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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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앞에서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김동인의 「김연실전」(<문장>, 1939.3)을 보면, 어렸을 적에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체험이 어른이 되어서도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 연실은 신학문도 배운 여성이었으나, ‘자유 연애를 자유로운 성교性交’로 착각하여 문란한 생활을 합니다. 그녀가 그렇게 된 데에는 어렸을 적에 체험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어릴 적에 그녀는 어머니의 꾸중을 듣고 첩과 살고 있는 아버지 집에 갑니다. 그 날 저녁 그녀는 잠을 자다가 아버지의 추태를 목격하게 됩니다(김동인,「김연실전」참조). 이와 같은 사건은 평생 그녀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잘못된 편견을 심어 놓습니다. 그녀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오며 자신이 신여성임을 자부하지만, ‘남녀간의 육체적인 관계가 자유 연애’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아름다운 사랑은 멋진 남자와 아름다운 여성이 만나 평생 가정을 이루며 인간미 넘치게 사는 것이지요. 곧 하나님이 맺어 주신 짝을 통하여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멋진 가정을 이루며 해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부자는 행복하고, 서민은 불행’할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없지 아니합니다. 행복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몫인데도 말입니다. 행복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과 옆에 있습니다. 기독교인 중에도 천국은 죽어서나 가는 곳이고, 현실은 고해苦海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여 보면 예수님은 인간이 죄의 굴레에 얽매여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몸소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곧 인간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가난한 자에게는 떡과 물고기를, 병든 자에게는 치유를, 죽음을 앞둔 자에게는 부활을 보여 주셨지요. 이는 서민에게도 얼마든지 행복이 있음을 인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골목길엔 한가한 미로가 많다
끈적끈적한 정을 대문간에 붙이고
주차 구역의 정해진 행보 앞에서
후덕한 마음을 촘촘히 엮는
약국 아주머니의 수다에 녹는 동네 사람들
세상의 무딘 소식이 미끄럼을 타고
잘난 사위 강남 갔다고 너스레 떠는
자전거포 주인이 꿈의 페달을 돌리고
거리로 나선 사내가
이래저래 먹고 살기는 하나 본데
푸른 하늘에 연처럼 띄워진 시장통의 외로움
씽씽 달리는 자전거의 짐칸 위에서
장바구니가 시원한 낮잠을 자는 사이에
행복을 전하는 배달꾼의 오토바이가
휘파람처럼 골목을 휘젓는다
                         -「골목길」전문

행복은 나와 떨어진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도 있고, 내 옆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의 행복을 형상화한 시를 많이 발표하여 왔습니다. 「골목길」도 여기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가족과 이웃과 평범한 사람 들이 모여 사는 곳에도 행복이 있습니다. 개인은 누구가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탄생·연애·결혼에서부터 가정과 국가와 세계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인 경험 양식이 자리잡고 있고, 그 가운데에서 인간미도 피어나는 것입니다. 심지어 개인의 고독에도 행복이 스며 잇습니다. 개인이 혼자 있을 때에 주님과의 동행이 이루어질 수 있고, 자신의 참모습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골목길을 산책하기를 좋아합니다. 거기에는 이웃과의 다정한 소통이 자리잡고, 온정이 담긴 이야기들이 집집으로 전달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나는 평범한 일상에 동행하시는 당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기도하고 말씀 보며 찬양하는 것도 삶의 기쁨이며 활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안의 이타적인 유전자를 주신 분께 감사하며 가족과 형제들을 위해 기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 낙원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음을 상상하게 됩니다. 낙원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말구유에 나셔서 세상 사람들의 가난을 익히 체험하셨으며, 집이 없다고 낙담하지 않으셨습니다. 우주에는 언제든지 필요하면 채울 수 있는 사물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지요. 주님은 가난한 자와 병든 자에게 눈높이를 맞추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일 對 일’ 관계를 챙기셨습니다. 십자가를 몸소 지시고 인간의 죄를 벗어나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가난 속에서도 풍요롭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살과 피가 영혼의 양식이 되게 하셨으며,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는 신이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셨으며, 사랑을 나누는 행복을 만끽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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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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