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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교회논평회 칼럼] 박조준 목사의 ‘손현보 목사님 석방에 대하여’
    이번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님께서 한동안 옥고를 치르시고 석방되신 데 대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진리 수호를 위해 고난을 감내하신 손 목사님의 노고에 대하여 깊은 위로와 격려를 드립니다. 손 목사님께서 겪으신 고생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한국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핍박의 일부였으며, 손 목사님은 기독교를 대표하여 그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시대의 희생양이 되셨던 것입니다. 손 목사님은 진리를 위해서는 거짓과 타협할 줄 몰랐고, 불의에 맞서서는 생명을 걸고 싸우신 분입니다. 바로 이것이 참된 저항의 정신을 가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의 삶의 자세입니다. 구약성경 다니엘 3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만들었는데 그 크기가 굉장히 컸습니다. 이 신상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왕은 모든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의 모든 관원을 소집하여, 자신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게 했습니다. 모든 백성과 나라를 대표하는 자들이 그 거대한 금 신상 앞에 서 있을 때, 선포하는 자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이 막강한 위력 앞에 이를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풍악이 울릴 때, 거기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막강한 권력 앞에 저항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항하면 곧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권력 앞에 굴복하여 비굴하게 절할 때, 유일한 예외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였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갈대아 사람들이 즉시 그들을 왕에게 고소했고, 사실을 알게 된 왕은 대노했습니다. 왕은 그들을 불러 문책했습니다.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이제라도 준비하였다가 풍악이 울릴 때 절하면 좋거니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이때 그들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않을 줄을 아옵소서.“ 참으로 놀라운 정신 자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이 정신을 가진 믿음의 선조들이 과거 일제 강점기에도 신사참배를 거절하고 순교했습니다. 그 순교의 피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달군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세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 걸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은 '신들의 아들'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의 현장에 함께하셨고, 결국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이번 손현보 목사님의 구속과 석방 또한 이 진리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손 목사님께서 석방 직후 금요기도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우리와 싸우는 자와 친히 싸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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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3
  • [언론회 논평] 손현보 목사의 석방을 환영한다
    부산의 세계로교회 담임 목사인 손현보 목사가 대통령 선거와 부산교육감 재선거를 앞둔 가운데 불법선거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지난 5개월간 구속 기소된 가운데,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1심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손 목사에 대한 혐의를 인정하여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특정 후보를 당선이나 낙선시키려 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즉시 석방된 손현보 목사는 기자회견을 통하여, ‘자유를 억압하고 사법 절차에 맞지 않는 일들을 하는 것에 대하여 항의를 한 것이다. 아무리 피어나는 꽃들을 꺾고 짓밟아도 봄을 막을 수는 없는 것처럼, 바른 사법 제도가 회복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하였다. 또 ‘정교분리원칙’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손 목사는 정교분리의 원칙이 미국수정헌법 제1조에 나오는데 정교가 분리되고,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종교 행위의 어떤 것도 막는 법을 제정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미국 청교도들이 권력에 의해서 탄압을 받고 예배가 방해받지 않는 것을 위하여 이 법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교회는 말도 한마디 하지 말라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며, 교회는 당연히 우리의 가치를 주장해야 한다’고 피력하였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사의 양심대로 판결하고, 나는 거기에 따른 양심과 신앙의 가치에 따라 판단한 대로 댓가를 지불하면 된다’고 하였다. 손 목사가 구속된 사이에 미국 쪽에서는 손 목사의 자녀들을 백악관으로 두 번 초청하여 입장을 들었고, 미국의 목회자 1만 명이 석방을 위하여 서명하였으며, 국무장관과 부통령이 관심을 가져준 것으로 밝혀졌다. 이 문제는 얼마 전에 우리나라 국무총리가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진다. 사실 우리나라가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제대로 인정한다면, 이렇듯 목회자가 교회 안에서 한 말들에 대하여 구속하고, 재판에 회부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교회는 성경적 가르침에 따라서, 성경의 가치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세상의 불의와 악에 대하여 천명(闡明)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사건을 통하여 교회는 ‘종교의 자유’ ‘정교분리원칙’에 대하여 보다 명확한 입장을 견지하여 세상에 외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손현보 목사는 처음으로 구속된 케이스가 되기도 하지만, 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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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6-02-03
  • “부쳐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편지”
    나의 믿음의 아들 승혁아, 너무 이른 편지를 쓰는구나. 아니, 쓰지 않아야 할 편지를 쓰고 있구나. 어쩌면 부쳐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편지를 쓰는지도 모르지. 겨울의 세찬 바람은 여전히 차갑고 봄은 오직 멀었는데, 너는 왜 이리 일찍 먼 길을 떠나고 말았느냐.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한 줄 아느냐. 얼마나 너를 믿었는 줄 아느냐. 내가 너에게 수십 번 이상을 말했을 것이다. “너를 새에덴의 차세대 기둥 같은 장로로 삼고 싶다. 내 아들이 혹시 정치를 하더라도 후원회장이 되어 곁에서 힘이 되어주어라.” 나하고 약속했잖니? 마지막 기도를 받으러 올 때도 내가 권면을 했지 않느냐. “왜 가려고 하느냐? 새에덴의 장로가 되어야지. 안 갔으면 좋겠다.”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느냐. 너를 더 강하게 붙잡지 못한 게 이리도 가슴 아프게 다가올지 누가 알았겠느냐. 다음이라는 말이 왜 이리도 애절하고 간절하게 느껴지는지... 우리는 이제 다음이라는 말을 나눌 수 없게 되었구나. 너에게 나의 말이 잊혀진 사랑처럼 들려졌던 건 아닌지... 그러나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사실을 네가 천국에 가보니 더 잘 알 것이다. 토요일 오후, 해외로부터 전해 온 너의 부고를 듣고 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단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충격과 비통한 슬픔에 참척의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주일예배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해야 했다. 이 얼마나 설교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역설이냐. 나는 ‘예수님의 언어 습관, 긍정 희망’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외쳐야 했다. 가슴에는 사무치는 비애와 뜨거운 눈물을 쏟으면서도,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전하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과 희망을 외쳐야 한다고 했다. “축복은 순종의 강으로 흐른다. 말이 씨앗이다. 좋은 종자를 골라서 심어라”고 외치고 또 외쳤다. 천국에 가보니 얼마나 좋고 행복하냐. 이 땅의 모든 슬픔과 짐을 다 내려놓고 주님 품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을 너를 생각하니 오히려 네가 부럽다. 다윗이 요나단의 죽음을 애통해한 것처럼 나 역시 장례 일정 내내 단 한 번도 검은 넥타이를 풀어본 적도 없고 검은 넥타이를 맨 채 누워 있었다. 그리고 장례예배 때마다 눈에 눈물이 흘러 내렸지만 결코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마저 상한 갈대가 되면 어떻게 되겠니. 나는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으면서도 네가 천국에서 얼마나 기뻐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소망을 가졌단다. 나도 때가 되면 너처럼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하였다. 너의 삶은 짧았지만 굵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너의 죽음은 천국에 간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동시에 소망을 가져다주었다. 너의 삶은 참으로 위대했다. 너의 삶은 아름다웠다. 네가 살아온 모든 발자국들이 천년의 바람에도 지워지지 않을 궤적으로 남을 것이다. 사랑하는 천승혁 안수집사여, 잘 가. 우리 천국에서 환한 미소 지으며 다시 만나자. 필립, 엘림, 시온이는 김찬호 장로님과 함께 잘 키울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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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2-01
  • [언론회 논평] 기독교 탄압 국가는 반문명국가들이다
    최근 한국오픈도어선교회가 발표한 ‘세계 기독교 박해 지수’(WORLD WATCH LIST)에 의하면, 북한은 23년째 기독교 박해가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로 조사되었다. 이 조사는 2024년 10월 1일부터 2025년 9월 30일까지 1년 동안 광범위한 연구, 오픈도어 현장 사역자들의 자료, 국내외 전문가 및 박해 분석가들의 연구 결과를 수치화하여 매년 초 발표한다. 기독교 박해국 상위 10개국을 살펴보면 북한(1위), 소말리아(2위), 예멘(3위), 수단(4위), 에리트레아(5위), 시리아(6위), 나이지리아(7위), 파키스탄(8위), 리비아(9위), 이란(10위) 순이다. 그 밖에도 주요 국가 가운데 인도가 12위, 사우디아라비아 13위, 중국 17위, 이라크 18위, 이집트 42위, 네팔이 46위를 차지했다. 주목할 점은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 박해가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순위별로 보면 소말리아(2위), 예멘(3위), 수단(4위), 나이지리아(7위), 파키스탄(8위), 리비아(9위), 이란(10위), 아프가니스탄(11위), 사우디아라비아(13위), 말리(15위), 이라크(18위), 몰디브(19위), 알제리(20위), 모로코(23위), 우즈베키스탄(25위), 니제르(26위), 타지키스탄(27위), 방글라데시(33위), 투르크메니스탄(35위), 오만(38위), 키르기스스탄(40위), 이집트(42위), 카타르(44위), 카자흐스탄(45위), 요르단(49위), 브루나이(50위) 등 박해 지수 상위 50개국 중 이슬람 국가가 절반이 넘는 26개국에 달한다. 세계 기독교 박해 지수는 150개국 현지 전문가들의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되며 폭력, 개인 생활, 가족 생활, 공동체 생활, 국가 생활, 교회 생활 등 6개 분야를 분석한다. 박해 정도에 따라 '높음'(41~60점), '매우 높음'(61~80점), '극심함'(81~100점)으로 수치화하여 등위를 매긴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전 세계에서 기독교인 4,849명이 신앙 때문에 살해당했다. 또한 법정 선고를 받은 사례가 1,298건, 강간이나 성적 괴롭힘은 4,055건이며, 폭력과 압박으로 인해 거주지를 떠나거나 몸을 숨겨야 했던 사람은 201,427명에 이른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3억 8,800만 명의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신앙적 박해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종교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며, 이는 진정한 자유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이처럼 종교를 억압하고 박해하는 일이 세계 도처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말살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특히 북한이 23년 동안 기독교 박해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수치스럽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북한의 ‘종교 자유’를 위하여 더욱 기도해야 하며, 북한과의 모든 만남과 교류에서 북한 주민의 자유권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물론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인 북한 당국이 이를 반기지는 않겠지만,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끊임없이 깨우쳐 주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독교 박해는 단순한 종교적 갈등을 넘어 보편적 인권과 문명의 가치를 훼손하는 반문명적 행위이다. 우리는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북한을 포함한 모든 박해 국가에서 신앙의 자유가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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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6-01-31
  • [언론회 논평] 한국교회여, 종교의 입장 드러내는 것 두려워 말라
    요즘 우리 사회는 특정 이단 종파의 정치권과의 유착(癒着) 문제로 시끄럽다. 정치권에서도 ‘특검’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말하기를 정교유착은 나라가 망하는 길이며, 그들 종교에 대한 엄밀한 조사와 함께 처벌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당연히 정교유착(政敎癒着)은 잘못된 것이다. 종교가 정치에 편승하여 자기들의 로비와 이익을 구하는 것은 타락한 모습이다. 정치과 종교는 다른 분야이다. 그런데 정치와 종교가 서로 유착하여 상호 이용하는 것은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지금 정부가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가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단•사이비의 정교유착 문제를 정리한다는 것은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를 기화로 정통 기독교에 대하여서도 비슷한 명목을 내세워 ‘정교분리’(政敎分離)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정교분리’의 원래 의미는 미국 수정 헌법 제1조에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즉 국가는 ‘국교’(國敎)를 만들지 말고, 이로 인하여 종교 간에 차별하지 말고, 자유로운 종교 행위를 금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교분리의 원칙을 세운 것은 ‘미국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미국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내세운 것이 확립 된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강단의 설교 내용이나 정권에 비판적인 내용에 대하여 수사를 하거나 법률을 만들어 벌을 내리고, 종교 단체를 해산한다고 하는 것은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 되는 것이다. 그런 나라는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것들은 국제 사회에서도 인정하지 않고, 종교를 탄압한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종교의 역할은 정치가 잘못될 때,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선지자와 예언자의 기능을 강제적으로 차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며, 소임(所任)이다. 그런데도 정치권력이 종교를 어떻게, 마음대로, 함부로 처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어찌 종교를 밭갈이에서 ‘큰 돌을 골라낸 다음에 작은 돌을 골라 낸다’는 식으로 비유하며, 국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자, 헌법에서 보장한 ‘종교의 자유’를 무시하고 차례차례 탄압할 수 있다고 공언하는가? 정말 눈과 귀를 의심하게 된다. 만약 이렇듯 헌법을 무시한 일들이 권력의 힘으로 자행될 때, 주님의 몸이며, 예수님의 신부인, 한국교회는 침묵할 수 없다. 예수님의 보혈로 세우신 주님의 교회를 향한 능멸과 조롱과 위협이라면, 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 교회를 능욕한다면, 이는 주님을 능멸하는 것이 된다. 어찌 한국교회가 묵과할 수 있단 말인가? ‘정교유착’과 ‘정교분리’는 분명히 다른 것이므로, 똑바로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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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6-01-31
  • [언론회 논평] 정교분리원칙을 해치는 민법 개정안 나와
    지난 1월 9일 조국혁신당 출신이며, 현재는 무소속의 최혁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공동발의: 김우영 김준혁 김재원 권칠승 염태영 이건태 이성윤 송재종 서미화 손 솔) 제안 이유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살펴보면, ‘비영리법인이 헌법상 정교 분리 원칙을 위반하여 특정 정치 세력과 결탁하는 등 반사회적인 행위를 자행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제재할 법적 수단을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럴 경우, ‘법인 설립 허가 취소와 주무관청의 조사 권한 강화, 관계서류와 장부, 참고 자료를 제출할 명령, 소속 공무원의 법인의 사무 및 재산 상황 검사, 법인의 대표자 및 출석요구, 그리고 긴급을 요할때는 의견 제출 기회도 주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제37조) 제38조에서는 법인의 설립 허가의 취소에서 제5항에 ‘법인이 대한민국헌법 제20조 제2항에서 정한 정교분리의 원칙 또는 공직선거법 등 관계 법령을 위반하여 선거, 정당 또는 후보자와 관련하여 조직적•체계적으로 정치 활동에 조직적•반복적으로 개입하여 공익을 현저히 해한 때’의 규정도 신설하고 있다. 그리고 제80조 잉여재산의 귀속에서는 제4항을 신설하여 그 잔여 재산은 국고에 귀속한다고 규정한다. 결과적으로 이 법이 만들어지면, 종교의 정치에 대한 어떤 활동과 접근도 제한하며, 또 종교 단체 해산도 상시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종교단체를 겨냥하여, 자기들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해산할 수 있는 막강한 법안을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정교분리원칙’을 충실히 실현하는 것인가? ‘정교분리’의 원래 의미는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정치가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 헌법의 모범인 미국수정헌법 제1조는 자유로운 종교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고,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의 자유, 정부의 시정을 위한 청원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교분리원칙’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아니다. 명백하게, 정치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내용은, 대통령의 ‘종교단체 해산’ 발언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즉 기독교에서 사이비•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동안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도 물의를 일으킨 신천지, 통일교 집단에 대한 것을 규제한다고 하면서, 은근슬쩍 정통 기독교까지 포함시키려는 시도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일명 ‘교회폐쇄법’으로 간주하여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종교의 자유’는 종교의 선택과 종교활동은 기본이고, 표현의 자유와 잘못된 정치권을 비판하고 그 잘못을 얼마든지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종교이익을 위한 로비나 비리 감추기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 된다면, 정교분리원칙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정교유착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국회에 발의된 ‘민법개정안’은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 입법부가 법안을 만드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고, 헌법의 가치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입법부는 행정부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대표로 뽑은 국회의원들은 항시 이런 위치에서 국가와 국민에 대한 강한 책임감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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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6-01-31
  • [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②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 2
    (신 32: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오늘은 신명기 32장에 담긴 구속사의 깊은 의미를 상고해 봅니다. 신명기 32장은 모세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기 직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긴 ‘증거의 노래’입니다. 1. 신명기 32장의 구속사적 의미 - 모세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불렀던 증거의 노래 신명기 32장은 모세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로 지어 부르게 한 장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라, 장차 일어날 역사적 사실들을 예언하며 그들이 영원히 기억해야 할 신앙의 지침을 유언처럼 남긴 비장한 노래입니다. 2. 신명기 32장 1-7절의 내용 (1)천지의 호출(신 32:1) 신명기 32장 1절은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라고 외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뿐만이 아니라 전 우주에 선포하고 있다는 선언입니다. (2)하나님의 말씀은 축복과 생명의 근원(신 32:2) 신명기 32장 2절은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라고 묘사합니다. 여기 비, 이슬, 가는 비, 단비가 모든 생명체, 만물에게 생명을 주고 축복을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의 종류에는 많은 것이 있지만, 여기 신명기 32장 2절의 비들은 거친 폭우가 아니라, 만물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며 생장에 도움을 주는 은혜의 비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만 잘 믿고, 하나님의 말씀만 잘 받으면, 이 땅에서 축복을 받고, 이 땅에서 생명을 누리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3)하나님을 대적하고 배신한 이스라엘 백성의 죄(신 32:3-6)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이어지는 3절부터 6절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신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2장 5절과 6절에,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라고 탄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세우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값 주고 사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은혜를 망각하고 배신하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4)가나안에 입성 후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날 이스라엘이 그 죄악을 깨닫고 온전히 회복할 수 있는 방법(신 32: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성 후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내다보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을 깨닫고 온전히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 32장 7절입니다. 여기 제시된 회복의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옛날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역대의 연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셋째, 아비와 어른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천국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이 땅에서 지켜야 할 가장 구체적인 행동강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고 영적으로 암흑기를 맞이할 것을 미리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전개될 암울한 역사 가운데서도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그 길이 신명기 32장 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말씀을 붙잡을 때, 어떤 시험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고, 피할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미쁘시다’는 것은 ‘하나님은 신실하신(Faithful) 분’이라는 뜻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 세 가지를 보장하십니다. 첫째,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어떤 어려운 시험을 당해도, 그것은 우리가 뚫고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어 주십니다. 셋째,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이 ‘능히’라는 표현은 참으로 소망이 넘치는 말씀입니다. 겨우 감당하고 겨우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우리는 세상의 어떤 시험과 환난이 닥쳐와도 넉넉히 이길 줄로 믿습니다. 결론 -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2장 8절과 9절은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9)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기업으로 세우셨다면 하나님께 순종해야 번창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세상의 큰 기업에서도 직원들이 회사 방침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그 기업이 부흥하고 번창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기업입니다. 인간들도 자신이 세운 회사가 번창하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하물며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업인 우리를 얼마나 아끼고 위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반드시 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가나안 땅 역시 하나님께서 택하신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2장 49절 하반절 말씀 볼 때,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소유, 선택하신 기업인 가나안 땅을 결코 빼앗기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철저히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비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는데 이것이 온전히 우리 것이 되기 위해서는 신명기 32장 7절의 세 가지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기업입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물으라’라는 명령에 순종하심으로 어떠한 시험과 환난이 닥쳐와도 넉넉히 이기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가나안을 온전히 소유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반드시 지켜야 할 행동지침이자 명령인 신명기 32장 7절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각자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선택하신 하나님의 기업으로 세워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에, 우리를 반드시 지켜주시고, 절대 보호해주시고, 선한 길로, 형통의 축복으로 이끌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도 하나님의 기업이오니,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지켜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영상 링크 https://youtu.be/NHIDHEwi3RU?si=5Hn7pWoG21EYzitt 이승현 목사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B.A.)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미국 Knox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IVY College 부총장과 사)세계구속사말씀본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본 기고는 구속사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저자 박윤식 목사)를 토대로 구속사 말씀 전파와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위해 구성한 큐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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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30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하나님의 마음’(눅 15:7)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잃은 양을 찾은 목자 비유,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비유,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고 찾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길 잃고 방황하는 불쌍한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도록 오래 기다려주십니다. 본문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 한 사람이 구원받을 때 가장 기뻐하시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된 것입니다.(롬 5:12)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께 돌아와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끝을 아시기에 오늘도 애타게 한 영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우리를 아십니다. 때가 되면 주님을 떠난 자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벧후 3:8-9)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오래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먼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다림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신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온 후에야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서, 모든 민족에게 증언될 것이다. 그 때에야 끝이 올 것이다.”(마 24: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길 잃고 방황하는 불쌍한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내가 잃어버린 양처럼 방황할 때 나를 찾아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도록 오래 기다려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길 잃고 헤매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있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 방법에 대한 말씀을 봅니다. 첫째, 강권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번역으로 보면, “큰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날마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담대함으로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전도와 선교입니다. 전도는 바로 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울타리 밖에 있는 자를 끌어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은혜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전도자를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 것인가 물으실 때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주님께서 찾으실 때 “나를 보내소서”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도록 준비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전도이고, 전도가 삶이어서 우리를 통해 많은 영혼이 주님 앞에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한 영혼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서두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전도를 넘어 한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천천히 변화하더라도 오래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기다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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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너나 잘하세요”
    지난 수요일 오후 CBS와 특별 대담을 했습니다. 대담 중에 한 질문이 “이단 사이비 정교 유착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보십니까?”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단 종교가 정교 유착을 하는 것은 문화적, 사회적 병리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천지와 통일교가 왜 정권과 유착을 하려고 하느냐면, 통일교는 돈벌이를 위해서고 신천지는 교세 확장을 위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이제와서 보니 아주 오랫동안 정교 유착을 해 왔던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차제에 이단 사이비의 정교 유착을 완전히 뿌리째 뽑아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통일교든, 신천지든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불신자들을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폐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교회란 하나님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인간 교주가 중심이 되어서 사회의 병폐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정교 유착을 하여 종교 카르텔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실상을 낱낱이 알고 그들의 세력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보에 정치적인 문제를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지금의 정부에서 신천지와 통일교의 정치 개입이라는 악습을 찾아 뿌리를 뽑으려고 하는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1-2% 극소수에 불과 하지만 교회도 정교 유착을 해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국가조찬기도회 회장과 부회장이 관련된 부정적 사건이 불거지면서 국민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까? 저는 하루속히 사건 당사자들이 사표를 내고 국가조찬기도회가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극소수의 극우 세력들이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그들만의 카르텔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한국교회 공교회를 세우기 위해 활동하고 사역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공교회 의식이 없습니다. 공교회 의식이란 복음적 동기와 하나님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복음에는 진보적인 측면도 있고 보수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진정한 복음주의자라면 좌우를 다 아울러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가 극우화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극우 세력은 반드시 극우 정치권과 손을 잡게 돼 있습니다. 1-2%도 안 되는 사람들이 워낙 유튜브와 온갖 미디어를 통해서 떠들어대니까 한국교회 대부분이 다 극우화된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한국교회 공교회를 위해서 활동한 적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종교인소득과세 등의 문제를 대처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을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념이나 정파를 위해 앞장서지 않았습니다. 교회 생태계를 지키고 공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결코 저의 사익이나 돈벌이를 위해서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돈을 쓰면서 활동하고 사역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념몰이를 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교회와 밝은 미래, 그리고 공교회 세움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코로나19 때에도 방역도 지키면서 비록 소수였지만 현장예배도 지켜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 와서 코로나 걸려 죽으면 순교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가장 어려울 때 교단 총회장을 하고 한교총 대표회장으로 섬겼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국민 호감도에 있어서 제일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교단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을 하던 시절에는 ‘허들링 처치’(hurdling church)를 주장하고 ‘찬란한 바보’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계절은 희망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예배 회복의 날을 선포하면서 실추된 한국교회 이미지와 선호도를 끌어 올리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때도 극단적인 사고를 하며 무조건 현장만을 주장했던 분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교회의 이념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이념으로 덮어 씌어서 사회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건 설교가 아닙니다. 정치 평론이죠. 또 어떤 경우는 교회 강단에서 “누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설교를 하거나, 심지어는 특정 정치인을 연행하고 구타하는 연극을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정말 교회에서 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종교 호감도 조사에서 국민이 한국교회를 향하여 하는 준 메시지가 “너나 잘하세요”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정말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부흥의 증폭운동을 이루는 교회!’ ‘반전의 진원지가 되는 교회!’ ‘생명과 부흥의 에피센터가 되는 교회!’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대반전, 대각성을 이루어 사회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생명과 부흥의 진원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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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1-25
  • [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①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 1
    (신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신명기 32장 7절은 구속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모토와도 같은 말씀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신명기 속에 담긴 구속사의 깊은 섭리를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신명기의 구조 신명기는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했던 세 편의 고별 설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차 설교는 신명기 1장 1절부터 4장 43절까지의 말씀으로, 지난 광야 여정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제2차 설교는 신명기 4장 44절부터 26장 19절까지 이어지는데,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각종 율법을 재강론하였습니다. 본래 율법은 시내산에서 처음 강론되었으나, 이제 41번째로 장막을 친 모압 평지에서 다시 한번 선포된 것입니다. 모압 평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진을 친, 광야 여정의 마지막 장소였습니다. 이곳에서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둔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율법을 다시 가르치며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했습니다. 제3차 설교는 신명기 27장부터 30장까지로, 장래 역사에 대한 예언적 전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가나안 입성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마지막 결론인 신명기 31장부터 34장에서는 모세의 죽음과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의 등장이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신명기 32장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노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2. 신명기 말씀의 시기와 장소 (1) 시기는 대략 가나안에 입성하기 2달 10일 정도 전입니다. 말씀이 선포된 시점의 긴박함은 성경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장 3절은 “제 사십년 11월 1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으니”라고 증거합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길갈에 처음으로 진을 쳤습니다. 여호수아 4장 19절은 그 시점을 “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 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 11월 1일 말씀을 시작한 때로부터 41년 1월 10일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의 기간을 계산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신명기의 말씀은 입성을 불과 약 2달 10일 앞둔 시점에 선포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말씀을 선포하신 장소는 모압 평지입니다. 신명기 1장 5절은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모압’은 히브리어 ‘모아브(מוֹאָב)’로, 그 뜻은 ‘아버지로부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곳에서 율법을 재강론 듣고 가나안 입성에 필요한 모든 말씀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합니다. 즉, 생명의 말씀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입성 직전에 그 입성에 반드시 필요한 말씀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속사적으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직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말씀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마지막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변화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1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3) 말씀을 선포하신 대상은 출애굽 2세대였습니다. 민수기 1장 46절을 볼 때 출애굽한 인원은 총 603,550명이었으나, 그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603,548명은 모두 광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1세대 중 20세 이상의 장정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는 아무도 세렛 시내를 건너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신명기 2장 13절부터 15절은 “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 팔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 중에서 다 멸절되었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 중에서 멸하신 고로 필경은 다 멸절되었느니라”라고 엄중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수기 14장 29절과 30절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한 자들은 결단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임을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민 14:27)이라 칭하시며, 원망은 곧 악한 것이며 그 결과는 죽음뿐임을 경고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신령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하루도 원망보다는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4) 말씀을 선포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광야 2세대가 가나안 입성 후에도 지속적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세대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4장 4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여기서 ‘한없이’라는 표현 속에는 영원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살 때, 우리 자신은 물론 자손만대가 복을 받고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지난 광야 생활의 역사를 거울삼아,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한 분도 낙오됨 없이 저 영원한 천국에 입성하여 영생 복락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아침마다 구속사 만나를 거둘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603,550명 20세 이상 출애굽 했지만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여호수아 갈렙을 빼고 다 광야에서 엎드러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남은 생애가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원망하는 자리에 서지 않게 하시고, 변화 받는 그 날까지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우리와 우리의 후손이 복을 받게 하시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영상 링크 https://youtu.be/OWK1rACVIIE?si=1gg1hfN54Jg9iRrq 이승현 목사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B.A.)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미국 Knox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IVY College 부총장과 사)세계구속사말씀본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본 기고는 구속사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저자 박윤식 목사)를 토대로 구속사 말씀 전파와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위해 구성한 큐티입니다. 교회연합신문은 2026년 1월부터 매주(토) 1편씩 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과 호응 부탁 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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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속사 만나
    20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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