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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 함께 귤 따러 가요”
- 우리 총회에서 10년 전 제주도에 수양관을 지으려고 사 놓은 땅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수양관을 짓지 못하고 귤밭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년에 저는 제주도에 가서 그 귤밭을 보고 반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총회장이 되면 꼭 귤 따러 오겠다”고 이야기를 해 놓았습니다. 물론 제가 총회장이라고 해서 그냥 따는 것이 아니라 경작 수고비를 다 지불하고 성도들에게 좋은 추억도 선물하고 싶어서 같이 간 것입니다. 정말 총회장이 된 이후로 두려운 영광, 영광스러운 두려움에 싸인 긴장의 나날이었고, 총회 세움과 한국교회 세움의 사명 때문에 강박증에 시달릴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총회 제주도 귤밭에 귤 따러 간다고 생각하니까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가슴이 설렜습니다. 제주도를 수없이 왔다 갔다 했지만, 귤밭을 눈으로 보기만 했지 한 번도 직접 따보지는 못했거든요. 마침내 우리 총회 귤밭에 도착하였는데 정말 얼마나 탐스러운 귤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지요. 제주노회 목사님들이 총회장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현수막도 걸어주고, 삼겹살도 구워 놓았는데, 저는 바로 귤나무로 달려가서 정신없이 귤을 12개나 따 먹었습니다. 귤을 따 먹는데 얼마나 과즙이 상큼하게 터지는지 향기가 진동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동행한 성도들도 정신없이 귤을 따서 정말로 사랑하는 분들에게 택배로 보내드렸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상큼한 감귤을 따 먹는구나.” 십 수 년 전부터 이슬람 스쿠크, 동성애, 포괄적 차별금지법, 종교인과세 등 한국교회를 위태롭게 할 수 있었던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많은 재정과 시간과 힘을 바쳐 눈물로 씨를 뿌렸습니다. 그 일의 가치와 성과를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같이 일했던 분들은 다 압니다. 그때 김영진, 전용태, 김승규 장로님, 이혜훈, 김진표 의원님, 측면에서 박지원 현 국정원장님 등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이슬람 스쿠크, 동성애,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알고 있고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코로나19로 인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한 번도 취업을 못 해본 청년들이 29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내하며 눈물로 씨를 뿌리면 반드시 열매를 딸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래의 어딘가 제주도의 감귤처럼 하나님이 예비하신 꿈의 열매, 축복의 열매가 익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하면 모르지만,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영혼의 감귤, 삶의 성공이라는 감귤을 딸 수 있습니다. 제주도의 감귤 뿐 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도 영혼의 감귤, 축복의 감귤이 있습니다. 그 감귤은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딸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고 눈물로 씨를 뿌린 자만이 거둘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돌아와, 저는 또 정신없이 총회와 한국교회 연합과 세움 사역을 위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시대적 사역을 하다 보면 오해도 받고 힘든 일을 겪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제 삶의 또 다른 내일 어딘가에 제주도의 감귤처럼 상큼한 축복의 열매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축복의 열매들이 익어가고 있으니까요. 우리 함께 귤 따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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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 함께 귤 따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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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영택트 시대를 선도하며 재부흥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 저는 지난 화요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총회 미래정책전략특별위원회장이신 이승희 전 총회장님과 함께 특별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제가 부총회장 시절부터 총회 노재경 국장과 미리 의논하여 장년과 학생 2000명을 대상으로한 ‘코로나시대 종교 영향도 인식조사’를 발표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많은 분들이 한국교회에 등을 돌리고 비난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평소에 진단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결과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종교적 카르텔과 이너서클의 모습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포맷의 교회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말을 처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신문에도 글을 많이 쓰고 책에도 썼던 원론적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느 기자가 제가 공개사과를 했다고 기사를 쓴 것입니다. 제가 그 기사를 보면서 좀 수정요구를 하려다가 리서치 대표를 비롯하여 몇 분들과 의논을 하니까 그대로 두는 게 낫다는 겁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현대인의 목소리고 국민 의견을 반영하는 글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장에 오지 않은 기자들까지 그 기사를 받아쓴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자들은 제가 말하는 의도대로 미래 비전 중심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도 없었고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일부 언론의 기사만 보고 저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유튜브나 기사를 보지 않습니다. 물론 비서실에서 요약해서 보고는 하지만요. 저는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서편제에 나오는 유봉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유봉은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면서 소리의 3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다듬어서 아름답게 내는 소리입니다. 둘째는 그 아름다운 소리를 넘어 한이 맺히는 소리를 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송화가 한 맺히는 소리가 안 나올 뿐 아니라 도망을 가 버릴까 싶어서 한약방에 가서 눈을 멀게 하는 약을 지어다 먹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송화로 하여금 가슴을 찌르고 폐부를 오르고 내리게 하는 숙연한 소리가 나오게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다 내려놓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유봉이 죽으면서 송화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송화야, 이제 한을 내려놓아라. 내가 너를 눈멀게 한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지? 이제는 한을 내려놓고 넘어서면 그때는 동편제도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세계만 남느니라.” 저도 옛날에는 제 자신이 잘 해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을 비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 저 자신이 전면에서 이슬람 수쿠크법을 반대하고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며 종교인 과세 대처를 하는 사역을 하다보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하고 험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저는 더 잘 해보려고 했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시그널만 바라보며 가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 사회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시대 변화와 흐름을 목도해야 합니다. 우리끼리 꼰대적 사고를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이번 기자회견은 메이저 일간지, 공중파, 종편 방송 등을 통해 보도되면서 사회적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한국교회를 향해 부정적 인식을 보이던 이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사회적 소통과 공감의 채널을 넓히는 자리였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언택트를 넘어 영(靈)택트 시대를 선도하며 한국교회의 재부흥 시대를 열어갈 것입니다. 가을 낙엽을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상처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입은 상처는 다시 어둔 밤을 비추는 희망의 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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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영택트 시대를 선도하며 재부흥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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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는 거룩한 생산적 소비자들입니다. 새에덴이 프로슈머로 러닝할 때이죠”
- 저는 총회장에 취임하면서 몇 가지 공약을 했는데 먼저 역사 다큐를 제작하는 것과 ‘합동 개혁 교단합동 15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총회 역사 다큐는 사상 초유의 온라인총회로 인하여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었던 총회를 진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는 총회가 되게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단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수개혁신학의 순혈성을 지키는 역사 콘텐츠를 제작하는 큰 수확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에는 63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합동 개혁 교단합동 15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사실 10주년 때도 행사를 하려고 했는데 말들이 많아서 못했습니다. 작년에도 헌의가 들어왔는데 무산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총회장에 취임하면서 그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15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기획한 것은 예배드리고 밥 먹고 흩어지는 일회성 행사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합동과 개혁의 아름다운 화합의 역사를 우리 교단을 넘어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의 통합의 정신으로 확장시키고 우리 교단이 명실상부한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화합의 플랫폼으로 우뚝 서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행사를 위한 모든 경비는 우리 교회에서 섬겼습니다. 메달과 배지도 우리 교회에서 다 준비했습니다. 거룩한 생산적 소비를 통하여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교단의 비전과 가치,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한 것입니다. 큐시트 상으로는 12시 30분이면 행사가 끝나야 하는데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좋으니까 기념사, 축사, 격려사들이 길어지면서 예상 시간을 초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패 받을 분들을 일일이 강단으로 모셔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유감스러운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사 내내 행사장 안에는 한국교회 최대 장자교단인 합동 교단의 위상과 연합의 기치를 다시 한 번 높이 세우고자하는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뜨거운 열망과 의지로 가득하였습니다. 온전한 합동의 마침표를 확인하는 자리요, 새로운 도전과 변화의 역사를 시작하는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정세균 국무총리님께서 영상축사를 보내주셨고,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님, 한교총 김태영 총회장님께서 직접 오셔서 축사를 해 주셔서 화합의 큰 정신을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15년 전 합동과 개혁의 교단합동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행하시고 이루신 일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서기행 총회장님과 홍정이 총회장님의 진심을 오해하고 곡해하였던 것을 사과드립니다. 두 분께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신 교단 합동을 이루신 신실한 사명자들이셨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합동의 간판을 달고 한국 교계에 큰 임팩트를 주는 교회 부흥을 일구었고, 합동이라는 날개를 달고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내며 교회 생태계를 세우는 사역을 위해 러닝을 하고 또 러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3부 때 미니콘서트를 하신 남진 장로님도 대단하셨습니다. 그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무대를 휘어잡으며 열창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남진은 남진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15주년 기념 감사예배는 끝났지만, 진정한 화합의 역사는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 교단의 부흥의 불꽃이 화합의 플랫폼이 되어 분열된 국론과 코로나로 상처받은 우리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대한민국을 화합의 플랫폼으로 만드는 영적 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새에덴교회가 이 일을 먼저 주도하는 프로슈머, 거룩한 생산적 소비자들이 되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였습니다. 행사를 위해 물질로 섬겨주신 장로님들, 그리고 기도와 안내봉사로 섬겨주신 새에덴의 성도님들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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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는 거룩한 생산적 소비자들입니다. 새에덴이 프로슈머로 러닝할 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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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낙엽에 내 마음을 새긴다. 부디 사랑의 엽서가 되어다오.”
- 그렇지 않아도 바쁜 제가 총회와 한국교회의 여러 사역을 감당하다 보니 세월이 화살처럼 날아가는 듯합니다. 금세기 최고의 인문학자인 이어령 박사님의 표현대로 새가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날아가는 듯, 1년이 빠르게 느껴집니다. 벌써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단풍이 되어 거리에 나부끼고 있지 않습니까? 이젠 구르몽의 시처럼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를 느낄 새도 없습니다. 그냥 낙엽이 지고 있구나 하며 차창 밖으로 낙엽을 바라보고 지나갈 뿐입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이선희 선생님의 ‘청춘’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됩니다. ♪봄과 여름 사이 어디쯤에 있을 아 아 그 시절 노래 부른다 사랑 노랠 불러본다 보석처럼 빛나던 나의 꽃다운 날들 혼돈과 열정 사이 어디쯤이었을 청춘 노랠 불러본다” 이토록 청춘이 빨리 지나가고 벌써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삶이 허전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떨어지는 낙엽에다 저의 마음을 새겨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5월에 우리 교회는 예배 회복을 위하여 ‘보랏빛 초청 주일’을 지냈잖아요. 제가 그때 눈물을 훔치면서 설운도 선생님의 ‘보랏빛 엽서’라는 노래를 개사해서 불렀습니다. ♪보랏빛 엽서에 실어온 향기는 목자의 눈물인가 이별의 마음인가 한숨 속에 묻힌 사연 지워 보려 해도 떠나버린 성도 마음 붙잡을 수 없네 오늘도 가버린 성도의 생각에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돌아올 성도 모습 목자의 사연 이 노래를 부르며 저도 울고 성도들도 많이 울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보았던 수만 명의 성도들도 눈물을 훔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부른 노래 영상을 임청화 권사님과 유송근 장로님이 설운도 선생님한테 찍어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운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로 얼마나 칭찬을 받은 줄 아십니까? “목사님, 어쩌면 그렇게 보랏빛 엽서를 잘 부르세요. 목사님이 가수인지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지금 떨어지는 가을낙엽은 노란빛, 붉은빛 색깔이지요. 저는 보랏빛 엽서 대신에 가을낙엽을 노란빛, 붉은빛 엽서로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잎사귀마다 새겼습니다. “낙엽들아,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자연을 순백하게 사랑하는지 알고 있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도... 이런 내 마음을 너의 마음에 새겨본다. 부디 사랑의 엽서가 되어 우리 성도들에게 전해 줄 수 없겠니.” 제가 얼마나 예배 회복과 만남의 공동체를 그리워하면 이런 생각을 해 봤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런 심정으로 지난주엔 ‘러블리 주일’을 기획하고 전자엽서를 만들어서 성도들 폰으로 이런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어디 있나요? 얼마나 힘들었나요? 혼자 보낸 시간이 너무 아프진 않았나요? 함께 모여 예배드리던 시간이 그리워 울지는 않았나요? 우리의 시간은 그냥 흐른 것이 아니겠지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시간만큼 그리움이 쌓이고 사모함이 쌓이고 열망이 쌓여 더 새롭고 애틋한 사랑이 가슴에 꽃처럼 피어나지 않았나요? 이제 그 꽃송이를 들고 오세요. 러빙파더이신 하나님이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랬을 때 주일예배가 웃음과 눈물이 함께 파도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어떤 면에서 코로나 때문에 더 강력한 부족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수록 더 모이고자하고 교회를 사모하는 열망이 더 커졌으니까요. 그리고 성도를 향한 저의 심장의 온도, 눈빛과 언어의 온도를 느낀 성도들도 눈물 젖은 헌신적 희생의 제물을 드렸고 오히려 더 강력한 영적 부족공동체를 이루어 주었습니다. 금주도 노란빛, 붉은빛 단풍엽서가 성도들 가슴 속에 잘 전달되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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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낙엽에 내 마음을 새긴다. 부디 사랑의 엽서가 되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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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러블리 주일, 상사화가 되어 만나요”
- “태초부터 시작된 숨바꼭질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 눈 뜨면 사라지는 당신의 꽃잎 / 뒤돌아서면 흩날려버리는 너의 나뭇잎 / 별빛 내려앉은 꽃잎도 / 새벽이슬 젖은 나뭇잎도 / 서로를 보고 싶어 하지만 / 스칠 듯, 닿을 듯 지나가 버리는 / 그리움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련한 비련 / 당신을 그리워라도 해야 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 나는 오늘도 상사화로 피어난다.” 이는 제가 쓴 ‘상사화’라는 시입니다. 상사화는 봄이 되면 잎이 먼저 나는데 꽃줄기가 올라오기 전에 잎이 다 말라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잎은 꽃을 볼 수 없고, 꽃도 잎을 볼 수 없는 애달픈 그리움의 꽃입니다. 우리 교회는 코로나 초기 때부터 현장예배를 한 번도 쉰 적이 없습니다. 물론 고위험군이나 기저질환자들은 감염병으로부터 보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온라인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조금 진정되고 정부에서 생활방역으로 전환하였을 때 저는 ‘한국교회 예배회복의 날’을 주도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정말 90% 이상 예배가 회복 되었고, 3박 4일간 본당 3층까지 가득앉아서 여름수련회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 주변의 고등학교 및 한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중세의 사제들처럼 실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을 보호하고 지역 감염을 막기 위해 자진해서 화상 줌 예배를 도입하고 예배를 축소해서 드렸습니다. 중대본도 전국적인 재확산을 막기 위해서 예배 인원을 20명, 50명 단위로 제한을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용인 지역은 코로나 확산세가 멈추고 잡혔습니다. 그런데도 중대본에서 예배 인원을 풀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든지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 한교총과 함께 백방으로 노력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예배당 좌석의 30%까지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발표 전에 미리 알고 교인들에게 ‘러블리 주일’을 선포하고 한 주간 특별저녁기도회를 하면서 꿈같은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하루 종일 바깥에서 활동하고 저녁에 교회로 와서 밤 특별집회를 인도했습니다. 목요일 같은 경우는 새벽부터 나가서 몇 건의 회의를 하고 총회 임원회는 마라톤 회의를 하였습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힘들었지만 교회에 와서 저녁기도회를 인도할 때는 정말 꿈꾸는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저는 저녁집회를 하면서 성도들을 한 송이의 꽃으로 생각했습니다. 러블리 주일을 맞아 1부부터 저녁예배까지 올 성도들이 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가을에 피는 국화나 코스모스가 아니라 상사화로 말입니다. 아니, 저 자신부터 한 송이 상사화가 되었습니다. 10개가 넘는 교육관에 50명씩 모였다고 해도 예배가 끝나면 얼굴도 못보고 헤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러블리 주일에는 1부부터 저녁예배(6부)까지 30%의 성도들이 오면 꼭 반갑게 대면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러블리 주일은 현장예배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며 갈망하는 분들이 상사화로 피어나는 주일입니다. 마치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그리워하듯, 아니 상사화의 꽃과 이파리가 서로를 사모한 것처럼 그런 상사화의 그리움으로 만나고 피어나는 주일입니다. 이번 러블리 주일에 새에덴의 상사화들이 모여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제 자신부터 가슴이 찡하고 코끝이 시큰해집니다. 러블리 주일, 우리 모두 상사화로 만나고 상사화로 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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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러블리 주일, 상사화가 되어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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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는 영적 역설적 슈퍼 처치를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 마케팅 전문가이신 최명화 교수의 ‘지금 팔리는 것들의 비밀’(리더스 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최명화 교수는 저에게 일정영역에서 자문역할을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분은 책에서 코로나 사태 때부터 이 세상은 새로운 부족사회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예견을 했습니다. 언택트 온라인 시대가 오면서 취향에 맞고 어떤 사상이나 제품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커뮤니티가 형성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는 마켓컬리를 실례로 듭니다. 마켓컬리의 샛별 배송을 560만명이나 이용하는데, 이거 역시 새로운 부족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20만명이 골수 팬덤을 이루면서 마켓컬리의 직원처럼 홍보를 하고 충성을 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파레토의 법칙이 대세였다면 지금은 골수 팬덤의 원리가 대세라는 것이지요. 나심 탈레브에 의하면 골수 팬덤은 고객 중 2% 내외가 된다고 하는데, 그 2%가 전체를 움직여 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즘은 고객 중 2%만 확실하게 잡으면 2%가 20%를 움직이고 20%는 80%를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런 대세에 따라 최근에 CEO는 먼저 제품을 팔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믿게 하고, 제품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이루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와 단톡방을 통해서 많은 시간을 소통하고 대화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핵심고객과 골수 팬덤을 길러내고, 그 골수 팬덤은 지속적으로 그 회사에 스토리를 만들어주고 홍보까지 해준다고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죠. 교회도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미 공간의 권위, 전통과 제도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때 흑사병이 닥쳐서 사람들이 모이지를 못하니까 공간과 전통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코로나 초기 때부터 이러한 현상을 간파하고 공간 공동체를 넘는 역설적 영적 공동체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코로나가 광풍처럼 몰아칠 때 당연히 현장예배를 지키면서도 한국교회 최초로 화상 줌 예배를 도입했습니다. 공간을 초월한 역설적 영적 커뮤니티를 이룬 것이죠. 그러자 유튜브로 예배에 참여한 성도들이 유튜브 예배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교회와 현장예배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중대본의 지침과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서도 평일에 끊이지 않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자유롭게 릴레이 기도회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도들 스스로 온라인으로 성전사모헌금을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평일에 온 분들은 평일에 교회에 와서 드리고, 어떤 분은 교회 주차장 입구까지 와서 헌금을 드린 후 교구 교역자들의 기도를 받고 돌아가서 유튜브로 예배에 참여를 하였습니다. 현장에 모인 공간 공동체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더 뜨거운 영적 역설적 공동체를 이룬 것이죠. 그러니까 이 어려운 코로나 상황에서도 우리 교회는 결코 재정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운영뿐만 아니라 총회를 준비하고 한국교회를 섬기는 일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 저는 클래식한 설교만 한 것이 아니라 저의 온몸으로 설교의 온도와 몸짓, 눈짓을 다하여 몸부림치며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우리교회의 골수 팬덤 성도들이 모든 성도들을 움직인 것입니다. 굳이 퍼센트로 나눈다면 제가 보기에는 우리교회 골수 팬덤은 2%가 아니라 최소한 30~40%이상인 것 같습니다. 아니, 어찌 보면 80~90%이상이 골수 팬덤으로 보입니다. 예배 때면 화상 줌과 유튜브를 통하여 온 성도들이 함께 웃고, 울고, 감동하는 영적 역설적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최명화 교수의 말대로 새로운 부족사회 혹은 뉴 커뮤니티 시대가 온다면, 그럴수록 저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붙잡으면서 우리 교회를더 응집력이 강한 새로운 영적 역설적 공동체를 이룬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여전히 꼰대의식에 사로잡혀서 코로나 이전의 모습만을 지키려고 했더라면 우리 교회는 오늘의 살아 움직이는 교회를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영적 역설적 교회를 이룬 우리 교회는 코로나가 종식되고 대면사회가 오게 되면 코로나 이전의 교회보다 훨씬 더 폭발적인 강력한 슈퍼 처치로 재탄생될 것입니다. 부디 우리 교회가 그런 슈퍼 처치의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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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는 영적 역설적 슈퍼 처치를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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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가을산에서 겨울산을 봅니다··· ”
-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기도원에 갔습니다. 기도원에 가니까 홍장로님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본 홍장로님과 기도원에서 본 홍장로님이 너무 다르게 보였습니다. 홍윤기 목사님이 기도원에서 한 달 동안 있었는데, 홍목사님에게 “자네가 너무 부럽다”고 했더니 이런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인자요산(仁者樂山) 이라고 했는데 담임목사님은 정말 인자이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시지만 저는 산에 질려버렸습니다. 저는 인자가 아닌 듯합니다.” 정말 저는 원 없이 한 달 동안 그런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가을산을 생각하면 저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저는 기도원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 알밤을 주우러 갔습니다. 고요한 가을산에서는 알밤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가을산의 알밤에도 햇볕이 스미고 이슬이 젖고 별빛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아니,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초승달 몇 날이 남겨서 둥글게 익어갔을 것입니다. 가을산에서 알밤을 주우면서 유년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정신없이 알밤을 줍고 나니까 허리가 아팠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알밤 안에 담겨 있을 햇볕을 느끼고 이슬을 만지고 천둥과 벼락, 초승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도 그렇습니다. 저는 잘 정돈된 정원에서 핀 꽃이 아닙니다. 거친 광야에서 비바람에 젖고 천둥을 맞고 초승달을 바라보며 피어난 외로운 야생화와 같습니다. 농부들이 작물로 키운 알밤이 아니라 야산에서 혼자 이슬에 젖고 벼락을 맞고 초승달을 바라보며 익어간 산밤과 같습니다. 변방의 비주류로 출발해서 세계 최대 장로교단을 대표하는 총회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가을산의 알밤 속에 햇볕과 이슬이 담겨 있고, 천둥과 벼락, 초승달의 기억이 다 담겨 있는 것처럼, 제 안에도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습니다. 아니, 야생마처럼 거친 황야를 달려온 사명자의 땀과 눈물과 혼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고 교회만 바라보고 성도만 바라보며 달려왔습니다. 앞으로도 오직 주님의 영광과 한국교회 세움을 위해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칠 것입니다. 아직 중년이긴 하지만 더 깊은 가을로 접어들고 언젠가 제 인생에도 겨울이 올 것입니다. 그때 눈 내리는 겨울산을 바라보면서 이런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제 안에는 햇볕이 스며있고 이슬이 젖어있고 천둥과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아니, 외로운 초승달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모든 인내와 아픔, 슬픔과 기쁨, 희로애락은 주님의 영광과 교회 세움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제 인생에도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합니다. 제 안에는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충만하고, 저의 인생은 주님 한 분만을 위한 사명의 길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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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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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가을산에서 겨울산을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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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는 병을 앓고 있어요. 심한 강박증이죠.”
- 지난 주 우리 교단은 우리 새에덴교회에서 사상초유의 화상 총회를 개최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6.25 참전용사 때부터 화상 행사를 경험했고, 몇 주간 화상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노하우가 있었습니다. 아니, 처음 시작할 때 ‘미스터 트롯’팀에서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화상총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상으로는 한계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원래 큐시트 상에는 선거 시간이 20분으로 되어 있는데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해 한 시간 반 가까이 소모를 하였습니다. 그나마 제가 장로 부총회장 선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그렇게 끝나게 된 것입니다. 정말 아쉽게 끝날 총회였는데도, 다행히 그날 저녁 총회 역사 다큐가 총대들의 답답한 마음을 덮어 버린 것입니다. 정말 제가 100여 통이 넘는 칭찬 문자를 받았을 정도니까요. 이튿날부터 저는 하루 종일 총회 임원회의를 주관했습니다.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그런데 타교단의 화상 총회를 총괄했던 분이 과로사 했다는 소식을 듣고 겁이 났습니다. 우리 총회 직원들도 혹시 그런 사건이 나면 큰 일 난다는 생각에 저녁에 바로 끝내 버렸습니다. 저녁 늦게 교회로 돌아와 보니까 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요 인사들까지 총회장 취임 축하 난을 보내온 것입니다. 그 분들의 마음이 감사하기는 하지만, 저는 우리교단과 한국교회가 가장 어려운 때 총회장이 되었다는 부담감 때문에 저녁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 예배가 이렇게 초토화되고 한국교회가 무너져가고 있는데 나는 1년 동안 어떻게 예배를 회복하고 한국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다음날 총회 첫 일정으로 양화진을 갔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와서 국가조찬기도회 녹화에 참여했고 각 교계 방송과의 인터뷰를 줄줄이 하였습니다. 이어서 일간지 인터뷰까지 했습니다. 기자들이 저에게 총회장 소감을 물어봤을 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한 마디로 두려운 영광이고, 영광스러운 두려움입니다. 제 얼굴을 보십시오. 눈이 쏙 들어가고 얼굴은 반쪽이 되지 않았습니까? 잠을 못자서 그런 것입니다.” 그날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의 형편을 알고 강남에서 줄기세포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저희 교회 신현순 권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면역력을 증강시켜야 합니다. 면역이 떨어지면 코로나에 노출이 됩니다. 제가 부탁드릴 것도 있고 기도 받을 내용도 있으니 병원 심방 좀 와 주세요.” 그래서 서울에서 점심 약속을 끝낸 후 병원 심방을 했고 이어서 면역력을 높이는 시술을 받았습니다. 제가 시술을 받는 동안 원장님은 신경 쓰지 않도록 수면마취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면마취마저도 곧바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한참 동안 있다가 가까스로 잠이 들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 우리 총회가 잘 되어야 하는데, 임원회도 다시 해야 하고 미진한 부분들을 빨리 결정해야 되고, 실행위원회도 소집을해야 하는데... 그리고 한국교회도 잘 세워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며 잠시 잠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잠이 든 후에도 “아, 내가 총회장을 잘 해야 하는데...” 그런 잠꼬대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강인철 안수집사가 그 이야기를 해주는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아, 나는 병을 앓고 있구나. 심한 강박증을 앓고 있구나.” 그날 밤도 잠들기 전 앉아서 이런 기도를 계속 했습니다.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반전과 역전의 종이 되게 하소서. 제 마음을 짓눌러 오는 이 강박이 꼭 총회를 세우고 한국교회를 세우는 일로 반전이 되게 하소서. 역전의 역사를 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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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는 병을 앓고 있어요. 심한 강박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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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광야를 걷는 사이에 꽃이 피지요··· ”
- 스티브 도나휴가 쓴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 스티브 도나휴는 20대에 사하라 사막을 건넜던 경험을 통해서 책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까를 생각하다가 이 책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목회하며 공적 사역도 해야될 총회장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남들은 꽃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거친 바람이 몰아치는 외롭고 험난한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이럴 때 성도들과 함께 어떻게 잘 이겨내고, 교단 총회장으로서 총회와 한국교회를 섬길 것인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첫째,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가는 삶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 쭉 보면 모세의 설교는 새삼 과거를 기억하고 돌이키며 동시에 앞으로 전진하는 말씀을 반복해서 했습니다. 저는 코로나가 있기 전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광주5.18사건 때도, 백암교회 때도 예배만큼은 물러서는 법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저를 모르는 사람들이 예배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처럼 보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는 한 번도 예배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코로나의 상황에서도 우리교회는 여름수련회를 꽉꽉 채워놓고 하였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국교회 예배회복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가 재확산 되면서 저희 교회 인근 고등학교와 한 교회에서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바로 판단하고 결단을 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건강과 예배를 지킬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화상 줌까지 도입한 것입니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해야 반석에서 샘물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코로나 상황 속에서 더 바라볼 분은 오직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금식할 때 얼마나 하나님만 바라보셨습니까? 저는 현장예배냐, 온라인예배냐 논란에 휩싸이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코로나 초창기부터 예배를 포기한 교회에 불만이 많았지만 단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비판한 사람들을 아울렀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떤 형식보다도 우리가 어떻게 예배의 본질을 지키고 하나님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셋째, 광야를 지나다보면 어느새 우리의 삶에 꽃이 피고 풍성해 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성도들의 헌신과 성전 사모 운동이 더 뜨거워졌습니다. 무엇보다 오히려 제 자신이 하나님을 더 사모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가까워진 것입니다. 이런 저의 간절함과 진정성이 성도들에게 전달되어서 교구마다 구역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삶이 풍성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코로나 상황은 우리 모두에게 시험이기도 하였지만 더 큰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코로나라는 광야를 잘 걸읍시다. 광야를 지날 때 곧 꽃이 피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꽃이 피면서 우리의 삶이 더 성숙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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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광야를 걷는 사이에 꽃이 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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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립고 보고픈 성도님들··”
- 그립고 보고픈 성도님들,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하여 온라인 예배로 전환한지도 어느덧 네 번째 주가 되어 갑니다. 한국교회 예배를 회복하는데 우리교회가 가장 앞장섰고, 우리 교회는 90% 이상 예배가 회복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도 60~70%이상 회복되었다고 했는데, 갑작스런 코로나의 재 확산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분통이 터집니다. 한두 주만 지나면 여러분들과 함께 현장예배를 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러분들을 향한 저의 그리움은 더 깊어만 갑니다. 화상 줌에 비춰지는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반갑고 한 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텅 빈 예배당에서 홀로 첫 예배를 인도할 때 저는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하고 성도 여러분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이것이 다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니 더 죄송하고 송구하기만 하였습니다. “아,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현장예배로 달려오고 싶을까. 비록 마스크를 쓰고 예배를 드리더라도 얼마나 교회로 달려오고 싶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얼마나 제 가슴이 미어지고 아팠는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화상 줌에 비춰지는 성도들을 향하여 반갑게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고 축복을 하였지만 제 가슴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또 흘러내렸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갈대처럼 헤어져 있지만, 반드시 꽃으로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더 주님의 약속과 은혜를 사모하며 온 힘을 다하여 말씀을 외치고 외쳤습니다. 저는 새에덴교회를 개척한 이후부터 교회가 저의 집이었으며, 성도들이 저의 가족이었습니다. 교회가 제 생명이요, 성도가 제 목숨이었습니다. 새에덴교회가 저였고 제가 새에덴교회였습니다. 성도들이 아프면 저도 아팠고, 성도들이 힘들어하면 저도 힘들어했고, 성도들이 울면 저도 울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교회와 저는 뗄 수 없었고, 제 인생에서 여러분들을 떼어낼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저를 제 집사람이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이해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작 여러분과 만나지 못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만날 수 없는 이 그리움의 시간이 오히려 우리의 사랑을 더 깊고 강하게 해 주리라고 말입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서 저에게 여러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여러분도 저를 그리워하며 교회를 사모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목사가 텅 빈 예배당을 바라보며 설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아십니까? 지난날 이 성전의 자리를 채워주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지고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어려운 시간 속에서 더 역설적인 헌신을 드리며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부족한 종을 위하여 눈물겨운 사랑과 성원을 해 주신 성도들을 보며 저는 주님 앞에 이렇게 외치고 외칩니다. “주님, 이 부족한 종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성도들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새에덴의 성도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새에덴의 찬란한 약속과 축복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저는 한 영혼, 한 영혼을 끌어안고 제 모든 기도와 눈물과 희생을 주의 제단에 바치겠습니다. 하루속히 지금의 위기가 지나가게 하시고 우리가 다시 꽃처럼 만나 예배드리는 날이 오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 성도들을 끝까지 지켜 주옵소서.” 그리운 사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보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제 두 눈동자에는 여러분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아니, 제 모든 인생을 다 끝내고 주님 앞에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교회만 바라보고 여러분만 바라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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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립고 보고픈 성도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