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경 박 대통령이 그 회의장에 입장하려고 하자 일단의 이화여대생들이 몰려들어 그의 입장(入場)을 저지하려고 하였다. 박 대통령은 여대생들의 거센 반발에 막혀 입장하는데 애로를 겪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단의 의경 및 사복형사들이 재학생들의 집단행동을 역시 집단적 힘으로 제지하면서 대통령의 입장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앞문(정문)이 아닌 뒷문(후문)을 통해 입장했으며 30분쯤 지나 퇴장할 때도 역시 뒷문을 통해서였다.
여기서 재학생들과 형사들 간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던 것은 물론이다. 학생들 측은 최다일때의 숫자가 200명 안팎이었는데, 투입된 경찰 병력은 무려 300명이나 되었으니, 학생들의 처지에서 볼 때 그들의 방어는 결과적으로 중과부적(衆寡不敵)인 셈이었다. 그러나 입장 저지 실패 여부와 관계없이 여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오후 1시경 이미 긴급 기자회견 현장에서 펼쳤던 현수막의 구호와, 두 시간 뒤(오후 3시경) 그들이 팻말을 들고 직접 외쳐댄 구호들을 참고 삼아서 본다면 아래와 같다. 현수막엔 “국민의 뜻 거스르는 박근혜 대통령 환영할 수 없다.” 또는 “국정교과서, 대학구조개혁, 노동개악 추진을 중단하라!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거부한다.”… 등으로 되어 있고, 손에 든 팻말에는 “박근혜는 여성을 말할 자격 없다!” 또는 “박근혜는 이대에 발도 붙이지 마라!”…등등으로 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대통령이 인권의 요람인 이화여대에 여성 대통령으로 오는 것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를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전국민의 반대를 사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청년들을 더욱 궁지로 모는 노동 개악, 대학의 가치를 훼손하며 돈 앞에 줄 세우는 대학구조개혁 강행 등에 대하여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대생들이 여성 대통령을 상대로 투쟁하자고 이렇게 집단적으로 모이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은 아무래도 최근 가장 뜨겁게 달구어진 여론, 곧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분위기, 바로 그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일어난, 이 전무후무하다고 해야 할지 예측불허의 것이었다고 해야 할지, 어떻든 우리를 다소 어리둥절하게 만든 이 사건을 보면서 이 생각 저 생각들이 필자의 둔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첫째, 여자대학교에서 여성지도자대회가 열렸고 여기에 여성 대통령이 오기로 돼 있었는데, 왜 여대생들은 뜨거운 환영식 아닌 열렬한 항의집회를 해야 되었을까. 둘째, 설혹 여대생들의 저항 의도를 미리 간파했다손치더라도 무려 300명이나 되는 거대 경찰병력을 신성한 학문의 전당(상아탑)인 여자대학 구내에 파견하다니, 이건 해도 너무한 일이 아닌가. 셋째, 이런 일대(?)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평소 ‘국민의 알 권리’를 자주 입에 올렸던 한국 언론들은 왜 이를 축소 은폐하기에만 바빴을까. 그들도 이젠 거대 권력에 길들여져 버렸단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필자의 머리에서 한 시도 떠나지 않았다.
이화여대생들에게 일대 전무후무한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아예 이화여대생(손솔 총학생회장)에게서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박 대통령은 대학가에서 커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유신시대로 되돌리려는 박 대통령의 방문은 필요 없다.”고 하였다. 그의 이 말에 의하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유신시대로의 회귀(되돌리기)는 거의 등거리에 위치해 있다. 즉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성사되면 유신시대로 되돌리기가 어렵잖게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지난(11월) 3일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계획이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공표되었다. 이대생의 앞서의 표현에 의하면, 유신시대로의 회귀는 이미 그 서막이 개시된 셈이다. 유신시대를 직접 겪지 않은 여대생(들)이 단지 역사 공부를 통해서나 알게 되었을 유신시대의 그 참혹한 시대상을 ‘국정’ 교과서를 통해서나 배우게 될 후진들에는 그마저도 그 실상을 알게 할 역사 자료와 기술(記述)을 다시는 접하지 못하게 될 그런 세상이 닥쳐오는 게 아닌지 자못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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