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22(일)
 

웨이크 칼럼 이영은.jpg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 질문한 부자 청년을 만나시고 예수님은 여리고쪽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는 삭개오가 살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며 부자였습니다. 삭개오는 로마가 규정한 세금만 걷으면 되는데 그것 보다 더 많이 걷어서 중간에서 가로채 자기 주머니를 채웠습니다. 명백한 도둑질입니다. 게다가 같은 동족의 돈을 속여 빼앗았으니 삭개오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는 천하에 몹쓸 인간입니다. 삭개오는 돈 하나만 건지고 나머지는 다 무너진 인생 이었습니다

 

정당하게 벌어서 합당한 곳에 쓰는 것은 누구든 할 말이 없지만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속여 빼앗아 받은 돈으로는 무슨 일을 해도 인정받지 못합니다.(23:18) 새리가 나쁜 게 아니라 그 직업을 악용해서 많은 사람에게 행한 그 악이 나쁜 것입니다. 새리라도 양심껏 걷을 만큼만 걷고 조금 벌면 됩니다.(3:13)

삭개오는 죽기 살기로 오직 돈만 벌기로 작정하고 양심을 굳게 해서 마비시켜 놓았습니다. 삭개오는 돈에 한이 맺힌 사람 같습니다. 돈에 목숨을 건 인생입니다. 돈에 붙잡혀 노예가 되어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를 불쌍하게 보셨습니다.

 

삭개오는 자기 동네에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앞으로 달려가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지나가시던 예수님이 뽕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올려 보셨습니다. 예수님과 삭개오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때 삭개오가 바라본 눈은 하나님의 눈이었습니다. 긍휼함의 눈, 어느 누구에게서도 받아 보지 못했던 시선입니다. 사람들의 눈은 혐오와 적개심의 눈이었는데 예수님의 눈은 긍휼함의 눈이었습니다. 가장 불쌍하고 긍휼함을 받을 자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눈동자, 하나님의 동공 속에 삭개오가 들어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하나님의 눈에 가장 불쌍하고 가련한 영혼이었습니다, 진짜 불쌍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삭개오 같은 부자입니다. 그때 삭개오의 마음에 빛이 들어오니 그동안 안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이 보였습니다. 삭개오의 굳어있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할 때 예수님이 부르십니다. “삭개오야, 빨리 내려와라, 오늘 네 집에 들어 가서 묵어야겠다

 

삭개오는 기쁘게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창고를 다 열어라, 최고의 음식을 내어 놓아라, 넘치고 풍족하게 대접하라...’ 그런데 이렇게 즐겁고 기쁜 날, 갑자기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멈출 수가 없습니다. 돈만 생기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게 없던 자신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싫은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선 자신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해 보이는지,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남들처럼 먹고살 것만 있으면 되는데...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회심의 눈물입니다. 그때 삭개오의 마음속에는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말씀대로 내가 누구 것을 속여 빼앗은 것에 대해서 4배로 보상하겠습니다.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 주인 이신 하나님 앞에 반납 하겠습니다

 

삭개오는 영원한 생명을 만났습니다. 그 생명을 보니, 천국이 보이고 영생이 보입니다. 영원한 생명 앞에 서니 모든 게 진짜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실상이 보입니다. 삭개오는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난자입니다. (18:27)

그렇게 내 열심 으로 돈을 모았지만 나는 한 번도 행복한 적도 없었고 마음에 만족이 없었는데 지금 이 평안은 뭐지? 왜 이렇게 행복하고 좋을까?’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반납했습니다. 계산으로 하면 잃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회복입니다, 영혼구원의 회복은 이런 것입니다. 진짜 옳은 길로 가는 것, 옳은 삶을 사는 것, 옳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어서 돈 많이 버는 게 옳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옳음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회심해야 회복됩니다. 회복은 회심의 결과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회개가 생명길입니다. 삭개오에게 일어났던 이 사건이 구원입니다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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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이영은 목사의 ‘삭개오의 회심’(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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