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구제를 하되 먼저 믿는 자에게 하라”라는 것입니다. 우선 나의 옆에 있는 사람의 아픔을 아는 일은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쌀 한 되를 건네기는 쉬워도 같은 집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의 외로움과 고통을 덜어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생의 자랑이란 공해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명분 때문에 이웃 사랑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서로에게 사랑을 나누기 전에 먼저 가정 안에서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사랑은 거창한 표어가 아닙니다. 거창한 비전이나 계획이 아니라 너의 그늘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먼저 가장 가까운 나의 그늘에 사랑을 받을 사람이 가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목적이 아닙니다. 살아본 사람들이 목적대로 살았는가 물어보십시오.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거짓말에 시달렸는가. 성과에 대한 치수가 나를 계속 본질의 자리를 벗어나게 함을 느끼면서도 포기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려면 목적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논리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은 해야 할 일을 타고났다. 누구나 타고난 일에는 놀라운 재능이 있으므로 그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타고난 일을 하면 대단한 사람이 되고 세상의 주목과 찬사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찬사와 갈채를 받기 위해서 나를 인정해주고 칭찬해 줄 사람을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인간의 최대의 꿈을 이루었을 때의 종말은 어떻게 되는가? 결국, 그런 사람 대다수를 세상이라는 괴물이 집어삼킵니다. 그 꿈의 실현은 결국 괴물의 수작이요, 나 자신을 큰 덩치로 삼켜버리려고 세상의 꿈을 갖게 한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여자는 평생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미래관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이미 나와 있는데, 우리는 광야를 헤매는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0절에는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시간 맞춰서 기도하는 사람보다 그들의 행동 자체에서 신앙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 자유로움입니다.
자기 직업을 삶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직업에 충실할 때 그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밀림 속에서 악어를 만났을 때,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 그것이 인생의 목적에 의한 밀려남이 아니라 그 자체 속에서 즐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종교적 행위가 기독교 세계관이 아닙니다. 종교적 행위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중보기도가 아닙니다. 그 중보의 내용이 삶에서 즐거워하는 것이 기도이고 생활입니다.
내가 대신해서 상대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이방종교인 로마 가톨릭의 대신 중재역할입니다. 이것이 대제사장 제도로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린 제사의 개념을 지금도 계속 반복하는 죄악의 행동임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37편 4절을 보면 “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기쁨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목적은 결국 세속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지극히 기본적입니다. 일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상이 어린아이처럼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절부터 3절에서 “어른들은 일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일은 아주 단순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됨의 증거는 사람들 간의 갈증이 시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인간의 목적을 놓아버리면 자유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단순함에 대한 우리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론이나 생각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며 가까운데 계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권위이시지만 너무 단순하시고 편하신 분으로 격식이나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모든 복잡한 격식은 이방 종교에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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