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을 가장 부강한 나라로 만든 왕이었다. 그가 이룬 가장 큰 업적 중에 하나는 분명 고대 근동 세계에서 보기드문 웅장한 성전을 건축했다는 점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솔로몬을 지혜의 왕이라고 지칭한다. 그가 가진 지혜에 대한 명성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심지어 시바의 여왕이 그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먼 길을 찾아올 정도였기 때문이다(왕상 4:34). 그러나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했던 것은 사람들의 고충을 “들을 수 있는 마음” 혹은 “들을 수 있는 심장”이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사랑했다고 했다(왕상 3:3). 아직 성전이 없었던 때라 그는 기브온에 있는 큰 산당에 가서 그 제단에 일천의 번제물, 곧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물을 드렸다고 했다(4). 밤에 여호와께서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구해라”고 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는 왕에게 그의 구하는 바를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배려에 감동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의 부친 다윗에게 베푸신 인애를 감사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 이제 주께서 주님의 종을 제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으로 세우셨으나 저는 아직 어린 아이라 출입할 줄을 모릅니다. 주님의 종은 주께서 택하신 큰 백성 가운데 있으며, 그들은 너무 많아서 셀 수 없고 헤아려 볼 수도 없으니, 여호와께서 주인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악을 잘 분별할 수 있게 하소서. 누가 이렇게 많은 주님의 백성을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왕상 3:7-9).
여기서 “나는 아이라 출입할 줄 모릅니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관용구로 “나는 지도자로서의 기량이 부족한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 솔로몬은 그의 백성을 주의 백성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자기가 이스라엘의 통치자라는 의미보다는 주의 백성을 돌보는 주의 종이라고 낮추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주의 많은 백성을 재판하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라고 청한다. 여기에서 히브리어 “레브 소매아”의 문자적인 번역은 “듣는 마음” 혹은 “들을 수 있는 마음”이다. 바른성경과 새번역은 “지혜로운 마음”이라고 번역하고 있고, 개역개정은 “듣는 마음”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요 영역본은 “이해심” (understanding heart, KJV, ESV, JPS, NAS,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솔로몬은 왕으로서 해야 할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가 백성들의 잘잘못을 가려주고 재판하는 일로 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레브 소매아”(들을 수 있는 마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백성들을 재판하기 위하여 솔로몬이 구한 것은 지혜가 아니라 마음이었으며, 마음 중에서도 듣는 마음을 구했다. 솔로몬은 재판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이 해박한 지식이나 다양한 경험으로 축적된 삶의 지혜가 아니었다. “듣는 마음”이었다. 백성들의 억울함과 고충을 들어 줄 수 있는 마음이었다. 솔로몬은 백성들의 고충과 억울함을 마음으로 듣고, 선과 악을 분별하여 재판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했다.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한 것을 부귀나 장수나 원수 갚는 것이 아니고, “옳은 것(혹은 정의)을 들을 수 있는 이해 (혹은 분별력)”(understanding [or discerning] to listen what is right) 이라고 말씀하시고, 12절에는 그에게 “지혜롭고 이해하는 (혹은 분별하는) 마음” (wise and understan ding [or discerning] heart)을 주시겠다고 응답하신다. 한글 역본들은 11절을 “정의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 (바른성경),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개역개정),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능력” (새번역) 이라고 번역하고, 12절은 모두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 (바른성경, 개역개정, 새번역)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우리들은 솔로몬이 구한 것이나 하나님께서 솔로몬애게 주신 것이 다 지혜라는 말로 두리뭉실하게 이해하고 있지만 히브리어 본문은 좀 더 정교하게 말하고 있다. 솔로몬은 많은 백성들을 재판해야 하는 왕으로서 백성들의 고충을 들을 수 있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분별력을 구한 것이다. 아무리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놓고, 백성들의 고통소리를 듣는다할지라도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날카롭지 못하면 정의로운 재판을 하기 힘들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왕이나 지도자는 백성들의 말을 듣기 보다는 백성들에게 자기 말을 많이 하고 자기의 주장을 듣도록 강요한다. 남의 말을 들을 자세가 되어있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어린 아이처럼 성숙하지 못한 자이다. 유치한 자이다. 솔로몬이 자기를 어린 아이와 같기 때문에 남의 말을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쩌면 참다운 지혜는 남의 말을 잘 듣고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열왕기상 3: 16-28에 나오는 솔로몬 왕이 어린 아이의 엄마를 찾아주는 재판 이야기도 아기 엄마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명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이다. 하갈은 그를 학대하는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가다가 사경을 헤매는 중에 그를 찾아오신 여호와의 천사가 “보아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불러라. 여호와께서 네 고퉁을 들으셨기 때문이다.”(창 16:11)라고 말씀을 듣는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라는 뜻이다. 사람의 깊은 심중을 헤아리시고, 남모르는 고통을 들을 줄 아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재판장이시다. 솔로몬은 여호와의 백성을 재판하는 자로서 들으시는 여호와의 마음을 구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가 참 지혜로운 지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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