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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도 나에게 이야기 해 달라고 청하니 행복하다”
    독서의 열정으로 어린이를 위한 책 10권 더 집필 하고파 대한기독교서회 전 이사장 엄문용 장로(아현감리교회, 82세)는 노년을 맞은 지금도 할 일이 많아 분주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엄 장로는 하루 성경 2장을 읽고, 한 주 동안 2권의 책을 읽는 등 독서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생활한다. 최근에 접하고 있는 도서는 △도마와 아시아 교회(이용봉 저), △당신이 한 것 맞습니까?(구장회 저), 그리고 3월호 월간문학 등을 읽었다고 한다. “책은 나를 가르치고 있다.”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대로이다.아동문학가이기도 한 엄 장로는 지금까지 150여 권의 책을 집필했고, 앞으로도 어린이를 위한 책을 10권 정도 더 집필하고 싶다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90세까지만 연장시켜 주신다면 이러한 계획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엄 장로는 신문사, 잡지사, 등에서 지금도 원고 청탁이 오니 행복하다고 한다.엄 장로는 “아직도 나를 오라고 부르는 데가 있어서 바쁘다”면서 본인이 맡아왔던 단체와 모임 등에서 초청이 많다고 한다. 전국교회학교연합회 증경회장단, 보이스카우트 교수 및 원로모임, 감리교단 연회와 장로회, 장로문인회, 교육자선교회 원로모임과 교직생활 65년 동안 가르친 제자들의 모임 등 전국교회 특별행사의 초청에 응하기가 너무 바쁘기만 하다. 이는 엄 장로의 화려하고 다양한 경력 때문일 것이다.무엇보다 엄 장로는 “성경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고, 성경공부가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며, 한국교역자선교회에서 주관하는 성경강좌를 비롯하여 교회와 지방, 연회와 단체 등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곳에는 가급적 배우러 다닌다고 한다.엄 장로는 교육학 박사로서 그의 다양한 경력이 말해 주는 대로 각종 행사와 모임에 강사로 초청받아 그의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는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지금도 나에게 와서 이야기 하라고 하니 행복합니다.” 실버대학 강사, 교회에서는 제직훈련, 행복한 가정운동과 자녀교육 등 제자들이 시무하는 교회의 설교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초청을 받고 있다.미국에 본교를 두고 있는 미드웨스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고, 배재고등학교 등 교직에서 65년동안 후학을 양성해 온 풍부한 교육경험이 오늘날 노년을 맞은 엄 장로에게 행복한 여유를 가지게 한다. 뿐만 아니라, 교단과 교계에서 시행되는 각종 행사에 격려사, 추천사, 환영사, 조사, 추도사 등도 자주 부탁을 받는다.엄 장로는 찬송가 412장을 즐겨 부르고, 누가복음 13장 33절의 성구를 좋아한다면서 시간이 있는 대로 손자손녀들과 화목한 여유를 보내고 있다. 할아버지를 부르면서 뛰어 달려오는 귀여운 손자손녀는 자기들이 만든 선물을 가져와 애교를 부릴 때마다 가족의 행복함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손자손녀들과 자장면이라도 같이 먹는 시간이 나에게는 좋은 에너지원이 된다”고 말했다.틈틈이 같이 일했던 사람들(기독교방송 이사, 강남대학교 재단이사, 대한기독교서회 이사장, 우원기념사업회 이사, 영명고등학교 이사, 감리교 본부와 총회실행위원, 한국찬송가공회 회장 등)과의 즐거운 교우관계를 가지면서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다.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엄 장로가 바라는 교회상은 ‘화평’과 ‘사랑’이다. 교회는 겸손하고 관용하는 자세와 화평이 있어야 하고, 언제나 사랑으로 서로를 감싸주는 성도의 친교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엄 장로는 교계를 향한 우려와 충고를 하면서,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이하여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한사람 한사람이 작은 일부터 솔선해 나간다면 교회와 교계가 새롭게 될 것이라 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4-01
  • 성육신한 예수교회-44
    성경의 기록을 보면, 한 임금이 잔치를 배설하였는데, 갑작스레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벽에 다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런 해괴한 사건이 일어나더니 다음날 임금은 폐위되었고, 그 국가에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었다. 한 선지자가 이 짧은 문장을 해석하였는데, ‘너를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구나!’ 라는 말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집트 신화에도 나온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 땅에서 마치고, 사자(死者)들이 가는 곳의 문턱에 이르면, 심판관들이 있고, 그 곁에는 계측기가 있어서, 저마다 이 계측 과정을 피해 갈 수가 없다. 죽어서 온 자를 저승사자가 저울에 달아, 질량이 부족하게 되면, 곁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던 시커먼 짐승에게 즉각 잡아먹히고 만다. 우리 국가에서 권력의 자리에 오른 이들을 보면 저마다 힘든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온갖 저울질을 권력자의 임기 초기부터 들이대는데, 마치 저승사자에게 붙들려 심판대 앞에 선자처럼, 언론을 비롯해서 정적들의 저울질로 피로도가 쌓여간다. 만일 이것이 이 땅의 피할 수 없는 통과제례라 한다면 소홀히 여길 일이 아닐 것이리라. 대통령 임기 초기마다 이 나라에는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곤 하였는데, 대구 지하철 참사나, 숭례문 방화사건 같은 것들은 불만 세력이나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병적 증상으로만 넘겨 버릴 수는 없는 것이며,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건이나, 세월호 침몰 사건은 우리 국가 시스템의 아주 취약한 점이 그대로 노출된 사건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을 취급하는 방법들마저도, 언론을 비롯해서 사회학자들이나 기업가들도 건설적이거나 지혜로운 방안들을 전혀 내어놓질 못하였다. 단순히 한 풀이로만 끝이 나는 듯하다. 우리가 매해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서 치러야 하는 비용은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출혈을 야기해서 결국에는 국가적 쇠퇴의 길로 치닫게 될 수 있다. 그간 우리 국가의 해결책들은 이성적인 방안이라 하기보다는, 아주 질 낮은 4-5년짜리들의 임시방편으로 해결되었을 뿐이었고, 모두가 권력을 쟁탈하려는 세력과 조직의 배만 불려주었을 뿐이었다.세계역사는 고사하더라도, 우리 국사에서 권력자에게 들이 닥치는 법칙들이 하인리히 법칙 같은 필연적인 통과제례처럼 굳어지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들어서게 되는 정부도 이런 통과제례를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좀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만일 지난 정부가 의로운 참모들을 많이 세워서, 이와 같은 역사적인 리듬이나 성향들까지 미리 예측하고 준비를 했었더라면, 아마도 지금과 같은 참변은 겪질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성수대교가 붕괴 되었을 때에도 우리 국민들은 해외에서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어찌할 바 몰랐는데, 이번에는 또 어떠했을까? 정권을 맡은 책임자 몇몇을 척결한다고 모두 되는 것일까? 전혀 아닐 것이다. 우리 국가의 시스템이 취약하였음을 모두 들어낸 사건이기에,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도 국가적 손실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다. 예전에 기름부음을 받은 이들을 보면, 저들은 기름부음을 받자마자 아주 중요한 침묵의 시간들을 보냈다. 먼저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들은 7일간 성소를 떠나질 못했다. 만일 그 곳을 떠나게 되면 그는 죽음을 치러야 했다. 모세는 사십일을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도 기름부음을 받으시고는 40일을 광야에서 보내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모두 이겨내셨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능력이 충만하신 가운데에 갈릴리로 사역에 임하셨다. 아주 중요한 시간대이다. 짐승들 가운데는 삼칠을 지내고 젖을 뗀다. 병아리를 품을 때도 품어주는 시간이 차야 생명이 태동된다. 솔로몬을 보면 기름부음을 받자 기브온 산으로 가서 일천제를 드리며 성소에 머물렀다. 그러고 나서 그는 비로소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품을 수 있었다.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모든 국민들이 거짓말에 휘둘리고, 검증되지 못한 공약들에 모든 시스템과 가치관들이 치아가 솟구치듯이 흔들린다. 벌써부터 교수들마저도 줄 대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시장(市長)에게 줄을 선자들이 시립대학들과 공공지역들을 점령했다더니, 점령군 낙하산들이 하늘을 덮고 내려오듯이, 그런 류들이 대한민국을 덮어버리는 것일까? 혹시나 공직자들이나 군경마저도? 이렇게 모두가 흔들리다 보면 견고해 보이던 진리의 말뚝들은 뽑히게 되고, 지탱해 주던 사회적 신뢰도는 모두 쇠약해져서 바다뿐 아니라 땅마저도 대한민국을 토해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리라.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7-04-01
  • 76. 제96회 총회장 이기창(李基昌) 목사
    전북 익산 출생이기창(李基昌 1949.3.25~) 목사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3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기창 소년이 태어난 전북 역시 미국 남장로교 선교지부가 일찍부터 들어와 선교의 기반이 잘 다져지고 있었고, 익산 지역 역시 군산지부가 자리잡고 있어 기독교 선교영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익산은 불교 영향뿐만 아니라 불교에서 파생된 원불교 발상지가 되어 보이게 보이지 않게 불교의 영향이 강한 지역적인 특성이 있다. 기창 소년이 태어난 시기 역시 일제 말엽이었고,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라 소위 정부수립 전후 혼란했던 해방 공간(약3년)에 세상이 어려웠던 시기였다. 당시만 해도 의식주 문제가 넉넉하지 못하였으나 부모님의 사랑과 여러 형제들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여러 동생들과 함께 어울려 큰 탈 없이 자랐고 제법 장남의 자질까지 보여 부모님들에겐 큰 위안이 되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도 여러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이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익산에 있는 혜성고등학교에 입학, 새로운 배움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이어 조국의 미래를 위해 농업기반을 잘 닦아야 경제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당시 국립대학으로 출발한 전북대학교 농업경제분야 학과로 진학하였다. 그러던 중 주님께서 부르시는 소명을 받고 졸업하자 마자 총회신학교 본과(현 총신대학대학원)와 신학석사(Th.M) 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하였다. 총신은 일찍부터 신학은 인문학의 바탕 위에 고도의 학문성을 쌓아야 한다는 교육이념이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신학준비과정으로 교양과 어학 및 철학 위주의 신학예비과정으로 2년 과정의 예과(豫科) 과정을 두었다. 이기창 목사는 전주북문교회(全州北門敎會) 8대 담임목사로 부름받고 부임한 해가 1982년 9월 3일이었다. 당시 북문교회 당회에서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조건이 세가지였다. 첫째 일반대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를 졸업한 분, 둘째 40대 미만의 젊은 목사로 신앙인격과 비젼을 겸비 하신 분, 셋째 말씀선포에 은혜가 깊고 교회 행정에 능력이 있으신 분이었는데, 이 목사가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인격과 신앙 그리고 영력(靈力)을 갖춘 분이었던 것이다. 여호와이레란 말이 있듯이 이기창 목사야 말로 전주북문교회가 필요로 하는 목자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 농업경제분야 전공한 목회자전주북문교회 제8대 담임목사예배·기도·성경공부 통해 신앙생활의 역동성·선교의 활용화 이뤄지역복음화와 지역발전에 기여이기창 목사는 전주북문교회와는 이미 인연이 있었다. 1978년 7월 16일 북문교회 강도사로 부임해, 동년 10월 1일엔 부목사로 취임 한 바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온화한 성품과 진실성이 이미 성도들에게 검증된 바 있었던 것이다. 그는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교회 부흥발전의 목표를 세 가지로 설정해 온 교인들로 하여금 집중하게 하였다. 첫째 예배운동이었다. 예배의 경건성을 강조하며 신령과 진리의 예배본질을 일깨우는데 힘을 다하였다. 둘째 기도운동이었다. 기도를 통해 상처를 치유받고 기도를 통해 교회부흥의 기초와 원동력으로 삼아갔다. 침체되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성도들을 일깨우기 위해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산상기도를 생활화 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셋째 성경을 가르치고 신앙교육에 힘썼다. 침체된 교회와 교인의 분위기 쇄신과 교회의 동력화를 위해 전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을 토대로 한 신앙의 생활화에 힘썼다. 구체적으로 온교인들에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 권찰 성경공부반 개설, 신학교류에 준하는 신앙교육 신앙정도에 따라 여러개 반을 편성 운영하였다. 교역자들의 교인 가정심방 강화에 이어 교회의 목표로는 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교회(요한 4:24), ②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행 1:8), ③ 그리스도의 분부하는 교훈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교회(마 28:10~20)로 정하였다.다음으로 성도의 생활지표로 ① 성경중심의 삶(행 17:11~12), ② 기도에 힘쓰는 삶(살전 5:17), ③ 전도에 전력하는 삶(막 1:38), ④ 주일성수의 온전한 삶(계 1:10, 시편 58:13~14), ⑤ 십일조와 헌금에 성실한 삶(말 3:10)을 제시하여 집중해 나갔다.이기창 목사의 부임 이후 또 다른 집중사역은 선교활동 전개와 예배당 증축 사업과 여전도회 확장사업과 찬양대의 획기적인 부흥과 발전이었다. 다음으로는 교세의 확장에 힘입어 교육공간 확보는 새교육관 건축의 일이었다. 이로 인하여 유·초등과 중·고등부 및 청년 모임의 원활을 기했다. 이에 교역자(부목사, 강도사 및 전도사) 확충을 가져오게 되었고 교회 신앙생활의 역동성을 추구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선교의 활성화를 위해 기구를 개편했다. 1990년 6월 24일 선교위원회를 조직, 해외선교와 국내선교를 동시에 균형있게 시행하였다. 처음으로 선교목사(소방은 목사)를 청빙, 국·내외 선교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이른다. 1991년도에 해외선교사 지원(싱가폴 조기술 목사), 소방은 조영아를 터키에 파송하였고, 국내선교지 지원이 25개 교회였다.해마다 해외선교사 지원과 국내선교 지원교회는 점점 증가했고, 1995년까지 해외 선교사역의 현황을 살펴보면 위에 언급한 터키 외에 네팔에 허인석 선교사, 독일에 이남백 선교사, 페루에 이천현 선교사, 호주에 서정권 선교사, 케냐에 김수찬 정영은 문승호 선교사, 태국에 이춘우 선교사, 남아공에 박진호 이한진 김창길 박성자 선교사, 영국에 민경수 선교사, 필리핀에 소광은 이석태 선교사, 중국에 김진완 허철희 박재용 선교사, 코소보에 한태진 선교사, 불가리아에 김아진 선교사, 인도에 이병구 임수정 선교사, 미안마에 김병갑 선교사를 파송, 해외선교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울러 여전도회 역시 눈에 띄게 확장되었는데 1991년 제3여전도회로 확대되고, 2000년도에 이르러는 10개의 여전도회로 늘어났고, 이들이 교회 봉사와 선교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였다(전주북문교회50년사, 하재준 편, 전주북문교회 2005, p264 참조).그가 남긴 설교 가운데 누가복음 19장 41~44절의 본문으로 <예수님의 눈물>이란 설교를 보면 그의 목회철학과 목회관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우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눈물을 흘렸을까요? 첫째 예루살렘이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다. 둘째 예루살렘성이 회개치 않음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셋째 예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량하게 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습니다.”이기창 목사님이 내 조국이 내가 목회하고 있는 전주성을 바라보고 안타까워하며 회개하기를 기다리며 눈물로 사역앴다고 여겨진다(역대 총회장의 증언, 홍정이 편, 예장총회출판부 2015 서울 p.367-369참조). 이기창 목사는 2011년 9월 19일~23일까지 그의 모교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개최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96회 총회에서 명예로운 예장 총회장이라는 교단의 수장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자기가 속한 전주노회 노회장을 비롯 전북신학교 교수 및 지역사회를 위하여서도 여러 방면에 기관장들과 협력, 지역복음화와 지역발전을 위해 대소사를 챙기는 다정다감한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다.그는 교단 대표로 기독교텔레비전(CTS) 대표이사를, 같은 재단의 CTS전북방송 이사장, 총신대학교 재단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그가 재임했던 제96회 총회 결의안 중 중요사항을 살펴보면, ① 헌법개정위원 15인에게 맡겨 헌법을 개정하기로 하다. ②총회 총무 임기를 3년으로 하고 1회 연임 가능한 것으로 개정하다. ③ 강단용 성경은 개역판과 개정개역 4판을 병행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다. ④ 헌법정치 제4조 4항에 <20년 이상 시무> 는 <부임 20년>으로 하다. ⑤ 만 70세 유권해석 재요청 건은 제93회 총회 결의대로 만 71세 생일 전날까지로 하기로 하다. 이기창 목사에게 2004년 2월 28일 미국의 퍼시픽대학교(Pacitic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그의 목회사역과 교회행정력을 인정 명예신학박사(D.D) 학위를 수여했다. 슬하에 2남1여의 자녀가 있으며, 장남 강천 목사는 아버지의 성직을 이어 미국에서 교민목회를 이어가고 있다.
    • 지난 칼럼
    • 합동총회장 열전
    2017-04-01
  • 역사(歷史)의 삶
    그 시대마다 삶의 상황은 정치적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든지 그 사회나 국민은 병든 사회였으며 오늘의 삶이 병든 사회의 삶 임을 알게 한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역사의 사실들은 역사가가 그것을 창조할 때 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같다. 역사는 원인에 대한 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역사 해석은 언제나 가치 판단과 일정하게 연관되며 여기에 인간관계는 해석과 밀접하게 연관됨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삶은 역사에 매여 삶을 살아간다. 문명사회에서의 교육을 하는 방편적 교육을 하는 것도 역사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역사적 상황에서 역사적인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여기에 의미부여가 요청된다. 삶의 의미 부여를 하려 할 때 여기에 하나님에 대한 존재 질문을 하 게 한다. 창조자 하나님은 생명이요 생명으로 충만해짐을 알게 한다. 여기에 삶 은 충만해진다. 즉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는 여기에 활기를 느끼며 삶의 주변에는 모든 것이 살아있음 으로 생존함을 느끼게 한 다. 예컨대 땅이 살아 있고 물과 공기도 살아있으며 물과 빛도 살아 있음을 사실(fact)로 깨닫게 된다. 실제로 생각하는 것은 죽은 것, 죽은 사람이 무엇을 느끼며 살 수가 있느냐? 하는 문제점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죽은 사람이 남에게 할 일이 있겠는 가?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감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러한 삶은 살아 있어야 한다 는 전제를 알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기에 깨달음을 깨우치지 못한다. 우리는 사실로 이를 깨닫지 못하고 걸어 다니는 송장으로 행사하려 한다. 여기서 한 삶이 역사를 지고 다니려면 여기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인 “살고자 하면 죽고 죽으면 사는 삶”의 의미를 깨우치게 한다. 이는 순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게 한다. 그렇다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익히 아는 것으로 역사의 원 순교자인 예수님 의 삶을 알게 한 다. 예수님의 죽음은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열매를 맺고 한 생명을 움트게 하는 역사적 상황에서의 이루어진 자신의 사명과 그 시대의 삶에서 실천의 사실 로서 자신을 보내신 분에 대한 자기의 고백과 세상을 향한 자기 삶의 증언으로 십자가의 삶을 실천하고 고백하는 자기 증언의 피력 을 믿음으로 감당하게 한다. 이러한 순교의 원형에 대한 상황적, 해석학적, 믿음을 토대로 삶의 열매로 죽음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중심에 있게 됨을 믿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엇이 그 시대의 생명의 삶 인가?”를 알게 한다. 그러므로 역사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자 리하고 삶의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 그리하여 현세의 역사 라는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기준하여 기원전은 예수 탄생전 (BC=Before Christ: 예수 이전)으로 하고 기원후는 예수 탄생 후 (AD=Anno Domini: 하 나 님의 해)로 말함을 알게 한다. 이 역사의 예수 삶을 역사로 인정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이야기라 하여 영어로 역사를 그분의 역사 가 이야기되라는 의미로 역사를 “HISTORY”라 함을 알게 한다. 삶은 감정의 실마리로 살며 여기에 정서는 인간의 본능을 기초로 하여 감정의 실타래를 푼다. 예컨대 내가 만나는 사람, 내 앞에 주어진 일, 내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내가 어떻게 인식해 왔는가? 에 따라 나의 반응 즉 내 느낌과 생각이 다르고 내 느낌과 생각 여하에 따라 말과 행동으로의 대응이 달라짐을 느끼게 된다. 같은 상황, 같은 사 실 에 대해서도 사람마다의 인식과 대응이 다르고 그 다름으로 인해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진다. 예컨대 내게 주어진 상황 내가 당면하는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인 식 하고 대응해 왔는가가 곧 내 삶의 현실로 이어졌음을 알아야만 비로소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는 내 잠재의식 속에 이미 오래 전부터 갖추어진 믿음에서 비롯되며 그 믿음이 변하지 않는 한 내삶은 변화지 않는 법이다. 이 잠재의식 속 내 믿음의 뿌리는 나와 내 조상 뿐만 아니라 먼저 살아 온 삶의 경험이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 온 삶의 경험들이 단 한순간도 놓침이 없이 그 경험들이 당시의 느낌과 감정이 그대로 의식, 무의식에 저장 기록되고 의 식 과 무의식에 저장 기록된 경험 정보들이 쌓여 매 순간 내 가 당면하는 상황 내지는 사 실 들을 인식 대응하는 마음의 기준 잣대가 되 어 사람들은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7-04-01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④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4. 이스라엘과 애굽의 대결구도서언인간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집단적으로 택함을 받은 민족은 이스라엘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은, 흑암의 세상과 하나님의 사역이 충돌할 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이를 대처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지, 그 구도와 성격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요긴한 일이다.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민족적 역사는 애굽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역사에서는 애굽의 총리로 있던 요셉 덕분에 이스라엘 민족이 비교적 우대를 받으면서 좋은 여건에서 생활하였으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출 1:8)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은 고난의 길을 가게 된다. 이러한 두 시대를 놓고 볼 때에 초기 시대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을 요셉이고, 후기 시대에 등장하는 불세출의 인물은 모세이다. 이 두 인물의 자질과 당시의 상황을 연구해 보면 소위 ‘개혁’이라는 낱말의 또 다른 측면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요셉의 성품과 개혁 성향요셉에 대한 형들의 시기와 질투의 결과로 그는 어린 나이에 애굽으로 팔려갔다. 애굽으로 팔려가는 노정(路程)에서 요셉은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하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두렵고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나,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은 요셉은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그 막막한 상황 속에서 요셉은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새로운 비전을 꿈꾸며 모종의 확실한 결심을 하였을 것이다. 그 결심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하나님의 앞에 순결하고 정직한 심정으로, 매사를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했을 것이다.그는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노예로 애굽생활을 시작하였으나 그의 유능함과 성실하고 정직한 인품은 보디발 장군에게 깊은 감동과 영향을 주었고 마침내 그는 그 가정의 총무가 되었다. 후에 보디발 아내의 어처구니없는 고발로 요셉은 감옥생활을 하였으나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의 신앙과 인품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그는 간수장이 되었고, 감옥에 들어온 왕의 신하와 인연이 되어 마침내 왕의 꿈을 해석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이 자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 요셉과 애굽이 맞선 구도였다. 요셉이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한 결과, 애굽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은 기정사실화 되었고 그 해법으로 제시된 요셉의 아이디어는 애굽의 향후 14년의 운명을 뒤집어 놓았다. 외관상으로는 비교적 조용히 진행된 일처럼 보이는 사건이었지만, 이것은 이방 나라 애굽이 하나님의 사람 요셉의 통치를 받게 되는 대역전의 순간이었다. 엄청난 대변혁이 순식간에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마음 속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교훈은,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이 순결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고 능력 있는 인물과 결합이 되면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대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애굽을 뒤엎어 놓은 개혁자 모세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문무(文武)교육을 받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영성훈련을 받은 모세는 마침내 준비된 지도자로 바로 왕 앞에 서게 되었다. 애굽 땅에서 노예로 전락하여 견디기 힘든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달라는 모세의 요청은 바로에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가 이러한 요구에 순순히 응할 리가 없었다. 마침내 애굽은 하나님의 막대기로 심판을 당하기 시작하였다. 온 백성이 참을 수 없는 재앙이 전국의 땅을 덮쳤다. 한 두 번의 재앙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10회에 걸친 끔찍한 재앙이 쉴 새 없이 퍼부어졌다. 그 재앙들은 단순히 애굽의 바로 왕과 그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재앙이 아니라 애굽에 만연해 있던 각종 잡신들을 소탕하는 재앙이었다. 내용은 이런 것이다.① 피 재앙(나일강 신 닐루스신과 하피신을 공격함) ② 개구리 재앙(재생산의 여신 헥트신) ③ 이 재앙(땅의 신인 겝신, 또는 셉신) ④ 파리 재앙(신성한 투구풍뎅이인 케페라신) ⑤ 생축 악질(신성한 숫소 아피스신과 신성한 암소 하토트신) ⑥ 사람과 짐승에게 내린 독종(악한 눈을 가진 튀폰신) ⑦ 우박 재앙(대기-大氣-의 신 슈신) ⑧ 메뚜기 재앙(메뚜기로부터 곡식을 지켜주는 세라피스신) ⑨ 흑암 재앙(태양신인 라신) ⑩ 사람과 생축의 장자 죽임(생명의 신인 프타흐신)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애굽의 잡다한 신(神)들을 초토화시킨 다음에 참신이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고 극적으로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로 나오게 되었다.광야에서 시작된 개혁사업오랜 애굽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 숭배에 익숙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대대적인 개혁이 요구되었다. 우선 시급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회복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이 말씀에 의하면 일단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백성들에게 예배의 회복을 요청하셨다. 안식일을 준수하며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었다는 말이다.얼마 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사람들과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살도록 하기 위하여, 그러한 삶의 기준이 되는 십계명을 내려주셨다. 이 모든 원리와 원칙이 고스란히 설명되어 있는 장치가 바로 성소(聖所) 제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바로 그 기준에 의하여 변화되고 개혁되어야 하였다.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개혁’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르쳐주신 구원의 원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다음, 구원받은 자들의 삶의 원칙으로 제시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고치는 것이다. 개혁이란 중단 없이 계속되어야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목도하였고, 홍해의 기적, 만나의 기적, 바위 물의 기적 등을 경험하면서 매일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서 신의 손길을 경험하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집단적으로는 실패하였다. 심지어는 시내산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을 온 백성들이 목도한 후에,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산에 올랐던 40일의 기간도 참지 못하여 송아지 우상 신을 만들어 경배하는 참사를 일으켰다. 이것이 유약하고 죄많은 인간의 모습이다. 그만큼 진정한 개혁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비유를 하자면 이런 것이다. 펄펄 끓던 죽에서 열을 제하면 즉시 식어져서 딱딱한 꺼풀(막)이 생기고 죽은 속에서부터 상하기 시작한다. 죽을 계속 끓게 하는 방법은 열을 지속적으로 가하는 것이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원칙으로 세우고,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여 지속적으로 그 말씀의 원칙을 따라 살기 위해 개혁을 실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잠시 후, 죽의 꺼풀처럼 신앙의 형식만 남고 내부적으로는 부패와 세속화의 바람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진정한 개혁이 일어나려면, 요셉이나 모세처럼 인품이 탁월하고 영성이 충만한 지도자가 출현하여 개혁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모든 백성들이 지속적인 개혁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혁은 주님 오실 때까지 끝날 수 없는 숙제이기도 하다.
    • 지난 칼럼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3-31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③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3. 개혁자 인품의 모델-아브라함서언성경이 말하는 ‘개혁’의 진의는 무엇인가? 개혁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말틴 루터는 무엇을 개혁한 것인가? 성경에서 벗어난, 성경의 이론과는 틀린,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른 형태로 꼴 지어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경적 오류에 대하여, 특별히 ‘면죄부 판매’에 대하여 저항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종교나 신앙과 관련된 개혁이란, 성경의 원칙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성경이란 인간의 건강과 행복과 영생을 위하여 기록된 책이며, 그 책의 모든 내용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그 책은 일반 서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성경의 내용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문제인 죄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다가, 마침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영원히 함께 살게 되는지 그 원리와 절차를 설명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개혁이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벗어나서 굴곡지고 왜곡된 상태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원래의 모습대로 변형 혹은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개혁자가 되려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기록해 놓은 성경의 원칙에 충실하여 하나님과 건전하고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인권’을 외치려면 자신이 먼저 남의 인권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면 자신이 먼저 깨끗해야 하듯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종교개혁, 혹은 신앙개혁을 하려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홍수 심판 이후에 태어난 노아의 후손들은 한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경건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세대가 지나면서 조상들이 전해주는 홍수 이야기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고 마치 먼 나라의 전설처럼 들려지는 시대가 되었을 때에 사람들은 다시 죄악적 성향에 노예가 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을 일삼게 되었는데, 바벨탑 사건이 그 시대의 상황을 대변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람들이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창 11:4)기 위하여 벽돌을 굽고 거대한 성채를 쌓으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가소롭고 어이없는 일을 자행했던 것이다.하나님께서는 인부들의 언어를 혼잡시키는 방법으로 공사를 중단시키시고 사람들을 홑어 놓으셨다. 그리고 드디어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된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려 보내시기 위하여 한 씨(혈통)를 선택하셨는데, 그 선택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를 선택하여 불러 내셨는가?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창 26:5).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온갖 죄악에 빠져 방종하는 인생을 살고 있을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라서 경건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손님 대접하기를 즐거워하였고 그의 종들에게 후대하는 너그러운 사람이었다.아브라함의 인품과 신앙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비교적 길게 기록되어 있어서 그의 인품과 신앙의 면면을 여다 볼 수 있는 꽤 정확한 자료들이 풍부한 편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목적지도 제대로 모르고 출발할 때에 그의 조카 롯도 함께 따라 나섰다. 후일에 그들의 재산이 증가하여 짐승들이 큰 떼를 이루고 종들의 수가 많아지고 살림살이가 커져서 함께 기거하기가 어렵게 되어 불가피하게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조카 롯에게 건넨 관대한 제안은 오늘날까지,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생들에게 여전히 귀감이 되는 말씀이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세상으로 내려오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하늘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게 되었고, 소돔 고모라의 멸망 계획을 듣게 되었다. 그 때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소돔의 거민들을 살려내기 위하여 하나님과 나눈 대화는 유명한 일화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창 18:32) 라고 말하면서, 소돔에 의인이 열 명 정도라도 있다면 그들을 구원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탄원하는 모습은 마치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표상하는 듯 하다.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을 때에 헷 사람들에게 매장지를 구입하려고 하였다. 그 때에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는 곳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들어야 할 평가이기도 하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창 23:6)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교회 성도들이 사회를 개혁할 명분을 상실하고 신뢰를 잃어버린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서 살지 않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당대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헷 족속들은 그들이 존경하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무상으로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몸을 굽히고 그들에게 말”(창 23:7)하면서 반드시 값을 지불하고 매장지를 사겠다고 간청하였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태도는 ‘선물’을 넘어 ‘뇌물’까지 받으려고 애쓰는 요즘 세상 사람들에게 회초리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매장지를 구입하여 뒷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개혁자의 조직력과 정직성아브라함 당시의 주변 나라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그 대적들과 전쟁을 하게 되었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던 소돔의 왕과 고모라 왕도 그 전쟁에 가담하여 싸우다가 패망하였다. 결국 롯의 가족과 재산까지 모두 적군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평소에 자기 집에서 훈련시키고 예비해 두었던 군사 318명을 거느리고 적군을 급습하여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창 14:16)다. 참으로 놀라운 성과였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았던 아브라함의 준비성과 조직력을 보게 된다. 전쟁에 필요한 것은 군사력과 전략이다. 이렇게 원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바로 개혁의 근본이다.더 나아가,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정직성과 고결함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아브라함 덕분에 목숨과 재산을 다시 찾게 된 소돔 왕이 너무나도 감사한 나머지 아브라함에 이렇게 제안한다.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창 14:21). 이 때에 아브라함이 취한 태도는 후대의 개혁자들이 영원히 간직해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소돔 왕에게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창 14:22)한다고 전제하고, 실오라기 하나 거저 취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재물과 명예에 탐닉하며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인생들에게 얼마나 찔림을 주는 말씀인가? 이것이 바로 개혁자의 인품이다.
    • 지난 칼럼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3-24
  • 목회는 쉬운 것이다·25
    에베소서 1장 18절에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했습니다.마태복음 19장 26절에서는 “하나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습니다”우리 마음에 미움, 탐욕, 불의, 육욕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현실이 차단되었다는 증거입니다.또한, 평화, 목적, 의미, 가치, 행복에 목마른 사람들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현실이 방해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빌립보서 2장 15절에 보면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우리는 사랑, 선함, 아름다움, 자유, 기쁨, 용서, 연민 자체가 되고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마태복음 6장 10절 말씀대로 “그 나라가 임하게 하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사람에게 있는 두 가지 색깔사람에게는 동시적 두 차원이 있습니다. 육체적 차원과 영적 차원입니다. 육체적 차원이란 일시적이고 영적 차원은 변하지 않고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그러기에 진리입니다.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진실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사실을 잘 알게 하셨습니다. 사람 자체가 선과 악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내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진리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만일 나 자신이 진리에 속했다는 증거는 자유 함일 때 느낄 수 있으며 진리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자유로움이란 사실을 느끼고 깨닫게 됩니다.진리 자체가 하나님의 영임으로 우리 자신을 자유케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종교라는 틀 속에서 진리를 판단하는 방법이 곧 남들에게 의지하고 가르치기 위한 자료들이 학문적 이론이나 학자들의 견해를 중요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곧 종교요, 신학의 논리입니다. 전문 목회자라는 것은 사람들이 구분해 놓은 학문적 방법이 잘 분간한 논리가 맞는다고 생각합니다.그렇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을 수록 진리를 분간하는 영적 능력이 더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한 예로 “신학이 발전할 수록 교회는 문을 닫는다”라는 말이 증거하는 것은 기독교는 영적 관계에서 성숙함을 체험하지 못한 데서 오는 모순일 수 있습니다.사실은 신학의 체계가 말할 때는 자신의 영적 감각에서라면 아주 쉽고 간단명료하게 유무식간에 인간의 본성적 이야기로 할 수 있다는 것이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에 접근하지 못하고 그 학문 자체에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영적 갈등을 느끼지도 못하고 끝없는 논리만 전개하는 무서운 질병에 헤맨다는 것입니다.이들은 성경을 지어낸 이야기로만 일삼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떤 의미로 말한 것인가를 분석하다 보니 그보다 하나님의 순수하심을 두터운 논리로 감추는 일을 반복합니다. 이런 행위를 성경공부라고 착각합니다.학문의 깊이란 학자들의 견해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중 요한 것은 역사 이래 어떤 공식교육도 받지 않는 사람, 심지어 초등학교 문턱도 넘지 못한 사람이라도 영적 분별력을 지닌 사람이 많은 이유는 바로 단순함에 있다는 것이요 그보다 하나님은 학자나 지식인 중심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예로 은혜를 끼치고 목양에 성공했다는 목회자 중에 한경직 목사님은 배운 학문을 상대에 따라 아주 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이 사는 현장에 맞게 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성경에 서신 가운데에서도 바울 서신을 이야기한다면 그 배운 선생의 논리를 나열하지 않고 살고 있는 현장중심에서 말했다는 것입니다.지식과 앎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전문 목회자의 특징은 존경한다는 선생이나 강사나 저자에게 의존할 때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성경 지식이 많은 크리스천의 숫자와 하나님 나라를 표현하며 사는 크리스천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고 합니다.다른 사람들의 의견에만 의지하는 머리 발달에 사람들은 시달리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일반적 지식이나 철학적 방법으로 기록하고 말한다는 것은 결국 생명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 지난 칼럼
    • 허광재 칼럼
    2017-03-23
  • 기독교인의 행복론 -40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9, 피터 위어 감독)를 보면 1859년 창립된 명문 웰튼 고등학교에 부임한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 분)이 학생들에게 문학 교재의 ‘시창작법’ 부분을 찢어 버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지요. 그리고는 운율을 느껴 보라며 학생들에게 교정에서 행보를 하게 합니다. 평소에 <시 창작법> 등을 강의해 온 필자는 이 부분이 실감났습니다. 실제로 시를 써 보니, 시 창작법이란 게 별 게 아니고 고교 시절에 배운 명시나 수사 기교만으로도 얼마든지 시가 창작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운율도 우리가 명시를 감상하며 익힌 운율만으로도 얼마든지 창작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필자가 제안하는 것이 탈경계의 시창작법입니다. 요즘 수필에서의 산문율이 시에 자주 나타나고 서사적 특성인 이야기가 시 속에 융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시창작의 한 추세인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아는 기자에게 콩트 한 편을 카톡으로 보냈더니, 그가 그걸 시라며 시낭독집에 넣은 일이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시낭송 시간에 그걸 낭송하였더니, 청중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내가 자주 참여하는 공연시 낭송도 그렇습니다. 일단 멋진 표정 연기와 함께 노래를 하고 감정을 실어서 시낭송을 하였더니, 특유의 멋진 퍼포먼스가 되더군요. 이를 보면 시가 읽혀질 것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직접 독자를 찾아가서 보여주는 접근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는 시인과 독자의 거리를 좁혀주는 한 방식이 될 것 같습니다. 나의 스승인 서정주 시인에게서 들은 이야깁니다. 1930년대에는 시인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문우들끼리 자주 어울렸답니다. 한 번은 서정주(1915년생)가 李箱(1910년생)&#8228;박목월(1916년생) 등과 어울려 종로 거리를 지나 서대문에 있는 일식 주점에 들어갔는데, 李箱이 문에 들어서더니 스웨터를 입은 일본 여주인의 제일 윗 단추를 꾹 누르더라는 것입니다. 다른 시인들은 다다미방 위에 올라섰는데도, 그는 “왜 그러세요?”라는 여인의 외마디에도 불구하고 땀까지 흘리며 꾹 누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한참만에 서정주가 그를 데리고 다다미 위로 올라서면서 ‘아마도 李箱이 모더니스트이기 때문에 여인의 단추를 현대 문명으로 인한 위기를 알리는 비상벨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이를 보면 李箱은 좀 별났던 것 같습니다. 그의 「날개」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기생 금홍의 기에 눌려 지낸 것도 그렇고, 수줍어서 말도 못 붙였던 변동림을 좋아해 결혼했으면서도 한창 신혼 살림 중에 일본으로 유학갔던 것도 조금은 별난 것 같습니다. 소설「날개」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젊은 부부인데도 각자의 방을 쓰고, 아내가 매춘 행위를 해도 화를 내지 않고 쩔쩔 맵니다. 돈의 사용처를 몰라 아내가 준 용돈을 아내 손에 쥐어 주고 겨우 아내 방에서 잠을 잘 수가 있지요. 결국 주인공은 부부 관계가 절름발이 부부였음을 알고 자살을 택하지요. 요즘 보아도 별난 부부인데, 당대에는 얼마나 특이한 부부였겠습니까? 이처럼 별난 부부의 삶과 같이, 李箱 또한 별난 행동을 하고 다녔습니다. 기생 금홍에게 기가 눌려 지냈을 뿐만 아니라, 한때는 모자부터 구두까지 온통 흰 색을 입은 스타일리스트였다가, 폐결핵 진단 이후에는 후즐근하게 지내다가 동경에서 일본 경찰의 불심 검문에 걸리는 바람에 불령선인으로 몰려 구속되어 있다가 폐결핵이 도져 죽게 되지요. 아마도 그는 창작에 너무 심취하다 보니까 허구와 일상의 구분을 쉽게 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李箱을 알게 되면서 내가 생각하게 된 창작 방식은 작가에게는 다 나름대로의 창작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李箱은 기생 금홍과 동거를 하면서 그 체험을 허구화시켜 독자에게 감동을 줄 나름대로의 문체를 터득한 것이지요. 건축과 미술을 익혔던 그가 작심하고 창작법을 익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므로, 그때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글쓰기 방식을 연마하여 십여 편의 소설과 수백 편의 시를 발표하였던 것이지요. 이런 李箱을 통해서 나는 시창작에 그리 많은 창작 기교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글이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따져 보는 것이지요. 요즘 나는 아마추어 문학 동호인들에게 시창작법을 강의하곤 합니다. 그리고 강의할 때 기존의 교수법을 고수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강의가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런 자신감이 있으면 당연히 강의가 멋있고 알찰 수가 있지요. 그들의 가슴 한 켠에 멋진 인생 한 편이 그려질 수 있으면, 강의는 성공입니다. 언젠가 만성신장질환을 앓고 나서 나에게도 죽음이 빗나갈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얼마나 멋지고 즐겁게 사는가 하는 것이 사후에도 남을 내 흔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내가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3-23
  • ◆ 어떻게 지내십니까?
    각종 단체 상임고문 맡아 왕성한 활동등산과 걷기운동으로 노익장 과시하며 건강한 생활 유지 제재형 장로(83세, 예장통합 충신교회)는 제15대 사단법인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맡아 창립30주년 행사 등을 치렀다. 화려한 경력과 왕성한 활동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제 장로는 지난 수년 간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던지고, 더욱 건강한 모습이다.“내가 이렇게 더 건강하게 된 비결을 많은 지인들이 물어 오는데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며, “등산과 걷기가 건강을 유지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동창회 모임과 충신교회 교우들과 함께 등산을 하는데 건강이 확연히 좋아졌다며 ‘땀을 흘려야’ 건강이 유지된다고 말한다.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고사성어를 좋아하는 제 장로는 골프를 치지 않지만 산과 물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검은 머리가 새로 나오고, 아픈 허리가 수술 없이 좋아졌고, 눈이 밝아졌다고 자랑한다. 제 장로는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기대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니 기적이 일어났다.”고 그의 좌우명을 말해 준다.요즘에는 각종단체(건국기념사업회,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사단법인 장영실기념사업회, 대한민국무궁화회중앙회, 국민운동본부, 4월혁명선양회, 한국일보사우회, 고려대장로회, 경남도민회 원로회장 등)에서 현역대표 또는 상임고문이나 고문을 맡아 대외협력이나 홍보에 자문을 하면서 분주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건국대통령기념사업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업추진에 심혈을 기우리고 있다.제 장로는 창립 된지 37년 되는 ‘한국성서연구회’ 창립멤버로서 매주토요일 조찬성경공부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본 교회(충신교회)에서는 지금도 평신도 성경공부에 참석하고 있으며, 원로남선교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장로신문과 평신도신문에도 논설위원으로 글을 게재하면서 노년에도 교단과 교회에서 매우 열정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제 장로는 고려대학교 정치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일보에 기자로 입사하여 평생 언론에 헌신한 언론인이다. 한국일보 기자시절에는 ‘율사기자’로서 명성을 얻을 정도로 국회법과 선거법을 다루는데 현명한 기자역할을 하였다.예장통합 교단의 평신도대학원, 장로교육원, 리더십아카데미 등을 졸업했고, 미국의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수학했다. 제 장로의 이러한 경력이 말해 주는 대로 남선교회전국연합회에서는 규칙부장을 맡아 회칙, 규정, 세칙, 규약, 정관 등을 완벽하게 손질하여 그 공로를 인정하고 남선교회 최고의 표창인 ‘무궁화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제 장로는 무엇보다 모든 모임이나 일들에 구분 없이 적극참여해 주는 것이 후배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는 것이라고도 한다. 젊은 날 자신이 회장이나 대표를 맡아 일해 왔던 경험에서 회원 한 사람이 참여해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제 장로는 남다른 교육열이 있어 전 가족 석사(碩士) 이상 학위를 목표한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했다. 제성호 교수(중앙대), 제원호 교수(서울대), 제강호 변호사(국제변호사), 제민호 회장(이수홀딩스)등 뿐 아니라 자부들도 석 박사 학위 소지자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온화한 성품과 친화력이 넘치는 제 장로는 인간관계가 원만하기 때문에 따르고, 도와주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남을 험담하거나 업신여기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기도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을 아무도 당하지 못한다고 말한다.제 장로는 한국교회에 대해서는 “나라가 없으면 교회도 없고, 주춧돌이 될 만한 인물을 많이 길러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제 장로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교회인데 교회를 세습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3-23
  • 성육신한 예수교회-43
    예전에 우리 땅에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느낀 점들을 미국에 보낸 서신들을 보면, 제임스 스카스 게일의 ‘코리아 인 트랜지션’에서도 밝혔듯이, 우리는 지식을 숭배하는 민족이었다. 아마도 이는 유교에 영향을 받아서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등의 슬로건이 생긴 것 같다. 그도 그렇듯이 적어도 과거에 합격해서 공무원 초급인 ‘진사’ 정도는 받아나야 양반 행세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지식인들은 세종이 한글을 창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을 한글로 번역하질 아니하고, 한문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글과 지식을 특별 계급만이 독점하여 온 것이었다. 우리가 이러한 형편에서 나라가 기울고 일제에 국가를 찬탈 당하였으나, 선교사들은 성경과 책을 한글로 번역하여 권서인(勸書人)들로 보급하고, 교회에서는 앞장서서 한글을 가르쳤다. 이러한 영향은 영국교회에서 내려오는 흐름에서 비롯되었다.영국에서도 틴데일을 비롯해 위클리프 등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으나, 귀족에게 마저도 보급되질 못하도록 읽는 것을 금하였고, 읽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렸다. 그래서 영국에서도 영어가 보급된다든지, 성경의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영국에 부흥이 일어나면서, 휫휠드나 웨슬레가 교회당 바깥에서 설교 집회를 시작하게 됨으로써,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와 설교를 듣게 되었다. 당시 영국의 교회당은 대체로 특별한 직에 있는 이들의 가족들마저도, 예배당이 좁아서 함께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고, 마당에서 기다리는 형편이었다. 오늘의 교황이 광장에 모인 신도들에게 창문 테라스에서 몇 마디 하는 것은 예배당에 들어오질 못하는 이들에게 그나마 서비스하는 요식행위이다.그런데 과감하게도 상식을 깨뜨리고 야외천막에서 설교가 서비스되다 보니, 사람들은 누구나 와서 성경 말씀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섹스피어 시대에는 국민들이 글은 몰라도 도시마다 3000-5000석의 극장들이 세워 졌는데, 연극을 듣기 위해서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글을 모른 터이라서 연극에서 주고받는 대사를 듣고서야 ‘자유와 책임’에 관한 지식을 넓힐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보기위해 극장으로 간 것이라기보다는 듣기 위해서 극장에 모였는데, 매번 일 년에 여러 편의 섹스피어의 작품이 공연되었기에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시민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성경을 읽도록 해주는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조지 휫휠드와 요한 웨슬레는 모여오는 군중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성경을 읽히기 위해서 당시 방치된 고아들을 모아 고아원을 설립하고, 학교를 세우면서 글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오늘 날의 초등(국민)학교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교회와 교회당 옆에 고아원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세웠는데, 이로 인해서 지식이 서민들에게 이동되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즈음에는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거의 신학문을 접한 서민 출신들이었다. 우리 국민에게 한글이 전체적으로 보급된 것은 오로지 교회에서 세운 성경학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글 학자가 세종 이후에 찾아 볼 수 없다가, 선교사들이 한글을 자국민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한글 문법책이 보급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한글학자들이 비로소 나오게 됨은, 역사학자들이나 교육을 하는 이들이 여태껏 숨겨온 부끄러운 이야기들이다.이 땅에 한글과 성경이 보급됨으로서 새롭고도 스마트한 문명을 이룩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앞선 민족이 있는데, 저들은 다름 아닌 유대민족이다. 저들은 태어나자마자 모국어를 어머니의 무릎에서 자국어와 글을 습득하고, 자신들의 경전인 모세 오경을 3살이 되기 이전부터 외워서, 그들이 사는 나라가 어느 땅이든지,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시민이기에 앞서서, 하나님나라시민으로서의 기반을 이미 갖추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집트에서 모세로 자유를 얻은 이후부터는 모두가 모세의 오경을 읽고 낭독하고 토론하고 외운다. 저들이 외우는 경전 중에 ‘레위기’가 있는데, 이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안내서이다. 저들의 성전은 붕괴되었고, 자국에서 흩어졌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성전에서의 제사법을 외우며 토론한다. 이는 말씀 안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매일매일 지키며 걸어야 할 길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 이후, 지성소의 휘장은 갈라져서 누구든지 하나님께 가까이하게 되었건만, 우리의 길이며 진리이고 생명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외우지도 않는다. 지성소에서 매일매일 살아가야하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 하는 크리스천들에게서 지성소의 예법이 천시되어 온 것이다.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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