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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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는 사사 시대의 사람으로 기생이 길르앗 사람에게 낳은 아들이었으나 길르앗 사람은 본처가 있으므로 그 본처의 자식들이 입다를 쫓아내자 돕 땅에 거하게 되었는데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많아 세력이 커지게 되었다. 그는 큰 용사가 된 것이다.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함으로 이스라엘 장로들은 입다에게 찾아가 그를 설득하여 그들의 머리와 지도자로 삼았다. 입다는 암몬을 설득하여 전쟁을 피하려 하였지만 암몬은 거절하였다. 입다는 전쟁에 나가게 되었다. 이때 입다는 출전하며 하나님 앞에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삿 11:30-31)라고 서원한다. 여기서 입다가 “그를” 번제로 드린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자기 딸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입다는 대승을 거두고 개선했다. 그런데 그때에 자기 집에서 나와서 소고를 잡고 춤추며 그를 영접하는 자는 그의 무남독녀였다. 입다는 옷을 찢으며 슬퍼하고 괴로워하였지만 한번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것인 만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 사정을 알게 된 입다의 딸은 자기 아버지에게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위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라고 말하며 다만 두 달만 여유를 주어 자기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래서 입다는 딸의 청을 받아주었다. 개역성경은 “가라하고 두 달을 위한하고 보내니 그가 그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두 달 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삿 11:38-39)고 번역하고 있다. 개역성경의 번역은 입다가 그의 서원대로 그의 딸을 번제로 드린 것으로 되어 있다.
번제는 제물을 불에 태워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성경에서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것으로 그의 분노를 격발하게 하는 것이다. 유다 왕 아하스(왕 16:3)와 므낫세(왕하 21:6)가 그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다고 했다. 여기서 “(불 가운데로)로 지나가게 했다”는 말을 히브리어로 “아바르”의 사역형을 쓰고 있는데 그 문자적인 의미가 “지나가게 하다” 혹은 “넘어가게 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하게 불 위를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번제로 드리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ESV는 “번제로 드렸다”(burned)로, NIV는 “(그의 아들을) 희생제물로 드렸다”(sacrificed his own son in the fire)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아바르”의 사역형은 “번제로 드린다”는 뜻이다. 입다는 분명히 삿 11:31에 그가 전쟁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 그를 맞으러 나오는 사람이 누구든지 그는 여호와의 소유가 될 것이며, 그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다고 했다. 이때에 히브리어는 “오라”라는 말을 쓴다.
“오라”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번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본문에 입다가 그의 딸을 번제로 드렸다는 명시적인 말이 없다는 것이다. 11절에는 “아비가 그 서원한대로 딸에게 행하니”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서 개역성경은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히브리어 원문은 어디에도 “죽으니라”는 말이 없다. 단지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알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다”를 쓰고 있는데 이는 부부간의 성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흔히 “동침하다”로 번역하고 있다(창 3:1). 이를 반영하듯이 NASB 는 “그 여자는 남자와 관계를 갖지 않았다”(She had no relations with a man.), NET 에서는 “그 여자가 처녀로 죽었다”(She died a virgin.), 그리고 NIV 는 “그리고 그 여자는 처녀였다”(And she was a virgin)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을 읽을  때, 입다가 그의 딸을 불에 태워 제사로 드렸는지 아니면 그의 딸을 하나님께 바쳐 일생을 결혼하지 않고 처녀로 살게 했다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입다의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한 처녀로 그의 생애를 마쳤다는 것이다. 만일에 입다가 그의 딸을 번제로 드렸다면 과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았으며, 딸을 제물로 바친 입다를 과연 성경은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히 11:3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번제로 드린 아하스와 므낫세에게 진노하신 분이시다. 또한 겔 16:38에는 자녀의 피를 우상에게 드린 이스라엘 백성을 정죄하고 계신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입다의 딸이 슬퍼한 것은 그의 죽음이 아니다. 개역 성경은 37절에 입다의 딸이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고 번역하여 “죽음”을 삽입하고 있으나 마소라 사본은 “나의 처녀성”(virginity)을 인하여 애곡하겠다고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어 “베투림”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처녀성”(virginity), 혹은 "처녀인 상태"(the state of virginity)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입다의 딸이 당장 번제로 여호와께 바쳐져서 죽었다는 의미보다는 입다의 딸이 나실인처럼 하나님께 바쳐져서 일생을 처녀로 하나님을 봉사하다 죽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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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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