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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직도 슬라이딩은 남아 있습니다”
- 언젠가 강단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생각할수록 임종웅 선교사님께 송구한 마음이 들곤합니다. 제가 광주신학교 다닐 때 해태타이거즈 붐이 엄청났습니다. 그때 임종웅 선교사님이 “무등경기장에 프로야구를 한 번 보러 가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신학생이 그럴 시간에 성경 보고 기도를 해야지 무슨 프로야구를 보러 갑니까?” 저는 그때 당시에 오로지 영적인 면만 생각했지, 일반 은총 영역에서의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로지 기도만 하고 성경만 봐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중견 목회자가 되었고, 대중을 움직이려면 인문학적 소양과 문화예술적 감성, 심지어는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왜냐면 대중이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감성을 갖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말 그릇을 키우는 것이죠. 김윤나 씨가 쓴 <말 그릇>이라는 책에 보면 말 그릇이 큰 사람은 사람들에게 평안함을 주고 안정감을 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분들로부터 마음의 그릇도 크지만, 말 그릇이 크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사실 저도 신학교 들어가기 전에 정말 야구를 좋아했습니다. 야구장을 안 가도 라디오로 야구 중계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때 군산상고, 선린상고, 광주일고, 경남고 등 고교 야구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군산상고에 가장 애착을 가졌습니다. 특히 군산상고는 황금사자기, 봉황기대회 등에서 경기에 지고 있다가 마지막에 극적으로 역전승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라는 닉네임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야구에서는 역전 홈런이 가장 큰 희열이고 짜릿한 황홀함을 가져다줍니다. 그 맛으로 야구를 보는 거죠. 그런데 역전 홈런 못지않게 관중들을 스릴과 서스펜스, 엑스타시로 이끄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슬라이딩 점수입니다. 야구는 선수가 1루, 2루, 3루를 거쳐서 홈으로 들어오면 1점이 나는 경기입니다. 그런데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극적인 점수가 바로 슬라이딩으로 따는 점수입니다. 여유가 있으면 선수가 그냥 편하게 걸어서 홈으로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선수가 정말 죽기 살기로 홈으로 달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죽기 살기로 달려도 안 될 것 같을 때 선수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슬라이딩입니다. 발이 먼저 닿든지, 엎어져서 손이 닿든지 죽어라 뛰다가 마지막에 슬라이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중들은 그냥 걸어서 들어오는 점수보다,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달려와 마지막에 슬라이딩으로 따는 점수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냅니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져서 슬라이딩을 하는 선수의 투혼에 박수를 보내며 열광하는 것입니다. 걸어서 들어오나, 달려서 들어오나, 슬라이딩으로 들어오나 같은 1점이긴 하지만, 가장 감동적이고 열광적인 점수는 슬라이딩으로 얻은 점수입니다. 저도 한 해를 돌이켜 보니까 슬라이딩의 은혜와 축복이 너무 많았습니다. 코로나 초기에 확진자와 차를 마신 안수집사님 부부 때문에 마음을 조리고, 자녀들이 확진이 된 여전도사님 때문에 애태우고, 확진자와 같이 식사까지 했던 부목사님...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 지켜주셔서 음성이 나오게 하시고 우리 교회를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최근에 저도 어느 단체에 설교를 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너무 바빠 사정을 하고 양해를 구해 다른 분이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설교 하러 간 분이 하필이면 그 기관의 대표가 확진자여서 설교자도 코로나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설교를 하러 갔었다면 그분과 악수하고 대화를 하는 순간에 확진이 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제게는 이것도 슬라이딩의 은혜로 느껴졌습니다. 특별히 제가 올해 한국교회 공적 사역과 연합기관 통합 사역을 하면서 아직 100%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진짜 슬라이딩의 순간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습니다. 물리적 연합을 추구했다면 이미 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연합도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 아우르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진행해 갈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볼때 전도도 그렇고, 예배 회복도 그렇고, 재정 부분도 그렇고 슬라이딩의 은혜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직도 슬라이딩 은혜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역전할 수 있는 슬라이딩이 남아 있습니다. 저 역시 연합기관 통합사역이 완전히 물 건너간 줄 알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슬라이딩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제 겨우 2주간의 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우리도 마지막까지 슬라이딩의 은혜를 기대해야 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려도 안 되면 마지막 슬라이딩을 해서라도 반드시 역전의 은혜, 승리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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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직도 슬라이딩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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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젯밤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 제가 초창기에 쓴 시들을 묶어서 나온 첫 시집이 ‘어젯밤 꿈을 꾸었습니다’ 였습니다. 그때 시들은 처녀작들이고 문학성과 예술성이 조금 부족한 때라 시심과 신앙심이 서로 만나서 썼던 시들입니다. 그래도 영은출판사를 운영하시던 이탄 시인이 제 원고를 보더니 “아직은 덜 다듬어졌고 덜 성숙되었지만 시심 하나는 깨끗하고 계속 시를 쓰면 끝없이 발전할 것같다”고 하면서 기꺼이 시집을 내 주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작이 ‘어젯밤 꿈을 꾸었습니다’입니다. 사실 이 제목 자체가 시지요. “어젯밤 꿈엔 섧디섧게 울었습니다 / 참으로 억울하고 원통해서 / 엉엉 울어댔습니다 / 타 문화권에서 / 선교활동을 하다가 / 수류탄 파편에 맞아 죽어 돌아온 / 한 선교사의 시신을 보고서 말입니다 / 경상도 어느 외딴 섬에서 / 당신의 품안에 그분을 안겨 드리며 / 온몸이 부서진 시신을 보고 / 저는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 내가 저렇게 죽어야 했는데 / 내가 먼저 순교하여 / 하늘나라의 영광을 차지해야 하는데 / 내가 저렇게 조각난 주검이 되어 /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하는데 / 왜 나는 저 기회를 빼앗겼을까 / 나는 무엇을 하다 / 저 영광을 놓치고 말았을까 / 내가 그여야 하는 걸 / 하늘 영광은 주검을 덮습니다 / 그의 주검은 / 육신 온전한 내 몸뚱이보다 아름다웠습니다 / 그래서 저는 / 섧디섧게 울었습니다 / 일찍이 저에게 / 홀로서기를 연단시켜서 / 험한 세상 잘 이기며 / 사명 잘 감당하는 / 고고한 한 그루의 소나무로 남아 있게 하신 / 당신 뜻이 고마운 줄 알면서도 / 어젯밤 꿈에는 왠지 섧기만 했습니다 / 당신 만날 새벽에 / 꿈에서 깨었을 땐 / 그 짜디짠 눈물이 / 귓속까지 고여 있었습니다 / 어느덧 익어 가는 세월 속에서 / 이제 저도 조금씩 당신을 닮아가고 / 한 걸음 한 걸음 / 당신 계신 / 영원한 본향에 이를 때가 / 가까움을 느낍니다...(하략) 이 시는 프라미스 콤플렉스 건축을 앞두고 설계를 하던 때에 지은 시입니다. 시가 평범한 것 같지만 시적 화자는 이슬람권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수류탄 파편에 맞아 죽은 선교사의 시신을 보고 원통하고 억울해서 엉엉 울었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선교사의 죽음이 원통하고 억울하다고만 하면 산문이지요. 참으로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이 선교사의 죽음이 아니라 시적 화자의 순교였습니다. 그의 순교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너무나 부러워서 엉엉 울어댄 것이죠. 시적 화자의 소원은 “내가 저렇게 죽어야 하는데 - 내가 먼저 순교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차지해야 하는데...”에서 보듯이 순교였습니다.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시적 화자의 소원이었던 것이죠. 시적 화자는 양떼를 관리하며 큰 교회당 건축을 준비하고 있는 목회자였기에 현실적으로 이슬람권의 선교사로 가서 죽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왜 그토록 섧디섧게 울었을까요? 그것은 순교를 갈망하는 속마음을 꿈이라는 도구를 통해 하나님께 보여드려진 것 이죠.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교회당 건축을 준비하는 시적 화자가 어떻게 반응하나 보시려고 꿈을 통해 선교사의 죽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시적 화자는 꿈속에서 너무나 억울하고 부러워서 엉엉 울었던 것이지요. 이런 시는 목사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시일 것입니다. 제가 시인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끝났겠지만, 목사이자 시인이었기 때문에 꿈속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시로서 형상화한 것이죠. 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꿈 이야기를 했다면 감동을 주더라도 산문적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문적이 아닌 시의 형식을 통해 고백한 시이기에 시적 화자의 따뜻한 숨결, 아니 제사장적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시의 말미에는 고백을 넘어 예언자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도 이 시를 생각하곤 합니다. “나의 마음은 얼마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져 있고 친밀한가. 그리고 지금도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마다 내 가슴은 얼마나 뜨겁고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가.” 제가 최근에 정말 생시와 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잖아요. 이 꿈은 그냥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연합사역과 공적사역과 관련된 정확한 상징, 이미지를 통해서 예시를 해준 꿈이었지요. 그 꿈이 요즘 상황에 너무너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아직도 나는 꿈의 사람이구나, 내 영성은 죽지 않았고 세속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도 저는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꿈을 꾸기를 원하며 그 꿈이 저의 시와 노래와 사역으로 연결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계시나요? 꿈속에서 이따금씩 하나님의 시그널을 받고 하나님의 체온과 숨결을 느끼고 계신가요? 어젯밤 토요일에도 주일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 만나는 꿈을 꾸셨나요? 벧엘에서 잠을 자다 꿈속에서 사닥다리를 보았던 야곱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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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젯밤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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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순수시대는 멈추지 않습니다”
- 저는 총회장이 되기 전부터도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순수시대를 꿈꾸었습니다. 원래 개척교회 시절에도 저는 속 썩이는 성도들에게 항상 순애보적 사랑을 했습니다. 오죽하면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떠나겠다는 한 부부 집에 심방을 가서 눈물로 기도한 후 이런 노래를 불렀겠습니까?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 또한 매주 발행되는 주보 칼럼에도 성도들을 향한 순애보적 칼럼을 많이 썼습니다. 최근에 와서는 공적 사역을 하면서 한국교회를 향해 순수시대를 열어가자고 하는 눈물 젖은 연서도 많이 썼습니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흩어져 있는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사실 각 기관의 운영을 위해서는 통합을 안 하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그리고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보지 않고 교회 생태계를 바라보는 안목이 없는 사람은 연합의 중요성을 모릅니다. 저는 일찍이 이슬람 수쿠크법, 차별금지법, 종교인과세 등 교회 생태계를 위협하는 입법들이 발의 될 때마다 맨 앞에서 막았습니다. 지난주 월요일 ‘한국교회 연합과 비전의 밤’ 때 공로상을 드린 분들이 저를 깨우쳐 주셨거나 저와 함께 일을 한 분들입니다. 그들은 착하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위대한 일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일찍이 짐 콜린스는 ‘Good to Great’(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을 썼지 않습니까?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5년에 걸쳐 2천여 명의 심층 인터뷰와 6천여 관련 논문을 보며 20년 동안 살아남은 기업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였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그런대로 좋은 삶에 만족하며 그 너머의 위대한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되었다’하고 스스로 안위함을 얻으며 위대한 삶을 미리서 포기하더라는 것이죠. 짐 콜린스는 그 책에서 유명한 교훈을 남깁니다. “Good is the enemy of Great”(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 좋은 것에 취해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하지 않다가 쇠퇴를 하거나 망하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나라에도 한때 유명한 성공신화를 이루었던 기업들 중 현재 경제무대에서 사라진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 기업의 경영주 역시 “이만하면 됐어”하며 좋은 것에서 위대한 것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항상 좋은 것에 머무르지 않고 위대한 것으로 나아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입니다. 사실 저희 교회도 아주 좋은 교회입니다. 정말 “이만하면 됐다” 싶을 정도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와도 바로 물리쳐버립니다. 코로나가 왔을 때에도 정부의 방역정책을 핑계 삼아 얼마든지 쉬는 기회를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부의 방역정책보다 더 앞선 지혜를 발휘하고 하이브리드 처치와 플랫폼 처치를 열어가는 패스파인더(pathfinder)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대통합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누구도 엄두내지 못하고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때에, 저는 이 일을 8부, 9부 능선까지 이끌어왔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열정보다 순수시대를 추구하는 저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면서 부터였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겉으로는 찬성하는 듯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연합을 반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문화막시즘과 네오막시즘을 막아내고 반기독교 악법의 입법을 차단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대로가 좋고 지금이 좋다고 생각하면 더 위대한 미래의 세계를 볼 수가 없습니다. 문화막시즘의 쓰나미가 거대하게 밀려올 때 큰 둑을 막지 못하면 그때부터는 우리끼리 배를 만들어 신앙을 지키는데 급급한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제가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자는 위대한 세계의 사역을 제안하였고, 우생순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선수들처럼 마지막 땀 한 방울과 호흡까지 다 바친다 생각하며 노력에 노력을 하였습니다. 제가 1년 동안 경험한 것은 법과 원칙도 중요하지만, 그 법안에서 묘수를 발휘하는 정치력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묘수를 발휘하는 정치력은 잔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순수성과 진정성, 또한 애간장이 녹는 애틋한 마음에서 나오게 되지요. 저는 그 애끓는 마음과 함께 한국교회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미래를 향한 전략적 포석을 두는 안목과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위한 정치가 이기면 이길수록 지는 편은 한국교회라는 사실이지요. 내가 지더라도 한국교회가 이기고 내 성이 무너져도 한국교회 공익을 위한 길이 열린다면 그 길을 내는 사람은 참으로 귀하고 위대한 사람이죠. 그 사람이 바로 좋은 것에서 위대한 것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오르네요. ‘아생교회사 아사교회생’(我生敎會死 我死敎會生) “내가 살면 교회가 죽고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산다.” 나의 욕망을 채우면 한국교회는 쇠하고 내 욕망을 비우면 한국교회는 세워집니다. 우리 모두 이런 한국교회의 순수시대를 함께 꿈꿀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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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순수시대는 멈추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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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분노와 절망을 눈물로 닦았습니다”
- 지난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많은 문자와 격려 전화를 받았습니다. 신대원의 어느 교수님은 이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오늘 진짜 교회했습니다.” 이것은 요즘 젊은 애들의 신조어인데요, 최고의 가치가 표현된 행위를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어떤 가수가 노래를 환상적으로 부르면 “진짜 가수 했습니다”라고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미자립교회나 개척교회를 섬겼던 것이야말로 “진짜 교회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너무 바빴잖아요. 시간이 좀 있었으면 강의안을 더 충실하게 작성할 수 있었는데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제별 대지만 적어서 기억나는 대로 강의를 했는데, 점심을 먹고 나니까 이종민 목사님이 와서 엄청난 피드백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하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도 21세기목회연구소 김두현 소장님, 이재훈 의료강도사님, 이경희 전도사님과 황호남 목사님, 김태훈 목사님(한주교회)이 강의를 잘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제 강의를 듣고 우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저에게도 이런 문자가 왔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목사님, 오늘 너무나도 귀한 강의에 다시 한 번 목회의 초심으로 돌아가고픈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본당에서 울다가 화장실에까지 와서 우시는 모습에 저도 마음이 찡하고 울컥했습니다. 개척교회를 해보신 목사님이시기에 이토록 사랑을 베푸시니, 오늘 참석한 목사들이 충격과 감동, 놀라운 표정들이었습니다. 저도 현재 잔고가 17만원밖에 없었는데 오늘 저녁엔 저도 이마에 백만 원짜리 수표 붙이고 잘까 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강건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부족하고 못난 놈을 환하게 맞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평안한 밤 되십시오.” 이런 문자를 받고 보니까 언뜻 “눈물은 눈물로 닦는다”는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진짜 이번 세미나는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흘린 눈물을 저의 눈물로 닦아 드린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눈물은 그냥 눈물이 아니라 분노를 울음으로 승화시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저라고 왜 정부의 방역지침에 분노하지 않았겠습니까? 1만석 교회나 5천석 교회도 동일하게 19명, 50명, 99명 등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획일적이고 도식적 방역에 분노하지 않은 목회자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BTS를 탄생시킨 방시혁 대표도 “자신의 성공 원동력은 분노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그 분노를 어떻게 표출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노를 부정적으로만 표출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증오와 미움의 카르텔을 쌓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이 지나가면 카르텔 헤게모니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더 위대한 선교전략이 짜여 지고 더 많은 것들을 얻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분노를 눈물로 바꾸며 정부의 방역조치를 초월한 프레임을 짜고 선제적으로 정부보다 더 앞선 지혜를 발휘하였습니다. 특별히 하이브리드 처치의 길을 열어 성도들에게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플랫폼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앞서가는 미국교회를 볼 때 이런 교회가 예배 회복 탄력성이 빠르다는 결과가 나왔지 않습니까? 저희 교회도 동일한 결과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러다보니까 저의 앞서가는 선제적 프레임이나 전략을 모르는 분들은 저를 줄기차게 비난하고 공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유튜브를 절대로 보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을 축복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축복하다 보니까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분들도 힘들어서 그런 것이겠지...” 그런 걸 생각하다 순간의 지혜와 착상이 떠올랐습니다. 이즈음에 목사님들을 초청해 위드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교회를 세워나갈 것인가를 강의하고 소정의 격려금을 드리며 섬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이 일에 이종민 목사님이 총괄기획을 하고 진행도 해 주셨는데요. 코로나로 인해 타격을 크게 입었던 교회는 비공개적이지만 좀 더 많은 격려금을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못 본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침에는 많은 목사님들이 지쳐 좌절해 있고, 어떤 분들은 분노의 눈빛이 역력하게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부터 그 얼굴빛과 눈빛이 인자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완전히 우리 교인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보였습니다. 만약에 제가 저의 자랑을 하고 우리 교회 자랑만 하며 격려금을 드렸다면 속으로 자존심이 상한채 돌아가는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대한 겸손하게 섬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니 그들의 흐르는 눈물을 저의 눈물로 닦는 심정으로 섬겼습니다. 바로 그 눈물은 그냥 눈물이 아니었지요. 수많은 분노를 삭이고 녹임으로써 흘렸던 눈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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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분노와 절망을 눈물로 닦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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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강릉 옛길에서 삶과 신앙을 또 한 번 배웠네”
- 저는 목요일 오후에 강원도 평창에서 있었던 한국교회 총무대표회 워크숍에 가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다음날은 우리 교회 평신도 리더십 워크숍을 하며 강릉옛길을 걷기로 해서 왔다갔다하느니 강릉 옛길과 가까운 용평에서 잠을 잤습니다. 역시 강원도의 공기는 도심과 달랐고 별들의 속삭임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워낙 산을 좋아하는 저였기에 다음날 강릉 옛길을 걷는 설렘으로 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 밤처럼 말입니다. 이윽고 오전에 평신도 사역자들을 만나 강릉 옛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강릉 옛길은 신사임당과 율곡, 또한 천재시인 김시습과 같은 과거 선비들이 한양을 가기위해 오고 가던 길입니다. 뿐만 아니라 청운의 이상을 품고 과거 시험에 응시하기 위하여 옛 선비들이 숨을 헉헉 거리며 넘어갔던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길은 아직도 꿈이 서려 있는 길이요, 나무 잎사귀 하나하나에 푸른 꿈들이 매달려 있는 듯 했습니다. 아니, 꿈을 먹었던 잎사귀들이 붉은 단풍이 되어 있었고 낙엽으로 떨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길을 걸으며 장원급제한 선비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 과거에 낙방을 하여 눈물을 흘리며 걸어갔던 선비들을 생각해 봤습니다.십 수 년 이상 학문을 닦아도 성공하지 못하고 낙방하여 돌아오는 한 선비의 처진 어깨와 어둔 그림자... 그가 터벅터벅 쓸쓸하게 걸어야 했을 이 길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 슬픈 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길에서 중간중간 평신도 사역자들에게 교회 세움과 예배 회복에 대해서, 그리고 교회 이미지에 대한 강의를 하였습니다. 참으로 꿈길을 걷는 듯 했습니다. 저는 가을 단풍을 보고 낙엽 위를 걷는 기쁨에 젖어있는데, 평신도 사역자들은 제가 어디가 좋다고 자꾸 저와 사진만 찍자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 소금산 워크숍 때도 너나 나나 제 팔을 붙잡고 사진을 찍자고 하더니 강릉 옛길에서는 더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들이마시고 내뿜었던 산소,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 산과 들녘, 수많은 꽃들, 하늘의 별과 바람과 햇빛... 하나님께 공짜로 받아서 그 부와 행복을 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렇게 저를 무조건 좋아하고 따라주는 성도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성도들은 말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비싸게 신앙생활을 하고, 가치 있게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지요. 그러니까 주님 때문에 저를 좋아하는 것이고 주 안에서 저를 믿고 따라왔던 분들이지요. 문득 어느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어느 지체 높으신 여자 분께서 너무 반갑다고 저를 꼭 껴안아 버렸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것도 우리 장로님들이 옆에 계시는데 말입니다. 그분도 신앙생활을 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저를 그토록 반가워했던 것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을의 대자연 속에서 나이의 격차, 이성이라는 격차도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마치 원시림에서는 욕망을 버린 사랑, 단풍의 예술, 가을의 만남, 이 모든 것이 선악의 경계를 벗어나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소풍 갔을 때의 소년, 소녀가 되어 과거와 현재도 없고 현재와 미래가 함께 만나는 숲길을 걸었습니다. 마틴 부버가 말한 대로 진짜 ‘나와 너’의 관계를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일상으로 돌아가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이런 마음이 부서지곤 합니다. 어떨 때는 우리의 관계가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과 건물처럼 ‘그것과 그것’의 관계가 되고 ‘나와 그것’의 관계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늘 이런 곳에서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마틴 부버가 말한 대로 ‘나와 너’, ‘자연과 나’, ‘하나님과 나’와의 아름다운 관계를 맺게 해주는 영원한 촉매자인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머무르면 우리는 늘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늘 자연 속에 사는 것 같고 항상 강릉 옛길을 걸어가는 것 같을 것입니다. 길을 걷는 중에 동행했던 이전도사님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단풍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다 낙엽이 되어 버렸네요.” 제가 이렇게 말을 하였지요. “아니지요. 낙엽이 되어 우리를 반겨주려고, 아니 우리에게 밟히는 행복이 더 커서 낙엽으로 쌓여있는 거지요.” 그러자 선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밟히는 행복이라니요. 정말 담임목사님은 천부적 시인이시네요. 낙엽을 밟으니 구르몽의 시가 생각나지 않으시나요?” 제가 또 이렇게 말을 했지요. “알고 계시죠?. 우리 인생도 낙엽이 될 때가 있다는 걸요. 그러나 낙엽을 한낱 나무의 죽은 잎사귀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비바람이 불 때 낙엽이 춤추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지요. 저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가 감사의 노래인줄 모른다지요.” 저는 함께 한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건네었습니다. “강릉 옛길에서 새삼스레 삶과 신앙을 다시 깨닫고 배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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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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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강릉 옛길에서 삶과 신앙을 또 한 번 배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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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인도(人道), 예도(禮道), 신도(信道)의 길을 함께 간다면...”
- ‘상도’라는 소설에 보면 거상 임상옥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임상옥은 이런 말을 합니다. “상즉인(商卽人), 즉 장사란 사람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얻으려면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저는 가장 어려운 때 뒷마당 총회장이 되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예배 회복과 공공선을 위해 앞장서서 뛰었습니다. 그렇게 앞장서서 뛰고 나름 결과물을 얻어내면서 많은 분들에게 격려 전화와 문자를 받았지만 이따금씩 오해와 비난의 화살을 받기도 했습니다. 양이 안 차서 그랬겠지요. 지난주부터 김부겸 총리님과 황희 문체부장관님이 약속한 백신 인센티브의 첫 열매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50% 이상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구두로 약속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대로 11월 1일부터는 미접종자를 포함하는 경우 수용인원의 50%, 백신 접종 완료자만 모일 경우 인원 제한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20%가 회복되는 예배를 앞두고 토요일 저녁 내내 잠을 자다 깨다하면서 불면과 싸워야 했습니다. 가을에도 소쩍새의 메아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왜냐면 오는 주일 오랜만에 만나게 될 성도들에 대한 기대감, 설렘, 감사 때문이었죠. 그런데 한국교회의 예배가 회복 되어가는 때에 갑자기 제가 “정부에 사과를 해야 한다고 했다”는 말도 안 되는 뜬소문들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단 한 번도 그분들에 대해서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마음으로 예의를 갖췄습니다. 한 번은 어느 목사님이 기자회견 현장에서 저에 대해서 성토를 하고 있다고 현장에 있는 한 기자가 저에게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때도 저는 그 기자에게 “부디 그 목사님께 내 마음의 따뜻한 안부를 전해주라”고 답문을 전했습니다. 전화를 하거나 장문의 문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때는 연합기관 통합 문제로 진지한 회의 중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분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제 마음의 따뜻한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을 드린 것입니다. 임상옥은 거상으로서 그가 걸어가야 할 상도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모든 인간에게는 사람으로서 가야 할 인도(人道)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인간으로서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해 왔습니다. 인도적 차원에서 어떻게든지 이해하고 섬기려는 노력을 해온 것입니다. 물론 제가 너무 바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다 그렇게 대해 줄 수는 없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에도 올해만 확인하지 못한 문자가 1213개입니다. 그렇지만 제 평소의 삶은 인도를 넘어 예도(禮道)의 길도 걸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공자는 인간의 기본이 예(禮)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마땅히 예도의 길을 가야겠지요. 그래서 저도 부족하지만 항상 누구에게나 예를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인도와 예도를 넘어서 걸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바로 신도(信道)입니다. 이 ‘신도’란 믿음을 따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 길은 어떤 때는 꽃길일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좁고 협착하며 눈물 없이는 못 가는 길일 때도 있습니다. 가파른 길을 걸어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그 고달픔은 가파른 길을 걷거나 뛰어본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이라는 가파른 언덕길을 뛰어갈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저 역시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일부러 황영조가 뛰었던 몬주익의 가파른 언덕길을 뛰어 보았습니다. 그 언덕길을 뛰었을 때 비로소 황영조의 멈추어버릴 듯한 심장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나온 1년을 돌이켜보니 제가 걸어왔던 길은 사막의 길이었고 그 길을 넘어 붉은 고원의 언덕길을 넘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꽃길이 된 곳도 있었고 꽃밭이 된 곳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 길은 저 혼자 걷지 않았습니다. 함께 한 동역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위드 코로나를 발표할 때 한교총 뿐만 아니라 한교연과 한기총, 그리고 예자연과 전국17개광역시도기독교연합회 등 모두가 노력한 결과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또한 누구보다 새에덴의 성도들이 저와 함께 해 주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앞으로 중요한 것은 무너진 예배와 교회를 어떻게 함께 세워나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우리 모두가 인도, 예도, 신도의 길을 함께 걸어간다면 광야길도 꽃길로 만들고 붉은 고원의 언덕과 같은 한국교회의 현실을 능히 꽃밭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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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인도(人道), 예도(禮道), 신도(信道)의 길을 함께 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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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까치 목사는 엄지 성도를 끝까지 기다릴께요”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얼마 만입니까? 저는 지금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까치가 비 오는 날 엄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화상줌과 유튜브를 의존했던 지난날들... 그럴수록 저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서 더 새로운 길을 열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정부의 방역조치에 항의하는 마음으로 4주 연속 새벽과 저녁에 특별기도회를 인도하고, 낮에는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뛰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무리하여 그만 성대 결절이 생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특새와 밤 집회를 중단해야 했지만 대신 저녁이면 텅 빈 예배당에서 홀로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강단에 와서 기도할 수 있지만 “우리 성도들은 얼마나 현장예배에 달려오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을 현장 예배에 무조건 오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지역은 코로나로 인해 이미 죽음의 도시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잖아요. 현장예배가 거의 초토화되고 유튜브와 화상 줌에 의지해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을 때, 저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화상 줌으로 성도들을 향해서 인사하였지만, 여러분을 만날 수 없고, 함께 손을 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리고 저렸습니다. 물론 화상 줌으로는 눈동자라도 마주칠 수 있지요. 그러나 유튜브로 예배드리는 분들과는 눈동자조차도 마주칠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또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저는 온 힘을 다해 말씀을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정말 그립고 보고픈 성도 여러분! 저는 새에덴교회를 개척한 이후부터 교회가 저의 집이었으며, 성도들이 저의 가족이었습니다. 교회가 제 생명이요 성도가 제 목숨이었습니다. 새에덴교회가 저였고 제가 새에덴교회였습니다. 성도들이 아프면 저도 아팠고, 성도들이 힘들어하면 저도 힘들어했고, 성도들이 울면 저도 울었습니다. 단 한순간도 교회와 저는 뗄 수 없었고, 제 인생에서 여러분들을 떼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여러분과 만나지 못하고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었으니 얼마나 제 가슴이 아프고 그리웠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이런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더 깨닫게 되었고, 여러분도 저를 그리워하고 교회를 사모해서 온 줄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날 앉을 자리가 없도록 성전의 자리를 채워주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새삼스럽게 느끼며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는 백신 인센티브를 적용하여 20%까지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게 뭐 대단하냐고 하면서 지금도 정부의 관제적, 획일적 방역조치에 저항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정도라도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토요일 날 어떻게 잠을 이룰 것인지 말입니다. 저는 개척교회 때부터 토요일 날은 잠을 못 이뤘습니다. 특별히 이번 주는 20%라고 하는 단어가 제 머릿속에 꽂혀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이번 토요일은 개척교회 때의 초심이 밀물처럼 더욱 몰려와 깊은 불면과 잔인하게 싸우게 될 것 같습니다. 주일 날 그 동안 만나보지 못한 성도들을 볼 것을 생각하니 어찌 쉽사리 잠이 들겠습니까? 지금 제 눈동자에는 자주 보지 못한 성도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런 얼굴들이 토요일 밤에 더 어른거린다면, 불면과 싸워야겠지요. 통상 이런 밤은 수면제를 먹어도 금방 깨버리곤 하거든요. 그러나 잠이 깨든, 깨지 않던 이런 기대와 설레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요. 잠이 깨면 깬 대로 감사할 것이고, 깨지 않지만 잠결 속에서 멀리 떨어졌다고 느껴졌던 성도들의 얼굴이 가까이서 어른거린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이번 주 설교는 ‘그대, 왕관의 보석’ 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왕관의 보석이 되어 현장예배에 오실 것입니다. 근데 진짜 또 하나의 걱정이 있습니다. 까치 목사는 비를 맞고라도 엄지를 기다릴 텐데, 엄지 성도가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제가 기다리던 성도들이 행여라도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말이죠. 비 오는 날 까치는 땅에 ‘갈증’이라는 글을 남기고 돌아갔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행여 한 동안 하나님과 교회보다는 다른 것과 마음을 주고 받은 적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엄지였다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탕부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여러분들을 다 받아주시고 품어주실 것입니다. 부디 노마드 성도로 남지 마시고 영혼의 토포필리아, 현장 예배로 와 주소서. 금주에 못 오시면 다음 주에, 이번 달에 못 오시면 다음 달에도 오셔도 됩니다. 저는 까치 목사가 되어 사랑하는 엄지 성도들을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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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까치 목사는 엄지 성도를 끝까지 기다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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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한국교회여, 오징어 게임을 멈추게 해 주세요.”
- 최근 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대한 관심이 가히 폭발적입니다. 오죽하면 추석 연휴에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으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넷플릭스 TV 부문 시청률 1위에 오를 정도로 글로벌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감독은 10년 전부터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방송사나 영화사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제작을 하지 못하고 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을 받아준 것입니다. 왜냐면 넷플릭스 회사의 모토는 ‘창작의 자유 보장’이기 때문에 어떤 주제나 소재의 제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는 실업자, 신용불량자, 소매치기, 조직폭력배,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여성 출소자, 시한부 환자 등 돈에 쫓겨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는 절박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총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1번부터 456번까지 참가자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 등 총 6개의 게임을 통과해야 합니다. 최후의 승자만이 456억 원을 받게 되고, 게임에서 탈락한 사람은 총에 맞아 죽습니다. 영화는 너무나 잔인하고 선정적이며 엽기적인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이 영화는 자본이라고 하는 맘몬의 신에 영혼마저 빼앗겨 버린 채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적 생존게임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보여주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지요.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저 같이 바쁜 일정을 보내는 사람이 어떻게 총 9편으로 구성된 드라마를 다 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현 시대의 사회현상과 문화적 흐름은 알아야하기에 비서실에서 다운 받아준 영상을 부분적으로 보고 총체적인 이야기는 몇 부교역자들과 제 아들이 정리를 해 준 자료와 크리스천투데이 이대웅 기자가 쓴 기사로도 읽었습니다. 드라마를 본 기독교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너무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폄하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설정하여 보기 불편하더라는 것입니다. 데스 게임에 참가한 244번 참가자는 위기를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며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혼자 살려고 발버둥 칩니다. 그러다가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을 할 때는 길을 건너지 못하고 주저하는 앞 사람을 뒤에서 밀어 죽인 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합니다. 240번 참가자 지영은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면서,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인 아버지를 자신이 칼로 찔러 죽였는데 그 아버지가 목사였다고 말합니다. 왜 이렇게 기독교에 대해서 혐오적인 이미지를 조장하고 부정적으로 묘사하는지 분하기도 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오징어 게임’이 인간 내면에 잠재된 욕망과 탐심, 생존 본능을 들추어내고자하는 의도라면, 왜 굳이 기독교인만을 특정하여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국내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청한 드라마라고 하는데 그들의 눈에 기독교의 모습이 어떻게 이미지화 되었을 지를 생각하면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지금 현대사회는 극한의 생존 서바이벌 게임에 함몰되어 영혼마저 빼앗긴 채 서로 죽고 죽이는 오징어 게임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비극의 데스 게임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오징어 게임은 참가자 중에 과반수만 반대를 해도 언제든지 게임을 멈추고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참가자들은 거액의 상금에 눈이 멀어 끝까지 멈추지 못하고 죽음의 질주를 합니다. 그 죽음의 질주 끝에 최후 승자는 고향 후배 상호를 제친 성기훈이었습니다. 그는 456억의 우승 상금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돈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지 못하고 노숙자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던 중, 오징어 게임의 설계자를 만납니다. 그 설계자 역시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오징어 게임을 만든 이유는 오로지 심심해서, 재미로였다고 말합니다. 또한 성기훈에게 인간을 신뢰하느냐고 물으며 또 다른 노숙자 게임을 제안하더니 갑자기 병상에서 죽고 맙니다. 아무리 창작의 자유를 존중한다 하더라도 이 드라마는 반인간적이고 패륜적인 모습을 지나치게 표출시키고 말았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오징어 게임에 나타나는 탐심과 증오, 분노의 표출들이야말로 오히려, 인간 세계의 유일한 희망의 출구는 사랑과 희생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의도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잃어버린 채,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한국교회에 그래도 다시 한 번 구조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평론적 해석도 해 보았습니다. 이 오징어 게임을 본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제발, 오징어 게임을 멈추게 해 달라고, 부디 데스 게임에 몸을 맡긴 채 아무런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는 상처 입은 영혼들을 사랑으로 안아주고 손을 잡아 구원해 달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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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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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한국교회여, 오징어 게임을 멈추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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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객석은 비었지만 음악은 흐르고 있듯이, 복음의 역사도 멈출 수 없다”
- 저는 배고프고 힘든 신학생 시절, 그 유명했던 프로야구, TV방송, 라디오 한 번을 제대로 듣고 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기도, 오로지 신앙에만 몰입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21살 때 화순백암교회를 개척하면서 저의 청춘은 펄펄 끊는 사명의 용광로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 힘든 사투 끝에 예배당을 짓고 있을 즈음에 시내버스 안에서 뜻밖에도 전혀 새롭게 들려졌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바로 가수 이선희의 ‘J에게’라는 노래였습니다. 그래서 푸른 청춘의 시절에 버스 차창에 기대어 듣던 ‘J에게’는 지금까지도 제 마음에 불멸의 노래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는 J를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들었고, 목회를 시작하면서 부터는 떠나간 교인, 사랑하는 교인들을 J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산책 하거나 산행 할 때 찬송가 대신 저도 모르게 나오는 노래 중에 하나가 ‘J에게’라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추석 연휴 기간에 가수 이선희가 출연하는 감성 로드다큐 ‘한 번쯤 멈출 수밖에’라는 프로가 방영되는 것입니다. 마침, 저도 총회장 임기를 다 마치고 맞은 연휴라 오랜만에 기도원에 가서 쉬면서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첫째 날은 악동뮤지션이라는 두 남매 가수와 이선희 선생님이 순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세 사람이 순천만의 갈대밭 사이를 걷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전에 저도 걸어 보았던 길이라 오버랩이 되는 것입니다. “아, 맞아 살면서 한 번쯤 멈추어야 되겠구나. 되돌아보아야겠구나.” 구태여 어느 책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멈춘다는 것은 단순한 휴식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일본의 신학자 고스케 고야마는 ‘시속 3마일의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사람이 걷는 속도는 시속 3마일인데, 하나님도 광야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시속 3마일로 걸으셨다고 말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이 멈추게 하실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교제하기 위함이었지요. 그래서 저 또한 멈춤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은 친구인 이금희 아나운서와 함께 전북 완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에 제가 완주 위봉교회 사적지 지정예배를 드리기 위해 다녀오다 숲길을 좋아해서 근처를 돌고 온 적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제가 다녀온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더구나 친구와 떠나는 여행이라 굉장히 자연스럽고 편하게 보였을 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셋째 날은 김이나 작사가와 춘천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는데 클라이맥스는 가수 이선희가 강변가요제가 열렸던 남이섬의 무대에 오르는 장면이었습니다. 가슴 벅찬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머리가 아닌 발끝이 기억하는 나이 스무 살의 내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때는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있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했습니다. 돌아본 길은 눈부신 날들이었습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도 눈부시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도 눈부신 날이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가수 이선희에게 남이섬이 있었다면 저에게는 화순백암교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화순백암교회를 지었을 당시는 인터넷도 없고 기독교 신문도 없었지만, 가장 유명한 크리스천신문을 비롯하여 각 교계 신문과 잡지에 ‘황무지에서 백합꽃을 피운 사람’으로 보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서울로 올라오고 분당의 목회시대를 열면서 제가 교계에 ‘맨발의 소명자’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는 목회자로 주목을 받게 되어 수많은 목회자 세미나와 부흥회를 다녔습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한인 교회가 있고 선교사가 있는 곳은 다 다니면서 세미나를 했습니다. 아니 원주민 집회도 엄청나게 많이 다녔지요. 오죽하면 제가 항공사 두 곳 모두 100만 마일을 넘게 다닐 정도니까요. 더구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우리나라의 가장 큰 교단의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정말 지금까지 쉼 없이 교회와 복음을 위해서 달려왔습니다. 특별히 요즘은 한국교회 연합과 공적 사역에 올인해 왔습니다. 오죽하면 故 조용기 목사님께서 생전에 “소강석 목사 같은 사람 한 사람만 더 있으면 한국교회를 지킬 수 있다”고 하실 정도로 광폭 사역을 해 왔습니다. 또한 여러 언론사에서 “소강석 목사야말로 합동 교단사에 남을 만한 눈부신 총회장 이었다”고 기사를 써줄 정도로 정말 후회 없이 모든 것을 다 바쳐 달려왔습니다. 다큐에 보면 “객석은 비었지만 음악은 흐르고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코로나 때문에 예배가 멈춰진 것처럼 보이지만, 예배와 복음의 역사는 결코 멈춰질 수가 없지요. 저 또한 총회장은 내려놓았지만 한교총 대표회장 임기 안에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드는데 올인할 것입니다. 아니, 공적사역과 연합사역은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보다 앞으로 제가 달려가야 할 날들은 지금까지 달려온 날들보다 더 눈부신 날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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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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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객석은 비었지만 음악은 흐르고 있듯이, 복음의 역사도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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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故 조용기 목사님의 사진에 투영된 내 얼굴”
- 저는 총회가 끝나고 하루 이틀이라도 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총회가 끝난 바로 다음날 조용기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가난하고 외로운 신학생 시절 저의 희망의 아이콘이고 아이돌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례위원장으로서 이른 아침 6시 40분에 도착을 해서 이영훈 목사님과 함께 제일 먼저 헌화를 하였습니다. 사실 지난번에 너무 무리를 해서 탈진 직전까지 왔다가 겨우 회복이 되어가는 중에 총회까지 치렀고, 좀 쉬려고 했는데 조 목사님의 조문소를 지켜야했습니다. 첫날부터 저는 12시간 이상씩 서있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정관계 인사들이 올 때는 2-3분씩 앉을 수는 있었지만요. 그리고 둘째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온종일 서 있으니까 발목과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뻐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또 교회로 돌아와서 수요저녁예배와 금요철야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물론 일각에서 부정적 댓글을 다는 분들도 있는걸 봤습니다. 저라고 해서 조 목사님의 공과 과를 왜 모르겠습니까? 등소평 역시 모택동으로부터 모진 핍박을 받았지만 “모택동의 공은 7이고 과는 3이다”라고 말하면서 오늘의 중국을 만드는데 역사적, 정신적 자산으로 삼았지 않습니까? 조 목사님이 쌓아 오신 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불멸의 빛으로 남을 것입니다. 저는 장례위원장으로서 빈소를 지키면서 눈물을 강물처럼 쏟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을 보며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이 “우리의 기도가 부족해서 조 목사님을 천국에 빨리 보냈다”고 하면서 이영훈 목사님께 “조 목사님처럼 젊은 날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제 앞을 지나가면서도 “소 목사님도 건강하셔야 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시고 가시는 것입니다. 옆에 계신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님도 “제가 보면 소 목사님도 꼭 우리 아버지의 젊은 날처럼 무리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소 목사님도 오래 못 사십니다. 목사님도 골프도 하시면서 건강관리를 잘 하세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조문을 하며 애통해 하는 성도들의 눈물 속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역사가 읽혀지고 보여 졌습니다. 조목사님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중 문득 국민일보 창간 31주년 기념예배 때의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그때 조용기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신 후, 저는 축사를 하였습니다. 축사를 하는 순간 연거푸 아멘 소리가 빗발치고 끝나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영훈 목사님께서 통성기도를 인도하셨고 저도 강단에 서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데 누가 제 손을 잡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보니까, 조용기 목사님이 제 손을 목사님의 머리에다 얹으며 안수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소 목사님 같은 패기와 용기 그리고 영력을 다시 회복하고 싶어요. 소목사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세요.” 저는 순간적으로 조 목사님을 꽉 끌어안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조 목사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조 목사님 귀에 대고 큰 소리를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조 목사님이 젊은 날 얼마나 체력을 소진하셨습니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계 최대의 교회로 키우고 5대양 6대주를 다니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온 몸의 진액을 짜내며 희생하셨습니까? 또한 위태로울 한국교회 수십 년 후를 바라보시며 공적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는 대변지 국민일보를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 목사님은 몸을 축을 내고 축을 내셨습니다. 부디, 조 목사님의 수고를 보상해 주시고 건강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청년의 몸과 두뇌와 혀와 기백을 주시옵소서...(중략)” 조 목사님께서도 기도하는 내내 어린아이처럼 제 품에 안겨서 “아멘, 아멘”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동안 정말 제 몸과 마음이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영상에 찍혔고 대부분의 성도들도 역시 그 모습을 다 보았습니다. 그 사진을 보니 조 목사님께서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기도가 부족했는지 결국 조 목사님은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조 목사님은 생전에 저를 그렇게 부러워하였습니다. 저를 보면 옛날 어르신의 젊은 날이 생각이 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 목사님의 영정사진을 보니까 저의 80대의 모습이 미리서 투영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몇 살까지 살며 어떤 모습으로 내 인생을 마감할 것인가” 저는 장례위원장으로서 입관까지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발인예배 때는 제가 조시를 낭독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산리에서 있었던 하관예배까지 다 참석하였습니다. 저는 장례위원장보다는 신학생시절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허기진 배를 안고 조목사님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던 한 사람의 목사로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앞으로 조용기 목사님과 같은 인물은 쉽사리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하관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눈물이 빗방울처럼 쏟아졌습니다. 그 눈물 속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담고 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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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故 조용기 목사님의 사진에 투영된 내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