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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회 논평] ‘쪼개기’ 차별금지법의 꼼수 안 된다
    현재 제22대 국회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두 개 올라와 있다. 진보당의 손솔 의원과 조국혁신당의 정춘생 의원이 발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안에는 대부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차별금지법 발의는 10여 차례가 넘는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13개 항목의 차별금지 조항과 손해배상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처벌이 가능한 차별금지법을 예고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08년 노회찬 의원(당시 진보신당)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에는 금지 조항이 22개였으며, 징벌적 손해배상과 2년 이하 징역과 1천만원 이하의 형사 처벌이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 있었다. 2011년에는 권영길 의원(당시 민주노동당, 후에 통합진보당)이 대표발의한 것에서, 22개 차별금지 조항과 2년 이하의 징역, 1천만원 이하의 형사처벌이 가능한 것이 발의되었다. 2012년에는 김재연 의원(당시 통합진보당)이 발의한 것에서 차별금지 조항이 22개, 역시 2년 이하의 징역형과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가능한 것이었다. 같은 해 김한길 의원(당시 민주당)이 대표발의 것에서도 22개 금지 조항, 2년 이하 징역과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명시되었었다. 같은 해인 2013년 최원식 의원(당시 민주당)이 대표발의한 것에서 차별금지 조항 13가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명시했었다. 그리고 국회 회기가 바뀌어, 2020년 장혜영 의원(당시 정의당)이 대표발의한 것에서 차별금지 조항은 23개, 1년 이하 징역과 1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했었다. 계속하여 2021년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것에서, 21개 차별금지 조항과 3년 이하의 징역과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더욱 강화된 내용이 올라왔다. 같은 해 권인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것에서도 박주민 의원 주장과 같은 내용으로 발의되었다. 또 2021년 이상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것에서, 21개 차별금지 조항과 징벌적 손해 배상이 가능하도록 법안이 올려졌었다. 그러나 이런 법안들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국회 회기가 종료되면서 모두 자동으로 폐기되었다. 그런데 제22대 국회 들어서면서, 2026년 손솔 의원(진보당)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고, 여기에서는 차별금지 조항이 25개나 되며, 집단 소송과 2년 이하 징역과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가능하도록 하여, 가장 강력한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고, 역시 2026년 정춘생 의원(조국혁신당)이 대표발의한 것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모든 법안들의 차별금지 조항에 해당하는 것 가운데, 공통적으로 들어간 것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차별금지를 빌미로 동성애를 우대하자는 것이다. 국민 다수의 양심적이고, 건강한 표현의 자유를 묶어버리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와 같이 끊임없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 하여도, 국민들의 열화(熱火)와 같은 반대로 지금까지 제정되지 못하자, 의원들은 ‘쪼개기’ 수법을 통하여 각 분야에서 차별금지법을 가늠하는 법안들을 내놓고 있다. 무소속의 최혁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5997호)에 보면 형법 제311조의 2항을 신설하여 ‘국가, 종교, 인종 또는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집단이나 단체에 대하여 모욕 또는 혐오감 표출 등의 방법으로 차별을 선동•조장하는 행위를 처벌하자’고 한다(공동발의: 양부남, 김준혁, 송재봉, 김우영-더불어민주당, 김재원, 정춘생-조국혁신당, 정혜정, 윤종오-진보당) 그리고 처벌 조항으로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거기에다 상습적으로 하면 가중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이것을 반동성애, 반중(反中國), 반이슬람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이 대표발의한 ‘출신국가 이유로 혐오표현 규제 법률안’(의안번호: 15627호)에 보면, ‘출신 국가 및 국적, 지역, 민족, 인종, 피부색을 이유로 한 혐오 표현 개념을 명확히 하고,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였다(공동발의: 이병진, 김주영, 김정호, 이재강, 김태선, 박수현, 박지원, 임미애-더불어민주당, 최혁진, 강선우-무소속) 그러나 ‘혐오의 기준’이 모호하며, 이것을 국가인권위원회와 연계시킴으로, 향후에 차별금지법의 일부처럼 되어, 개정까지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이다. 또 한 가지는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이 대표발의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일부개정안’(의안번호: 15374호) 제12조의2에 보면, ‘방송 등에서 제작 유통되는 콘텐츠가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회적 약자 등에 대한 차별•편견•비하 및 폭력을 조장하지 아니하도록, 문화 다양성 콘텐츠 제작 가이드 라인을 마련한다’는 것이다(공동발의: 김남근, 김문수, 손명수, 이언주, 조계원, 추미애, 황명선-더불어민주당, 김재원-조국혁신당, 최혁진-무소속) 차별금지법에서 가장 강력하게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주장하는 약자는 과연 누구인가? 당연히 동성애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반동성애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 배포한다면, 이런 것들도 차별과 편견과 비하와 폭력으로 몰아갈 것이 아닌가? 지금 수많은 법률들이 국회에 발의되어, 거대한 여권 정당들에 의하여 언제라도 손쉽게 통과될 수 있다. 이런 법률들이 국민들도 잘 모르는 가운데, 야금야금 통과되어 우리 사회에 적용된다면, 당장 차별금지법이 없어도, 차별금지법과 같은 효력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들을 우회하여 여러 분야에서 ‘쪼개기 방법’을 통하여 제정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리 국민들은 의원들의 입법 활동에 대하여 철저하게 감시하여 소위 ‘악법’들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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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6-02-28
  • [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⑨ 구속사와 구속 경륜 - 3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태초에 인간의 시조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인류의 역사는 그저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 거대한 한 방향을 향해 흘러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속사(救贖史)’, 즉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성취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완성하신 전 인류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흐르고 있는 위대한 구속사입니다. 이처럼 인류의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크고 비밀스러운 계획, 바로 ‘경륜(經綸)’이라는 틀 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구속 경륜(經綸, Administration)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구속 경륜의 의미 경륜(經綸)이라는 한자는 본래 옷감을 짤 때 세로줄인 ‘날실(經)’과 낚시를 할 때 쓰는 ‘낚싯줄(綸)’을 엮어 ‘일을 조직하여 경영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인데, ‘집(οἶκος, 오이코스)’과 ‘분배하다, 경영하다’라는 뜻을 가진 ‘네모(νέμω)’에서 유래된 '노미아'(νομία)'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경륜은 청지기가 집을 관리하고 다스리듯이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지상의 교회와 그리스도를 통해 천하를 다스리는 경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경륜을 어떻게 펼치십니까? 경륜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에베소서 3장 9-10절은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각종 지혜 곧 이 위대한 비밀의 경륜을 교회를 통해 세상에 선포하십니다. 2. 경륜과 구속사의 관계 구속사는 인간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작정대로 이 땅에서 성취되고 펼쳐진 그 모든 역사로, 구속사의 핵심은 단연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성취’에 있습니다. 창조, 타락, 회복, 완성의 전체 구속사는 바로 메시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경륜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작정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전 우주와 세상의 역사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관리와 경영을 의미합니다. 3. 하나님의 경륜의 절대적인 근거는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는 이유는, 이 경륜이 인간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영원하고 불변하시는 ‘작정(作定)’과 ‘예정(豫定)’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작정(Decree)은 ‘영원 전부터 창세전에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신 자신의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은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인간의 구원과 관련된 계획’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결코 우리의 행위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영원 전부터 이미 계획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은혜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증언합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말씀과 같이 믿음조차 작정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디도서 1장 2절은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는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정과 예정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경륜은 오직 그분의 작정과 예정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었을 때 그분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성경은 ‘때가 찬 경륜’이라고 표현하는데(엡 1:9-10), 이는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속에 정해 놓으신 뜻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로 그 때가 되었을 때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성경은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1:27),“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골 2:2)라고 증거합니다. 휘선 박아브라함 목사님은 「창세기의 족보」(41-42페이지)에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때가 찬 경륜’과 ‘비밀의 경륜’이라는 구속사의 설계대로 친히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영원 전에 개입하신 자신의 뜻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실현해 나가고 계십니다. 이 구속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이 모두 성취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전개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마침내 완성될 것입니다" 결론: 빈틈없는 경륜 속의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악의 세력이나 인간의 교활한 권모술수, 잔꾀, 계략도 영원 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그리고 그 구속 경륜을 결코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박국 2장 3절에서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속사는 절대 실패하지 않고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위대한 경륜을 성취해 드리는 영광스러운 도구로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너무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모든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은 때가 찬 경륜으로 때가 되어 이루어집니다. 또한 하나님의 경륜은 비밀의 경륜으로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나고 성취가 됩니다. 저희의 남은 인생이 하나님의 경륜에 탑승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지언정 하나님의 경륜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경륜의 장애물로 쓰임 받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직 저희의 남은 생애가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시키는 하나님의 도구로만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감사드리옵고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영상 보기 https://youtu.be/Y-qZgJLfim8?si=HtFvF8FWWefnk0MD 본 기고는 구속사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저자 박윤식 목사)를 토대로 구속사 말씀 전파와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위해 구성한 큐티입니다. 이승현 목사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B.A.)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미국 Knox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IVY College 부총장과 사)세계구속사말씀본부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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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5
  • [언론회 논평] 정부 종교 지원의 편중 실태와 공정성 논란
    우리나라의 각 종교별 지원금이 2026년도에 1,043억 5,600만 원으로 밝혀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종무실 예산을 분석해 보니 불교가 가장 많은 849억 8,100만 원을 차지했다. 다음은 천주교로 57억 7,200만 원, 기독교는 56억 2,400만 원이다. 유교는 33억 6,300만 원, 원불교는 11억 2,100만 원, 민족종교는 15억 8,400만 원, 천도교는 7억 3,400만 원이다. 종교 공통으로 사용되는 예산은 11억 7,700만 원이다. 이를 전체 비율로 환산하면, 불교는 81.43%, 천주교는 5.53%, 기독교는 5.39%, 유교는 3.22%, 원불교는 1.07%이다. 민족종교는 1.52%, 천도교는 0.70%, 종교 공통은 1.13%를 차지한다. 이러한 지원은 지난해보다 15.6% 상승한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모두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종교단체가 이처럼 막대한 재원을 국민의 세금에서 지원받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불교에 대한 재정 지원이 왜 이처럼 많은 것인가? 불교에는 전통사찰 보수·정비, 전통사찰 방재 시스템, 전통사찰 방재 시스템 유지·보수, 종교문화유산 발굴 및 전승, 전통사찰 보수·정비 및 방재 시스템 구축 추가 지원등이 있다. 또한 법난기념관 건립, 불교문화원, 사찰 전통문화 체험관, 명상센터, 사찰음식 체험관, 선문화 체험관, 명상문화 체험관, 법난 기념행사등에 대해서도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불교 관련 지원 예산 약 849억 8,100만 원과는 별도로, 사찰 체험 프로그램인 템플스테이에 270억 원이 지원된다. 여기에는 운영 사찰 육성 및 지원, 홍보 및 마케팅, 사찰음식 대중화, 정책 연구, 기념행사, 시설 구축 및 개·보수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더해 전국 65개 사찰에 지원되는 문화재 관람료 역시 국가유산청에서 별도 항목으로 편성되어, 참배객 수에 따라 지난해 기준 566억 8,900만 원이 지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찰의 재해 복구 비용까지 국비로 지원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계는 올해 한 해에만 약 1,700억 원에 가까운 재정을 지원받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불교계에 문화재가 많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타 종교에 비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부에 의한 ‘종교 편향’ 여부이다. ‘종교 편향’의 핵심은 정부가 특정 종교에 대해 행정적 지원과 막대한 재정 지원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해마다 이처럼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정 지원이 정당한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최근 모 언론 보도에 따르면, 종교 지원 확대에 국회가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들은 위기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국회는 표 계산에만 몰두해 특정 종교의 예산을 무분별하게 늘리려 하는 것은 아닌지, 또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지원까지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문제는 국가의 재정 지원을 통해 특정 종교의 포교와 종교 활동이 사실상 지원되고 있다는 점이다. 템플스테이는 그 내용과 형식만 보더라도 불교 홍보 성격이 분명한 프로그램임에도, 이를 ‘전통문화 체험’이라는 명목으로 포장해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종교 국가이다. 어찌하여 불교만을 전통 종교로 우대하는가? 이 땅에는 유교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천주교는 200년이 넘었고, 기독교 역시 14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불교만이 전통문화로 규정되는 현실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국교(國敎)가 없기 때문에 종교 간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 특히 막대한 재정 지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만큼, 종교인과 비종교인 간에도 차별과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그렇기에 정부가 해마다 막대한 금액을 특정 종교에 집중 지원하는 구조, 그리고 그 종교의 포교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아울러 사후에 철저한 감사(監査) 제도 역시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종교가 지나치게 국가 재정에 의존하게 될 경우, 종교 본연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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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5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시 16:8-11)
    사람은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레 20:8) 다윗은 항상 주님을 앞에 모시고 신뢰함으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도록다윗은 ‘내 입술을 지키소서, 마음을 지켜주소서, 귀를 지키소서’(시 141:3-5)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갑니까? 본문을 보면,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항상 앞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기쁘고, 영도 즐거워하게 하며, 육체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스올의 문턱에서라도 생명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 수 있는지 다윗에게 배우려고 합니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께 여쭙는 삶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3장을 보면,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한 것을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윗은 주님께 “내가 출전하여 이 블레셋 사람을 쳐도 되겠습니까”(2절) 하고 여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해 주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은 유다에서도 가슴 졸이며 살고 있는데,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군대와 마주치면 더 위험하다며 반대하였습니다. 다윗은 다시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을 너의 손에 넘겨주겠으니 어서 그일라로 가라고 똑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무찔렀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앞서 가시면서 싸워주셨기 때문이며, 다윗이 주님께 계속 여쭈어서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주님께 모든 일을 여쭈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할 때 주님이 우리보다 먼저 가시면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고, 우리를 끝까지 돌보아주시기 때문입니다.(신 1:30-31)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께 계속 여쭙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다윗은 찬양하는 삶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서 먼저 블레셋에 빼앗긴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직접 만든 모든 악기를 총동원하여 찬양하면서 옮겼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가 다윗 성에 들어올 때 온 이스라엘 백성과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하나님 앞에서 있는 힘을 다해 춤을 추며 찬양하였습니다.(삼하 6장)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오직 이스라엘의 왕은 위대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양하였습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시 145:1-3)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놀라운 행적을 항상 전파하겠다는 마음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 주님은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은 주님의 뜻을 따라 생겨났고, 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계 4:11) 셋째, 다윗은 회개하는 삶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죄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죄를 지적했을 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후 평생토록 죄를 회개하며 울었습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 56:8)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회개의 눈물을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윗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죄에 대한 결과를 책임졌습니다. 다윗은 죄를 용서받은 기쁨과 함께 죄로 인한 고통을 감수했습니다. 그러면서 죄를 용서해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죄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 관심 두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하실 수 있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처럼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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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2
  • [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⑧ 구속사와 구속 경륜 - 2
    (시 103:19)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구속(救贖)’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값을 치르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구속사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구속사(History of Redemption)의 의미 성경은 수천 년에 걸친 방대한 기록이지만, 그 중심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구속사’입니다. 구속사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좁은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타락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전체 역사’를 말합니다. 이는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의 역사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구속사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고, 인류와 만물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하고 광대한 경륜(經綸)’, 즉 온 우주를 향한 그분의 구원 경영 계획 전체를 포함합니다. 이 거대한 드라마는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하여 인간의 ‘타락’,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의 과정을 거쳐,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의 네 요소를 통해 성취되는 장엄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사는 단순히 죄인을 구원하는 것을 넘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계 21:5) 하나님의 온전한 회복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구속사의 이야기는 과연 누구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을까요? 2. 구속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계사의 중심은 구속사이고 구속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 역사의 중심에는 구속사가 있고, 그 구속사의 핵심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리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사의 중심이 되시는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구속사와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다양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분기점이 되십니다. 인류는 그분의 탄생을 기점으로 역사를 주전(B.C., Before Christ)과 주후(A.D., Anno Domini)로 나눕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전체 역사의 주인이심을 세상 스스로가 증언하고 있는 셈입니다. ‘Anno Domini’는 라틴어인데 영어로 번역하면 ‘in the year of Lord’(주님의 해)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핵심이십니다. 그분은 구약의 모든 예언의 최종적인 완성이시며, 동시에 신약 전체의 근거가 되십니다. 신구약 성경 66권 전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비밀’ 그 자체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이 바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요, 영광의 소망이라고 선포했습니다(골 1:27, 2:2).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적 역할에 대해 휘선 박 아브라함 목사님은 그의 저서 「창세기의 족보」에서 “결국 이 땅에서 펼쳐지는 모든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것입니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역사는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구속사는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세상의 역사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요? 3. 구속사와 세계사의 관계 첫째, 모든 세계사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역사를 ‘History’라고 표기하는데, 이것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이야기(His story)’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바로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담아내는 그릇과 같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친히 역사를 이끌어가십니다. 성경은 “만국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욥 12:23), “그의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신다”(시 103:19)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역사 밖에 계신 방관자가 아니라,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역사와 ‘함께’, 역사를 ‘통하여’, 그리고 ‘역사의 지평 위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다니엘 4장 25절 말씀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또 누구에게든지 주신다”라고 선포하시면, 느부갓네살 왕이 쫓겨난 것도 세계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깊이 연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치 바퀴가 굴러갈 때, 눈에 보이는 겉바퀴(세계사)는 보이지 않는 속바퀴(구속사)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속바퀴의 중심축에는 어김없이 하나님께서 자리하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속사의 설계도이기에, 성경을 통해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세계사의 진상을 미래까지도 조망하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아모스 3장 7절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행하심이 없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결론: 거대한 역사 속, 나의 위치와 사명 휘선 박아브라함 목사님께서는「창세기의 족보」, 39페이지에 권면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자녀가 되었지만, 이토록 거대한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넓고, 또 그분의 계획이 얼마나 섬세한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처음부터 자세히 상고함으로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그 구원 계획을 높이 찬양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구속사의 과정에서 어느 지점쯤에 서 있는지,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세계사의 중심은 구속사요, 구속사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 뿐입니다. 만유를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가 성경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깊이 상고함으로 예언의 말씀을 깨닫고, 세계사의 진상을 꿰뚫어 보는 영적 안목을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거대한 구속사의 흐름 안에 나의 사명을 발견하고 그 깨달음에 순종하며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쓰임 받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만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세계사의 중심은 구속사요, 구속사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유를 통치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이 원대한 구속사가 성경속에 기록되어 있사오니 우리도 성경을 깊이 상고함으로 예언의 말씀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앞으로 일어날 세계사 구속사의 참된 실상을 깨닫고 그 깨달음에 순종하며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맡기옵고 존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올립니다. 아멘. 영상보기 https://youtu.be/6y-WuxzViM0?si=wkvFubriPXkbM3uG 본 기고는 구속사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저자 박윤식 목사)를 토대로 구속사 말씀 전파와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위해 구성한 큐티입니다. 이승현 목사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B.A.)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미국 Knox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IVY College 부총장과 사)세계구속사말씀본부 이사장을 맡고 있다.
    • 칼럼
    • 구속사 만나
    2026-02-22
  • [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⑦ 구속사와 구속 경륜 – 1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오늘은 구속사의 핵심 주제인 ‘구속(救贖, Redemption)’의 깊은 의미와 그 결과에 대해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구속’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까? 아마도 철창이 있는 감옥,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갇혀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처럼 ‘구속(拘束)’은 우리에게 부정적이고 억압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구속(救贖)’은 이와 정반대의 의미를 지닙니다. 헬라어 원어 ‘아폴뤼트로시스’(ἀπολύτρωσις)는 ‘~로부터 구해내다’라는 뜻을 지니며, 이는 단순한 물리적 속박을 넘어 완전한 자유를 의미합니다. 성경의 구속은 우리를 죄라는 가장 깊은 감옥에서 건져내어 참된 자유를 선물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입니다. 1. 구속의 의미 (1) 해방 : ~로부터 구해내다 구속은 죄의 속박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되는 구원입니다. 죄의 필연적인 결과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명백하게 ‘사망’이라고 증언합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로 인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롬 5:12).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로마서 6장 23절의 선언처럼, 죄의 열매는 결국 죽음뿐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을 통해 우리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2) 값(대가)을 치르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그 주인이 요구하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의 노예, 마귀의 노예가 된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합당한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피(생명)를 주심으로 그 값을 치르셨습니다. 이렇게 지불된 값을 ‘속전(ransom)’이라 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6절은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라고 증언하며, 예수님 스스로도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감옥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치러진 유일하고도 완전한 대가였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죄와 상관없는 분으로 대신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와 상관없는 분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은 그분이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지만, 죄에 굴복하지 않으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더 나아가, 본래 죄가 없으신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는 신비를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절에서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면 죄다’라고 죄를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죄를 지어놓고 ‘육신이 약하여 어쩔 수 없었다’, ‘당신도 그 상황 되어보면 당신도 죄 지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면서 지은 죄에 대해 변명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자체를 알지도 못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진리는 한자 ‘의’(義) 자에 아름답게 담겨 있습니다. 이 글자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양’(羊) 아래에 ‘나’(我)를 둔 모양으로,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선포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님 아래 우리가 있을 때 비로소 참된 의를 얻게 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의인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라고 하신 베드로전서 3장 18절의 말씀처럼, 의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불의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분만이 죄의 값을 치를 수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대속자가 되십니다. 3. 구속의 결과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 우리의 삶과 신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영광스러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완전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가 완전히 지워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완전히 다 지워버려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선언합니다. 우리의 행위나 자격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운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죄 사함을 받은 것과 로마서 3장 24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에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혔던 담이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허물어졌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에, “그의 십자가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 이 화목을 통해 우리는 마침내 거룩하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구속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22에서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론: 구속의 은혜를 찬양하는 삶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본래 죄의 감옥에 갇혀 사망을 향해 달려가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고, 당신과 화목하게 하셨으며, 마침내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은혜입니까? 오늘 하루,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생애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깊이 묵상하고 찬송하고 감사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오늘도 살아계셔서 만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더럽고 추악한 죄 가운데 살고 있었지만 저희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의인되게 하시고, 모든 죄를 사하셔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또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세워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이 구속의 역사를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전세계 만방에 알리는 데 앞장서는 삶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감사드리옵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영상보기 https://youtu.be/x-bpDg2Fn10?si=IgMxqE-9Rmq9ytur 본 기고는 구속사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저자 박윤식 목사)를 토대로 구속사 말씀 전파와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위해 구성한 큐티입니다. 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에서 목회학박사(D.Min.) 현재 IVY College 세계구속사말씀본부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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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속사 만나
    2026-02-20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박준형 목사의 ‘당면한 현실’(마 13: 18~30)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27-29절) 오늘 본문의 말씀은 두 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모습들과 현실 속에서 발생되고 엮어진 상황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같은 씨앗, 천국의 말씀이 뿌려지지만, 마음의 밭이 어떠하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은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악한 자에게 빼앗기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자라날 틈을 얻지 못합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들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해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쉽게 넘어집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마음을 가득 채워 말씀이 막히게 됩니다. 결국 결실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듣고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해로만 끝나지 않고 삶 속에서 말씀을 붙들고 견딥니다. 그래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실은, 말씀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마음이 준비되고 지켜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가라지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때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갑니다. 싹이 나고 결실할 때 가라지도 함께 보입니다. 종들이 당황해서 묻습니다. “주여, 좋은 씨를 뿌리셨는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은 원수가 이렇게 했다고 답하십니다. 그러자 종들은 즉시 가서 뽑아 버리자고 합니다. 하지만 주인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그리고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에는 추수 때에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묶고, 곡식은 곳간에 모으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상황과 현실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비록 좋은 씨가 뿌려진 밭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는 원치않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이 섞여 있다고 해서 선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그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다루는 방식에서 조급해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당장 눈에 보이는 가라지를 뽑아 버리고 싶지만, 깨달음 없는 성급한 처사는 오히려 그 곡식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재의 혼란과 처참함에 대한 즉결보다는 곡식을 살리는 보호하심과 인내를 말씀하셨습니다. 최종적인 분별과 심판은 추수 때,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먼저, 말씀을 들을 때 깨닫는 마음이 되라고 하십니다. 얕은 기쁨으로 끝내지 말고, 뿌리를 내려 환난 속에서도 견디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염려와 유혹이 마음을 덮지 않도록 경계하며, 말씀이 숨 쉬고 자랄 공간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동시에 공동체와 삶의 자리에서 선과 악, 진짜와 가짜가 섞여 보이는 상황을 만날 때 조급한 판단과 성급한 배제를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따라, 당면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의 밭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하시고, 혼란하고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지혜와 인내를 갖추어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믿음과 결단을 갖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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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IC 칼럼
    2026-02-1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소 목사의 휴민트(HUMINT)”
    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부목사로 써주는 교회가 없어서 교회를 개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신학교에서 교회 개척학에 대해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교회 개척학이라는 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강남에 있는 광림교회에서 세계적인 교회 성장학 교수인 피터 와그너를 초청하여 교회 개척과 성장론을 강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교 수업을 빠지고 2박 3일 동안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피터 와그너에 의하면 교회 성장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지만,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뭐냐 하면, 목회자가 교회를 개척할 지역부터 선정하고 그 지역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욕구 진단을 파악해서 거기에 맞춰서 전도도 하고 설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지역교회를 탐방하여 성공하는 목회자와 실패하는 목회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하거나 그 이유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찾아가는 것은 쉽지만 그 교회 목사님을 1대1로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 결과 100여 명에 가까운 목회자를 만났고 수백 개의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목회자를 못 만나고 주일 공예배에 참석하지 못해도 몇 주간의 주보를 보고 휴민트 작업을 하였습니다. 휴민트(HUMINT)란 사람(Human)과 정보(Intelligence)를 합성한 말로 사람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뜻합니다. 제가 보니까 성공하는 목회자와 교회는 설교부터 다르고 예배 분위기부터 달랐습니다. 아니, 예배에 성령의 임재가 느껴지고 설교에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흥하지 않는 교회는 숫자가 적어서 그런지 몰라도 설교도 그저 그렇고 예배 분위기도 그저 그런 걸 보았습니다. 설교를 유심히 들으려고 하는데도 제 귀에 도대체 들려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는 개인적으로 만날래야 만날 수가 없었지만, 역시 대형교회는 예배 분위기가 다르고 설교가 달랐습니다. 그런데 대형교회 중에서 딱 한 분을 뵐 수가 있었는데 고 옥한흠 목사님이었습니다. 저희 신학교 동기 처제가 옥한흠 목사님의 비서로 있었기 때문에 그분을 통해서 몇 사람들과 함께 옥 목사님을 뵐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 수요일이면 사랑의교회를 자주 다녔습니다. 그 후로도 옥 목사님은 가끔 뵐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옥 목사님은 부지런한 독서광이자 설교 준비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준비를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만날 때마다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맨땅에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교회가 좀 부흥하고 있나요?” “예. 많이 부흥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몇백 명은 모이고 있습니다. 그 후 저는 분당으로 교회를 신축해서 당시로서 개척 성공 신화를 이룬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옥한흠 목사님께서는 비서를 시켜서 제 설교 테이프를 구해다가 들으셨다고 합니다. 뒤늦게 안 용어이지만 이 역시 존경하는 옥한흠 목사님의 휴민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설교를 들어봤겠습니까? 그리고 개척 이후에도 정말 부흥하는 교회를 탐방하고 목사님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내린 잠정 결론은 역시 목회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고 성령 충만한 영성, 살아있는 설교, 그리고 성도를 향한 태도가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니 개척 목회자로서는 최대형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대형교회 목회자로만 자리매김한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한국교회 공교회성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교회 생태계를 위협하는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내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광화문이나 여의도에 가서 집회를 하기보다는 전략적 휴민트를 통하여 해당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이해를 시켰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제가 한교총 대표회장을 할 때도 휴민트를 통한 코로나의 상황을 예측하고 무조건 현장 예배만 강행한 것이 아니라 루터와 칼빈처럼 소수의 현장 예배를 지키면서도 쿼런틴 시스템(격리 제도), 요즘 말로 하면 화상 줌이나 온라인 예배 등으로 이원화 전략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우리가 잠시만 찬란한 바보가 됩시다. 잠시만 허들링 처치가 되게 합시다. 그러면 국민들은 한국교회를 고맙게 생각할 것이고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는 더 신앙적 갈망이 생기고 교회를 영혼의 토포필리아로 생각하여 교회는 회복 탄력성을 더 얻게 될 것입니다.” 물론 반대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그런 어두운 면도 보도를 하였지만 찬란한 바보, 허들링 처치를 더 인상 깊게 보도 하였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휴민트’라는 영화를 봤는데 저의 지나온 삶이 한 편의 영화처럼 떠올랐습니다. 휴민트 영화가 액션을 넘어 인간을 통한 정보, 신뢰, 인간애를 보여 주었듯이 저도 끊임없는 영적 휴민트를 통하여 제 자신을 발전시키고 성도들을 섬기며 새에덴교회를 굳게 지키며 더 부흥시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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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2-15
  • [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⑥ 법고창신(法古創新)
    (신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신명기 32장 7절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거룩한 행동강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시대를 초월하는 세 가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각 세대에 담긴 경륜을 ‘생각하라’는 것이며, 셋째는 믿음의 선조들에게 ‘물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명령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물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실한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조들이 우리에게 “설명할 것이요”, 또한 “이르리로다”라는 약속입니다. 오늘은 이 두 단어 속에 담긴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과, 이를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인 ‘법고창신’의 정신에 대해 깊이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설명할 것이요’와 ‘이르리로다’의 의미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묻고 요청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그 응답의 성격은 본문에 사용된 두 히브리어 단어를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1)‘설명할 것이요’는 히브리어로 ‘나가드(נָגַד)’입니다. 이 단어는 본래 ‘어떤 물건을 높은 곳에 올려놓아서 사람들 눈에 아주 잘 띄게 한다’는 어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즉, 감추어졌던 것이 밝히 드러나 누구라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주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신의 깊은 뜻을 계시하실 때 사용되었습니다. 창세기 41장 25절에서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며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라고 할 때, 그리고 신명기 4장 13절에서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나가드)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라고 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족장들에게 묻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속 경륜을 높은 곳에 둔 물건처럼 우리 눈에 확연하게 드러내 보여주실 것입니다. (2)‘이르리로다’는 히브리어로 ‘아마르(אָמַר)’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한다는 뜻을 넘어 ‘증명하다’, ‘확실히 대답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영적인 질문을 던질 때, 그들은 흐릿하거나 모호한 답변이 아니라 증거를 제시하듯 확실하고 분명한 대답을 줄 것입니다. 휘선 박아브라함 목사님은 구속사 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32페이지)에서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찰하셨습니다. “이제 많은 아비와 어른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살아서 묻는 후손들에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많은 믿음의 족장들에게 그들 세대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물어 깨닫고 오늘날 우리 세대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 옛날을 기억하고 선조들에게 묻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것은 옛것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나가기 위함입니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이 바로 ‘법고창신’입니다. (1)‘법고창신(法古創新)’의 유래와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이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그 뜻은 ‘옛것을 본받아(法古)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創新)’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보다 한층 더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입니다. 단순히 옛것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법고창신의 정신입니다. (2)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진정한 법고창신을 이루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진리인 동시에, 매 순간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은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을 증거하며,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에, 우리가 그 말씀을 붙잡을 때 우리 삶에는 항상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족보 속에 감추어진 옛 구속 역사를 깨닫는 것은 고리타분한 과거 탐구가 아니라, 오늘날 나의 신앙을 새롭게 개혁하고 날마다 구속 경륜을 깨닫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3. 우리가 해야 할 일 그렇다면 구속사적 관점에서 법고창신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1)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감추인 보화를 발견해야 합니다. 족보 속에 담긴 그 ‘옛날(구원 역사)’과 ‘역대 연대(각 세대별 역사)’를 깨달아서, 그 속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보화를 주십니다. 땅속 깊이 묻힌 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흙을 파내는 수고가 필요하듯, 오늘 우리가 구속사 말씀을 깊이 배우고 연구함으로 그 보화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발견한 보화를 다음 세대에 전수해야 합니다. 깨달음은 우리 자신만 아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 땅에 남아있을 경건한 신앙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감추인 구속 경륜을 올바로 가르치고 전수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요셉은 창세기 45장 7절에서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또한 후손들을 위해 앞서 보냄 받은 자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휘선 박아브라함 목사님은 「창세기의 족보」(33페이지)에서 우리에게 놀라운 비전을 제시합니다. “오늘날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 길을 걷는 자, 족보 속에 담긴 옛날과 역대 연대의 경건한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은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대로 남아있는 안식의 주인공으로 들어가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히 4:1-11).”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 4장 9절의 ‘남아있는 안식’은 우리가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생 복락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남아있는 안식에 들어갈 사람들은 옛날과 역대 연대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깨달아 경건한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박아브라함 목사님께서는 이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길을 끝까지 따라감으로, 한 사람도 낙오됨 없이 반드시 남아있는 안식에 들어가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이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법고창신의 믿음으로,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체험하고 신앙을 전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옛날과 역대의 연대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구속 경륜의 보화를 깨달은 자만이 주님 재림하실 때 ‘남아있는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놀라운 구속 경륜, 옛적 길, 선한 길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사오니, 오직 그 길만을 바라보며 따라가서 영원한 남아있는 안식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영상 링크 https://youtu.be/cndt6YqE2xQ?si=M2FfF5mt-Brpnd0e 본 기고는 구속사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저자 박윤식 목사)를 토대로 구속사 말씀 전파와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위해 구성한 큐티입니다. 이승현 목사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B.A.)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미국 Knox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IVY College 부총장과 사)세계구속사말씀본부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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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속사 만나
    2026-02-14
  • [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⑤ 물으라
    (신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신명기 32장 7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반드시 지켜야 될 세 가지 행동 강령을 제시합니다. 첫째, 옛날을 ‘기억하라.’ 둘째,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비와 어른들에게 ‘물으라.’ 오늘은 앞선 두 명령을 바탕으로, 세 번째 명령, ‘물으라’는 명령에 대해 연구하고자 합니다. 1. 세 번째 명령: "물으라”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물으라고 명하셨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묻는 것이 올바른 태도입니까? (1) 물어보는 대상 - 네 아비와 어른들 하나님께서 물어보라고 하신 대상은 '네 아비'와 '네 어른들'입니다. ① ‘아비'는 히브리어로 ‘아브(אָב)'입니다. ‘아브’는 일차적으로 육신의 부모를 지칭하지만, 동시에 ‘선조’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아비’는 각 세대를 이끌었던 믿음의 족장들을 의미합니다. ② ‘어른들'은 히브리어로 ‘자켄(זָקֵן)'입니다. 본래 ‘자켄’은 ‘늙은이' 혹은 ‘장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장로’는 단순히 나이가 많은 노인이 아니라, 백성을 다스리고 인도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종합하면, 모세가 말한 ‘아비’와 ‘어른들’은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음의 족장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입니다. 왜 이들에게 물어야 할까요? ③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삶 속에 뿌리내린 ‘산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소유했던 지혜는 책상 위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욥 12:12)고 말씀하고 있으며, 레위기 19장 32절에서는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31절에도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휘선 박아브라함 목사님은 저서 「창세기의 족보」(29페이지)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경건한 족장들이 장수하면서 수많은 세월 동안 경험하고 깨달은 영적인 진리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 속에 뿌리내린 산 지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비와 어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삶 속에 뿌리 내려진 살아있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2) ‘물으라'의 의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물어야 할까요? ① ‘물으라'는 히브리어로 ‘샤알(שָׁאַל)'입니다. 그 뜻은 ‘요청하다’, ‘간청하다’입니다. ‘물으라’는 행위는 단순한 질문 이상의 깊이와 태도를 요구합니다. 단순히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정도가 아니라, 강력한 호소의 뜻이 내포된 단어입니다. 마치 며칠을 굶은 거지가 밥 한 술을 얻기 위해 애걸복걸하며 구걸하듯이, 믿음의 선조들에게서 정확한 영적 답변을 듣기 위해 능동적으로 최선을 다해 구하라는 강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장 7절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응답받을 때까지, 문이 열릴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매달려야 함을 교훈합니다. ② 옛날에는 하나님의 사람이나 하나님께 직접 물었습니다. 실제로 이 ‘묻는 행위’는 이스라엘 역사 속 신앙의 핵심이었습니다.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여호사밧 왕은 “이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왕상 22:7)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사람을 찾았습니다. 다윗 역시 위기의 순간마다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삼상 23:2) 하며 하나님께 직접 길을 물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선조들에게 지혜를 구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32장 7절의 마지막 명령, ‘물으라’를 통해 우리에게 질문할 대상과 방법을 명확히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도 각 세대의 믿음의 조상들에게,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지도자들에게 믿음으로 강력하게 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묻는’ 행위는 성경을 깊이 파고들어 구속사의 경륜을 깨닫고,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간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삶에 뿌리내렸던 ‘산 지혜’를 간절히 구할 때, 우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국 가는 그날까지 말씀과 동행하며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 인생의 길을 잃기 쉬운 이 혼탁한 시대에, 우리에게 “물으라”고 명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거지가 양식을 구하듯 간절한 마음을 주시어, 성경 속에 살아 숨 쉬는 믿음의 선진들에게 묻고 또 물어 참된 지혜를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 앞에 세워주신 하나님의 사람, 영적 지도자들과 어른들의 권면을 귀담아듣게 하시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산 지혜로 오늘을 이기고 내일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영상 링크 https://youtu.be/Qq2LQB5eZYI?si=iBv_2mLw-o4p-uy1 본 기고는 구속사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저자 박윤식 목사)를 토대로 구속사 말씀 전파와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위해 구성한 큐티입니다. 이승현 목사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B.A.)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미국 Knox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IVY College 부총장과 사)세계구속사말씀본부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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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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