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규 박사(서울교회사연구소장, 전 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교수)
본격적 지방교회사 연구 시대를 연 교회사학자
‘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호남기독교 100년사’등 대표적 저서 많아
전라남도 신안 출신…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
김수진(金守珍)은 1935년 4월15일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에서 부친 김환웅과 모친 김길례 사이에 8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시절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만주전쟁으로 인해 모든 물자를 약탈 당하고, 민중의 삶은 초근목피로 생명을 근근히 이어가는 처참한 시기였다. 그래도 수진이는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어린 시절을 구김살 없이 천진난만하게 자랄 수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조선말을 잃고 고향 미금국민학교에서 일본말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머리가 명석해 광주제일중학교로 진학하였고, 졸업 후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광주 숭일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는 부모님과 스승들의 보살핌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다져온 기독교 신앙교육이 그의 내적 발전을 깨우쳐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태어나던 해 유아세례를 받았고,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은 후에 그가 기독교 지도자가 되는데 큰 원동력이 되고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호남지방에 복음을 전한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대학은 서울에 있는 단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는데, 미래를 위해서 외국어를 택한 것은 그의 혜안이었고 주님의 섭리였다. 대학을 마친 후엔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에 지원했다. 이는 목회자로서 소명의 길을 걷기 위함이었다. 그는 장로회신학대학을 마친 후, 당시 WCC로부터 제3세계 신학발전을 위한 T.E.F 기금을 유치해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역사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남장로회 선교부로부터 스칼라십을 얻어 일본 교토에 있는 동지사대학(Toshishd University) 대학원에서 신학석사(Th.M) 학위를 받았고, 이어서 미국 파사데나에 있는 풀러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D.Min) 과정을 거쳐, 코헨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Th.D) 학위를 마쳤다.
교회사 연구와 강의… 목회에 헌신
김수진이 이와같이 일본과 미국의 신학대학들을 섭렵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본다. 일제 때 국민학교에서 듣고 배운 일본어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이 그의 역사신학연구에 기초가 되었고 학문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교회사 연구를 하면서, 특히 호남지방교회사를 연구하게 된 계기도 호남땅에 생명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전해준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에 고마움도 있었지만,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호남땅에, 19세기 말 희망이 보이지 않던 척박한 시대에 복음과 의술, 교육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희망을 심어주고 무지를 깨우쳐 준 신문명의 선구자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동지사대학에서<일본기리시도교회사> 교수인 도이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도이는<일본기독교회사>를 쓴 학자요 교수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 유학을 온 김수진에게 학문적인 스승이 되어 주었고, 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는 모교인 장로회신학대학을 비롯, 대전신학교, 중앙신학교 대학원 등에서 한국교회사를 강의하며 목회를 겸해 헌신하였다.
그가 최초로<한국기독교회사>를 집필하면서 간행한 저서가 '호남편'이란 이름으로 그의 제자 한인수(韓仁洙)와 공편으로 낸 교회사 관계 저서이다. 이 책은 1980년 11월 30일 범륜사에서 간행했는데, 국판으로 430면에 이르는 본격적인 저서였다. 책의 명칭은<韓國基督敎會史 湖南篇>(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으로 되어 있다. 한국기독교 100년사 가운데 특정지역을 연구한 시초였다. 본 필자는 당시 대구 지방에서 목회를 하던 중 이 책을 단번에 밤을 새워 완독을 하고 감동을 받아, 그때부터 대구 경북지방 교회관계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1994년 <大邱地方敎會史>(대구지방교회사)를 낸 바 있다.
미국 남장로회, 호남지방에 수많은 지도자 배출
김수진의<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의 출간은 한국교회에서 직간접으로 지방교회사 연구에 불을 붙인 연구물로 기록될만 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저서가 간행된 후 한국기독교 역사가 한 세기에 접어들었고, 이에 발맞추어 한국교회사 연구에 기름을 부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즈음에 일반 역사학계에서도 소위 지방사 연구붐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간간히 역사있는 교회들이 80년사 혹은 90년사 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각 교단 신학교에서도 한국교회사 관련 학위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 능력있는 교회사학자들 중심으로 한국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학술연구단체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김수진. 한인수가 펴낸<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의 편찬 내용을 보면, 표제에 걸맞는 호남선교를 위해 내한한 미 남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사진 14면,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 및 6.25 동란 때 희생된 순교자 7면, 호남선교 역사 관련 화보 10면, 호남 출신 총회장 사진 3면 등이 있으며, 호남선교를 위해 헌신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어 편집상 많은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이 저서를 뒷받침한 발간위원회 위원장 김종대 목사의 머릿말을 보면, 이 책을 내게 된 동기를 읽을 수 있다. "… 한국교회사 하면 이것은 장로회신학교가 있던 평양을 중심한 평안도와 황해도의 역사와 미 연합장로교의 한국선교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들의 노고는 높이 평가해야 하고, 또 그 지방의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활동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 1892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북장로교의 선교사들의 충동에 그 넓은 곡창지대 호남땅을 밟기 시작했다. 이들도 미 북장로교 선교사들 못지 않게 갖은 고생과 고난을 겪으며 복음을 전했다. 교회도 수없이 세우고, 병원도, 학교도 세웠다. 또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하였다. 이들의 활동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며, 앞으로 경기도지방을 중심한 교회사도, 또 경상도지방을 중심한 교회사가 나올 때, 한국 전체 교회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는다."(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 1980 p.61).
오늘날 호남지방 교회성장은 수난 당한 성도들의 '피의 열매'
저자 김수진 박사는 책의 머릿말에서 집필 소회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활동했던 호남지방교회사를 엮어간다는 것은 여간한 고충이 아니었다. 이미 한국에 많은 교회사가 출간되었지만, 호남지방을 배경으로 한 교회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되는 일이어서 자연히 자료를 준비하는데 많은 애로가 있었다. 모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데서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여러 생존해 있는 증인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또 오래도록 간직했던 자료를 제공하는데 힘을 얻고 직접 지방을 답사하면서 얻어진 자료를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여기에 특별한 사관을 가지고 집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자료에 의거 연대기적으로 나열한 것임을 밝혀둔다. 말없이 조용하게 호남교회(湖南敎會)가 성장하는 것처럼 느꼈지만 자료를 대하고 직접 만나고 교회를 답사했을 때, 호남교회들은 피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노력과 또 완고한 유교적 가정에서 이교도(異敎徒)의 기독교를 접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예수를 영접했다는 사실들이다.또 일제의 학정으로 인한 숱한 성도들의 곤욕, 누구나 다 겪여야만 했던 이 민족의 6.25 동란이었지만, 호남지방 교회만큼 수난을 당한 교회는 없으리라고 본다.
결국 이들의 피가 지금 호남 평야 넓은 들에 수없이 흘러가고 있다. 이 피가 가는 곳마다 우뚝 솟은 교회를 볼 수 있으며, 산촌(山村)에서도, 수많은 도서(島嶼) 지방에서도 교회는 우뚝 솟아 있다. 막상 책이 손에 쥐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좀더 정확하게 기록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 밖에 없다. 그저 기쁨보다는 후회가 많다." (같은 책, p.63).
이 책 외에도 김수진 박사의 저서로는1994년 1월부터 전북일보 지상에 매주 연재한<전북 개신교 100년>이란 글을 모아<호남기독교 100년사>(1998)를 간행한 바 있고, <한국교회 평신도운동사>(1984), <6.25 전란과 순교자들>(1981), <호남선교 100년과 그 사역자들>(1993), <한일교회의 역사>(1990), <일본개신교사>(1992), <광주초대교회사연구>(1994), <일제의 종교 탄압과 한국교회의 저항>(199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