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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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80-90년 사이에 요한의 묵시록이 기록된다. 이 묵시록의 수신자가 된 일곱 교회는 당시 소아시아에 소재한 교회이기도 하지만, 먼저 오늘 우리의 한국교회를 지칭한 것이다.
요한의 묵시록에서 수신자가 된 교회 일곱은, 복음을 받은 지 그리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미, 교회로서의 빛이 퇴색되어 있었다. 바울의 선교 시점에서 본다면, 소아시아 지방의 교회는 겨우 한세대를 지나고 있었을 뿐이다. 에베소에 소재한 교회를 통해서 소아시아 온 지역으로 복음이 확산되어졌기에, 에베소를 비롯한 일곱 교회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다. 복음이 전파된 시기뿐만 아니라, 전파하는 복음전도자나 복음의 질이 바울사도의 가르침에서 누락될 수가 없다. 바울 서신이 한 교회로 보내어져서, 낭독하는 자나, 듣는 자나, 읽는 자와, 필사해서 또 다른 지방으로 전달하고 가르친 것을 볼 때에 거의 하나의 신학과 하나의 흐름 가운데에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산재한 교회들은 서로 소통되어지고 있던 형제교회들이었지만, 저들의 삶의 자리가 여러 상황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교회마다의 형편과 지역의 특성으로 인해서 당면한 문제들이 다양하였다. 먼저 에베소교회를 보자. 이 교회는 에베소로 보내어진 에베소서의 내용과 같이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인지하였고, 천사들도 흠모할만한 지혜와 계시적인 지식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들이 서로서로의 은사와 역할에 따른 효율적인 기능과, 유기체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여 가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자신들의 교회를 외부의 세력에서부터 지혜롭게 잘 지켜가고 있었고, 그리스도의 신부 같은 영광을 띠고 있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들이닥친 거짓된 교훈들로 인해서 피로가 누적되자, 저들 공동체에서 화기애애하였던 구성원들 간의 유기적 관계가 소원하여진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핵심 가치인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로 변질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곱 교회 중에서 또 다른 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에다가 발람의 교훈이 혼합되었다. 발람이란 자가 누구이던가? 저의 이야기가 민수기 22,23장에 잘 기록되어졌다. 그가 선지자로서 영적으로 ‘보는 자’이었으나, 그가 타고 다니는 나귀보다는 민감하질 못하였다. 그가 가려는 길에서 천사가 저를 치려고 칼을 빼어들고 있었으나 알아차리질 못하였다. 아마도 명예와 재물 욕에 노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이도 그가 타고 있던 나귀가 이를 미리 감지하여서 가려던 길을 멈추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말을 하였기 때문에, 그제야 발람은 이를 알아차리고는 일시적으로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만큼 저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에는 미련하고 게을렀던 것이다. 이 타락한 선지자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모압 여인들의 미인계에 걸려들게 되었고, 염병까지 겹치게 되면서 24,000명이 희생되었고, 이 눈이 어두워진 발람도 역시, 모압처럼 멸망을 피해가진 못하였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BC 454년부터 집을 나서서, 당시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와 근동지방들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한번은 이집트에서 순결한 처녀를 구해보려고 시도하였지만, 어디엘 가더라도 구할 수는 없었다고 하였다. 그만큼 저들의 종교관습은 민수기의 25장 의식이나, 출애굽기 32장의 시내 산 금송아지 종교 축제와, 소돔의 멸망과 관련되어 있었다. 출애굽을 시도한 시내산 교회의 위험 지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문화생활은 그 위험에 있어서 주후 일세기의 교회들과 차이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의 가르침과 같이,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는 일은 항상 있어왔다(마 13:24). 이같이 교회는 출생되면서부터 외적인 요인들뿐만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 발생되는 문제들로 인해서 항상 위험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한국교회도 묵시록의 교회들처럼 위험 요소들에 노출 된지 오래이다.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에서는 물리적인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있었으나, 싯딤에서는 종교 문화의 관습을 통해서 침투하는 적들은 막아내질 못하였다. 이스라엘이 영적인 전쟁에서는 비참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오늘의 한국교회 상황도 당시의 일곱 교회가 영적인 전쟁에서 패주하고 있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가 이러한 영적인 패주를 정지시키고, 저주의 수취를 씻어내려면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슬픔과 질병이 만연해진 싯딤 캠프에서 한 전사가 나타났는데, 그가 곧 비느하스 신학을 세운, 엘르아살의 아들이었다. 그가 취한 민첩한 판단력과 실천력으로 인해서, 그들 교회에 만연된 염병과 저주가 즉각 사라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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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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