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급 학교의 금년 1학기는 온라인 수업으로 끝날 것 같다. 우리 손주들이 한창 활동량이 많을 때에 집안에만 있게 하니 갑갑증이 심한가 보다. 손자가 진지하게 질문한다. “할아버지 공부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나는 대답대신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할아버지 고향에는 참외농사를 많이 하는 곳인데 참외를 저녁에 심어서 아침에 따먹을 수 없단다. 씨를 심고 싹이 나고 덩굴이 뻗어나고 눈보라와 추위를 견딘 후, 꽃이 피고 나서 참외는 콩알만하게 열리지만 또 밤낮을 보내고 시간이 흘러 비로소 노란 참외, 맛있는 과일이 열리게 된단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참외를 얻을 수 없단다. 인내와 수고, 땀 흘리지 않고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듯이 공부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강한 결과주의 병에 걸려 있다. 움직이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수고의 땀을 쏟아 붙는 과정이 생략된 영광의 결실만 얻으려고 하는 사고와 행동양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한 계단 한 계단 모진 비바람을 이기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붙잡고 굵은 줄을 붙잡고 한탕을 잘해서 성공을 노리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병이 만연해 있다. 이 병이 우리사회의 약점이다.
십자가 없는 부활의 영광, 고난이 없는 행복, 눈물이 없는 성취, 땀 흘림이 없는 성공을 얻으려고 하면서 과정이 생략된 영광을 사모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구원도 기복신앙이 되었고, 세속적인 가치와 축복이 전도의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이것을 신앙의 유일한 열매로 삼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있다. 우리는 다시 부활절을 맞았다. 신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아야 한다. 행복과 기쁨, 영광됨에 앞서 내가 누구냐? 왜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나? 하는 그 의미와 가치가 아니라 사실에 관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나는 누구냐 하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낸 계시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 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라고 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 말씀은 요한복음 1장이 선언하는대로 곧 하나님 자신이시고, 세상의 창조자시며, 우주의 섭리자이시다. 그가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시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여기에 우리의 신앙의 초점이 있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복 받았느냐? 영광스러우냐? 성공의 자리에 섰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약속하셨고 명령하신 것 속에 내가 있지 아니하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복이고 영광이고 성공이라는 것이 위태로운 것일 뿐이다.
죄와 허물로 죽은 내가 나의 부활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 때문에 우리의 전파하는 것과 믿음이 헛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6-20)라고 했다.
기독교의 부활신앙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근본이다. 인간은 죄로인해 누구나 죽지만 유독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으로 부활 하셨다.
성경의 기자들은 확실히 고난과 영광을 동시에 보았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함임을 확신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삶이다.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신앙 안에서 이 열매를 얻기까지 십자가를 지고 기쁨으로 나아가자. 이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지나서 부활의 첫 열매에 동참자가 되자.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 20:6).
할아버지 고향에는 참외농사를 많이 하는 곳인데 참외를 저녁에 심어서 아침에 따먹을 수 없단다. 씨를 심고 싹이 나고 덩굴이 뻗어나고 눈보라와 추위를 견딘 후, 꽃이 피고 나서 참외는 콩알만하게 열리지만 또 밤낮을 보내고 시간이 흘러 비로소 노란 참외, 맛있는 과일이 열리게 된단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참외를 얻을 수 없단다. 인내와 수고, 땀 흘리지 않고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듯이 공부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강한 결과주의 병에 걸려 있다. 움직이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수고의 땀을 쏟아 붙는 과정이 생략된 영광의 결실만 얻으려고 하는 사고와 행동양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한 계단 한 계단 모진 비바람을 이기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붙잡고 굵은 줄을 붙잡고 한탕을 잘해서 성공을 노리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병이 만연해 있다. 이 병이 우리사회의 약점이다.
십자가 없는 부활의 영광, 고난이 없는 행복, 눈물이 없는 성취, 땀 흘림이 없는 성공을 얻으려고 하면서 과정이 생략된 영광을 사모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구원도 기복신앙이 되었고, 세속적인 가치와 축복이 전도의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이것을 신앙의 유일한 열매로 삼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있다. 우리는 다시 부활절을 맞았다. 신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아야 한다. 행복과 기쁨, 영광됨에 앞서 내가 누구냐? 왜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나? 하는 그 의미와 가치가 아니라 사실에 관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나는 누구냐 하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낸 계시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 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라고 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 말씀은 요한복음 1장이 선언하는대로 곧 하나님 자신이시고, 세상의 창조자시며, 우주의 섭리자이시다. 그가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시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여기에 우리의 신앙의 초점이 있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복 받았느냐? 영광스러우냐? 성공의 자리에 섰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약속하셨고 명령하신 것 속에 내가 있지 아니하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복이고 영광이고 성공이라는 것이 위태로운 것일 뿐이다.
죄와 허물로 죽은 내가 나의 부활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 때문에 우리의 전파하는 것과 믿음이 헛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6-20)라고 했다.
기독교의 부활신앙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근본이다. 인간은 죄로인해 누구나 죽지만 유독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으로 부활 하셨다.
성경의 기자들은 확실히 고난과 영광을 동시에 보았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함임을 확신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삶이다.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신앙 안에서 이 열매를 얻기까지 십자가를 지고 기쁨으로 나아가자. 이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지나서 부활의 첫 열매에 동참자가 되자.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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