가들이 장내 분위기를 압도하는 낭송을 한다. 그리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시의 세계를 통해 감동의 전율을 느낀다. 그렇다. 그렇게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또하나의 시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시를 영위하는 기쁨을 가족이나 지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면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는 시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허당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외로움의 바다에서 자신만의 항해를 계속한다. 누군가가 알아 주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외로움은 시를 통해서 진리를 만나는 순간이니까.
낭송회가 끝나면 끼리끼리 낭만적인 분위기를 찾아서 간다. 나도 K시인, Y시인과 함께 전종안 시인의 카페로 간다. 서울역 11번 출구에서 나와 한적한 공원과 고층 빌딩들 사이를 지나 조그만 3층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면 그의 카페가 있다. 크럼펫과 드럼 등의 악기들이 무대와 한 쪽 모서리를 차지하고 있다. 녹음실처럼 방송 시설도 그럴 듯하다. 서로간의 악수를 나누고 우리는 시낭송회를 시작한다.
“우이동 골짜기에 비가 내리고/ 산골짜기 내려오는 심포니 5번/ 안개는 등성이에서 미끄럼타면서/ 바이얼린 현을 추스린다네// 창문 열고 바라보는 비에 젖은 山/ 흥분한 낙수물은 클래식 되어/ 땅 밑으로 숨은 수줍음 찾아/ 하나 되어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낙상을 염려하는 한 떨기 음악/ 수백 년 뛰어내린 꿈을 낚으리/ 비는 물길 따라 도시를 적시는데/ 저렇게 많은 현을 어찌하리오/ 첼로와 하프까지 가세하여서/ 바순이 걸러내는 도시의 방귀/ 당신의 입술을 기다리면서/ 벗겨낸 권태를 떨구렵니다// 넉넉한 시인의 훈훈한 입김/ 당신의 귓바퀴는 낙조가 되고/ 전등처럼 매달린 꿈의 청춘은/ 환하게 웃을 날을 기다립니다”(정신재,「비오는 숲속에서」전문)
이렇게 도시의 먼지가 걸러지고 순화된 정서를 수놓으면, 또하나의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래서 우리는 낭만에 젖고 그동안 찌들렸던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도 인간미를 찾아 진실된 존재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자신을 어둠으로부터 건져줄 구원의 문이 될 수 있다면, 남들이 알아 주지 않은들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시 감상은 개인의 순수성을 회복할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를 생각한다면 순수는 어린 아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른에게도 있다. ‘순수’는 ‘순진’과는 다르다. 순진은 사람들이 상대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를 때 비아냥거릴 때 하는 말이다. 그러나 순수는 진실이나 믿음과 통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태복음> 18:1-5)
‘어린 아이’는 순수하며 정직하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기를 낮”춘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비유로 해서 천국에 들어갈 자의 자격을 말씀하셨다. 어린 아이는 무구(無垢)하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 유희, 스스로 회전해 오는 차륜, 제 일 운동, 성스러운 긍정이다. 정신은 이제야 스스로의 의지를 의지한다. 세계를 잃었던 정신이 스스로의 세계를 획득한다. 시가 죄악으로 오염된 존재에 순수를 회복시켜 줌으로써 구원의 문을 열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 순수를 되찾을 수 있는 영감의 이슬을 찾아 도시로 나아간다.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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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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