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으로 우리 흔들릴지라도
우리가 오늘 비탈에 서서
바로 가누기 힘들지라도
햇빛과 바람 이 세상 맛을
온몸에 듬뿍 묻히고 살기는
저 거목과 마찬가지 아니랴
우리가 오늘 비탈에 서서
낮은 몸끼리 어울릴지라도
기쁨과 슬픔 이 세상 이치를
온 가슴에 골고루 적시며 살기는
저 우뚝한 산과 무엇이 다르랴
이 우주에 한 점
지워질 듯 지워질듯
찍혀 있다 해도
세상 이치, 살아가는 일이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언제이든 간에 별로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무한한 시간과 만물이 존재하는 우주공간에는 크든지 작든지 모든 존재의 의미는 궁극적으로는 동일선상에 있지 않을까.김 현 숙
우리가 오늘 비탈에 서서
바로 가누기 힘들지라도
햇빛과 바람 이 세상 맛을
온몸에 듬뿍 묻히고 살기는
저 거목과 마찬가지 아니랴
우리가 오늘 비탈에 서서
낮은 몸끼리 어울릴지라도
기쁨과 슬픔 이 세상 이치를
온 가슴에 골고루 적시며 살기는
저 우뚝한 산과 무엇이 다르랴
이 우주에 한 점
지워질 듯 지워질듯
찍혀 있다 해도
창조주께서 지으신 우주만물 중 거대함이나 아주 작은 미물이나 미세한 원자나 분자까지도 생명이 부여되고 있다는 경이로움을 바라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시인은 삶의 존재론적 비감(悲感)을 바탕에 잔잔히 깔고 있다. 이미 주제에서 ‘풀꽃으로 우리 흔들릴지라도’ 라고 암시하고 있음은 짠한 감명을 이끌어 내고 있다. 작은 풀꽃이나 거목이나 우뚝 솟은 산이든지 무엇 다를 것이 있을까. 모든 만상(萬象)은 햇빛과 바람과 눈과 비를 맞으며 한결같이 그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자연은 생명체 어느 것에나 골고루 햇빛과 물과 바람까지도 배분하며 우주공간을 신비한 생명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가 힘든 비탈에 서 있든지, 낮게 엎드린 민초의 삶일지라도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주의 한 귀퉁이에 지워질 듯 찍혀있는 작은 점, 10억분의 1 나노의 입자나 거대한 산이거나 모두 흔들리며 살아가는 동질성의 숨결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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