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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객석은 비었지만 음악은 흐르고 있듯이, 복음의 역사도 멈출 수 없다”
- 저는 배고프고 힘든 신학생 시절, 그 유명했던 프로야구, TV방송, 라디오 한 번을 제대로 듣고 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기도, 오로지 신앙에만 몰입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21살 때 화순백암교회를 개척하면서 저의 청춘은 펄펄 끊는 사명의 용광로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 힘든 사투 끝에 예배당을 짓고 있을 즈음에 시내버스 안에서 뜻밖에도 전혀 새롭게 들려졌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바로 가수 이선희의 ‘J에게’라는 노래였습니다. 그래서 푸른 청춘의 시절에 버스 차창에 기대어 듣던 ‘J에게’는 지금까지도 제 마음에 불멸의 노래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는 J를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들었고, 목회를 시작하면서 부터는 떠나간 교인, 사랑하는 교인들을 J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산책 하거나 산행 할 때 찬송가 대신 저도 모르게 나오는 노래 중에 하나가 ‘J에게’라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추석 연휴 기간에 가수 이선희가 출연하는 감성 로드다큐 ‘한 번쯤 멈출 수밖에’라는 프로가 방영되는 것입니다. 마침, 저도 총회장 임기를 다 마치고 맞은 연휴라 오랜만에 기도원에 가서 쉬면서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첫째 날은 악동뮤지션이라는 두 남매 가수와 이선희 선생님이 순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세 사람이 순천만의 갈대밭 사이를 걷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전에 저도 걸어 보았던 길이라 오버랩이 되는 것입니다. “아, 맞아 살면서 한 번쯤 멈추어야 되겠구나. 되돌아보아야겠구나.” 구태여 어느 책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멈춘다는 것은 단순한 휴식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일본의 신학자 고스케 고야마는 ‘시속 3마일의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사람이 걷는 속도는 시속 3마일인데, 하나님도 광야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시속 3마일로 걸으셨다고 말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이 멈추게 하실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교제하기 위함이었지요. 그래서 저 또한 멈춤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은 친구인 이금희 아나운서와 함께 전북 완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에 제가 완주 위봉교회 사적지 지정예배를 드리기 위해 다녀오다 숲길을 좋아해서 근처를 돌고 온 적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제가 다녀온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더구나 친구와 떠나는 여행이라 굉장히 자연스럽고 편하게 보였을 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셋째 날은 김이나 작사가와 춘천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는데 클라이맥스는 가수 이선희가 강변가요제가 열렸던 남이섬의 무대에 오르는 장면이었습니다. 가슴 벅찬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머리가 아닌 발끝이 기억하는 나이 스무 살의 내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때는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있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했습니다. 돌아본 길은 눈부신 날들이었습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도 눈부시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도 눈부신 날이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가수 이선희에게 남이섬이 있었다면 저에게는 화순백암교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화순백암교회를 지었을 당시는 인터넷도 없고 기독교 신문도 없었지만, 가장 유명한 크리스천신문을 비롯하여 각 교계 신문과 잡지에 ‘황무지에서 백합꽃을 피운 사람’으로 보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서울로 올라오고 분당의 목회시대를 열면서 제가 교계에 ‘맨발의 소명자’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는 목회자로 주목을 받게 되어 수많은 목회자 세미나와 부흥회를 다녔습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한인 교회가 있고 선교사가 있는 곳은 다 다니면서 세미나를 했습니다. 아니 원주민 집회도 엄청나게 많이 다녔지요. 오죽하면 제가 항공사 두 곳 모두 100만 마일을 넘게 다닐 정도니까요. 더구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우리나라의 가장 큰 교단의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정말 지금까지 쉼 없이 교회와 복음을 위해서 달려왔습니다. 특별히 요즘은 한국교회 연합과 공적 사역에 올인해 왔습니다. 오죽하면 故 조용기 목사님께서 생전에 “소강석 목사 같은 사람 한 사람만 더 있으면 한국교회를 지킬 수 있다”고 하실 정도로 광폭 사역을 해 왔습니다. 또한 여러 언론사에서 “소강석 목사야말로 합동 교단사에 남을 만한 눈부신 총회장 이었다”고 기사를 써줄 정도로 정말 후회 없이 모든 것을 다 바쳐 달려왔습니다. 다큐에 보면 “객석은 비었지만 음악은 흐르고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코로나 때문에 예배가 멈춰진 것처럼 보이지만, 예배와 복음의 역사는 결코 멈춰질 수가 없지요. 저 또한 총회장은 내려놓았지만 한교총 대표회장 임기 안에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드는데 올인할 것입니다. 아니, 공적사역과 연합사역은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보다 앞으로 제가 달려가야 할 날들은 지금까지 달려온 날들보다 더 눈부신 날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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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객석은 비었지만 음악은 흐르고 있듯이, 복음의 역사도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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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故 조용기 목사님의 사진에 투영된 내 얼굴”
- 저는 총회가 끝나고 하루 이틀이라도 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총회가 끝난 바로 다음날 조용기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가난하고 외로운 신학생 시절 저의 희망의 아이콘이고 아이돌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례위원장으로서 이른 아침 6시 40분에 도착을 해서 이영훈 목사님과 함께 제일 먼저 헌화를 하였습니다. 사실 지난번에 너무 무리를 해서 탈진 직전까지 왔다가 겨우 회복이 되어가는 중에 총회까지 치렀고, 좀 쉬려고 했는데 조 목사님의 조문소를 지켜야했습니다. 첫날부터 저는 12시간 이상씩 서있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정관계 인사들이 올 때는 2-3분씩 앉을 수는 있었지만요. 그리고 둘째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온종일 서 있으니까 발목과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뻐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또 교회로 돌아와서 수요저녁예배와 금요철야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물론 일각에서 부정적 댓글을 다는 분들도 있는걸 봤습니다. 저라고 해서 조 목사님의 공과 과를 왜 모르겠습니까? 등소평 역시 모택동으로부터 모진 핍박을 받았지만 “모택동의 공은 7이고 과는 3이다”라고 말하면서 오늘의 중국을 만드는데 역사적, 정신적 자산으로 삼았지 않습니까? 조 목사님이 쌓아 오신 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불멸의 빛으로 남을 것입니다. 저는 장례위원장으로서 빈소를 지키면서 눈물을 강물처럼 쏟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을 보며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이 “우리의 기도가 부족해서 조 목사님을 천국에 빨리 보냈다”고 하면서 이영훈 목사님께 “조 목사님처럼 젊은 날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제 앞을 지나가면서도 “소 목사님도 건강하셔야 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시고 가시는 것입니다. 옆에 계신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님도 “제가 보면 소 목사님도 꼭 우리 아버지의 젊은 날처럼 무리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소 목사님도 오래 못 사십니다. 목사님도 골프도 하시면서 건강관리를 잘 하세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조문을 하며 애통해 하는 성도들의 눈물 속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역사가 읽혀지고 보여 졌습니다. 조목사님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중 문득 국민일보 창간 31주년 기념예배 때의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그때 조용기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신 후, 저는 축사를 하였습니다. 축사를 하는 순간 연거푸 아멘 소리가 빗발치고 끝나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영훈 목사님께서 통성기도를 인도하셨고 저도 강단에 서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데 누가 제 손을 잡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보니까, 조용기 목사님이 제 손을 목사님의 머리에다 얹으며 안수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소 목사님 같은 패기와 용기 그리고 영력을 다시 회복하고 싶어요. 소목사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세요.” 저는 순간적으로 조 목사님을 꽉 끌어안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조 목사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조 목사님 귀에 대고 큰 소리를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조 목사님이 젊은 날 얼마나 체력을 소진하셨습니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계 최대의 교회로 키우고 5대양 6대주를 다니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온 몸의 진액을 짜내며 희생하셨습니까? 또한 위태로울 한국교회 수십 년 후를 바라보시며 공적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는 대변지 국민일보를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 목사님은 몸을 축을 내고 축을 내셨습니다. 부디, 조 목사님의 수고를 보상해 주시고 건강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청년의 몸과 두뇌와 혀와 기백을 주시옵소서...(중략)” 조 목사님께서도 기도하는 내내 어린아이처럼 제 품에 안겨서 “아멘, 아멘”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동안 정말 제 몸과 마음이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영상에 찍혔고 대부분의 성도들도 역시 그 모습을 다 보았습니다. 그 사진을 보니 조 목사님께서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기도가 부족했는지 결국 조 목사님은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조 목사님은 생전에 저를 그렇게 부러워하였습니다. 저를 보면 옛날 어르신의 젊은 날이 생각이 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 목사님의 영정사진을 보니까 저의 80대의 모습이 미리서 투영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몇 살까지 살며 어떤 모습으로 내 인생을 마감할 것인가” 저는 장례위원장으로서 입관까지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발인예배 때는 제가 조시를 낭독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산리에서 있었던 하관예배까지 다 참석하였습니다. 저는 장례위원장보다는 신학생시절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허기진 배를 안고 조목사님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던 한 사람의 목사로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앞으로 조용기 목사님과 같은 인물은 쉽사리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하관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눈물이 빗방울처럼 쏟아졌습니다. 그 눈물 속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담고 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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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故 조용기 목사님의 사진에 투영된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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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육지에서 멀어질 용기가 없다면...”
- 저는 지난 화요일 경상북도 청송에서 있었던 전국장로회 수련회 개회예배 설교를 하고 올라왔습니다. 개회 예배가 끝날 때까지라도 있어야 했는데 다음 일정 때문에 바로 자리를 떠 장로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그날 저녁 연합기관 통합을 위한 실무모임을 앞두고 있어서 무겁고 먹먹한 마음으로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일을 하면서 정말 제 심장에 무리가 갈 정도로 애가 끊고 힘겨운 순간이 많았거든요. 누군들 이성적으로 냉엄한 현실을 못 보고 분석을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어떻게든지 분열된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어 한국교회 공익과 권익을 지키고자 하는 애정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차로 이동 중 선광현 목사님이 저에게 기독신문에 실린 글을 문자로 보내준 것입니다. 기독신문 이강민 기자가 쓴 ‘소강석 목사 사용 설명서’라는 글이었습니다. 저는 이 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밥 한 끼 사 준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글을 보는 순간 매우 도발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교단의 신문기자가 현직 총회장에게 ‘사용 설명서’라는 표현을 썼으니 말이죠. 그러나 글이 전혀 고루하지 않고 아주 신선했습니다. 글의 진정성이 엿보였고 저의 내면과 사역을 마치 관통하는 듯했습니다. 기자의 글을 요약하면 소강석 목사는 에두르지 않는 직설적 화법이나 에너자이저를 연상케 하는 전방위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 호불호와 논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강석 목사는 그 와중에도 꾸준히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 지도자였다는 것이죠. 신속하게 집행된 목회자 긴급생활비 지원이나 교단역사를 되짚은 갈라콘서트, 한국전쟁 참전용사 행사, 연합기관 통합운동 등이 그런 예라는 것입니다. 저는 내심 누군가가 이런 글을 한 번 써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누구에게 부탁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기자는 아주 객관적이면서도 예리한 통찰력과 신선한 표현력으로 소강석 목사의 사용 설명서라는 주제로 글을 쓴 것입니다. 제가 하도 궁금해 기독신문사 주필 목사님께 “그 분이 어떤 분이냐”고 물어보니까 “그 기자는 오랫동안 편집부에서만 근무하였기 때문에 소총회장께서 잘 몰랐을 것”이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기자의 글처럼 연합기관 통합은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교회 생태계와 성경적 가치관을 지키는 ‘하나된 대응, 원 리더십’을 위한 과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교회 공적 사역을 하면서 총회장이 되기 전부터도 연합기관 통합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낀 사람입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성장기적 상황 속에 있었기 때문에 봉사, 구제만 잘해도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변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반기독교 세력은 문화 막시즘을 앞세우며 반기독교적 입법 운동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치권도 여론을 바탕으로 정치하기 때문에 기독교는 여론을 등에 업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통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고 하이콘셉트를 가지고 정부와 사회에 하이터치를 해야 한국교회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제가 공적 사역을 하고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은 절대로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러니 냉철한 이성적 판단으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향한 뜨거운 가슴과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불필요한 오해까지 받을 수도 있는데요, 물론 이 일을 추진해 왔던 저 자신도 절대로 장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또 한 편으로는 제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연합기관 통합이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일이 이루어진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는 사역의 결과를 이루어내는 일이고, 한국교회에는 방어와 세움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가져다주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혀 모르는 분이, 마치 제 옆에서 오랫동안 사역을 해 왔던 사람인양, 아니 제 마음 속을 들락날락하는 사람처럼 글을 썼으니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아,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까지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처럼 나와 내 사역을 이해하고 관통하는 사람이 있구나.”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육지에서 멀어질 용기가 없다면 새로운 수평선을 향해 나아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제 주변에 안전한 육지에서 멀어질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 새로운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자고 손을 내밀어주는 분들도 늘어가고 있고요. 차가운 머리로 분석하고 냉정하게 판단을 하는 사람이 아닌, 뜨거운 심장과 펄펄 끊는 애정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자고 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들 모두가 이 시대 한국교회를 위한 위대한 사용 설명서의 장본인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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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육지에서 멀어질 용기가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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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오늘 밤도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 K집사님, 요즘 잘 계신가요.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주 오래전, 저에게 상담을 받으러 온 적이 있잖아요. “삶이 너무 힘들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그때 저는 목회 초년병 시절이라 어떻게 상담할 줄도 몰랐고 위로해 줄 주도 몰랐습니다. 그저 믿음으로 인내하라고 권면한 후 기도만 해 드리고 보내드렸죠. 어쩌면 제가 상담심리학 공부를 하게 된 동기도 집사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저도 어렸을 때 가끔 불면증이 있었더라구요. 아버지가 장날에 사탕 사 가지고 오신다고 하셔놓고 빈 손으로 오셔서 “사탕장수가 다 죽어서 그 집 아이들이 울고 있더라”고 하셨을 때 그날 저녁 그 아이들이 얼마나 불쌍하게 느껴졌는지 잠을 못 이루었지요. 아니, 글짓기대회나 웅변대회를 앞두고도 잠을 설쳤지요. 그런데 요즘 따라집사님 생각이 많이 떠오릅니다. 지금의 저라면 당신의 아픔을 보듬고 눈물을 닦아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난날 집사님을 대했던 모습이 어설프고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때 저도 토요일이면 잠 못 이루는 밤을 허다하게 보냈는데 왜 그때 솔직하게 그런 말을 못했는지 모르겠네요. 개척교회 시절 토요일이 되면 강단에서 설교 연습을 하고 빈 의자에 사람 좀 앉혀달라고 기도를 하였지요. 그리고 나면 주일날 교회 온다던 사람들이 올까 안 올까하는 가슴 조아림 때문에 잠을 많이 못 잤어요. 또 제 마음을 뒤집어놓고 떠난 성도가 있으면 그때는 며칠이고 잠을 못 이루었지요. 그때 제가 그런 이야기라도 했으면 서로 삶의 아픔을 공감이라도 했을텐데요. 물론 제가 보통 때는 한 번 잠에 골아 떨어지면 깨워도 못 일어난 것도 사실입니다. 혹여 잠이 안 오더라도 재미 없는 책을 읽다보면 언제 골아 떨어졌는지 몰랐죠. 비행기를 타도 도착지에 착륙할 떄까지 잠에 취해 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가 집사님 입장이 되어 버렸어요. 요즘 제가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거든요. 개척교회 때부터 있었던 토요일 밤의 긴장은 더 증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코로나로 예배가 초토화 되면서 더 그럴테지요. 그리고 한국교회 공적 사역과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불면의 밤과의 전쟁이 평일까지 확대 되곤합니다. 집사님, 그날 밤을 기억하시는지요. 제가 양이 안 차서 집사님이 교회를 떠난다고 할 때 집사람과 제가 집사님 집에 심방을 갔었지요. 그리고 집사님 부부 앞에 무릎 꿇고 눈물 흘려 기도하다가 이런 노래를 부른 게 기억나시나요.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 그래서 그때 집사님은 차마 교회를 떠나지는 못하셨지요. 우리 교회가 분당으로 올 때 자연스럽게 가락동에 남긴 하였지만요. 그런데 훗날 집사님 부부가 결국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왜 그런지 내 머릿속에 K집사님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물론 K집사님과 저 말고도 코로나가 깊어지는 오늘 같은 밤일수록 더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K집사님과 잠 못 이루는 많은 분들에게 연서를 보내고 싶습니다. 당연히 밤이 되면 자야 하지만 여러 가지 일로 인하여서 잠들지 못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긴 예수님도 밤을 새워 기도하셨고, 성경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밤에 씨름을 하였습니까? 누군가를 사랑하여, 무엇인가 해야 할 사명 때문에, 아니, 우리가 꼭 걸어가야 할 가파른 길이 있어 마음 아파 잠 못 이룬다면, 서로 초연결적 위로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파하는 것이고,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고뇌의 밤을 겪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집사님, 밤하늘을 쳐다보세요. 하늘에도 잠 못 드는 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우리 가슴 속에도 별들이 반짝이고 있음을요. 아브라함도 그 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희망도 가졌지만, 수많은 고통스런 밤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하갈, 이스마엘, 사라와 얽히고 설킨 일 때문이었겠죠. 그러나 결국은 그 수많은 별들은 아브라함이 가슴으로 품게 되었고 이삭을 통해서 별처럼 수많은 후손을 이루게 된 것이 아닙니까? 오늘 이 밤도 잠 못 이루는 당신들이여, 별을 바라보세요. 별이 되어 보세요. 우리 모두가 불면의 밤에 별이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아름다운 은하수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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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오늘 밤도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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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길이 아니어도 가야할 길이 있지 않은가요”
- 주님, 코로나의 폭풍에 부러진 갈대들이 보이시나요. 꺼져가는 등불 아래서 흐느껴 우는 남루한 영혼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신가요. 차가운 달빛에 길 잃고 쓰러진 겨울의 들판, 갈대들의 신음소리가 아우성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밤은 절망과 우울, 분노와 회의의 검은 사신들을 보내어 도시의 성벽을 허물고 있습니다. 아니, 영혼의 화원들을 짓이기며 찔레와 엉겅퀴로 가득한 폐허의 도성으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주여, 언제까지 입니까? 어느 때에야 햇살 눈부신 아침이 오는 것입니까? 아직도 닭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정적의 밤, 여전히 코로나의 어둠은 자욱하고 한국교회는 찢기고 상하여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끝없이 밀려오는 반기독교적 악법을 막아내기에도 점점 힘겹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아직도 하나 되지 못한 채 분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희는 언제까지 연합하지 못하고 기존의 성만 수성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길이 없다고 말하면서 성 밖을 나서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 그 길을 가면 가시에 찔리고 엉겅퀴에 상하고 목마름에 쓰러질 것이라고 말하며 아예 길을 나서려고도 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러나 길이 아니어도 가야 할 길이 있고 길이어도 가지 않아야 할 길이 있습니다. 연합의 길은 아무리 멀고 험해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고 분열의 길은 아무리 편하고 좋아보여도 가지 말아야 할 길입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분열의 길을 선택했고 성을 쌓은 채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는 그 성문을 열고 나와 비록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가야 할 연합의 길을 걷게하여 주옵소서. 저는 이 길을 열기 위하여 지금까지 온 몸으로 부닥치며 걸어왔습니다. 분열하기는 너무나 쉬웠지만 하나로 만드는 것이 이토록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래서 저도 포기하고 싶고 의문과 회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과연 이 길이 맞는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지쳐 쓰려지고 잠 못 드는 불면의 밤을 지새울 때도 많았습니다. 만약에 저 개인적인 업적이나 공적에 대한 사욕 때문에 여는 길이라면 당장에 멈추게 해 달라고 눈물의 기도를 얼마나 많이 드렸습니까? 그때마다 주님은 단 한 번도 부정적인 시그널을 보여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드온처럼 다시 한 번 감히 여쭙습니다. 이것마저도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라면 포기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가야 할 길이라고 명령하시면 길이 없어도 그 길을 가겠습니다. 그 외롭고 고독한 황야에서 차가운 이슬에 젖고, 별빛에 기대어 잠드는 밤을 보낼지라도, 저는 한국교회 연합의 새 길을 열기 위하여 기꺼이 그 길을 가겠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주님이 인도하셨고, 성령님의 부축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걸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따라 제가 더 지쳐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때로는 심장이 조이고 숨 쉬기도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침내, 첫 걸음을 내딛는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막, 한국교회 연합이라는 호가 출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그 어떠한 풍랑과 파도도 헤쳐 나갈 수 있는 동력을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역사의 새 길을 열어가게 하옵소서. 다른 생각과 다른 주장들도 마침내 어둔 밤을 비추는 별빛이 되게 하시고 흐린 별이라 하더라도 아침의 태양으로 떠오르게하소서. 한국교회가 하나 되면 코로나의 잔인한 겨울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코로나를 아웃시키고 풀잎이 돋아나는 봄의 들녘에서 흩어진 갈대들이 붉은 심장의 꽃으로 다시 만나는 환희의 계절이 다가오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 다시 한 번 간구합니다. 저희 스스로 차갑게 손 놓아 버린 분열의 밤을 쫓아내버리고 다시 하나 되는 눈부신 아침이 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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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길이 아니어도 가야할 길이 있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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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사랑하지 않으면 외로움도 없지요”
- 일반적으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분석하고 비판하고 답을 찾는 사람입니다. 이 역시 위대한 재능을 갖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리더를 세우고 섬기는 참모 역할은 할지언정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지도자가 되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대신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톱 리더가 된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감이란 틀린 것까지 옳다고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참모들의 분석과 대안을 이해하고 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넓은 그릇과 아량으로 품으며 더 낳은 해결의 실마리와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회 전 분야를 보면 정말 분석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만 있지 공감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공감해주고 어루만져 주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시적인 현상들을 보면 다 자기만 옳고 정답이라고 주장하며 남을 비판할 뿐, 공감해 주는 논객들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분석과 비판을 넘어서 공감해주고 이해하며 하나로 만들어주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음악’이라고 하는 영역인 것 같습니다. 음악 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가 됩니다. 특별히 영국은 음악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왕궁에서 음악회를 열면 여야의 모든 정치인들을 다 초청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야가 극한의 대립을 하다가도 함께했던 음악회를 생각하며 극적 하모니를 이루어낸다는 것이죠. 하물며 복음을 가지고 거룩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한국교회이겠습니까? 따라서 한국교회는 더 위대한 하모니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는 언제부턴가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풍토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서로의 발전을 위하여 쓴 소리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모니요, 세움입니다. 공격 받는 대상은 앞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지도자는 일일이 대꾸를 하거나 대응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소모적 낭비보다는 생산적인 소비를 함으로써 오히려 더 새로운 언어를 던지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에게는 지도자만이 겪어야 하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저는 금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결정에 많은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자유와 인권의 문제 뿐만 아니라 종교사적 중대한 기점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시점에서 너무 쉽고 성급하게 결정해 버린 것이 아닙니까? 대통령이 휴가지에서 반팔 티셔츠를 입고 인터뷰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이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고 총살을 당하고, 핸드폰에 성경 어플만 깔려 있어도 사살을 당하는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좀 더 심각하고 비장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바이든의 그 외롭고 고독하며 비장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서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닥칠 비극과 재앙에 대해서 전혀 공감하지도 않고 심각성을 느끼지도 않는 듯한 모습이 정말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지도자는 공감도 잘해야 하지만 동시에 외로움도 느껴야 합니다. 지도자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보다는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외로움을 느껴야 합니다. 진정한 외로움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누군가를 배려하지 않은 채 내 멋대로 결정해 버리면 외로울 필요가 없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건, 멀리 있는 사람이건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워하고 고독을 느끼는 것이죠. 저 역시 ‘2021 장년 여름 초연결기도회’를 앞두고 많은 외로움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지요. 저를 믿고 기대하고 있는 성도들을 더 없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런 외로움과 싸울 이유도 없지요. 또한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어떻게든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몸부림치다 보니까 외로운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더 깊은 영적 행복을 주고 한국교회를 더 견고하게 세우는 일을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기꺼이 외로운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제가 한없이 외로운 사람이 될 테니까 부디 새에덴 성도들이여, 이번 주에 있을 초연결기도회를 통해서 한없이 은혜와 감동을 받으세요. 제가 한없이 고독한 길을 걸어갈 테니, 부디 한국교회가 하나되고 견고하게 세워지기를 바라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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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사랑하지 않으면 외로움도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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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대, 사랑의 증폭자, 화해의 확장자”
- 저희 교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인데요, 저의 개척 시절은 정말 처절했습니다. 개척 멤버 한 명 없이 맨손, 맨몸으로 맨땅에서 시작하여 오직 불타는 소명감 하나로 온 몸을 바쳐 영혼 구원을 위해 뛰었습니다. 가락동 23평 지하상가에서 교회를 시작하여 교인 한 명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제가 교회 전도지를 돌리기 위해 새벽에 신문 배달까지 하며 뛰고 또 뛰었겠습니까? 그야말로 처절한 맨발의 소명자의 절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우리 교회 바로 앞 사거리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버스가 와서 성도들을 다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한 명이라도 전도하기 위해 밤낮으로 몸부림치고 있는데 대형교회 버스가 가락동까지 와서 사람들을 다 데려가 버리니 너무 허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저는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왜냐면 제가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무등산기도원에서 조용기 목사님을 마음속 아이돌로 삼고 기도하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버스를 향하여 축복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꾸었습니다. 또 분당 정자동으로 왔을 때는 교회 바로 앞에 명성교회 버스가 와서 성도들을 가득 채워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단 한 마디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명성교회가 더 부흥하여 한국교회와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조용기 목사님에 대한 부정적 루머와 김삼환 목사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마음에 새겨놓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모습만 보며 저도 귀하게 쓰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어느새 한 시대를 위해서 쓰임 받는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요즘 ‘인포데믹(infodemic)’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을 조합하여 만든 신조어인데, 잘못된 정보가 미디어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가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키는 ‘정보 전염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일 나쁜 사람은 거짓 정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의 잘못된 정보에 전염되어서 퍼나르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고요. 이 분들은 의식구조가 선택적 지각이나 확증편향에 빠져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합니다. 자기만 교회를 사랑하는 것처럼, 정의를 외치지만 사람들 사이에 미움과 증오, 분노와 파괴를 증폭시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사랑과 용서를 증폭시키고 화해와 평화를 확장시키는 종교입니다. 아니, 사랑과 정의가 입맞추게 하는 종교지요. 그런데 왜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달리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고 분열과 파괴에 앞장서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우군끼리도 조소와 비난의 총질을 끊임없이 합니다. 그것이 한국교회의 이미지에 상처를 입히는 일인데 말입니다. 저도 누구 못지않게 정의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길을 가다가도 싸우는 걸 보면 끝까지 말리고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몇 계단만 올라가도 온도가 다르고 공기가 다르고 풍경이 다릅니다. 하물며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면 바람의 온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사방 전체가 다 보이게 되지요.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비판을 하면 그 비판으로 다시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려고 하지 말고 우리 눈 속에서 있는 들보부터 빼어야 한다”고 하셨지요.(마7:1-5) 예수님께서는 모든 미움과 증오, 파괴를 멈추고 사랑과 용서, 섬김으로 세움의 역사를 일으키신 분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진정한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지금 우리는 남을 비판하고 총질하는 ‘냉장고 언어’를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남의 가슴도 따뜻하게 하는 ‘화덕 언어’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세움입니다.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데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방법이 다르다고 서로 증오하고 분노를 부추겨서는 안 됩니다. 파괴에 앞장서서도 안 됩니다. 사랑과 섬김의 자세, 화덕의 언어로 서로가 서로를 세워가야지요. 비록 우리의 삶의 터전이 사막 같을지라도, 우리가 꽃밭여행자만 된다면 사막을 푸른 숲으로,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이런 닉네임을 선물하고자 합니다. 그대는 ‘사랑의 증폭자’, ‘화해의 확장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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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대, 사랑의 증폭자, 화해의 확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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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도 여전히 저항하고 있습니다”
- 제가 쓴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3’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동선을 잃었다 아침마다 핸드폰에 뜨는 확진자 문자 누군가의 동선 매일 우리의 식탁에는 불안과 우울, 의심과 회의가 오른다 혼자 있고 싶은 외로움마저 통제하는 낭만과 방랑의 소멸 사회 밤 11시 산에 오른다 그 누구도 나의 동선을 추적할 수 없는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 이 시는 코로나로 인해 일상의 자유와 관계마저 통제 받아야 하는 시대를 향한 정서적 저항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끊임없이 방역본부와 소통하고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정부에 협조적인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교단에한 어른이 계시는데 이 분이 걸핏하면 “소 총회장 뭐하느냐, 정부와 좀 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어르신, 제가 싸울 테니까 어르신이 대신 가서 협상하세요. 그렇게 해 주시면 제가 당장 피켓 들고 나가겠습니다.” 그랬더니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나도 화가 나서 그런 거지...”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해 온 사역을 설명 드렸더니 나중에는 오히려 그 분이 제 팬이 되셨습니다. 그 후론 다른 사람이 저를 공격하면 오히려 “소 총회장이 지금까지 한국교회 공적 사역을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해 왔는데 당신들이 그런 고충과 노력을 알기나 하느냐”고 대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코로나 상황에서 누군들 저항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최근에 와서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 하지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저항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주나 상해로 가서 직접 몸을 바쳐 독립투사가 되기도 하고, 윤동주 같은 시인은 심미적 저항시를 썼습니다. 저 역시 합동 총회장이나 한교총 대표회장이 아니면 모르겠지만 어차피 방역본부와 대화 채널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잘못된 방역대책에 반대하고 저항하면서도 계속 소통하고 합의점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4차 대유행만 아니었다면 거의 50% 가까이 한국교회의 예배를 회복할 수 있는 협상의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일 1800명, 1900여명에 달하는 확진자들이 나오면서 무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럴지라도 저는 제 위치를 지키면서 교회의 내적, 외적 결집력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생산적 저항, 전략적 저항, 미래적 저항의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방역 4단계로 예배 인원이 20명 이내로 제한되자, 바로 그 주부터 예배를 총 7번 드렸습니다. 예배마다 1000여명의 성도들이 화상줌과 라이브 톡으로 참석하였고 유튜브는 평균 4천~5천여 명의 성도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모든 예배를 제가 직접 인도했습니다. 사실 유튜브로 예배를 송출하면 두세 번만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화상줌을 통해서 한 성도라도 더 ‘페이스 투 페이스’를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4주 연속 특별새벽기도회와 특별저녁기도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코로나의 심각성과 위기감을 알기 때문에 온 성도들을 더 강력하게 묶고 거룩한 부족공동체, 초연결 슈퍼 처치를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제가 작년에 핸드폰 문자를 확인 못한 것이 1600개 정도 됩니다. 작년 연말에 핸드폰을 교체해서 올해 1월부터 온 문자 중에 읽지 못한 것이 900개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 읽어봤는데 불특정 다수로부터 오는 문자는 거의 보지 않습니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문자를 보면 분노가 생기고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평정심을 잃고 돌아오지 못할 과격한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익스트림하게 나가는 사람은 잠시의 포퓰리즘은 일으킬 수 있지만 시대를 바꾸거나 시대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 자제하고 컨트롤을 하면서 저의 위치에서 저항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산토기 잡으려다 집토끼를 잃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의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4주 연속 7번의 주일예배와 특별새벽집회, 저녁집회를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와 우리 교회가 보여준 생산적, 전략적, 미래적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정부의 일방적 방역대책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항을 하더라도 생산적, 전략적, 미래적 저항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면 어느 교회가 가장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부흥하며 시대를 선도하게 될지 역사가 말 해 줄 것입니다. 결코 아군끼리 서로 총질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이어령 교수님의 말처럼, 우리는 END가 아니라 스토리와 다양한 간증을 머금은 꽃봉오리 하나를 피워야 합니다. 코로나의 폐허 위에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라는 꽃봉오리 하나를 피워내는 것도 더 아름다운 저항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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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도 여전히 저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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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바람이 불면 불꽃은 더 타오른다
- 지난번에 코로나19, 4차 대유행에 따른 방역대책 논의를 위해서 총리실에 갔을 때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저는 정부의 일방적, 획일적 방역조치에 강력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특별히 천주교 이용훈 주교회의 의장님께서 같은 의견을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중대형교회 같은 경우는 100명이내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어느 정도 협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무 협의에 참여를 한 한교총 사무총장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이번 주에는 본당에 19명을 유지하되 다만 가용 가능한 공간별로 19명 이내로 더 드릴 수 있도록 협의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다음 주부터는 5% 이내로 드릴 수 있도록 세분화된 방역 조치를 발표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제가 그 전화를 받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누구보다 국민 보건을 위해서 정부의 방역에 협조하고 교회도 국민적 고통을 나누며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교회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배려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좀 더 유연한 조치를 하기로 했으면 다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조치라도 해 줬어야 하는데 다른 공간에만 들어갈 수 있도록 약간의 조치밖에 안 해 준 것입니다. 이런 방역 회의 결과를 몇몇 총회장님들께 알리니까 그 분들이 저에게 항의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화가 나서 주무 장관님께 전화로 강력하게 항의를 하니까 출국 전이라 공항에서 전화를 받으시며 오히려 장관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 자신도 이해가 잘 안 가는데 목사님은 얼마나 화가 나십니까? 다음에는 반드시 완화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날 저녁에 너무 화가 나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항의를 해 온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도 개교회 목사라면 얼마든지 저만의 길을 갈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섬기는 대표자로서 한 번 판단을 잘못해 버리면 한국교회 전체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고 국민적 저항과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게 됩니다. 그래서 저도 매우 섭섭하고 분하지만 어쩔 수 없이 국민의 눈높이와 정서를 살피며 방역본부와 협의를 하는 것입니다. 원하시면 제 자리를 양보할 테니까 저를 대신해서 역량을 발휘해 보시겠습니까?” 그랬더니 이튿날 그분들로 부터 이런 격려 전화 및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사실 우리도 교단 목사님들로부터 항의를 받다보니 그랬습니다. 소 총회장님이 열심히 하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이번에 정부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조치는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무조건 현장예배를 강행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철저하게 방역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는데 너무 일방적이고 획일적으로 방역조치를 하는 것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됩니다. 법원에서는 오히려 한국교회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저도 그 분들의 말씀에 백번 찬성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방역조치를 거부하고 우리만의 길을 가버린다면 사회적 비난과 부정적 여론의 역풍을 맞고 더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삼국지에서도 보면 싸움도 못하는 장수들이 전략도 없이 전공을 세우려고 함부로 나섰다가 오히려 자신도 죽고 패전을 하게 하는 빌미를 주었지 않습니까? 다음날 몇몇 대형교회 목사님들과도 전화로 논의를 했더니 “지금까지 잘 해 왔는데 조금만 더 인내를 합시다. 한 주 더 연장된다고 끝난 것은 아니니까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 어떤 중형교회 목사님은 “그나마 이번 주에는 70명이라도 예배를 드리게 되었네요. 총회장님 덕분입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위로인지 비웃음인지 분간이 안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거의 1900명에 육박한 것입니다. 또 한 번 뒤통수를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음 주에는 더 완화된 조치가 나올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원망하고 불평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엑시트라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암흑의 상태에서도 새로운 길을 찾는 ‘루트 파인딩’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어령 교수님께서도 삶은 END가 아니라 새로운 꽃봉오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바람이 불면 불꽃은 더 활활 타오릅니다.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더 강력한 부족공동체의 불을 타오르게 하며 주님의 제단에 꽃봉오리 하나를 피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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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바람이 불면 불꽃은 더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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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외로운가요? 헬퍼스 하이를 경험해보세요”
- “지금 외로우신가요?” “요즘 같은 때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외롭다 못해 우울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사람과 주고 받은 대화를 요약한 것입니다. 코로나 상황은 우리를 자꾸 외로운 분위기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반달리즘을 몰고 왔고 공동체를 여지없이 와해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가족도 예전만큼 유대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 수도권의 상황은 더 그렇습니다. 외로움은 여러모로 폐해가 많다고 합니다. 혈압이 상승 되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며 일반인들에 비해 조기사망 가능성이 26%나 높다고 합니다. 또한 이 외로움은 우울증으로 가는 뇌 회로를 활성화 시켜 줍니다. 더욱이 이 외로움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이죠. 오죽하면 영국에서는 외로움 장관을 세웠을까요? 이러한 외로움의 속성과 분위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영국의 작가 다니엘 튜더는 스스로 고독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유대관계를 맺으라고 제안합니다. 외로울수록 누군가를 만나고 좋은 공동체에 들어가서 소속감을 가져야된다는 겁니다. 저는 그 글을 읽고 외로움을 극복하게 하고 이기게 하는 가장 좋은 공동체가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교회를 비방하고 혐오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 생활의 맛을 보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저희 교회 같은 경우는 일단 와 보면 훈훈한 분위기를 경험하고 따뜻한 사랑과 섬김의 냄새를 맡습니다. 그 냄새를 맡은 사람은 스스로 소속감을 갖고 유대의 차원을 높이며 거룩한 부족공동체의 응집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공동체에서도 자원봉사나 자선행위를 하면 유대의 질을 높이고 뇌에서 옥시토신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치매를 막을 뿐 아니라 ‘헬퍼스 하이’ 즉 정서적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교회이겠습니까?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부족공동체를 경험하고 오토텔릭, 즉 자원제를 드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그 공동체를 위해 섬기고 헌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룩한 헬퍼스 하이, 즉 영혼의 포만감과 황홀감을 느끼게 되지요. 저는 목회자로서 이런 거룩한 헬퍼스 하이를 누리고 살아갑니다. 저는 전혀 외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언제나 관계적인 삶을 살고 부족공동체의 한 중앙에서 일종의 추장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도자로서의 고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장서서 일을 하면 반드시 외롭고 고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비난과 공격을 받을 때도 있어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마저 이해하고 품어버립니다. 그럴 때 고도의 헬퍼스 하이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목회자이지만 문학예술 영역에 젖어들면 예술적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일전에 제가 존경하는 이어령 전 장관님께서 전화로 제게 이런 칭찬을 하시더라고요. “소 목사님은 교계활동과 사회활동도 많이 하지만, 문학을 하고 시를 쓰고 예술적 감성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창의적 상상력을 가지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문학과 예술, 시와 음악의 영역에 들어가면 깊은 고독을 느낍니다. 그 고독이 있어야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하이터치(공감능력)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외로움을 느낄 때는 다니엘 튜더의 제안대로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유대를 하고 대화하며 소통할 때 정서적 행복감이 찾아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자선을 베푸는 것은 더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교적 문학적 예술적 감성이 통하는 선광현 목사님, 박주옥 목사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작은 인정도 베풉니다. 왜냐면 그것이 헬퍼스 하이를 누리는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과는 달리 우리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하고 위대한 유대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직적으로는 주님과 유대를 맺는 것이고, 수평적으로는 교회 안에서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주님께 더 깊이 나아가고 주님과 더 친밀하고 은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감동이 올 때는 언제나 자원제를 드리고 특별한 헌신을 합니다. 또한 교회에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를 이루고 내가 먼저 섬기고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삽니다. 그럴 때 절대적 헬퍼스 하이를 누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슨 외로움이 있을까요? 무슨 우울함이 있겠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번 중대본의 획일적인 비대면 예배 발표는 너무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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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외로운가요? 헬퍼스 하이를 경험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