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형 목사(영월 드림교회, 국제독립교회연합회)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어려운 때를 만날 것이라고 본문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때를 말할 때면 보통 지진이나 전쟁 등이 떠오르는데, 디모데후서는 마지막 시대에 사람들이 겪는 고통 중에서도 파괴된 성품에 대해 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5절의 내용은 모두 말세에 겪게 되는 고통에 대한 내용입니다. 먼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고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동성애를 몹쓸 죄악으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물론 동성애는 비성경적이고 우리 사회와 문화에 전혀 맞지 않으며, 인륜에 반대됩니다. 그런데,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별로 경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사랑’은 자아를 존중하는 그런 긍정적인 사랑이 아닌, 극히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사랑의 방향과 본질이 빗나가 있는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속성상 어떤 대상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대상의 첫 번째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며, 그 다음은 이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사회만 보더라도 모든 구조가 타인을 위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고 존중하며 인격적으로 대하는 그런 구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 돈을 버는 일조차, 다른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필요를 충족하는 대가로 지급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점점 자기를 사랑하는데 집착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도 아니고, 이웃이나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된 것입니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매우 역설적인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사랑받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맞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아야 하고, 이웃들로부터 사랑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하고 엔돌핀이 생기며, 생기가 돌게 됩니다. 그런데 점점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다 보니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기 사랑에 집착하다 보니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우울증이 따라다니는 삶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엔돌핀이 아닌 우울과 불안을 동반한 호르몬이 분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생활 속에서도 나타나지만, 교회 안에서 비롯되는 많은 불편하고 빗나간 관계들도 사실상 자기를 위주로 사랑하는 모습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자기 사랑과 자기 의지가 굳어져서 나오는 완고한 모습이 발현되는 순간 많은 불협화음이 교회 안에 일어나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는” 모습(2절)도 모두 자기를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이웃을 돕기 위해서 돈에 눈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아는 자가 교만할 수 없으며,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가 부모를 사랑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사랑의 방향이 자기만을 향하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도, 거룩한 마음도 들기 만무한 것입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웃을 향해 원통함을 풀지 않고 모함하며 사나운 데에(3절)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굳이 애걸복걸할 필요 없이 여전히 무정하고 타인을 쉽게 모함하거나 사나운 기질을 고수할지라도 충분히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기만을 사랑하는 삶으로 스스로 고립되어 갑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괴롭습니다.
디모데후서의 말씀은 2천 년 전에 오늘날의 현상을 한치의 오차없이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치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나열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것은, 어떤 종교적인 모습이 아닌, 제대로 된, 본래 하나님께서 만드신 순전한 인간의 모습과 성품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그대로의 성품을 소유한다면, 그러한 삶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러한 사람은 이 시대가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성품을 닮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넘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