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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영생을 얻으려면’(마 19:16-22)
- 그리스도교는 영생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단순히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생명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께 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질문하였습니다. 그는 영생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이신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께서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b절)라고 말씀하셨을 때 어느 계명인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십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부자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절)라고 말하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계명을 지킴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예수께서는 영생을 얻는 길은 율법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는 순종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에서 보화가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생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재물에 사로잡혀 있으면 주님을 따를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라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앞서가시는 주님을 뒤따름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는 제자들이 결단한 것처럼 주저 없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막 1: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은 그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고 따라야 합니다. 즉 율법을 지키더라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르지 않으면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선 십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영생에 이르는 데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온전하다’는 인격적인 온전함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데’라는 뜻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단지 율법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는 데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따르라”는 ‘함께 가다, 뒤따르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평생 예수와 함께 가며, 예수를 뒤따르며 닮아가는 참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나를 따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부족한 자를 믿고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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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영생을 얻으려면’(마 19: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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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지금이야말로 기도해야 할 때”
- 지난 수요일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전승절 80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했습니다. 저는 영상으로만 봤지만,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신형 무기들이 등장하는 모습들을 봤기 때문입니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DF)-61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쥐랑(JL)-3, 다탄두 탑재가 가능한 ICBM DF-5C와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훙치(HQ)-19, HQ-29 등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날 최초로 공개된 DF-61 미사일은 DF-41의 개량형으로 추정됐으며, 이외에도 '괌 킬러' DF-26D,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무력화 할 무기로 꼽히는 DF-17도 함께 공개됐습니다. 상공 비행을 통해선 J-20S·J-35A 등 중국이 최근 수년 사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가 과시됐고 YJ-17 등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로봇개 등 무인전투체계도 공개되었습니다. 사실 그 장면을 보고 러시아의 푸틴도 내심으로는 즐거워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중국이 대만을 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걸 봤습니다. 그러나 대만이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물론 이 모습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지켜봤을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중국은 실전에 경험도 없고 이제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미국의 항공모함의 역사는 100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경험과 노하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나라입니다. 자꾸 평화만 주장하지 말고 안보력과 국방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방위비, 국방 안보비를 삭감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번 중국의 열병식을 보고 나서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방위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외교력입니다. 한미일 공조뿐만 아니라 대중, 대러, 대북과의 외교력도 잘 펼쳐 나가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이미 폴란드에 FA-50 전투기를 수출하였고 동구 나라들뿐만 아니라 어쩌면 서구라파 나라들에도 전투기를 수출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간곡하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한국은 정말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나라였습니다. 새벽이면 차디찬 교회당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통곡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 기도원에서 구국 기도의 소리가 산골짜기를 메아리쳤습니다. “주여, 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주옵소서. 저 155마일의 휴전선을 지켜주옵소서.” 그러나 우리는 기도의 내용을 더 확장 시켜야 합니다. “주여, 우리 대한민국의 서해를 지켜주옵소서. 남해, 아니 동해도 지켜주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이 전투기만 수출할 뿐만 아니라 항공모함을 수출하게 하시고 세계 평화 질서를 이끌어가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뀐다고 할지라도 안보와 국방, 그리고 평화에 대한 생각을 시종일관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이렇게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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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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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지금이야말로 기도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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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바리새인 벗어나기’ (눅16:10-1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15절) 한 계단을 올라간 사람은 그 다음 계단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은 큰 것에도 충성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사람은 큰 것에도 불의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마음가짐 하나, 행동 하나 하나는 모두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모두 하나님의 순전한 것으로부터 나오는 마음과 행동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재물은, 하늘의 보화 즉 복음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재물의 가치를 너무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해서 그것을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자리로 오면, 재물에 몰입하는 정도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두 주인’을 재물과 하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연 말씀대로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한쪽으로 심히 쏠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것은, 그것이 물질이라도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맡겨주신 모든 것을 정욕적이거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바로 청지기적인 자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환경과 건강과 물질과 명예 등 모든 것을 활용하고 운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것임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서, 진리의 말씀이지만, 현실과 사뭇 동떨어져 있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 드문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귀히 여기는 사람은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그것이 재물에 대한 교훈일 때, 즉시 그 말씀을 듣고 속으로 비웃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이러한 동작을 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교인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자기 스스로를 옳다 여기는 마음은 자만함에서 교만함으로 이어지는 마음입니다. 잠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겸허와 겸손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옳게 여기거나 두 주인을 섬기려는 마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자세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높임 받음으로 하나님께 미움받게 된다는 말씀에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겸손함으로 살아가며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가치를 가장 귀하게 여기며 생활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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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바리새인 벗어나기’ (눅1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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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회의 없는 화기애애함’이 충분한 성과였을까?
- '좋다!', 사진도, 분위기도, 말도. 그러나 외교는 사진이 담아내는 화려한 수사의 분위기가 아니라 수치와 문장으로 남아야 한다. 워싱턴의 단독 회담 뒤 대통령실은 “합의문이 필요 없을 만큼 화기애애했다”고 평가했지만, 그 말 자체가 이번 만남의 약점을 드러낸다. ‘화기애애’가 세제(稅制)를 덮을 수 없고, ‘신뢰’가 조문(條文)을 대신할 수 없다. 관세, 주한미군, 방위비라는 난제는 카메라 바깥으로 밀려났고, 회담장의 미소는 구체적 문장으로 굳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특히 핵심 현안 다수가 의제에서 비켜났다는 국내 보도는, 이번 회담을 “성공”이라 부르기엔 근거가 엷다는 불편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회담의 문법은 시작 전부터 비정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와 발언을 통해 한국 정국을 “숙청 혹은 혁명” 같은 자극적 어휘로 묘사하며 기선제압을 시도했고,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과감한 칭찬과 구애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아트 오브 더 딜’식 심리전에서 불필요한 충돌을 피했다는 외신 평가가 나왔지만, ‘갈등 회피’가 곧 ‘성과 창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사(修辭)는 테이블을 열어도, 양보와 교환의 숫자표는 별개다. 경제 면에서 굵직한 숫자들이 쏟아졌다. 한국 대기업들이 미국에 1,5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 약속을 내놓았고, 조선·원전·핵심광물·LNG·항공 등 다섯 축에서 11건의 신규 계약이 발표됐다. 대한항공의 대규모 항공기 구매와 장기 엔진 정비, KOGAS의 대형 LNG 구매계약,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투자 확대와 생산거점 이동 신호도 포함됐다. 이쯤 되면 “딜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상호주의 딜’이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대규모 해외투자와 구매 약속의 반대급부가 무엇인지, 관세 완화·예외 품목·공급망 보증·규제 유예 같은 ‘되돌아오는 이익’이 무엇인지가 공개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숫자들은 국내 일자리와 제조여력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불균형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안보 의제는 더 민감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기지 부지의 ‘소유권’ 문제를 거론하며 미국 측 권리를 강조했다는 보도는, 동맹의 기술적 쟁점을 주권의 상징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위험한 신호다. 동맹은 임대·지위협정·공동운용의 조합이지, 영토적 소유의 언어가 아니다. 이 발언이 일회성인지, 향후 협상 어젠다로 떠오를지 냉정히 가늠해야 한다. 정부는 SOFA 체계 내에서 어떤 원칙으로 대응할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조선·원전은 이번 만남의 ‘키워드’가 됐다. 미국의 조선 역량 재건 구상(MASGA)과 한국 조선의 기술력 결합은 양국이 윈윈을 노릴 수 있는 드문 분야다. 하지만 산업협력은 ‘의지’가 아니라 ‘용량’과 ‘주문’과 ‘인력’으로 성사된다. 국내 조선 인력수급, 미국 내 도크·규제·연방조달 체계, 동맹 내 기술이전 범위가 선결과제다. 실제로 현대중공업그룹의 재편 움직임이 미국 수요 대응과 맞물려 속도를 내는 정황은 포착되지만, 이것이 한국 내 하청생태계와 지역경제에 어떤 파장을 낳을지도 동시에 계산돼야 한다. 대미 수주 확대가 국내 앵커링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생산배분·기술거점·인력양성 계획을 ‘한·미 동시 상생’ 구조로 설계하는 게 관건이다. 원전 협력 역시 말보다 조항이 중요하다. 123협정의 해석과 개정 여지, 연료주기와 사용후핵연료 관리, 제재체계와의 정합성을 명확히 해야 민감기술의 공동활용이 가능하다. “유의미한 논의가 있었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차라리 한·미 표준형 수출패키지, 금융·보증·책임배분 체계를 담은 실무 합의 초안을 얼마에 공개할 것인지 일정을 못박는 편이 낫다. 국내 전력믹스와 전기요금, 탄소감축 목표와도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관세 협상은 ‘가장 불안한 안정’이다. 지난달 잠정 타결설이 돌았지만, 트럼프식 거래의 본질은 “딜 이후의 새 청구서”다. 관세율 표와 예외목록, 단계적 감축 로드맵, 자동차 원산지 기준, 배터리·핵심광물 요건, 디지털세 상호정지 같은 민감항목을 공개하지 않으면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이미 국내 방송은 ‘새 청구서’ 가능성을 경고했고, 이번 회담에서도 이 항목들이 구체 문구로 묶였다는 증거는 아직 빈약하다. 정부가 진짜 성과를 자신한다면 라인-바이-라인 공개와 업계 별 브리핑부터 하라. 경제안보는 ‘브리핑 요약’이 아니라 ‘표와 각주’로 판가름난다. 정치적 상징도 남았다. 대통령은 가을 경주 APEC 초청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제안하며 한반도 정세의 촉매를 트럼프 손에 쥐여줬다. 칭찬과 구애가 악화일로의 수사를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징의 제공은 반드시 대가를 동반해야 한다. 초청장과 사진은 쉬우나, 제재 프레임과 억지력의 구조는 어렵다. 어떤 ‘조건부’로 어떤 ‘보상’을 기대하며, 실패 시 어떤 ‘페널티’를 걸었는지 국민은 알아야 한다. 외교의 상징경제학은 항상 쌍방대차대조표로 끝나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공개, 견제, 설계. 첫째, 정부는 관세·투자·조선·원전·LNG·항공 패키지의 구속력과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투자한다”는 구호를 “우리 산업이 무엇을 돌려받는다”는 표로 바꾸라. 둘째, 국회와 업계, 노동·지역 공동체가 참여하는 초당적 점검기구를 즉시 가동하라. 이사회 없는 거래는 늘 비싸게 끝났다. 셋째, 산업·안보 협력을 ‘국내 기반 강화’와 연결하는 정책설계를 서두르라. 중간재·부품·인력·R&D에 이르는 흡수체계를 갖춰야 해외투자가 외화유출이 아니라 기술내재화로 귀결된다. 이것이야말로 동맹을 ‘현대화’하는 올바른 길이다. 교계의 몫도 분명하다. 교회는 외교를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이웃사랑의 확장’으로 본다. 관세 한 줄, 기지 한 문장, 계약 한 항목이 곧 가장 약한 이들의 일자리·물가·에너지비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국가 지도자들이 지혜와 담대함으로 공정한 협정을 맺도록 기도해야 한다. 동시에 숫자와 사실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예언자적 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평화를 사랑하되 값싼 평화를 경계하고, 협력을 지지하되 일방의 희생을 거부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깨어 기도하는 공동체만이 미소 뒤의 문장을 읽어낸다. 이번 회담의 진짜 평가는 오늘의 사진이 아니라 내일 발표될 표와 조항, 그리고 내년 가계부에서 내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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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회의 없는 화기애애함’이 충분한 성과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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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예수님의 치유 사역(눅 18:35-43)’
-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치유 사역 열여덟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 치유, 백부장 하인 치유, 두 눈먼 사람 치유, 손마른 자 치유, 간질병 환자 치유, 여리고 눈먼 사람 치유, 중풍병자 치유, 거라사 광인 치유, 회당장 딸 치유, 12년 된 혈루증 여인 치유,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 치유, 귀먹고 말더듬이 치유, 벳새다 눈먼 사람 치유, 귀신들린 아들 치유, 바디매오 치유, 안식일에 수종병 치유, 열 명 나병환자 치유, 38년 된 병자 치유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여리고 가까이 이르셨을 때, 어떤 눈먼 사람이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외치면서 예수님을 뒤따라왔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라고 물으시자, 그는 “주님,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곧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병고침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사람들의 불규칙적인 생활, 과식과 과로 등 무질서한 생활이 질병을 일으킵니다. 질병은 우리가 범하는 죄 때문에 오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고 “보아라. 네가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여라.”(요 5: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질병에서 벗어가는 길은 주님께 나아와 죄를 회개하면 됩니다. 회개는 이제부터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통치를 받겠다고 결단하는 행위입니다. 회개하면 우리의 영혼육이 새로워지고, 편안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행 3:19) 모든 질병이 다 사람의 죄 때문에 온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죄와 상관없이 올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눈먼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드러내시려는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처럼 질병은 주님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허용되기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질병은 마귀의 억눌림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행 10: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도록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죄를 자기의 몸에 몸소 지시고서,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매를 맞아 상함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습니다.(벧전 2:24) 그래서 우리가 질병으로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질병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하시면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그 고통에서 건져주시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주님을 경외할 때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풀려 난 송아지처럼 뛰어다닐 것이다.”(말 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의로운 해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질병 중에도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병은 다 치유받을 수 있을까요? 주님은 모든 병을 고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뜻에 따라 치유를 허락하지 않으시기도 합니다.(고후 12:9) 그래서 질병 치유를 위한 기도가 생각대로 응답받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질병이 치유되지 않을 때 그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거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몸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질병을 위해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바울에게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드러나고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가시가 자기를 겸손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고후 12:7-10) 우리도 질병이 낫도록 간절히 기도했지만, 치유받지 못하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할 때 주님께서 가장 선하게 인도해 주실 줄 믿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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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예수님의 치유 사역(눅 18: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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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가을에는 더 영글어 가게 하소서”
- 올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습니다. 물론 무더운 만큼 곡식들이 영글어 가고 단 과일이 익어가게 하죠. 요즘은 제가 오른쪽 엄지발톱을 빼서 산행을 못하지만 서재 옆과 뒤에는 푸르른 잎새들의 향내음을 얼마든지 보고 듣고 느낄 수가 있죠. 그때마다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도 생각이 납니다. “가을에는 /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 가을에는 /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가을에는 /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 굽이치는 바다와 /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정말 올여름은 저에게 너무나 가혹하고 혹독한 계절이었습니다. 장년여름수련회 말씀을 준비하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 발가락을 상하기도 하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코피가 터지고, 엄지발톱을 빼기도 하였습니다. 코피 지혈과 발가락 상처 치료 때문에 얼마나 쓰라린 고통을 당하고 아픔의 나날들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어느 분은 저에게 위로한다는 의미에서 “올해는 고난이 많았지만, 내년엔 더 많은 축복의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내년입니까? 이제 여름도 지나고 내일모레면 찬 바람이 분다는 ‘처서’인데요. 당장 이번 주부터 축복의 열매가 가득 영글어 가기를 바란다고 말씀해야 하셔야지요.”라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할지라도 가을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저에게 닥쳐왔던 그 폭염, 폭서의 고통도 이제 찬 바람의 기운 앞에 맥을 못 추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정하신 때, 하나님이 준비하신 때를 이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 앞에 어서 빨리 가을을 맞고 싶습니다. 그 계절적인 가을을 넘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때,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그때가 오기를 기도하고 기다립니다. 이제 무더운 여름을 지나 오곡백과가 영글어가고 무르익는 계절이 모든 성도들에게도 함께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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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가을에는 더 영글어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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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행복으로 가는 길’(시 32:1~6)
-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본문은 신앙의 교훈이 담긴 다윗의 시입니다. 잘못을 용서받고 하나님이 죄를 덮어 주신 사람은 행복하다는 내용으로 말씀이 시작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의 문제는 늘 사람을 따라다닙니다. 가인의 경우를 그 예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알았으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관계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이에 대해 안색이 변하고 몹시 분해하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그러므로 성도는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긴박감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이 용서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의 죄가 떠올라야 합니다. 자기의 잘못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지른 죄가 있는데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자기 내면에 방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죄는 문득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죄가 떠오르는 것, 자기의 잘못이 떠오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순간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의 죄를 떠올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은혜이며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냄새의 원인을 잡으면 그 냄새를 없앨 수 있습니다. 통증의 원인을 찾으면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며, 질병의 원인을 찾게 되면, 질병을 근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어 회개하게 되면, 어둠의 권세가 더 이상 그 사람을 잡고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죄의 고백과 회개는, 그래서 치유이고 회복이며 자유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즉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은 복되고 복되다고 말씀합니다(2절). 천국 백성이라 함은 반드시 진실함의 문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며 관계할 때도 와 비슷한 상황들이 펼쳐집니다. 진실한 사람을 인정하게 되고 진실한 사람을 믿게 됩니다. 사람이 자기의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 인생에 무언가 신호가 옵니다. 소화가 잘 안 된다든지, 잠이 안 온다든지, 마음이 무거워 괴롭다든지 기타 원인 모를 일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을 때 종일 신음하다가 지치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죄가 회개되지 않고 남아있으면 반드시 티가 나는 법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밤낮으로 주의 손이 나를 무겁게 누르시므로 여름의 뙤약볕에 물이 말라버리듯 내 기력이 쇠하였습니다.”(4절) 즉 자기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자기를 짓누르시며, 고뇌와 환난이 다가오고, 기력이 완전히 다 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자기가 자기의 죄를 고백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잘못과 죄를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더니,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감추거나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방식으로 다루게 되면, 그러한 삶은 자기에게 계속 남아있는 죄로 인해 죄에 찌든 모습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경건한 사람들은 주를 만날 수 있을 때에 주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환난의 홍수가 밀어닥칠지라도 그들에게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주님께 고백하여 우리 삶에 은혜와 소망이 가득 넘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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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행복으로 가는 길’(시 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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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국민들은 사면(赦免)의 기준을 묻고 있다
- ‘국민주권’을 내세우는 정부가 8•15광복절을 맞아 정치인, 공직자를 포함한 사면•감형•복권•특별감면을 단행한다고 하였다. 그중에서 ‘문제의 인물들’까지 포함하고 있어, 여론은 싸늘하다. 해당 법무부는 ‘국민 화합기회를 마련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했지만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이를 보도하고 사건을 바라보는 각 언론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각 언론들의 사설(社說)을 통하여, 그 사유를 살펴보자. 서울신문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빼돌리기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은 윤미향 전 의원이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이 되었다’며, 이는 국민 공감을 얻기 어렵고, 민생경제 활성화란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민심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국정 동력을 구할데가 없어진다’고 비판한다. 국민일보는 ‘입시 비리와 횡령, 뇌물, 부당 특채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들에 대한 사면이 어떻게 국민 통합의 근거가 되는지 알 수 없다’고 하면서,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반성은커녕 사법부를 비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면죄를 준 것이 문제이고, 정부가 사법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시점에서, 사법부 무력화의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입시 비리를 제대로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형기의 3분의 1 정도만 마친 상황에서 풀려나게 됐다. 복권까지 됐으니 피선거권도 회복된다’며 ‘그는 서울대 교수로서 공정을 부르짖었지만, 고위 공직자로선 내로남불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후원금 횡령 등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윤미향 전 의원도 혐의 인정이나 반성이 없었음에도 사면 대상에 올랐다’고 비판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입시 비리,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 횡령으로 각각 유죄 판결을 받은 조 전 대표 부부와 윤 전 의원 등 사면 대상자들 모두 복권돼 출마 등 정치 활동이 제약 없이 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하고, ‘여권 정치인에 대한 무더기 사면•복권이 사법부 판결의 독립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인지 의문이다’라고, 역시 비판하였다. 조선일보는 ‘조 전 장관 부부가 저지른 입시 비리는 학력 경쟁이 심한 우리 사회에선 대표적인 불공정이자 불의로 인식된다. 더구나 조 전 장관은 이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고 사과한 적도 없다. 마치 자신이 정치범인 양했다’고 지적하고, ‘더 심각한 것은 윤미향 전 의원이다. 윤 전 의원은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후원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런 윤 전 의원이 다른 날도 아닌 광복절에 사면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대통령 사면권은 법 집행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최소 수준에 그쳐야 하고 국민 대다수가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면은 매우 부적절했고 지나쳤다’고 평가절하하였다. 매일경제는 ‘대통령 사면이 국민 화합과 사회적 약자 배려를 명분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결정은 깊은 아쉬움을 남긴다. 다수 국민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해온 사안을 강행하는 것은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분열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지지층 결집만을 겨냥한 결정을 반복한다면 정치의 무게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조 전 대표 자녀들을 위한 입시 비리 가담자를 패키지로 사면•복권키로 했다. 형기의 절반도 채우지 않은 조 전 대표와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이들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발급한 최강욱 전 의원, 딸에게 불법 장학금을 지급한 노 모 부산의료원 원장 등이 포함 됐다’고 전제하고, ‘조국혁신당’이 이 대통령 대선 승리를 지원한데 대한 보은 성격이다. 사면권 남용이거니와, 새 정부에 진정한 통합과 실용을 기대한 국민 바람에도 어긋 난다’고 실망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문화일보도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이지만 당사자의 반성과 국민적 공감대가 전제되는 가운데 제한적으로 행사되는 것이 마땅하다. 조 전 장관은 재판 과정에서 정치검찰의 탄압 운운했고,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조차 하지 않았다. 겉으론 법치와 정의를 외친 인사가 온갖 이율배반적인 행태로 공정의 가치를 크게 훼손한 책임이 크다. ‘비사법적 명예회복’을 주장하며, 자신의 이름과 유사한 ‘조국혁신당’을 만든 정치적 해악도 심각하다’고 크게 비판하였다. 심지어 좌파 언론으로 알려진 경향신문조차도 아직 형기의 반을 채우지 못한 점에서(조 전 장관) ‘제 편 챙기기’라는 부정적 여론이 작지 않다고 적시한다. 그러면서 ‘입시 공정성을 흔든 조 전 대표 사면이 우리 사회 공정과 책임의 가치를 무너트려 사회 통합을 저해할 것이란 반론도 크다’ 그리고 ‘위안부 공금 횡령으로 실형이 확정된 윤 전 의원의 광복절 특사 포함이 적절한지도 몹시 의문스럽다’고 비판하였다. 한편 한겨레는 조 전 대표의 사면·복권은 검찰권의 오남용을 바로잡는 계기라고 두둔하면서도 ‘조국 사면을 두고 부모의 지위와 인맥을 통한 허위 인턴 경력과 표창장 등 공정 이슈로 국민들의 의견이 나뉘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또 형기의 3분의 1 정도만 지나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조 전 대표는 이제 공직선거에도 출마할 수 있게 됐지만, 앞으로도 이런 점을 겸허히 새겨야 할 것이다’이라며 조 전 대표를 위하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무리한 문제성 인사들까지 사면 조치하는 것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 프랑스는 공직자의 부정과 부패, 선거법 위반 등은 아예 사면이 없다고 한다. 또 일본 같은 경우에는 일정한 형기(刑期)를 마쳐야 사면 자격을 준다고 한다. 민심과 일정한 법적 기준과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와 책임을 가볍게 본다면, 이는 민심이 돌아서는 요인이 될 것이다. 국민들이 인정하지 않는 정부가 된다면, 정부가 하는 일은 사사건건 국민들을 불쾌하고 불안하게 하여, 불편해질 것이 뻔하다. 이번의 광복절 특사 선정의 무리함으로 정권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결과적으로 정권은 무너지는 것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치는 내 편만을 붙잡고 나가는 것은 국론 분열을 심화시키는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을 끌어안아 주어야 진정으로 국민 통합과 화합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기초를 튼튼히 세우는 것은, 일방적, 독선적으로 행하여 ‘국민 무시’하는 것으로는 요원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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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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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국민들은 사면(赦免)의 기준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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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해방 80주년, 광복•독립•건국 77주년을 기념한다
- 우리나라는 올해로 해방 80주년, 광복 77주년, 독립 77주년, 건국 77주년을 맞는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 국권을 잃고, 소망 없는 삶을 살았으나,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므로 해방(解放)을 맞는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타의(他意)에 의하여 이뤄진 것이다. 우리는 1945년 8월 15일을 해방과 함께 광복(光復)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실제와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이 항복한 날이다. 연합국에 항복한 일본은 그해 9월 11일까지 조선총독부의 국기 게양대에 일장기를 걸었었다. 그리고 미군정 3년을 보내고 나서 1948년에 광복과 독립과 건국을 이루게 된다. 이때까지 우리나라는 독립하거나 진정한 광복(光復)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광복은 ‘영광스럽게 나라가 회복된 것’을 말하지만, 우리나라는 실제적으로 국가로서 회복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나중에는 해방과 광복을 구분하지 못하고, 어둠(일제)을 뚫고 빛(해방)이 찾아온 것으로 혼선을 빚어, 국가독립기념일(Korean Independence Day)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외부에서는 ‘독립기념일을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또 건국(建國)에 대한 논란도 있는데, 어떤 이들은 1919년과 그로 인한 ‘임시정부’를 건국으로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근대의 온전한 국가를 이루려면, 인구, 영토, 주권, 정부가 있어야 한다. 국가가 형성되는 것에 대하여 더 자세히 말하면, 특정 지역을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지리적 단위의 정치 결사가 있어야 하고, 자기가 지배하는 영토 내에서 물리적 강제력을 가져야 하고, 영토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질서를 강제적으로 집행할 수 있어야 하며, 또 영토 내의 통치와 외부 세력과의 관계에서 외부 간섭을 안 받아야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역사 인식 속에서, 국가의 해방과 광복, 독립과 건국에 대하여 제대로 알아야 한다. 건국(建國)은 이미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오랫동안 왕이 통치하던 전제(專制) 정치에서, 국민이 주권을 갖는 새로운 민주정치로 만들어진 국가이기에, 이를 건국으로 보아야 한다. 이처럼 올해 맞이하는 해방 80주년과 광복과 독립과 건국 77주년은 새로운 발전을 위한 분명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제도로 건국한 나라이기에, 한반도 역사 가운데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야말로 세계 속에 한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지난 80년 동안 분단과 함께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왔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여러 정황을 해방 후의 정국과 비슷하다는 주장과 함께 걱정들이 많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붕괴 조짐이다. 해방 후에 미군정청이 1946년 7월 서울지역의 1만명(실제적으로는 8,476명이 참여)을 대상으로 ‘미래한국정부의 형태와 구조’에 질문한 것에서, 당시 국민들은 사회주의 70%, 공산주의 10%를 지지했으며, 자본주의를 지지한 사람은 13% 뿐이었다. 놀랄 일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80%가 지지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점차 좌경화되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또 1946년 3월 서울 시민 4,177명을 대상으로 ‘어느 지도자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라는 질문에, 김구 20%, 김규식 8%, 이승만 30%, 안재홍 9%, 조만식 3% 등 우익 인사에 대한 지지가 70%였는데, 박헌영 10%, 여운형 15%, 김두봉 3%, 김일성 2%로 좌익 인사에 대한 지지가 30%였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 지형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그리고 한반도에서 미국과 소련군이 철수한다면 내전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그렇다’가 42%, ‘아니다’가 33%였으나, 국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 양군이 철수하는 것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78%가 찬성했다고 한다. 결국 이 조사 수년 후에 우리는 6•25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적인 전쟁을 당해야만 하였다. 우리나라는 해방되자마자, 1945년 8월에 사회주의자 여운형에 의하여 ‘건국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그해 9월에는 여운형이 공산주의자 박헌영 등과 함께 ‘조선인민공화국’을 결성하여,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로 세워질 수도 있었다. 이를 막고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 제도로 국가를 세운 것은, 뒤늦게 미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공부하고 귀국한 이승만의 탁월한 지도력 때문이었다. 최근 동북아역사재단과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과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광복 80주년 기념 국제 학술회의’에서, 소련의 스탈린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인 스티븐 코트킨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평가하기를, ‘이승만은 미국의 지원을 끌어내 남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빅 픽처’를 실천했다. 이것은 그가 국내에서 저질렀던 여러 정치적 실패를 덮을만한 정도의 큰 업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80년 전에 비록 타의에 의하여 해방이 되었으나, 3년 후 독립을 하고, 참된 광복을 맞고, 대한민국을 새롭게 건국한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여, 역사와 세계와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물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바쳐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삭풍(朔風)이 몰아치는 만주 벌판에서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타국의 눈치를 보면서 애국봉신(愛國奉身)의 결의로, 국권 잃은 백성으로 이역만리에서 오직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몸 바쳐 건국충정(建國忠情)을 아끼지 않은 분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 화합을 이루어야 하고, 정치권의 통합과 상생, 그리고 모든 국민들이 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지도자들도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거나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큰 위기 앞에 있으나,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국민들이 새롭게 깨어나고, 부정과 불법과 부패와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공의롭고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해방의 기쁨과 광복의 감격과 독립의 확고함과 건국의 정신으로 계속하여 번영과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 한국교회는 역사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섭리와 국가 공동체 가운데 역사하심의 뜻을 깨달아서, 이것이 자유대한민국과 한반도 가운데 널리 펼쳐지기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한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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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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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해방 80주년, 광복•독립•건국 77주년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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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국가인권위는 이념의 편향(偏向)장인가?
- 지난 29일 국회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후보자로 지명받았던 지영준 변호사가 기자 회견을 가졌다. 그는 야당 몫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추천을 받았는데, 여권에서 반대하고, 조국혁신당의 신 모 의원이 그를 극우 내란 공범 옹호자로 선동하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단체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국회에서 선출되는 것이 막혔다고 하였다. 보통 국회의 몫으로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을 내정하면, 관행처럼 그대로 선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회에서조차 그 태도들이 달랐고, 야당은 힘에서 밀려서 결국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못하고, 당사자가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명색이 국가인권위원회인데, 국민 전체의 인권을 위한 국가 기관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반대 진영에 서면, 무조건 혐오자로 내세우고, 자격이 없는 것처럼 몰아세우는 것은, 결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소수자를 위한 기관이 되어야 함을 조장하고 있다. 그러려면 ‘성소수자위원회’가 되어야 하지 않나? 지영준 변호사의 삶을 보면, 그는 2001년 육군 법무관에 임용되었고, 2009년에 군대 내 불온서적(진보적 책자) 지정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으로 ‘헌법 소원’을 낸 것으로 인하여 국방부로부터 징계를 당하고, 파면 결정을 받게 된다. 그러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본인도 민변의 회원)의 50명이 넘는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2011년 파면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복직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NCCK로부터 인권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징계 사유에 해당 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고, 2019년 서울행정법원에서 현역 군인의 지위를 확인하는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지영준 변호사가 오직 자신의 기독교 신앙에 따라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임명을 반대하는 것은, 국가 최고 인권 기관이 되어야 함에도, 자기들 입맛에 맞는 편향된 기관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게 된다. 이들은 국가인권위를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채우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예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혐오자’로 낙인찍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려는 극히 위험하고 잘못된 모습을 한껏 드러낸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적어도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가 기관이 특정 이념과 동성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지극히 건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다수를 차지하는 국민들의 의견과 생각을 부정하고 압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권은 동성애자와 성소수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를 차별하거나, 위협하지 않고 있는데,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혐오자로 몰아가며, 인권 문제에 있어, 바르게 다룰 상임위원을 배척하는 것은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혐오자’니 ‘인권 의식이 없다느니’ ‘인권에 대하여 공부를 하라느니’ 하면서 반인권자로 매도하는 극진 좌파적, 인권 파괴적, 국민 분열적 행동은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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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국가인권위는 이념의 편향(偏向)장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