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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회 논평] 여성을 역차별하는 ‘성평등가족부’가 웬말인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각 부처의 장관들이 내정되고, 청문회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현재 ‘여성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한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국민연합’과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등의 수 많은 시민 단체들은 이를 우려하며, 일제히 반대 입장을 피력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용어의 잘못 사용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가족부 영문 표기에서 ‘여성’이란 말은 찾아보기 어렵다. 거기에다 ‘gender equality’를 ‘성평등’으로 우리말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유엔이 정한 여성을 차별하지 말라는 규정과도 맞지 않는다. 유엔은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에서 의미를 정리하기를, ‘여성에 대한 차별이란 성에 근거한 모든 구별, 배제 또는 제한을 의미 한다’고 명시한다. 즉 성을 의미하는 것은 ‘sex’(생물학적 성)이지, ‘gender’(사회학적 다양한 성)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엔에서도 사회적 성을 나타내는 ‘gender’에 대한 차별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둘째, 이는 오히려 여성을 역차별하게 된다. 이를테면 성평등을 도입한 나라들에서 성평등을 실행한다며, 화장실과 탈의실 같은 곳에 생물학적 남성이 자유롭게 출입하게 되므로, 여성들의 인권과 안전권이 침해를 당하고, 심지어 성폭력과 같은 위험에 노출된다. 그래서 20여 년간 ‘성평등’을 진행해 왔던 영국에서도 대법원에서 ‘여성으로 태어나야 여성’이란 판결을 내렸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성별은 여성과 남성 두 개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여성가족부’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젠더를 더욱 강화시킨 ‘성평등가족부’로 만들려는 것은 세계가 놀랄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가족부가 처음 생긴 것은 2001년 김대중 대통령 당시로 ‘여성부’가 신설된다. 그리고 2005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 부처의 문제점이 계속 노출되었다. 부처 역할의 중복과 비효율성, 남성 역차별 논란, 정치적 논란의 중심, 그리고 정책 실효성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여성가족부’ 혹은 ‘성평등가족부’가 있는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독립된 내각의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처에 소속된 형태이다. 그리고 일부 나라인 프랑스,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는 여성 권리, 여성 권익에 대한 업무로 ‘여성권리부’나 ‘여성평등부’를 두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아예 ‘젠더’에 대한 평등을 실현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많이 노출되고, 세계에 없는 ‘성평등가족부’를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아예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 여성의 권익과 인권 보호를 위한 것이라면, 정부 각 부처에 업무를 할당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장관급의 ‘성평등가족부’를 두어서 국민 간 갈등의 요인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정부의 부처를 만들어 운용하는 것도 국민들의 눈높이와 세계 각국의 수준에 맞춰야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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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5-07-2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한나’
    성전 창문 밖으로 들려오는 외로운 아이의 울음소리에 당장이라도 괴나리봇짐을 싸서 달려가고 싶었지만 달빛 눈물 쏟으며 잠 못 드는 의로운 사사 한 명이 없어 암전되어 버린 시대 아들을 주시면 주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처절한 서원의 기도 그녀의 눈물이 강물 되어 흐르던 성전에서의 외롭고 차가운 나날들 누구도 알아듣지 못한 비탄의 시를 밤의 꽃으로 피어나게 하신 당신 오늘도 아무도 모르게 홀로 기도하는 자들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방울 끝에서 빛나는 이름, 한나. - 어머니의 참된 사랑은 어디서나 위대하다. 인류 역사에는 모정의 미덕을 보여주는 담화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성경에서도 다를 바 없다. 예수와 그 어머니 마리아를 봐도 그렇다.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 모자 간에도 곡진(曲盡)한 사랑은 매한가지다. 어머니 한나의 사랑은 아들 사무엘을 위대한 신앙의 인물로 키워냈다. 그 뒷면에는 ‘눈물이 강물 되어 적셨던 성전에서의 외롭고 차가운 나날들’이 있다. 시인은 그 간절함이 있었기에 한나가 기도의 승자가 됐고, 기도로 승부했기에 아들의 영예를 일궜다고 본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홀로 기도하는 자들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방울 끝에서’ 한나라는 이름이 빛나고 있다고 언명(言明)한다. 한나는 위대한 아들 뒤에 숨어 있는 모든 훌륭한 어머니의 대명사다. - 해설 : 김종회 교수(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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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7-2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별세 지도자를 추모합니다
    존경하는 별세의 지도자 이중표 목사님이 소천을 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서울 아산병원에서 존경하는 이중표 목사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하였던 때가 기억납니다. “제가 15년을 덜 살 테니까 부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이중표 목사님께 15년의 삶을 돌려 주옵소서...” 그만큼 한국교회에 이중표 목사님의 지도력이 중요하였기 때문 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고 이중표 목사님을 불러 가시고 저는 난처스럽게도 멀쩡하게 살아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께서는 부족한 종이 1만 평이 넘는 예배당을 짓는다고 하였을 때 너무 기뻐하시고 축하를 해 주셨습니다. 당시에 저는 너무나 어린 종이었지만 양수리수양관에서 전국목회자세미나를 하실 때 몇 번이나 강사로 세워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진정한 별세의 지도자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사셨지만 진정한 별세의 삶을 사셨고 별세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별세란 죽어서 가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자만이 누리는 은혜의 세계를 별세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고 권력으로부터 소외당한 천대받은 사람들에게 빵을 주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진정으로 하실 일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는 일이었습니다. 민중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의 왕으로 모시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진정한 별세 공동체인 당신의 몸된 교회를 이루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존경하는 이중표 목사님의 말씀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삼아 설교를 준비하는데 도대체 설교문이 안 풀려 종이를 여러번 찢고 찢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런 감동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종아, 너는 이 말씀을 설교하지 못한다.” 결국은 그 말씀이 목사님의 신앙고백이요 별세신앙과 신학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중표 목사님 20주기 추모예배 강단에 서기 전에 자문해 보았습니다. “내가 도대체 어떤 목사이길래 이 강단에 설 수가 있단 말인가?” 너무나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별세 목사만 별세 교회를 만들고, 별세 목사가 되어야 별세 목회를 할 수 있고, 별세 목사만이 교인들을 행복하게 하고, 별세 목사만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별세 목사만이 민족 평화의 사도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별세 신앙에 견주어 볼 때 너무나 부족하고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가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래도 성령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도 민족성전에 가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 너의 도리다.” 한국교회에 진정한 별세 신앙과 별세 신학을 외친 분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어쩌면 존경하는 이중표 목사님만이 별세 신앙을 이루고 별세의 삶을 사시고 별세 목회를 하셨고 별세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별세의 삶을 사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셔서 한편으로는 너무나 감격과 희열이 있으셨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힘들고 고독하셨을까? 우리는 이중표 목사님을 보낼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영원하고도 궁극적인 별세의 세계로 가셨습니다. 목사님은 가셨지만 별세의 교훈과 가르침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의 피와 땀과 눈물로 세운 민족성전을 통하여 별세의 신앙과 별세 신학의 영향력이 많이 많이 확장되시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이중표 목사님, 천국에 가셔서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저 영원한 별세의 세상에서 얼마나 행복한 별세의 은혜를 누리고 계십니까? 우리가 어르신의 별세 신앙을 조금이라도 지켜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이중표 목사님을 통하여 전달된 별세 신앙과 별세 신학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잘 지켜지고 확장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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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7-21
  • [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박창식 박사(1961-)
    경북 상주 출신... 현장 목회자로서 지역교회사에 관심 세천 박창식(細川 朴昌植)은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남적리에서 아버지 박동개(朴洞介)와 어머니 윤일선(尹一善) 사이에 9남매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호 세천은 그가 태어난 마을 앞에 흐르는 낙동강 지류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의 학자적인 모습이 연상되기에 걸맞는 아호이다. 박창식은 고향에서 초등학교 1학년 무렵에 가정의 우환으로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그는 상주 부원교회를 중심으로 학생회 활동 등 신앙생활에 진력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목사로서 소명을 가지고 자랐으며, 계명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 후, 대구노회 목사후보생으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1989년에 M.Div 과정을 졸업하고, 1990년 동부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부산에서 짧은 부목사 생활을 거쳐 1993년부터 김천서문교회와 1999년부터 대구 달서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했다. 그는 목회현장에서도 건강한 교회는 지나온 역사를 바탕으로 현재를 성실히 살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교회사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신학대학 재학 시절부터 교회사 연구에 관심을 가진 이후 체계적인 역사공부를 위해 일반대학과 신학대학을 오가며 수학한 다음, 2005년 모교인 계명대학교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신학박사(Th.D)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신학대학에 출강하며 꾸준히 후학양성에 힘을 쏟으며, 특히 지역교회사 발굴과 기록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나아가 교계와 교단에서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교단 소속 대신대학교 기독교역사문화연구소 초대소장을 지냈으며, 대구경북기독교역사연구회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본 필자는 그의 회갑 기념논총<목회와 교회사> 가운데 축사의 글을 기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그와의 인연은 40년 전 부산삼일교회에서 고신대학교 이상규 박사와 함께 <한국개혁주의교회사학회>를 설립하는 총회에서 만나 회장에 장희종 목사, 부회장에 본 필자, 총무에 이상규 박사로 조직을 구성했는데, 그때 필자가 학술연구부장에 박창식 목사를 추천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학문의 동년배로, 목회일선에서 같은 신학교인 대신대학교에서 연구실을 함께 쓰면서 목화와 학문에 전력을 다해 교회사학자로 성장해 왔고, 대구 경북 지방교회사 연구에도 함께 힘을 모아왔다. 뿐만 아니라, 그는 총회역사위원회가 간행하는 학술지 <장로교 역사와 신앙>과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학술지 <한국성지순례연구>에도 꾸준히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한국교회사 분야 특히 경북 지역의 교회사 연구로 향토교회사 연구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소장 학자이다. "교단의 역사 지킴이"란 닉네임 얻어 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김남식 박사는 박창식 목사를 "공부하는 목사"로 평가하였다. "그는 목회라는 소명에 순명하였고, 학문이란 바다에서 진주를 캐내었다. 이 두 가지 영역을 균형있게 하기란 어려운 일인데, 이것을 무난히 감당해가고 있는 모습에서 그의 순수와 열정을 읽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같은 책, p.45). 또 예장합동측 총회장 배광식 목사는 그에게 '교단의 역사 지킴이'란 닉네임을 붙였다. "그는 대신대학교의 학교사를 정리하고, 지역교회사를 두루 섭렵하더니 급기야는 교단의 역사 지킴이로서 다대한 역활을 보여주었다. 우리 교단은 한국장로교의 장자교단으로 그 역사에서도 뒤지지 않지만 그동안 역사작업은 많이 미진했다. 제100회기 총회를 맞이하여 총회역사위원회가 조직되었고, 박창식 목사는 처음부터 그 위원회에서 중심적인 역활을 감당해 왔다. 숨겨진 역사들을 발굴하는 일에 열심이었고, 또한 기독교 역사 사적지와 순교 사적지 발굴과 지정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었다. 무엇보다 <총회역사관>의 설치 위원장을 맡아 어려운 여건에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다. 이제 빅창식 목사를 일컬어 교단의 역사 지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사료된다"라고 치하했다.(같은 책, p.34). 전 총신대와 대신대 총장을 역임한 정성구 박사도 박창식 목사를 '학자로서의 품위를 지키고'라는 글에서 "인류 역사의 최초 최고의 역사가는 성 누가였다. 흔히 의사 누가로 알고 있지만, 그는 당대의 지성적이면서 논리적인 교회 역사가였다. 그는 예수님의 12 제자가 아니면서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헬라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철저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바울과 선교 동역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누가는 바울의 옥중생활을 끝까지 보살핀 주치의였다.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역사가로써 예민한 필치로 영감을 받아 위대한 기록을 남겼다. 누가는 초대교회의 오순절 성령의 사역으로부터 베드로의 설교,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 바울의 선교의 발자취를 따라서 동행하면서 기왕의 자료들을 정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증거하는 초대교회의 기막힌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만에 하나 누가가 초대교회의 생성과 발전 그리고 사도 바울의 이방전도 사건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복음서와 바울서신 사이에 다리를 놓지 못했을 것이다" 라며, 이번에 박창식 목사의 회갑을 맞이하여 그동안 여러 지면에 기고한 논문들을 묶어 <목회와 교회사>란 회갑 기념논문집을 발간한데 대하여 치하하였다.(같은 책, p.35). "끊임없이 공부하고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목회자"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했던 고신대학교 이상규 박사는 축하의 글<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란 제하의 글에서, 첫째, 그는 신실한 목회자로 살아왔다.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예장합동 소속 목사로 부산과 김천에 이어 대구에서 목회자로 헌신했다. 둘째, 그는 연구하는 학자였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던 목회자요 학자였다. 목회훈련 과정을 이수한 후에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한국근대사를 공부하였고, 고신대 대학원에 입학하여 한국교회사를 공부했다. 대구에서 목회하게 되자 계명대학교 대학원에 입학, 교회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러 분야를 연구했지만, 특히 대구경북지방 기독교 연원을 추적하는 개척자적 연구로<경북기독교회사>를 발행하였다. 셋째, 그는 문필가이자 저술가였다. 칼럼, 수필, 논설, 설교문, 논문 등 다양한 글을 신문이나 학술지에 발표하고 방송에 출연해 강의하기도 하였다. 넷째, 그는 사랑과 의와 신의를 겸비한 신앙인격자이다. 이 점을 해설적으로 말하면 교회에 대한 사랑이 깊고, 공사간의 일처리에 공정하고, 인간 관계에서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란 점을 말한다. 그와 교류 한지 30년이 지났지만 그는 항상 교회 우선적인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가진 목회자임을 보게 되었고, 여러 기관이나 위원회에서 일하면서 공의를 추구하며 바름(正)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동시에 그는 인간 관계에서 신의를 지키는 분이었다 라고 치하했다. (같은 책, pp.49-50).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위의 글귀 '도리불언 하자성혜'를 인용, "복숭아 나무와 오얏 나무는 스스로는 말하지 않지만 그 꽃과 열매가 향기로워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그 나무 아래 저절로 길이 생긴다" 라는 말로 박창식 목사의 군자다운 모습을 그리었다. 한국교회사를 지역중심의 미시사적 연구 초석 현재 대구경북기독교역사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영남대학교 손산문 교수의 평을 들어보자. 그는 박창식 목사에 대해 학여역수(學如逆水)의 연구자라는 제하에 "운전 증에 자동차의 후시경을 보는 것은 뒤로 가고자 함이 아니라 올바로 가고자 함이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단순히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나아가 보다 바람직한 미래까지도 조망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전문교회사 연구자로서 박창식 목사의 교회사 연구 특징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첫째로, 한국교회사 연구의 관심을 학문의 장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현장에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을 들었다. 근자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사 연구는 대부분 전문학자들에 의해 학계 안에서의 담론으로만 주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박창식 목사는 신학교 교수로서 학계 뿐 아니라 목회자로서 교회와 교인들에까지 한국교회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 둘째로, 주목할 공헌은 지역교회사 연구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동안 한국교회사 연구는 중앙중심의 거시사적인 연구가 주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박창식 목사는 일찌기 지역중심의 미시사적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경북교회사와 영남지역교회사를 탐사해 이 분야에 초석을 놓았다. 셋째로, 예장총회 역사관 설립 및 교단 산하의 신앙유산 발굴 및 보전에 끼친 영향이다. 유적지 발굴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 사적지를 전국에 25개 처를 지정 발굴에 큰 역활을 하였다. 그의 학위 논문 제목에 예시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대구 경북지역의 역사고찰이란 것만 보아도 중앙에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미개척분야를 발굴한 것은 박 목사의 노력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교회사 연구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박창식 목사는 바쁜 목회일정 가운데서도 '학여역수'의 자세로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해 온 것은 그의 큰 업적이라 할만하다.(같은 책, pp.53-54). 박창식 박사는 자신의 연구 면모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목회자가 본질에서 벗어나 교회사에 기웃거리는 것은 외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나는 그 길에서 갈할 때마다 용천수를 마셨으며, 나태할 때마다 일깨워주는 수많은 영적 거장들을 만났다. 그들의 삶과 고뇌는 나의 생애와 사역의 지로(指路)였고 지남(指南)이었다. 나는 목회의 길에서 교회사 연구에 드린 시간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 나같은 천학비재한 사람이 그나마 목회의 길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한 길로 걸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같은 책, p.25). 박창식 박사의 역사 연구 방법론은 일반적이긴 하지만 굳이 표현한다면 실증주의적인 역사관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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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규 목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2025-07-17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할렐루야로 찬송하라’(계 19:1-5)
    할렐루야는 구약에서 시편에 많이 나오고,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옵니다. 할렐루야의 ‘할렐’은 ‘노래하다, 송축하다’라는 히브리말 ‘할랄’의 강조형태이고, ‘루’는 2인칭 복수명령형, ‘야’는 여호와의 축약형입니다. 그래서 할렐루야는 ‘너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반드시 찬양하여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할렐루야를 불러야 할까요? 첫째, 구원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영광은 하나님만이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능력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찬양해야 합니다.(1절)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2a절) 하나님 심판이 왜 참되신가를 보면, 첫째, 하나님만이 사람의 깊은 속마음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만이 바른 판단을 하실 수 있는 지혜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계 7:12)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2b절) 하나님은 순교자들의 피를 반드시 갚으십니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 6: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갚아 주시지만,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작정한 수가 찰 때까지 순교자들이 계속 생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끝까지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처럼 우리도 끝까지 믿음 지키기를 소망합니다.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4절) 여기서 이십사 장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네 생물은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인 사자(용맹성 상징), 송아지(힘), 사람(지능), 독수리(빠름)입니다. “하나님 종들”(5절)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인 선지자와 순교자를 의미합니다.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두 사회 계급 차별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의 찬양 핵심은 어린양, 즉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찬양 내용은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희생적인 죽음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을 찬양합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서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이루어졌음을 노래하는 것이 찬양의 핵심입니다. 다음으로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소유하신 일곱 가지를 찬양합니다. 즉 능력, 부, 지혜, 힘, 존귀, 영광, 찬송입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 5:11-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찬송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찬송’, ‘복’입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 3:10)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3) 우리가 드리는 찬송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면서 거기에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 나머지 우주가 찬송하는 것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입니다. 즉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동격으로 찬양받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 5: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연이 아멘하고, 우리는 경배해야 합니다. 예수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는 평생 할렐루야로 주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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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1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CBS 라디오 이야기와 행복 스토리
    제가 광주신학교를 다니며 화순 백암교회를 개척할 때였습니다. 저는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CBS 라디오 방송을 들었습니다. ‘라디오 강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그때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며 푸른 꿈을 꾸며 잠들었습니다. “주여, 저도 저런 목사님들처럼 크게 쓰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 고향 남원에 CBS 방송이 송출되었다면 제가 CBS를 청취하였을 텐데, 아쉽게도 우리 고향에는 방송이 송출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CBS에 남원중계소가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 교회가 선뜻 중계탑을 설치하는데 후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웬 은혜로 제가 CBS 재단 이사장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CBS 이사장이 되기 위해서 어느 누구도 개인적으로 만나 식사를 모시며 표를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최인 이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이사님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현명한 선택 때문에 제가 이사장이 된 것입니다. CBS는 한국교회의 공공재로 쓰임 받아 왔습니다. 먼저는 설립자 감의도 선교사님의 선교 정신을 지켜서 라디오와 TV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잘 전해 왔습니다. 동시에 빠르고 신속한 뉴스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를 하였습니다. CBS는 그 어떤 군사 독재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신속하고 공정한 뉴스를 전하는데 앞장서는 방송이었습니다. 물론 한동안 군사 독재에 의해서 뉴스를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공정하고 정확한 뉴스를 전하는 방송이 되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뉴스뿐만 아니라 교양, 시사,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다가가고 또 수많은 설교나 메시지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길 기도합니다. CBS는 진보와 보수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리고 복음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송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시가 있습니다. “하루가 끝나면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둔다 / 저녁이 식기 전에 / 나는 퇴근을 한다...(중략) /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을 꺼내면 / 하루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 나는 퇴근을 한다 / 퇴근을 하면서 / 저녁을 꺼내어 /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 하루의 끝에서” CBS 방송이 몸과 마음이 지치고 외로운 사람들의 서랍에 들어 있는 한 끼의 밥이 되고, 사랑이 되고,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종도 작지만 그러한 일에 기여를 하고 섬기겠습니다. 특별히 지금까지 재단 이사회를 잘 이끌어 주신 육순종 전 이사장님께 감사드리고 육순종 목사님의 지도를 받아 CBS를 잘 섬기겠습니다. 이사회뿐만 아니라 CBS 나이영 사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임원과 직원들을 잘 섬기겠습니다. 특히 취임식에 참석하신 수많은 국회의원님들, CBS 이사님들, 교단 총회장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성도들도 CBS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더 크게 확장되기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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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13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말씀으로 주님을 만나다’ (계 19:11~16)
    요한계시록의 내용에는 상징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잘 읽으면서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 상징하는 언어가 나타내는 의미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성경말씀 해석의 관건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요한의 눈을 열어주셨고, 주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이 사도 요한을 통해 기록되었으니, 이는 요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과 그 뜻을 나타내 보여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된 책을 덮어만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치유받고, 말씀을 읽을 때마다 그 말씀이 믿어지고 깨달아지며 지혜가 임하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여야 될 줄 믿습니다. 요한은 하늘이 열리고 거기 흰 말 위에 ‘충신’과 ‘진실’이라고 부르는 분이 앉아서 정의로 심판하며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위해 변호해 주고, 몸소 싸워준다면 얼마나 큰 은혜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러한 분이십니다. 주님은 완전히 신실하시고 진실하십니다. 그리고 공의와 정의를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주님께서는 우리도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 하늘문을 열어놓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열고 오직 주님을 먼저 생각하며, 생사를 주께 맡기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일에 신실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싸움은 선과 악의 싸움이며,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고,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며,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과 어둠의 영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정치권에도, 사회 속에도, 가정과 개인의 마음 안에도 이러한 선과 악의 싸움과 진실과 거짓의 싸움과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싸움은 결국 하나님 안에 거하는가, 어둠과 정욕에 거하는가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거기에서 이겨야 할 줄 믿습니다. 백마를 타신 분이 충신과 진실이며, 피 뿌린 옷을 입으신 것으로 보아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피는 예수님께서 박해와 순교로 인해 흘리신 피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요한복음 1장 초두에 나오는, 이른바 말씀이 곧 예수님이신 것을 나타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읽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일과 같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일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좌우에 날선 검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오늘날 주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이행함을 통해서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인해 크고 놀라운 은혜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16절). 우리는 이 사실을 온전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말씀과 권능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심판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뜻에 합당하도록 선하고 공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뜻과 그 말씀에 맞추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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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0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두려운 영광, 설레임”
    지난 목요일 오후에 황순원문학관 소나기마을에서 ‘영혼을 담은 시 쓰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백일장대회에 가는 것만큼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슴이 설레기도 하였습니다. 시를 쓰는 것은 시상을 갖고 순간순간 시가 찾아올 때 쓸 수 있지만 시 창작 강의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에서도 저명한 시인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지만 ‘시란 무엇인가?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한 분은 못 봤습니다. 그냥 자기 시 몇 편을 소개하고 삶의 이야기로 마감하는 걸 봤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할 수가 있죠. 저에게도 많은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기회에 ‘시는 무엇이고 어떻게 시를 쓸 것인가’ 정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적지 않는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의안을 준비해도 왠지 낯설고 두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도들이나 일반인 앞에서 강의를 한다면 그렇게 두렵고 떨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시대 최고의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교수님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고 스트레스였습니다. 잘해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큰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꼭 두려움과 불안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영광스럽고 가슴이 설레이기도 하였습니다. 강의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는 국문과나 문창과를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소나기마을 촌장이신 김종회 교수님께서 어느 정도는 저의 필력과 구술력을 인정하셨기에 저를 강사로 부르셨지 않나 싶어 더 가슴이 뛰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엿장수, 사탕장수의 이야기로 시작하였고 상여의 만가 소리를 시연하며 시 강의를 접근 했습니다. 결코 녹록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앉아서 할 수도 없고 일어서면 강의안이 안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원고가 보이고 안 보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원고를 이미 그림 언어로 거반 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강의를 했는지, 무슨 꽃으로 내 가슴을 문질렀는지 땀이 눈속으로 들어 갈 정도였습니다. 종교적 언어, 신앙의 언어를 쓰지 않아도 시는 에덴을 향한 원형 혹은 근원을 향한 향수적 갈망이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움에 대한 향수를 이미지 언어로 쓰는 것이 시라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해도 어느 누구도 저항을 하거나 반발을 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설교를 하는 목사이기 때문에 가끔 억양이나 설교의 이미지가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마저도 강의 흐름 상 모두 수용하고 용납하는 듯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김종회 교수님께서 “이곳이 대학 강의실이라고 한다면 교수로서도 99점을 줄 정도라”고 하셨습니다. 강의가 끝나도 그 설렘이 싹둑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련과 아쉬움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준비한 내용을 절반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1시간 40여 분 동안 강의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많은 시간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럼에도 준비한 내용을 절반도 못했습니다. 아쉬움은 미련을 낳았지만 그럼에도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두려움과 설레임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여전하기만 합니다. 좀 더 잘할 수도 있었다 싶었는데 저희 장모님이자 기도의 어머니이신 정금성 권사님이 오셔서 부담감이 더 커져 갔습니다. “아니 지금 젊은 연세도 아니신데 왜 여기까지 오시는가...”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계기를 통해 저의 시가 한 단계 더 발전하고 다 하지 못했던 저의 시론이 활자화 되기를 바래 봅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고 성원해 주신 김종희 교수님, 참석해 주신 주민들, 그리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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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06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욥의 고백’(욥 42:5)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1:1) 사탄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9절)라고 하며 욥의 모든 소유물을 치면 주님을 욕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11절) 하나님께서는 욥을 신뢰하심으로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시며 사탄에게 욥을 맡기셨습니다.(12절) 그래서 욥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사탄의 전략을 다 보게 되었습니다. 욥은 고난 중에도 중보자가 계심을 믿었습니다.(19:25) 본문을 보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 그동안 하나님을 귀로 듣기만 하였는데, 이제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고, 고난 문제를 단순한 죄로만 본 것을 회개하며 하나님 섭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욥이 매우 심한 고난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스발이 찾아왔습니다. 나중에 엘리후가 등장합니다. 세 친구는 욥의 고난을 죄의 값으로 보았습니다. 엘리후는 욥을 훈련하기 위해서 고난을 주신다고 말하지만, 나중에는 죄의 값으로 보았습니다. 고난은 죄의 값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의 세 친구들의 그런 주장에 노하셨습니다. 사람 자체만으로도 우주를 다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섭리와 무궁한 지혜를 사람이 다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욥의 네 친구가 욥의 고난을 보며 말한 내용을 살펴봅니다. 엘리바스는 고난에 대한 지혜를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5:27) 엘리바스의 태도는 잘 관찰하고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빌닷은 고난에 대한 지혜를 과거 전통으로 보았습니다. “청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8:8) 전통과 격언은 참고는 되지만, 사람의 것이므로 한계가 있습니다. 소발은 고난에 대한 지혜를 자기 느낌, 즉 즉감으로 보았습니다. 자기 생각이 옳으면 옳은 것입니다. 소발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12:12) 소발은 자신의 지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지혜의 근본 된 것이 문제입니다. 엘리후는 욥에 대해 심각하게 비난하지 않지만 세 사람이 놓친 것, 즉 고난은 사람을 사람되게 만들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33:17) 그러나 엘리후가 잘못 생각한 것은, 고난을 이기면 반드시 번영과 축복이 온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견해입니다.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36:11-12)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고난에 대한 지혜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28:28) 우리도 고난을 이기는 지혜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세 친구들이 고난에 대해 말한 것이 욥의 말처럼 옳지 못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42:7)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세 친구가 욥의 고난을 죄의 값으로 본 것은 맞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단순화시킨 것이 잘못입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한 것이 잘못입니다. 세 친구 생각에 교훈이 될 말한 지혜는 사람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겼는데, 모든 것을 판단하는 최종적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다 안다고 한 것이 잘못입니다. 세 친구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욥의 기도를 통해 어리석게 말한 것을 용서받게 되었습니다.(42:8) 한편, 엘리후는 책망에서 제외됩니다. 사람 만들기 위해 고난이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죄의 값이기도 하지만, 회개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보상해 주신다고 본 것이 문제입니다. 죄의 값의 결과가 이 세상에서 꼭 일어난다고 볼 수 없으며, 회개하더라도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지혜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섭리를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참다운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경외하는 자에게 주님께서 자신을 계시해 주시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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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0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 푸르지만, 아직 연약한 잎새들”
    저는 이따금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창문의 커튼을 열고 푸른 나무들을 바라봅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에 푸르름의 기운이 들어오듯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따라 바람에 퍼덕이는 잎들이 가여워 보입니다. 서로 바람에 부딪혀 상처받지 않을까 해서요. 그렇지만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름을 반짝이는 나뭇잎들이 대단해 보입니다. 바람이 불어도 새들은 날아다니고 지저귑니다. 제가 창문으로 다 보고 있는데, 새들은 누구도 보지 않는 것처럼 자유롭게 지저귑니다. 도대체 저 새들의 보금자리는 어디일까요? 어렸을 적에는 새들의 보금자리에서 알도 훔쳐먹은 시절이 까마득한데, 저 습자지처럼 얇고 부드러운 나뭇잎 사이에 둥지를 틀리는 만무할 것이고... 우리 교회가 지어질 때만 해도 오동나무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목이 되어 있습니다. 하긴 거의 20년이 흘렀으니까요. 나무는 자라서 모든 날아다니는 새들의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정말 여리고 부드럽게 느껴지던 것이 제법 푸르름의 빛을 반짝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푸름보다 여림이 더 강하다고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심방을 했던 한 성도가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지, 저의 첫사랑과 첫 열정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보통은 처음부터 그렇게 열심을 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얼마나 교회 생활에 몰두했냐면, 학업보다 교회 일을 더 중히 여겼습니다. 그런 세월이 거의 반세기, 안식년이나 안식월을 한 번도 갖지 못하고 푸르름이라고 하는 페달을 밟고 왔지요.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셨다면 이미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저 오동나무는 가을이 되면 스스로 낙엽이 되지만, 교회 뒤편에 있는 소나무들은 겨울도 쉬지 않고 푸르름을 자랑하죠. 낙엽으로 떨어질 때는 떨어지더라도, 이 순간 푸르름으로 발화하고 있는 저 넓적한 활엽수들을 축복합니다. 겨울에 폭설이 내리면 저 넓은 잎사귀가 그 무게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저 푸른 잎들을 바라보며, 얼마 전 심방 했던 새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가을이 온다고 푸르름을 포기하지 않으시겠지... 아직은 푸르름보다는 여린 면이 더 많지만, 가을이 와도, 겨울이 와도 더 단단하겠지.” 부족하지만 저처럼 말이죠. 푸르지만 아직은 여린 그 성도님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가호가 그분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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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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