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이 우 복 목사

우리는 최근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가슴을 아파하고 있다. 본인이 생각할 때는 너무나도 억울한 일로 인하여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겠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충격파는 상상을 초월하였고, 지금도 그 진행형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쪽지에 적힌 이름들은 사실여부를 떠나 저들의 정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몰아넣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이 서산의 모 감리교회 장로님이셨다는 사실 앞에 아연실색을 하게 된다.
한국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하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들이 자주 있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였던 사람도, 또 굴지의 기업인들도, 정치인들도, 심지어는 유명한 연예인들도…
이 나라를 바르게, 자랑스럽게 이끌어 가는 일에 앞장을 섰던 사람들이 아침 이슬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들로 인하여 철없는 청소년들에게도 자살이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고 있음이 가슴이 아프다. 특히 이 사람들 중에 소위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 앞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한국교회는 이 한국사회 앞에 이런 일들을 당하면 어떤 변명을 늘어 놓기 보다는 가슴을 치고 통회하는 일을 하였으면 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들을 위로한다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비성경적인 가르침은 없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초대 한국교회는 술과 담배 문제에 대하여 엄격하였다. 그래서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로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술과 담배에 대하여 관용(?)을 베풀어서 인지 죄악시하는 경우가 많이 약화되어 버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욱 발전이 되고 있음이다.  이혼, 낙태, 자살, 자위행위, 동성애, 분열과 분쟁 등 수많은 문제에 대한 죄의식이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있음이다.
이 모든 것의 종합판이 있다. 그것은 모든 거짓을 합리화하는 위선의 모습이다. 교회 안에도 변명과 합리화의 명수들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 가지만 예를 들겠다. 자살행위에 대하여 많은 신학자들이 그 행위를 질병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우울증의 결과인 것처럼 진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다르지 않는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몇 시간 전까지도 언론과 인터뷰를 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빚진 사람들에게 구명을 호소하였다고 하는 데도 우울증 환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한국교회는 이렇게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왔는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억울함으로 말한다면 구약에 나오는 요셉이나 다니엘, 그리고 수많은 선지자들은 아마도 그 억울함의 무게가 이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예수님을 보면 그 억울함의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 억울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 무게가 조금씩 다를 뿐일 것이다.
한국교회 지도자라는 분들은 아직도 인본주의적인 가르침을 하고 있지 않는가? 왜  하나님이 죄라고 한 것들을 그대로 죄악이라고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가? 죄에서 떠나야 한다고 왜 말하지 못하는 가? 이것이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는 근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묻고 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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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로님의 죽음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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