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 엘리사 이후 그 땅에 남은 종교란 게하시 종교였다. 꿩 대신 닭으로 대치된 모양새였다. 선지자 적인 모세의 종교가 급격하게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정적인 아론의 사제종교로 전락하였듯이, 엘리사의 종교도 역시 게하시의 종교로 전락한 것을 우리는 성경의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 명명백백하지만, 이러한 종교의 왜곡된 역사가 오늘의 지성인들 집단에서 조차도 바르게 잡히질 않고 지속되고 있다.
사도시대의 원 교회 이후, 교회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제도권의 지도자들은, 엘리사 같은 선지자들이기 보다는 왕권에 빌붙어 사는 게하시 같은 부류들이었다. 저들의 신도 수가 수만 명 있었다하더라도, 그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부와 권력과 명예와 지식을 독점한 5%의 계층의 입맛에 주문된 자들일 뿐이었다. 우리가 왜곡하고 있는 지식 중에, 르네상스가 모든 국민에게서 일어난 운동인양 착각을 하고 있으나, 그 운동마저도 그 사회의 독점세력 5% 내에서 일어난 저들만의 운동일 뿐이었다.
종교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칼뱅의 교회당에 모인 시민들이 그 시의 지배계층이었고, 일반 서민들까지 앉을 수 있는 좌석은 없었다. 오늘날 교황이 높은 창 발코니에서 군중들에게 잠간 강론을 하는 것은, 그 시민들을 그들의 미사에 모두 들일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고, 서민이나 낮은 계급이 성당문턱을 넘을 수 없었던 이유는, 수문장이 출입자를 걸러내느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가 온갖 역경을 경험한 개혁자이긴 하나, 그 또한 그를 후원한 제후의 세력에서 벗어나질 못하지 않았던가?
설교를 공공연하게 만인이 들을 수 있게 된 시기는 조지 휫휠드가 야외에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할 때부터일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까이할 수 있었던 시기는, 하늘의 음성과 양심의 소리에 예민한 선각자가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목숨을 바친 시기부터이다. 그리하여 그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교회에서 주일학교, 혹은 교회학교를 열어서 누구든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모국어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는 가정교회라면 몰라도, 콘스탄틴 황제 이후 돌로 지어진 교회당에서의 정기 예배에 서민들이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하였다. 이미 관료들과 지배층이 자리를 채웠고, 그들의 가족들이 모두 들어가기에도 좌석수가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권력층과 이(利)를 따르는 계층들로 구성된 자리에서, 그들로부터 녹을 먹고 있는 설교자가 그들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초월한 가르침을 선포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강론은 축소시키고 전례를 화려하게 하는 것이 편안하였을 것이리라. 그래서 저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소홀이하고, 성령과의 조우는 생략하였던 것이다. 저들은 나사렛 사람 예수가 산과 들과 해변에서 설교한 뜻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엘리사와 게하시의 차이점은 오늘의 지성인 이라면 능히 분별해 낼 수 있다. 엘리사는 저를 방문한 아람나라의 국방총리 나아만을 버선발로 나가서 맞이하여 주질 아니하고, 오히려 문전에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만 하였다. 국빈 환대와 예절을 떠나서, 한 영혼을 살리려는 예리하고도 섬세한 통찰력을 읽을 수 있다. 저가 나아만을 직접 고쳐주었더라면 치료비 명목으로 후한 접대는 받을 수는 있었어도, 저의 영혼 구원은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아만이 병에서 회복되어 사례하기 위해서 돌아 왔을 때에도, 선지자는 또다시 저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게하시는 그의 스승이 거절한 사은품에 욕심내어, 저에게 달려가서 금과 은을 취하고, 명품양복 두벌도 얻어냈다.
진정한 선지자라면 게하시가 하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누구라도 엘리사의 영성을 가진다면 게하시가 지금 하나님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은 다 인지할 것이다. 저는 엘리사의 흉내도 내질 못하였다. 선지자의 손에 물을 붓던 여호수아나 엘리사는, 모두가 성령을 받아서 그 시대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좋은 기회를 모두 놓치고 임금의 설거지나 하는 자로 전락하였다. 엘리사 주검의 뼈에만 스쳐도 죽은 자가 살아나건만, 선지자가 마지막 떠나면서 그렇게 넘겨주려고 한 영적 유산에는 게으르고, 눈앞의 재물과 권력과 명예만 탐하였다. 엘리사가 떠난 이후, 그 시대에 밀려오는 난제들을 극복할 능력이 게하시에게는 부재하였다. 선지자가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을 입질 못하였으니, 마치 엘리사제가 법궤를 빼앗기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 땅을 떠난 것처럼 되어 진 것이었다.
사도시대의 원 교회 이후, 교회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제도권의 지도자들은, 엘리사 같은 선지자들이기 보다는 왕권에 빌붙어 사는 게하시 같은 부류들이었다. 저들의 신도 수가 수만 명 있었다하더라도, 그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부와 권력과 명예와 지식을 독점한 5%의 계층의 입맛에 주문된 자들일 뿐이었다. 우리가 왜곡하고 있는 지식 중에, 르네상스가 모든 국민에게서 일어난 운동인양 착각을 하고 있으나, 그 운동마저도 그 사회의 독점세력 5% 내에서 일어난 저들만의 운동일 뿐이었다.
종교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칼뱅의 교회당에 모인 시민들이 그 시의 지배계층이었고, 일반 서민들까지 앉을 수 있는 좌석은 없었다. 오늘날 교황이 높은 창 발코니에서 군중들에게 잠간 강론을 하는 것은, 그 시민들을 그들의 미사에 모두 들일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고, 서민이나 낮은 계급이 성당문턱을 넘을 수 없었던 이유는, 수문장이 출입자를 걸러내느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가 온갖 역경을 경험한 개혁자이긴 하나, 그 또한 그를 후원한 제후의 세력에서 벗어나질 못하지 않았던가?
설교를 공공연하게 만인이 들을 수 있게 된 시기는 조지 휫휠드가 야외에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할 때부터일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까이할 수 있었던 시기는, 하늘의 음성과 양심의 소리에 예민한 선각자가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목숨을 바친 시기부터이다. 그리하여 그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교회에서 주일학교, 혹은 교회학교를 열어서 누구든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모국어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는 가정교회라면 몰라도, 콘스탄틴 황제 이후 돌로 지어진 교회당에서의 정기 예배에 서민들이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하였다. 이미 관료들과 지배층이 자리를 채웠고, 그들의 가족들이 모두 들어가기에도 좌석수가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권력층과 이(利)를 따르는 계층들로 구성된 자리에서, 그들로부터 녹을 먹고 있는 설교자가 그들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초월한 가르침을 선포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강론은 축소시키고 전례를 화려하게 하는 것이 편안하였을 것이리라. 그래서 저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소홀이하고, 성령과의 조우는 생략하였던 것이다. 저들은 나사렛 사람 예수가 산과 들과 해변에서 설교한 뜻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엘리사와 게하시의 차이점은 오늘의 지성인 이라면 능히 분별해 낼 수 있다. 엘리사는 저를 방문한 아람나라의 국방총리 나아만을 버선발로 나가서 맞이하여 주질 아니하고, 오히려 문전에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만 하였다. 국빈 환대와 예절을 떠나서, 한 영혼을 살리려는 예리하고도 섬세한 통찰력을 읽을 수 있다. 저가 나아만을 직접 고쳐주었더라면 치료비 명목으로 후한 접대는 받을 수는 있었어도, 저의 영혼 구원은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아만이 병에서 회복되어 사례하기 위해서 돌아 왔을 때에도, 선지자는 또다시 저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게하시는 그의 스승이 거절한 사은품에 욕심내어, 저에게 달려가서 금과 은을 취하고, 명품양복 두벌도 얻어냈다.
진정한 선지자라면 게하시가 하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누구라도 엘리사의 영성을 가진다면 게하시가 지금 하나님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은 다 인지할 것이다. 저는 엘리사의 흉내도 내질 못하였다. 선지자의 손에 물을 붓던 여호수아나 엘리사는, 모두가 성령을 받아서 그 시대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좋은 기회를 모두 놓치고 임금의 설거지나 하는 자로 전락하였다. 엘리사 주검의 뼈에만 스쳐도 죽은 자가 살아나건만, 선지자가 마지막 떠나면서 그렇게 넘겨주려고 한 영적 유산에는 게으르고, 눈앞의 재물과 권력과 명예만 탐하였다. 엘리사가 떠난 이후, 그 시대에 밀려오는 난제들을 극복할 능력이 게하시에게는 부재하였다. 선지자가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을 입질 못하였으니, 마치 엘리사제가 법궤를 빼앗기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 땅을 떠난 것처럼 되어 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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