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균형’ 논리는 1920-1960 사이의 라인홀드 니버에 의한 세력균형 논리이다. 소위 평화적 수단 전략의 한 이데올로기이다. 2차대전 이후 세계는 미소 두 강대국에 의한 냉전으로 패권 경쟁을 가열차게 하게 되고 이러한 경쟁은 가공할만한 살상무기 그 중에서도 핵탄두 군비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겪은 민족세계전쟁(6.25)은 1-2차 세계 대전의 피해보다 더 크고 참혹하다. 그것은 또한 우리민족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분단의 고착화, 영구화를 가져오고 중국과 일본, 미국 등은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 내지는 안정화 시키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 한반도의 희생을 통한 주변국과 강대국들의 이익창출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막말수위가 도를 넘고 최근에는 B-1B ‘죽음의 백조’ 폭격기가 북한 항공까지 침투하였다. 소위 협상과 장사꾼의 ‘거래의 기술’를 통한’전략적 혼돈 전략’을 통한 협상전략의 압박 행동이다. 일단은 협박을 하면서 평화적 협상의 테이블로 이끌어 낸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무모한 전략이다. 만일 북한 상공의 침투에 대한 북한의 실수든 정당방어든 간에 어떠한 시비가 있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파멸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소의 무기, 군비경쟁은 핵탄두의 경쟁이 되어 우리가 사는 지구를 수십 번씩 태워버리는 가공할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역사의 현장은 저출산, 양극화 고령화와 함께 자살율 제 1위( OECD 경제개발협력국)를 살고 있다. 분단과 동서와 소위 진보와 보수, 친일세력과 민족적 민주 통일세력들의 내적 갈등의 삶을 살고 있다. 남북의 대치와 북미의 위험한 말장난을 통한 전쟁 놀음의 모험이 현실화 될 수도 있는 지경을 걷고 있다.
어느 조직이나 헤게모니의 싸움과 주도권 싸움은 지속된다. 정의의 개념마저도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메이컵되고, 페인트모션 된다. 종교집단이나 세속적 정치집단,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민중을 착취의 수단으로 살고 있는 기업들 모두가 실은 자기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야누스적 삶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의 삶의 푯대가 되는 예수의 이해나 성서적 해석도 천차만별 사실은 자기입장의 실존이나 이익집단들에 의해서 오도 되는 자기경험이라는 한계의 틀 안에 갇혀 있을 때가 허다하다. 민중의 해방을 말하는 가운데서도 실은 민중들을 앞 세운 전도된 가치를 고집하는 예가 허다하다.
‘죽음의 백조’가 한반도의 상공을 마음 대로 떠 다니고 핵잠수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동해를 휩쓸고 다닌다. 우리가 의지하고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로 위로와 희망을 창조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누가 더 선하고 악한 것인가의 평가는 역사가 증명한다. 무엇이 정의이고 불의인가 역시 역사적 평가에 맡긴다. 역사적 평가는 상식이고 진리이다. 어떤 부류가 평가하는 것인가도 중요하다. 어느 때이건 힘 없고 가진것 없이 소외되고 착취당하며, 멸시받는 부류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정확하다.
춥고 배고프며, 어떤 일을 하고도 그 대접으로부터 주변부나 변두리에 있는 자의 평가가 정의인 경우가 많다. 우리 모두는 불쌍한 자이다. 우리 모두는 티끌과 먼지로 돌아갈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상처받고 그 상처들을 치유해야할 어리석은 존재들이다.
‘죽음의 백조’를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 하늘이나 바다나 땅 위에 죽음의 존재들과 가치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애초부터 인간들에게 큰 희망을 두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겸손한 자도 없고 신의를 지키는 자도 없으며, 정의로운 자도 없다.
진실로 기도의 제목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고, 세계 어는 곳에서나 전쟁이 없으며, 죄 없는 민중들의 삶이 파괴되는 일들이 없기를 기도한다. 한반도를 둘러 싼 우리의 삶의 현장은 전쟁 놀음을 경쟁하고 있다. 이 와중에 트럼프의 무기장사는 호재를 부르고 약자라고 생각하는 무능한 사람들은 무기를 사들이기에 바쁘다.
우리가 믿는 것은 창조주와 예수그리스도 성령이시다. 우리가 믿는 것은 거짓 없는 정의와 용서와 사랑 뿐이다. 인간들의 적대적 행위와 중상모략은 계속된다. 인간들의 이해관계와 힘의 균형은 하나의 위험한 경쟁을 불러 일으킨다. 백조가 춤을 춘다. 그것은 평화의 백조가 아니라 죽음의 백조이다.
청일과 러일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였듯이, 북미의 말 경쟁이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중일과 러시아가 함께 유익만을 계산할 때는 아니다. 지금의 현실은 과거 전쟁 때와는 그 위력이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은 인간으로부터 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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