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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너나 잘하세요”
- 지난 수요일 오후 CBS와 특별 대담을 했습니다. 대담 중에 한 질문이 “이단 사이비 정교 유착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보십니까?”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단 종교가 정교 유착을 하는 것은 문화적, 사회적 병리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천지와 통일교가 왜 정권과 유착을 하려고 하느냐면, 통일교는 돈벌이를 위해서고 신천지는 교세 확장을 위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이제와서 보니 아주 오랫동안 정교 유착을 해 왔던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차제에 이단 사이비의 정교 유착을 완전히 뿌리째 뽑아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통일교든, 신천지든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불신자들을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폐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교회란 하나님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인간 교주가 중심이 되어서 사회의 병폐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정교 유착을 하여 종교 카르텔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실상을 낱낱이 알고 그들의 세력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보에 정치적인 문제를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지금의 정부에서 신천지와 통일교의 정치 개입이라는 악습을 찾아 뿌리를 뽑으려고 하는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1-2% 극소수에 불과 하지만 교회도 정교 유착을 해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국가조찬기도회 회장과 부회장이 관련된 부정적 사건이 불거지면서 국민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까? 저는 하루속히 사건 당사자들이 사표를 내고 국가조찬기도회가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극소수의 극우 세력들이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그들만의 카르텔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한국교회 공교회를 세우기 위해 활동하고 사역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공교회 의식이 없습니다. 공교회 의식이란 복음적 동기와 하나님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복음에는 진보적인 측면도 있고 보수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진정한 복음주의자라면 좌우를 다 아울러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가 극우화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극우 세력은 반드시 극우 정치권과 손을 잡게 돼 있습니다. 1-2%도 안 되는 사람들이 워낙 유튜브와 온갖 미디어를 통해서 떠들어대니까 한국교회 대부분이 다 극우화된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한국교회 공교회를 위해서 활동한 적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종교인소득과세 등의 문제를 대처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을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념이나 정파를 위해 앞장서지 않았습니다. 교회 생태계를 지키고 공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결코 저의 사익이나 돈벌이를 위해서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돈을 쓰면서 활동하고 사역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념몰이를 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교회와 밝은 미래, 그리고 공교회 세움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코로나19 때에도 방역도 지키면서 비록 소수였지만 현장예배도 지켜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 와서 코로나 걸려 죽으면 순교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가장 어려울 때 교단 총회장을 하고 한교총 대표회장으로 섬겼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국민 호감도에 있어서 제일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교단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을 하던 시절에는 ‘허들링 처치’(hurdling church)를 주장하고 ‘찬란한 바보’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계절은 희망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예배 회복의 날을 선포하면서 실추된 한국교회 이미지와 선호도를 끌어 올리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때도 극단적인 사고를 하며 무조건 현장만을 주장했던 분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교회의 이념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이념으로 덮어 씌어서 사회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건 설교가 아닙니다. 정치 평론이죠. 또 어떤 경우는 교회 강단에서 “누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설교를 하거나, 심지어는 특정 정치인을 연행하고 구타하는 연극을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정말 교회에서 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종교 호감도 조사에서 국민이 한국교회를 향하여 하는 준 메시지가 “너나 잘하세요”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정말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부흥의 증폭운동을 이루는 교회!’ ‘반전의 진원지가 되는 교회!’ ‘생명과 부흥의 에피센터가 되는 교회!’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대반전, 대각성을 이루어 사회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생명과 부흥의 진원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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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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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①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 1
- (신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신명기 32장 7절은 구속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모토와도 같은 말씀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신명기 속에 담긴 구속사의 깊은 섭리를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신명기의 구조 신명기는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했던 세 편의 고별 설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차 설교는 신명기 1장 1절부터 4장 43절까지의 말씀으로, 지난 광야 여정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제2차 설교는 신명기 4장 44절부터 26장 19절까지 이어지는데,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각종 율법을 재강론하였습니다. 본래 율법은 시내산에서 처음 강론되었으나, 이제 41번째로 장막을 친 모압 평지에서 다시 한번 선포된 것입니다. 모압 평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진을 친, 광야 여정의 마지막 장소였습니다. 이곳에서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둔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율법을 다시 가르치며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했습니다. 제3차 설교는 신명기 27장부터 30장까지로, 장래 역사에 대한 예언적 전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가나안 입성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마지막 결론인 신명기 31장부터 34장에서는 모세의 죽음과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의 등장이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신명기 32장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노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2. 신명기 말씀의 시기와 장소 (1) 시기는 대략 가나안에 입성하기 2달 10일 정도 전입니다. 말씀이 선포된 시점의 긴박함은 성경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장 3절은 “제 사십년 11월 1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으니”라고 증거합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길갈에 처음으로 진을 쳤습니다. 여호수아 4장 19절은 그 시점을 “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 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 11월 1일 말씀을 시작한 때로부터 41년 1월 10일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의 기간을 계산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신명기의 말씀은 입성을 불과 약 2달 10일 앞둔 시점에 선포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말씀을 선포하신 장소는 모압 평지입니다. 신명기 1장 5절은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모압’은 히브리어 ‘모아브(מוֹאָב)’로, 그 뜻은 ‘아버지로부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곳에서 율법을 재강론 듣고 가나안 입성에 필요한 모든 말씀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합니다. 즉, 생명의 말씀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입성 직전에 그 입성에 반드시 필요한 말씀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속사적으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직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말씀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마지막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변화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1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3) 말씀을 선포하신 대상은 출애굽 2세대였습니다. 민수기 1장 46절을 볼 때 출애굽한 인원은 총 603,550명이었으나, 그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603,548명은 모두 광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1세대 중 20세 이상의 장정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는 아무도 세렛 시내를 건너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신명기 2장 13절부터 15절은 “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 팔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 중에서 다 멸절되었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 중에서 멸하신 고로 필경은 다 멸절되었느니라”라고 엄중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수기 14장 29절과 30절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한 자들은 결단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임을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민 14:27)이라 칭하시며, 원망은 곧 악한 것이며 그 결과는 죽음뿐임을 경고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신령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하루도 원망보다는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4) 말씀을 선포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광야 2세대가 가나안 입성 후에도 지속적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세대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4장 4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여기서 ‘한없이’라는 표현 속에는 영원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살 때, 우리 자신은 물론 자손만대가 복을 받고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지난 광야 생활의 역사를 거울삼아,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한 분도 낙오됨 없이 저 영원한 천국에 입성하여 영생 복락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아침마다 구속사 만나를 거둘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603,550명 20세 이상 출애굽 했지만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여호수아 갈렙을 빼고 다 광야에서 엎드러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남은 생애가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원망하는 자리에 서지 않게 하시고, 변화 받는 그 날까지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우리와 우리의 후손이 복을 받게 하시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승현 목사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B.A.)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미국 Knox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IVY College 부총장과 사)세계구속사말씀본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본 기고는 구속사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저자 박윤식 목사)를 토대로 구속사 말씀 전파와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위해 구성한 큐티입니다. 교회연합신문은 2026년 1월부터 매주(토) 1편씩 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과 호응 부탁 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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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①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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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회논평회 칼럼] 박조준 목사의 '벙어리 개 같은 교회'
-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는 그 당시 파수꾼들의 사명을 보고 느끼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이사야 56장 10-12절) 아주 정확하고 예리한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이요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그의 종들에게 맡기셨습니다. 목자로서 하나님의 양 무리를 먹이고 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 양 무리를 맹수들로부터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에스겔 선지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겠다.” (에스겔 3장 17-18절) 하나님의 종들의 사명이 얼마나 중한지, 그 책임이 얼마나 큰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 사회의 양심이요 나침반입니다. 그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경고의 소리를 발해야 합니다. 도둑이 침입할 때에는 짖는 개가 되어야 합니다. 짖어야 할 때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짖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도둑을 따라다니며 꼬리를 흔드는 개가 되면 더욱 안 됩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형편이 어떻습니까?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부정부패, 악법, 탈법, 비법이 자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파수꾼의 사명을 지니고 있는 교회와 목사들은 어찌하고 계십니까? 지도자들이 탐욕에 쌓여 있고 분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 독주에 취하여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니 어찌 된 일입니까? 세상 독주에 취하여 벙어리 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문득 2001년 데이얀 엉(Dayyán Eng) 감독이 연출한 단편 영화 '버스 44'가 생각납니다. 사회의 무관심과 방조가 낳은 비극적인 결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었습니다. 한 여성 버스 기사가 버스를 운행하며 산길을 넘고 있었습니다. 강도 두 명이 승객들의 금품을 빼앗고 기사에게 달려들어 성폭행하려 했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못 본 체하고 있었는데, 오직 한 청년만이 그들의 만행을 말리다가 칼에 다리를 찔리고 심하게 얻어맞았습니다. 강도들은 버스를 세우고 여성 기사를 숲으로 끌고 가서 몹쓸 짓을 한 후 한참 뒤에 돌아왔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여성 기사는 조금 전 강도들을 제지했던 청년에게만 다짜고짜 차에서 내리라고 했습니다. 청년이 당황해하며 "방금 내가 당신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하니, 여성 기사는 소리를 지르며 "당신이 내릴 때까지 출발하지 않겠다"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청년이 내리지 않고 버티자, 오히려 다른 승객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 내리고 짐도 던져 버렸습니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기사는 커브 길에서 속도를 높여 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했습니다. 전원 사망이었습니다. 청년은 아픈 몸을 이끌고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사고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은 버스가 추락하여 승객이 모두 사망했다고 말했습니다. 멀리 낭떠러지 아래를 바라보니 자신이 타고 왔던 그 44번 버스였습니다. 여성 운전기사는 살만한 가치가 있었던, 유일하게 악행을 제지했던 그 청년만은 일부러 내리게 하여 살려두고, 모른 척 외면했던 승객들을 모두 지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 사건은 비록 소수의 악인뿐만 아니라, 침묵하고 방관했던 다수의 사람들에게도 무거운 책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의 목자들 역시 이와 같습니다. 사회의 악을 보고도 짖지 못하고 침묵하는 목자는 결국 그 피 값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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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회논평회 칼럼] 박조준 목사의 '벙어리 개 같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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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변화를 이룸’(마 3:1~10)
-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요한은 중심지에서가 아닌 광야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외친 말은,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이는 임박한 하나님 나라 앞에서의 결단을 촉구하는 선포였으며, 가까워지는 천국 앞에서, 삶의 방향을 돌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우리 각자의 생활 반경 속에서 결단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요한의 본분은 주인공이 아닌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오시는 분인,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을 자기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주의 길을 준비했으며, 오실 길을 곧게 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사명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으로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광야의 거친 삶은 그의 메시지와 하모니를 이룹니다. 요한은 안락함과 화려함으로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삶 자체가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서의 외침으로 보입니다. 꾸밈이 아닌 절제, 과시가 아닌 본래의 단순함을 유지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으며,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게 됩니다. 회개는 추상적 감정이 아닌 구체적인 고백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 고백은 세례라는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돌이키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편,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선언합니다. 요한은 종교 지도자들과 오래된 신앙인들의 외식하는 모습을 경계했습니다. 세례의 자리로 나온다고 해서 회개가 자동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진노를 피하려는 두려움만으로는 진정한 돌이킴에 이를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이는 그들이 세례를 종교적 보험처럼 붙들고 있지 않느냐는 하나의 폭로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속은 변하지 않은 채로 심판을 피하려는 태도를 가진 그들을 향해 요한은 강력한 충격요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요한은 핵심적인 결단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즉 온전한 돌이킴은 결코 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회개는 열매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삶에서 확인되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는 가볍게 입으로만 반복되는 종교적인 텍스트가 아니라, 행동과 습관과 관계에서 드러나는 신앙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한은 사람들의 또 다른 숨은 정욕의 은신처를 끊어내고자 했습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혈통과 전통을 구원의 안전장치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배경도, 기대어 설 특권도 절대적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새로운 백성을 세우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자리는 자기 확신을 붙드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는 자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결단의 긴급함을 선포합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즉 열매 없는 삶은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회개 없는 신앙, 열매 없는 종교성은 하나님 나라의 길을 예비하지 못합니다. 이 말씀을 각자에게 적용해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가까움 앞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며 그 길을 예비하기 위해 마음과 삶이 정돈돼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은혜 안에 거하는 생활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새해가 그러한 해로 준비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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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변화를 이룸’(마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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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머리로는 당에게, 심장은 하나님을 찬양”
- 목요일 저녁 오리CGV에서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신의 악단’이란 북한 보위부가 외화벌이를 위해 가짜 찬양단을 조직하고 연습하는 과정을 다룬 휴먼 드라마이면서 기독교적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독교를 전혀 강요하지도 않고 신앙을 주입하지 않지만, 관객이 함께 찬양을 부르고 불신자들도 전혀 거부감이 없도록 만들어 참신했습니다. 1994년 북한이 물자 및 달러 지원이 사방으로부터 제한된 때, 헝가리 한 인권센터에서 2억 불을 지원해 주겠다고 합니다. 조건은 평양에 두 개의 교회를 짓고 직접 부흥회를 하라는 것입니다. 국제그리스도연합회가 이 부흥회를 직접 참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의 보위부 박교순을 중심으로 해서 ‘신의 악단’이 꾸려집니다. 그런데 박교순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예수쟁이들을 추적하여 사형시키고 자기 사촌 형까지 총살 시켰던 지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신의 악단’을 꾸려 하나님의 찬양을 연습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고 통성기도를 연습하고 찬양하며 스스로 마음 문이 열리게 됩니다. “♪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갑니다 /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갑니다...” “♪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 한없는 은혜 /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 살 수 없는 곳 / 광야 광야에 서 있네...” 그런데 문득 하루는 박교순의 머릿속에 어머니가 성경을 읽고 예수님께 기도하다가 적발이 돼서 처참하게 죽는 모습이 상기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시절, 엄마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던 모습을 일기장에 썼고 그 일기장을 교사와 학생들 앞에서 읽어주는 바람에 자기 어머니가 처참하게 순교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때 시절을 생각하면서 어머니가 읽던 성경,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근원적 향수에 젖어 듭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가짜로 불렀던 찬양을 진짜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부하이자 경쟁자였던 김대위 역시 찬양을 부를 때마다 마음속에 자유, 평화 같은 것을 느낀다고 고백하죠.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가짜가 진짜로 변하는 모습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전개해 나갑니다. 저는 여러 번에 걸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 가서 설교하고 온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아멘” 소리가 얼마나 진심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장담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 모였던 사람들 역시 가짜에서 진짜로 변해가는 과정 속에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 가짜에서 진짜가 되어버린 성도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물론 제가 평양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가봤기 때문에 영화에서 대동강교회로 가다가 차가 고장이 나서 설원에서 연습을 하는 부분은 현실과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영화처럼 잘 구성해 넣은 장면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영화 속에 찬양곡과 CCM 음악은 대사보다 더 강하게 감정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무대 속에 펼쳐지는 배경이 아주 스펙터클 하지는 않지만 각자 배우들의 연기와 감정선을 따라 그들은 실제 성령 충만한 모습이고 하나님을 그토록 사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웃음과 울림, 눈물과 해학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관객, 아니 저의 감정 리듬을 끌어당겨 버렸습니다. 이런 감정 리듬 그리고 가짜에서 진짜로 변화하는 순간 김대위와 박소좌가 모의하여 가짜 찬양단을 압록강 부근으로 내려주어 북한을 탈출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총살을 당합니다. 박교순이 하얀 눈밭에서 개머리판으로 얻어맞고 총살당하면서 했던 대사가 있습니다. “나 잘했지. 내가 한 일이 정말 잘한 것이지...” 그러면서 영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처럼 대한민국의 대형 교회에서 “♪ 주 여기 운행하시네 / 나 경배해 나 경배해 / 주 여기 역사하시네 / 나 경배해 나 경배해...” 그 노래를 박교순과 김대위가 함께 부르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대로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찬양하며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습니다. 언제든지 성경을 읽고 교회 와서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정말 눈물 나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한 대사처럼 교회는 폐쇄되다가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가짜 교인들을 동원한다니, 지금도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문이 닫혀 있을까? 내가 봉수교회를 갈 때마다 입추의 여지가 없이 자리를 꽉 메웠는데, 설교할 때마다 아멘 소리가 우렁차고 성가대와 헌금 특송을 하는 분들의 찬양이 너무 애절하게 느껴졌는데 다 가짜였을까? 아니, 아닐 거야. 거기서도 가짜가 진짜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진짜로 아멘을 하고 찬양을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 않았을까...” 눈으로 보지만 마음이 심쿵하게 울리는 ‘신의 악단’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 영화를 강추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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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머리로는 당에게, 심장은 하나님을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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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생명을 살리는 의사에게 살인 면허를?
- 지난 해 12월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5713)이 무제한 낙태를 허용하는 법이 될 것이라고 하여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공동발의: 박주민, 이주희, 김 윤, 진성준, 이수진, 남인순, 손 솔, 진선미, 김한규, 이병진, 전진숙) 이들은 법률 개정의 이유에 대하여, 2019년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이후, 후속 조치가 없었다. 그래서 이에 따른 현행 모자보건법의 개정을 하자는 것이다. 그 중점은 인공임신중절(낙태)에 관한 규정을 정비하는데, 태아의 생명 보호보다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한다는 취지이다. 이에 대하여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가 그 문제점에 대하여 밝힌 바에 의하면, 태아 생명 보호 기준이 사실상 사라졌다. 낙태가 가능한 임신 주수(週數)를 전혀 정하지 않았다. 낙태를 위한 상담 제도가 생명 보호가 아닌 낙태 절차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미성년자(16세) 예외 규정이 가져올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의료인의 윤리와 양심의 자유 침해가 예견된다. 마지막으로 국가 재정 사용(낙태를 위하여 국가에서 지정하는 상담 기관 설치와 운영 등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감)의 방향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저출산율로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특별한 예외 없이(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는 인공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으로 유전학적 정신 장애나 신체 질환의 경우, 전염병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간강으로 임신된 경우, 혈족이나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경우는 낙태를 합법적으로 간주한다) 무조건 본인이 원한다고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 행위이다. 그런데 국가가 법률로 정해진 것을 빌미로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태아를 죽이는데 앞장 서는 셈이 된다. 즉 개정 법률안에서는 국가 부서인 보건복지부가 중앙상담기관을 지정하게 하고, 또 지자체장이 낙태를 포함한 지역 상담 기관을 설치•운영•유지하는 것은 막대한 국고를 축내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인공임신중절에 있어, 주수(週數)를 따지지 않고(전에는 12주 이상은 제한을 두자는 의견도 있었음)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을 허락하자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건강상에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낙태할 때 수술뿐만 아니라, 약물 투여 등의 방법도 추가하고 있다. 약물의 안정성 문제도 따를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무분별한 태아(胎兒) 살해 사건들이 빈번해질 것이다. 태아는 모성(母性)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생명체이다. 그런데도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빌미로, 수많은 생명을 죽이자는 법안을 만들어 놓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들도 모체(母體)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아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런 무서운 법을 만들어 생명을 살해하자는 것은,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라 ‘살해법’을 만들자는 것으로, 신(神)의 영역에 도전하는 죄악이 될 것이다. 국회에서는 이런 법안을 절대로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어미가 태중에 잉태된 자식을 함부로 죽이고, 의사는 자기 양심에 반하는 살인 행위를 하게 되고, 국가는 살인행위와 다름없는 허가를 내주고, 국민들이 낸 세금에서 그런 행위들을 지원하는 나라가 지옥이 아니고 무엇인가? 불가피하게 인공임신중절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정부든, 국회이든, 사회이든, 의사이든, 여성이든, 누구든지 최최소한(最最小限)에 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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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생명을 살리는 의사에게 살인 면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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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비무장지대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것이 한반도 긴장 완화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 우리나라는 북한 김일성과 중국의 모택동,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이 일으킨 6.25전쟁에서 남북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1953년 휴전선이 그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 휴전선에는 남북으로 각각 2km의 비무장지대가 있다. 이를 DMZ(demilitarized zone)라고 한다. 분단의 비극이며, 상징과 같은 곳이다. 이곳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마크 W 클라크 미 육군 대장이 한국 및 파견국 22개국을 대표하여 정전협정에 서명하여 체결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지역은 유엔 회원국 18개국에 의하여 지켜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어떤 군사적 행동이나 출입도 제한을 받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의 이재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비무장지대의 보전과 평화적 이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다(공동발의자-이재강, 김준형, 한정애, 조인철, 정일영, 채현일, 정진욱, 장종태, 오세희, 박선원, 이광희, 윤후덕, 김우영, 염태영 의원) 이 법률안에서 주장하는 목적을 보면 ‘비무장지대의 보전과 평화적 이용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여 생태적•문화적 가치를 보전하고, 평화적 이용을 지원함으로 비무장지대에 대한 대한민국의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한반도 평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유엔사는 정전협정 1조 10항에서 ‘군사분계선 남측 DMZ 내 민사 행정 및 구호는 유엔군사령관의 권한’임을 못 박고, 또 1조 9항에서 ‘민사 행정 및 구제 사업 집행과 관련된 인원과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 허가를 받은 인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도 DMZ에 출입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정치권에서 이런 법률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비무장지대에서의 ‘비군사적 목적’의 활동에 있어 우리 정부가 주권을 가지려는 것이겠지만, 유엔사가 이곳을 통제하며 제한하는 것은 주권의 문제가 아니라 관할권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헌법상으로는 북한 전역도 우리의 영토로 본다. 그러나 그 땅을 우리가 관할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비무장지대에 특수한 목적 외에는 출입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본다. 이는 또한 국제법을 어기는 것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비준한 “비엔나 협약” 제27조는 ‘당사자는 자신의 조약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 근거로서, 자신의 국내법 규정을 원용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국제법으로 체결된 것을 국내법을 바꾸어 그 주권을 주장하려는 것은 자칫하면 국제적으로 망신을 살 수도 있다. 더군다나 남북한의 엄청난 군사력이 집결된 비무장지대에서 한국 정부에 의한 출입이 잦아질 경우 북한은 어떤 주장을 할 것이며, 그들도 잦은 출입을 통하여 어떤 식으로 평화를 깰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DMZ 내 활동을 우리 주권의 침해로만 해석하여, 섣부른 입법은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차피 남북한이 통일되면 이곳은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중요한 장소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괜히 ‘주권 운운’하다가 오히려 목적하는 바처럼 평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안 되고, 국제 사회와의 갈등을 유발시키는 것이 된다면 긁어 부스럼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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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비무장지대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것이 한반도 긴장 완화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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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회논평회 신년 논평 전문] “자유를 수호하는 책임 있는 신앙,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봅시다”
- 국제교회논평회는 2026년 신년을 맞아, 사회적 신뢰의 위기와 공적 책임의 혼란 속에 놓인 한국교회가 다시금 교회의 본질적 사명과 공적 책임을 분명히 확인할 것을 요청합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의 외형적 성장보다, 사회 앞에서 어떤 책임을 지는 공동체인가를 더욱 엄중히 묻습니다. 침묵해서는 안 될 때 침묵하고, 말의 품격과 진리를 잃을 때 신앙은 왜곡되며 교회는 공적 신뢰를 상실한다는 설립 초기의 경고를 우리는 다시 무겁게 되새깁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질서는 인간의 존엄,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라는 기독교적 가치 위에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이 자유의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자유를 지켜야 할 도덕적 책임의 주체입니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며, 민주주의는 다수의 힘이 아니라 인간 존엄에 대한 존중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선언합니다. 특별히 국제교회논평회는 교회 안팎으로 스며드는 공산주의를 포함한 전체주의적 이념의 침투를 철저히 경계합니다. 공산주의는 인간을 계급과 구조로 환원하며, 초월적 하나님을 부정하고 신앙을 도구화해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교회는 자유를 박탈당했고, 신앙은 억압되었으며, 양심은 국가 권력에 종속되었습니다. 교회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인간의 자유와 신앙의 본질을 파괴하는 이념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오늘의 교회가 직면한 심각한 신학적 혼란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힙니다. 국제교회논평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훼손하는 종교다원주의, 십자가와 회개를 희석시키는 자유주의 신앙, 창조 질서와 성경적 윤리를 상대화하는 동성애 옹호 신학, 그리고 복음과 세속 사상과 이념을 혼합하는 혼합주의 신앙을 단호히 배격합니다. 종교다원주의는 “다른 길도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심을 증언합니다. 자유주의 신앙은 복음을 윤리로 축소하지만, 교회는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의 능력을 붙들어야 합니다. 혼합주의 신앙은 교회를 시대정신에 종속시키지만, 교회는 시대를 분별하고 말씀으로 시대를 비추어야 합니다. 교회의 공적 신뢰는 세상에 동조함으로 회복되지 않으며, 진리를 지키는 신실함을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국제교회논평회는 교회를 정치화하기 위한 기관이 아닙니다. 우리는 특정 정파를 대변하지 않으며, 권력의 편에 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를 훼손하고 신앙을 왜곡하는 전체주의적 사고와 공산주의적 세계관, 그리고 성경적 복음을 해체하는 왜곡된 신학과 극단적 이념에 대해 침묵하지 않을 책임을 분명히 인식합니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방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6년 새해를 맞아 국제교회논평회는 교회가 ▲자유 앞에서 책임 있게 서며, ▲권력 앞에서 양심을 지키고, ▲이념 앞에서 진리를 분별하며, ▲신학 앞에서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고, ▲사회 앞에서 신뢰를 회복하도록 공적 논평 사역을 흔들림 없이 이어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봅시다 2026년, 모든 혼란과 분열의 시대 한가운데서 국제교회논평회는 교회가 다시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것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교회의 중심은 이념도, 세력도, 시대정신도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떠날 때 자유는 왜곡되고, 진리는 상대화되며, 신앙은 이념의 도구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할 때, 진리는 분명해지고 양심은 깨어나며 교회는 세상 앞에서 다시 신뢰받는 공동체로 서게 됩니다. 우리는 선언합니다. 공산주의를 포함한 전체주의적 이념도, 종교다원주의와 자유주의 신앙도, 혼합주의와 성경적 질서를 해체하는 모든 흐름도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2026년, 국제교회논평회는 사람을 따르지 않고, 권력을 의지하지 않으며, 이념에 흔들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신앙, 십자가 앞에서 겸손한 교회, 진리 앞에서 담대한 교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는 이 고백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교회는 교회다운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있는가.” 2026년 1월 13일 설립자 박조준 목사 명예회장 림택권 목사 이사장 임우성 목사 논설고문 민경배 박사 · 정일웅 박사 · 정인찬 박사 논설위원 김열 박사 · 박순형 박사 · 김석주 박사 국제교회논평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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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회논평회 신년 논평 전문] “자유를 수호하는 책임 있는 신앙,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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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하나님이 함께하신 땅’(출 9:22-26)
-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에게 학대받을 때,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땅에서 내보내 광야에서 절기를 지키도록 말씀하셨다고 알려주었습니다.(출 5:1) 그 말을 들은 바로는,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겠다며 백성을 더욱 학대하고 노동을 무겁게 시켰습니다. 고집 센 바로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여 결국 열 가지 재앙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어 애굽 전국에 우박이 애굽 땅의 사람과 짐승과 밭의 모든 채소에 내리게 하라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우렛소리와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우박이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나라가 생긴 그 때로부터 애굽 온 땅에는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 우박이 애굽 온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밭에 있는 모든 것을 쳤으며 우박이 또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되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그 곳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일곱째 재앙으로 우박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늘로 그의 지팡이를 내미니, 하나님께서 천둥소리를 나게 하시고, 우박을 내리시니, 벼락이 땅에 떨어지면서 번갯불도 함께 번쩍거렸습니다. 우박이 쏟아져 내리면서, 이집트 온 땅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할 것 없이, 들에 있는 모든 풀을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땅이 하나님이 함께하신 고센 땅입니다. 고센 땅은 요셉 시대부터 출애굽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했던 곳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창 47:27)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고센 땅은, 바로가 야곱과 후손들에게 목축할 수 있도록 준 좋은 목초지였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아버지와 형들에게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주어 그들의 소유로 삼게 하였습니다.(창 47:11) 고센 땅은 출애굽 때 파리 재앙도 면제된 곳입니다. “그러나 그 날에 나는, 나의 백성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을 보내지 않아서,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겠다.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나 주가 이 땅에 있음을 네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출 8: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고센 땅은 파리 재앙과 우박 재앙이 면제된 하나님이 함께하신 은혜의 땅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생존을 위한 싸움에 동행하시며, 조정하시며, 인도하시고, 모든 것에 자유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잊고 사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생명과 온전함으로 인도해주시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교류지이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 땅은 이미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어질 것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창 12:7) 하나님은 그 약속의 땅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힘을 얻고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여 그 땅에서 오래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은 하늘에서 내린 빗물로 물을 공급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몸소 돌보시는 땅으로서 하나님의 눈길이 해마다 정초부터 섣달 그믐 날까지 늘 보살펴 주시는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11:8-12)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잘 지켜서 힘을 얻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은혜로 살며, 하나님의 눈길이 해마다 정초부터 섣달 그믐까지 몸소 돌보시는 땅에서 주님과 동행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며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기쁨을 찾을 때 주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할 때 우리의 앞길을 책임져 주실 줄 믿기 바랍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여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 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님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시 37: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뜨겁게 경험하며,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함께 가시며, 뒤따라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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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하나님이 함께하신 땅’(출 9: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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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검은 모래 속에서 별을 봤습니다”
- 제 평생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해외 집회를 갈 때마다 골프채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주일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남미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고, 주일 새벽에 도착해서 밤 예배까지 모두 인도한 뒤, 그다음 주도 또 국내 집회든 해외 집회든 다시 다닐 정도로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제 생각에 골프를 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날이 오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골프가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운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도를 많이 하고 경건하게 사는 한 목사님이 만나기만 하면 저에게 권유하셨습니다. “소 목사, 하늘 아래 가장 좋은 운동이 골프예요. 골프를 하세요. 목사처럼 그렇게 불도저처럼 일하다가 나중에 쓰러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십수 년 전에도 한 번 탈진을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여름에도 불도저처럼 살아오다가 또 탈진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이 계기가 되어서 유송근 장로님의 안내로 골프 연습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필드에 나가는 순간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사실인지 아닌지…. 마치 초원의 풀잎들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 골프가 뭔지 넌 정말 몰랐지, 이 푸른 필드에서 둥지를 틀어봐.” 그런 소리가 빗발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필드에 나가서 공이 맞지 않았다면 아마 골프를 포기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80타 중, 초반의 점수를 친 것입니다. 또 주변에서 골프 신동이니 골프 천재니 하는 말들을 하니까 ‘이다음엔 더 잘해야지’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결국 싱글을 치고 언더까지 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신년 축복 성회를 앞두고는 정말 말씀을 준비하고 기도하는 데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몇몇 장로님들이 “신년 축복 성회를 마치면 일본 최남단에 있는 미야자키에 가서 며칠 쉬면서 골프 전지훈련 좀 하시죠.”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가 그저 무심코 “예 알았습니다.” 대답한 것이 현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특히 장로 회장이신 송원중 장로님이 적극적으로 열심히 챙겨시고 섬겨주셔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골프채를 찾는 동안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을 때 얼마나 한가하면 골프채를 들고 다니는가 했더니,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 되었구나.’ 드디어 미야자키 피닉스 골프장에 와 보니 일본의 최남단은 아직도 풀들이 푸르고, 초원이 그린 컬러로 쫙 펼쳐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칠 때만큼 일본에서 또 잘 칠 것인가, 진짜 이 공이 안 맞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다행히 기대 이상으로 공이 아주 잘 맞아주었습니다. 저 역시 한일전을 한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불사조(피닉스)처럼 쳤을 때 이틀은 모두 언더(71타)를, 마지막 날은 투 언더(70타)를 기록했습니다. 저녁에는 온천을 하며 설교 준비를 하는데 어쩌면 그리 꿀잠도 잘 수 있는지요. 저는 너무 감사했습니다. 큰맘 먹고 미야자키까지 왔는데 공도 안 맞고 잠도 못 잤으면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들고 얼마나 후회가 막심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루는 골프를 끝내고 미야자키 해변을 잠시 걸었습니다. 그 날따라 왜 그리 이국적으로 보이는지요. 제가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을 비롯해서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경치와 풍경을 보았지만, 미야자키의 태양이 정열적으로 비치는 검푸른 파도와 검은 흑사장은 참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흑모래 속에서 별을 보았습니다. 저녁도 아닌데 무슨 별을 보았느냐고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별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묵상하는 목사로서 바다의 모래를 보면 하늘의 별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별들 속에서 일본인들의 영혼이 보이기 시작했고, 앞으로 비칠 일본의 별들을 생각했습니다. ‘왜 일본은 우리보다 더 빨리 복음을 받아들였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우상과 거짓 신의 그늘에 씌어서 일본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 선교, 또 일본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할 사명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야자키 해변의 흑모래를 밟으면서 일본의 검은 영혼들을 봤고 별빛처럼 빛날 맑은 영혼들로 가득할 일본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할 희망의 사명을 다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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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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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검은 모래 속에서 별을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