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이 진리는 내 정신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려 점점 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포용(은혜)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운영 시스템으로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로마서 12장 2절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베드로후서 1장 4절에서는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 귀중한 사실을 생활화하기 위해서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웠다”라고 마태복음 4장 17절에 이 황홀하고 거대한 구속의 목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개란 잘못을 뉘우침이 아니라 예를 들면, 밧데리의 기능이 탈진된 상태에 다른 밧데리의 점프로 건강한 파워를 전수하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정신을 얻어 신경통로와 패턴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4절에서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분에게서 나오는 모든 요소(생명, 사랑, 기쁨, 평화, 은혜, 연민, 자유)입니다.
즉, 정신을 바꾸어 그리스도의 운영 시스템으로 정착하면 우리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요소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내면의 요소들이 그리스도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고 결국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매일 외우는 주기도문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니 그 삶의 원동력이 개혁주의생명신학 실천인 것입니다.
이럴 때 내가 사는 환경이 변화되고 내 경험이, 내 이웃 모두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정신적 변화는 하나님이 이미 깨인 사람들을 통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깨우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생명의 역사입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신앙의 핵심을 바꾸어야 할 긴박성은 완전히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체개념과 개체개념이 죽고 사는 것으로 나누어짐을 말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생각과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의식적인 위선이 교회가 교회 되지 못하게 합니다.
교회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과 하나님의 임재는 내 안에 있다. 형식적인 예배 의식 때문에 사람들이 자유함과 진정한 행복한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생각과 기독교는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모방하는 사람이나 ‘처럼’ 살게 하는 것은 마귀가 제공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서 좋은 점은 그분이 사랑과 기쁨과 평안을 주신다는 생각과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내 사랑이요, 기쁨이요, 평안입니다. 사랑과 기쁨을 기다리기 전에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목사, 리더자 그리고 선생이 나를 인도하고 가르치고 훈련한다는 생각과 내재하시는 성령이 나의 주된 선생이 되신다면 수 없는 실망이나 불만이 사라지고 주의 평안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 행동을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하는 생각과 하나님이 새로운 마음과 정신을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이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이 아니라는 사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의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육체가 사람의 전부라는 생각과 사람의 진정한 정체성은 보이지 않는 영적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완전한 삶이란 인간의 행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언제인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과 하나님 나라는 지금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 의식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혁주의생명신학 실천에 방해요소가 바로 여덟 가지 생각에 대한 모순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교회연합신문 & 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