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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삶이 곤고한 이유에 대해’(시 107:10~12)
    사람이 흑암과 죽음의 그늘에서 살며 쇠사슬에 매여 고통하는 죄수처럼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가장 높으신 분의 가르침을 거절하였기 때문임을 본문은 말씀합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사실과 진실을 콕 집어서 이야기해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사람들은 제각각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였었거나 매여있는 처지이거나 합니다. 어디가 흑암이며, 어느 부분이 쇠사슬에 매인 것일까요? 자기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온통 마음이 흑암에 싸여있고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으며 곤고해하고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매여있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환경과 삶의 터전 또한 그렇게 어두워지고 곤고해지며 매여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만드시고 바라보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간단하고도 명쾌하게 그렇게 곤고해지며 매여있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있고 곤고와 쇠사슬에 매여서 사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옥에 갇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이나 베드로같이 선교와 희생, 또는 애국의 일환으로 옥중 생활을 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옥에 갇히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더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말고, 남을 해하지 말며, 살인하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며, 간음하지 말며,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것은 극히 도덕적인 내용이지만, 그 이전에 그러한 기준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은 감옥에 갇힌 적이 없다고 자부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감옥은 아닐지라도 자기 마음이 이미 감옥인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바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게 되고 곤고와 쇠사슬에 매여있는 불행한 현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감옥입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에 의하면 이러한 마음의 감옥은 이미 스스로 자초했던 잘못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이 자기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나 사랑의 중요성보다는 다른 관계나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결코 작은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약 사랑의 관계이어야 할 부부의 모습이, 현실을 살다보니, 배우자보다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거기에 푹 빠져있게 된다면, 이는 불륜이며 배신이고 범죄로 이어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혈연 그 이상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멸시함에 따라 겪게 되는 고통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울 때는 엎드러져도 돕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12절).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며 어떤 상황에 놓여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감사와 평안입니까? 흑암과 쇠사슬에 매임입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는 가운데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여서 참된 사랑과 행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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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빛의 연대기, 사랑의 하모니
    우리가 생일을 맞으면 서로 축하해 주고 기념을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70세를 맞으면 고희연을 열어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무병장수와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지 않습니까? 올해는 한국교회가 14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어쩌면 140의 생일과 같은 것인데 100주년 이후로 뚜렷한 행사나 기념대회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한국기독교 140주년의 역사를 결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은 희망이 없습니다. 역사 속에는 역사를 세우고 만들어 갔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피가 스며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은 그 역사 속에 담긴 땀과 눈물과 혼을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기독교 140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대대적 행사를 광장에서 해 볼까도 생각했는데 워낙 광장 하면 많은 국민들의 인식에 나쁜 이미지로 각인이 되어서 고민 끝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특별히 직접 제가 대본과 작사를 한 칸타타 ‘빛의 연대기’가 공연될 것입니다. 그날 행사에는 한국교회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정관계의 주요 지도자들과 기자들을 초청하여 다시 한번 우리 사회에 사랑과 빛의 하모니를 전하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유창한 연설이나 말이라 할지라도 언어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무조건 하나를 만듭니다. 영국 황실에서 음악회를 하면 여야를 다 초청하여 음악 안에서 하모니를 이룬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이념과 정파에 따라 얼마나 갈라지고 대립하고 있습니까? 심지어 한국교회마저도 사랑과 화해의 중재자가 아니라 분열과 갈등의 한 중심에 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심각하게 이미지가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빛의 연대기’를 통하여 우리나라 역사의 고난과 위기의 순간마다 나라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사랑과 희망의 빛을 발하였던 한국교회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빛의 파동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흑암의 땅에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해 주기 전 예수님을 알았던 믿음의 선진들, 우상과 미신, 가난과 차별의 어둠으로 가득하였던 한반도에 복음의 빛을 전해준 푸른 눈동자들의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복음의 빛으로 가득한 나라에서 경제 번영과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의 밤이 찾아왔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별빛 언덕에 빛의 서시를 쓰며 아침을 노래하였던 순교자들의 피와 눈물의 희생이 있었고, 한국교회 성도들은 새벽마다 차디찬 교회 마룻바닥에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의 경제강국, 문화강국으로 우뚝 비상하는데 사상적, 문화적, 영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기독교 140년의 역사야말로 빛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격동의 역사, 감동의 기록, 눈물의 시가 담겨 있는 ‘빛의 연대기’ 공연을 통하여 분열과 갈등으로 상처 입은 한국 교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사랑과 빛의 하모니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일정을 미리 조정하여 다가오는 4월 23일 수요일 10시 30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모입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이 되어 함께 빛의 연대기를 씁시다. 한국기독교 140년의 역사를 시적으로 표현한 서정적 해설과 더불어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감동의 노래로 빛의 대서사시가 연출될 것입니다. ‘빛의 연대기’ 공연은 여러 방송과 일간지를 통해서 보도가 되고 기사화될 텐데 우리 모두가 역사의식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며 협력하고 헌신도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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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4-13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벛꽃 대선을 희롱하는 자들을 경고함’
    현재 ‘6월 벚꽃 대선’이라는 중요한 시기를 앞둔 지금, 대통령 후보의 자격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정치·사회적 전환기에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의 자격은 단순한 행정 능력을 넘어 도덕성, 비전, 그리고 통합력이라는 중요한 요소들이 요구된다. 다음은 시대적 배경과 함께 정리한 대통령 후보의 3가지 자격 요건이다. 첫째가 도덕성과 책임의식이다. 현대 정치에 대한 국민의 가장 큰 불신 중 하나는 지도자의 도덕성 부족이다. 과거 여러 정부에서 드러난 권력형 비리, 가족 및 측근의 부패, 불투명한 정책 결정 과정은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특히 SNS와 유튜브 등 정보 전달 속도가 빠른 지금, 작은 일이라도 쉽게 퍼지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국제사회와 시장, 국민 심리에 큰 영향을 준다. 책임 있는 자세와 도덕성은 정책 추진의 정당성과 지속성을 확보한다. 도덕적 리더십은 국민 통합의 기반이다. 국민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을 원한다. 둘째, 미래 비전과 정책 역량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여러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경제성장률 둔화와 청년 실업, 기후 위기, 첨단 기술과 글로벌 경쟁의 격화 등등 단기적인 인기 위주의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구조 개혁과 방향 제시가 가능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리더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미래 비전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 설계와 실행 역량으로 이어져야 한다. AI, 에너지, 반도체 등 미래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책 제시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비전 없는 지도자는 과거를 반복하고, 정치적 생존에만 급급해질 위험이 있다. 셋째, 사회 통합과 공감 능력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극단적인 이념 갈등, 세대 간 단절,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 등으로 분열되어 있다. 팬덤 정치, 진영 논리, 혐오 발언은 공동체의 건강을 해친다. 특히 대선이라는 민감한 시기에는 국민들이 감정적으로 격해지기 쉬우며, 선동적인 언어가 넘쳐나기 마련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대통령은 특정 집단의 대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대표자이다. 정치 갈등을 조정하고, 서로 다른 이해를 연결하는 조율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감 능력이 있는 지도자는 국민의 고통을 이해하고, 실질적인 소통을 통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다가오는 벚꽃 대선은 단순히 한 사람을 뽑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 미래 세대의 삶의 조건을 선택하는 일이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는 도덕성과 책임감, 정책 역량과 미래 비전, 통합과 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단순히 이상적인 조건이 아니라, 지금 이 시국에서 반드시 필요한 현실적 기준이다. 그런데 지금 동서남북 우후죽순처럼 출사표를 던지며 대선판을 흉측하게 만들고 있다. 이 험난한 시대를 정돈하고 새로운 내일의 비전을 제시할 인물이어야 하거늘 알량한 인기만을 믿고 촐싹거리는 정치 낭인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는 대선판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의 6월 대선을 만든 여야 장본인들의 치열한 반성이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인데, 일부는 대통령 탄핵의 인용을 승리로, 일부는 불복 내지는 패배로 여기며 서로 날선 공방을 주고받는 볼썽사나운 광경을 보면서, 이번 대선판의 어두운 그림자를 미리 보는 듯하다. 출사 희망자들은 자중하라. 체급이 되지 않는 자들은 스스로 물러설 것이며, 체급이 된다고 하더라고 지금까지 자기가 한국 정치에 끼친 해악에 대하여 치열한 반성이 선행하고 물러서야 할 것이다. 국민은 냉엄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 시선의 차가움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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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5-04-12
  • [언론회 논평]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 괜찮은가?
    우리나라는 외국인에게 지방 선거에서 투표권을 주는 나라이다. 이는 2005년 6월 열린우리당(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이강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개정안’을 통한 것인데, 그해 8월에 이 법안이 공포되었다. 그리고 2006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왜 그럼 외국인들에게 지방 선거에서 참정권을 주었는가? 1998년 10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방일하여 일본 국회 연설과 이듬해 3월 한•일정상회담을 갖게 되면서, 그때 일본에 있던 재일동포들의 가장 큰 민원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40만 명에 달하는 재일동포들에게 지방 선거에서의 투표권이 없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1999년 3월 ‘국정개혁보고회’에서 외국인의 투표 관련 대책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국내 정주 외국인에게 지방 선거 참정권을 준다’는 김대중 정부 방침이 정해진다. 이에 따라 2002년 법무부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외국인들에게 영주 자격(F-5)를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2005년 입법과정을 거쳐 2006년부터 시행하게 된 것이다(현재 공직선거법 제15조 제2항 제3호, 출입국관리법 제10조에서 외국인 참정권이 허용됨) 그러나 상호(相互) 투표권을 줄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나라가 먼저 외국인 참정권을 추진했는데, 일본은 아직까지 재일동포들에게 투표권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법을 만들어서 외국인들의 참정권을 허락했더니, 엉뚱하게도 중국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2025년 1월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620,853명(합법/불법 포함)이며, 그중에 중국인은 992,552명에 달한다. 그리고 외국인 영주권자는 204,979명이다. 또 중국 국적자는 169,226명이다. 이는 중국인이 82.5%를 차지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모두 참정권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향후 중국인들에 대한 개방의 문을 더 열어놓으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놀라운 비율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중국인(외국인)들에게 지방 선거인 도지사, 시장•군수, 구청장, 시의원, 도의원, 구의원, 군의원, 교육감, 교육위원 투표 등에서 선거권을 주고 있으나, 중국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어떤 참정권도 주지 않는다. 상호주의가 전혀 없다. 그런데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중국인들에게 주는 혜택도 많다. 정착지원금, 지방선거권, 결혼비용 지원, 공공임대주택 우선순위 배정, 공무원 선발 때 다문화 특별전형, 휴대폰 통신비 지원, 출산시 비용지원, 국∙공립 어린이집 우선 배치, 육아 보육지원금 보조, 운전면허 취득시 비용 지원, 자격증 취득 제반 비용 지원, 자궁경부암 예방접종비 지원, 출신국의 산모 도우미 지원, 학습지 지원, 등록금 장학금 지원, 대학입시 외국인 특별전형, 대학등록금 지원, 기숙사 우선 배치, 은행예금 우대금리 적용, 대출이자 감면, 외국환 수수료 감면, 부동산 규제 회피 기회 등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2023년 외국인 건강보험 지급 급여액을 보면, 중국인의 이용자 수가 255만명으로 금액은 무려 1조 1,809억원에 달한다. 이는 해마다 주한미군 주둔 분담금과 맞먹는 엄청난 금액이다. 국내 거주 중국인은 99만명인데, 255만명은 그들의 가족들도 와서 혜택을 본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 국적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것보다도 5배 가량 월등히 많은 수준이다. 그럼 중국이 왜 문제인가? 중국은 1990년대 말부터 초한전(超限戰)을 펼치고 있는데, 이것은 중국공산당이 주도하여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여기에는 ‘24전법’이 있다. 즉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원자전, 재래전, 생화학전, 우주전, 전자전, 유격전, 테러전이 있다. 또 초군사적 측면에서는 외교전, 사이버전, 정보전, 심리전, 기술전, 밀수전, 마약전, 가상전 등이 있다. 그리고 비군사적인 측면에서는 금융전, 무역전, 자원전, 경제원조전, 법률전, 제재전, 언론전, 이데올로기전이 있다.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이런 전략을 사용하겠는가? 결국 중국인들이 한국에 대거 들어오게 되고,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을 점령하기 위한 타깃으로 삼는다면, 한국은 큰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 그런데다 상호주의가 아닌 일방적으로 중국인들에게 지방 선거 참정권을 준다는 것은, 그들에게 확실히 우리나라를 점령할 기회를 가중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현재도 중국인들에 의한 여러 가지 침탈(侵奪) 현상들이 있지 않은가? 따라서 우리나라도 신속히 외국인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특히 선거권을 주는 것을 개정해야 한다. 또 ‘간첩법’ 등을 손질해야 한다. 중국은 다양한 전략과 전술로 이웃 나라를 넘보고 있으며, 때로는 ‘친선’ ‘우호 교류’ ‘투자 협력’ ‘학술 및 연구 교류’ 등과 같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교묘한 방법까지 총동원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중국의 한국 침략을 미리 막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중국의 속국이 되거나, 중국을 대국으로 섬기는 주종(主從) 관계로 전락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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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5-04-09
  • [언론회 논평] 북한인권법 제정으로 북한인권재단 설립 시급하다
    우리나라에서 북한의 인권과 관련된 적법(適法)한 활동을 위한 ‘북한인권법’이 발의된 것은 지난 2005년 8월이었다. 그러나 여•야가 합의하여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것은 2016년 3월이었다. 무려 10년 7개월이 걸렸다. 그런데 이 법률에 따른 활동을 하려면 ‘북한인권재단’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의 비협조로 9년째 빈 수레이다. 북한인권재단이 제 역할을 하려면 북한인권법 제12조 1항에 의거하여 이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이 조항에 의하면 통일부장관이 추천한 2명과 여•야가 각각 추천한 5명씩, 12명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금까지 이사를 추천하지 않고 있다. 이미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이사 5명을 추천하여 국회에 올렸으나, 더불어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이 추천하는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에 통일부에서는 국회에 14차례에 걸쳐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추천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야당이 다수당이 된 국회에서는 이를 묵살하고 있다. 오죽하면 2023년에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에서 국회 사무총장과 국회를 상대로 ‘이사 추천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에서 지난해 10월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이를 위법하다고 판결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차지한 국회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북한 인권의 열악함과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 국가임은 여러 조사에서 밝혀져 있다. 인권은 정치적, 이념적, 정파적으로 치부(恥部)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천부적, 보편적인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외면하는 민주당은 과연 ‘민주’와 ‘인권’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그동안 약 20년간 뭉개버린 북한 주민의 ‘인권 천대’로 인하여 그 사이에도 얼마나 많은 북한 주민들이 인권 탄압과 고통을 당했는가? 최근에는 북한군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총알받이로 동원되어 엄청난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중에는 우크라이나에 포로로 붙잡혀 언제 다시 북한으로 송환되어 극심한 인권탄압을 당할지 모르는 병사들도 여럿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북한인권재단’이 설립되어 있었다면, 그들을 구출해 내는데 얼마나 요긴한 활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나라 헌법 제3조에는 북한도 우리의 영토이며, 북한 주민도 우리의 국민이라는 조항이 있다. 그렇다면 거대 야당 국회는 헌법을 준수해야 되지 않겠는가? 미국에서는 북한 인권 분야에 연간 1,000만달러(한화 145억원)를 지원해 왔다. 그러나 실제적인 북한 인권 활동도 지지부진하고, 그 지원이 중단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민주당의 ‘북한 눈치 보기’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더불어민주당은 오직 탄핵에만 전념하는 ‘탄핵주력당’이 되지 말고, 북한 주민의 보편적 인권을 위한 ‘보편적인권중심당’이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민주당은 매번 국회가 개원되면 동성애자 옹호와 그를 반대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을 처벌하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하였다. 그런 민주당이 북한인권에 관하여 차별적, 차등적, 선택적, 이념적 잣대를 갖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이 시대에 북한 인권을 외면하거나, 충분히 도울 수 있음에도 정치적, 이념적, 왜곡된 인권상(人權像)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이를 외면하거나 무시한다면, 이는 죄악 중에 큰 죄악이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에는 기독 의원이 50여 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천부적 인권을 위한 일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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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5-04-08
  • [언론회 논평] 간첩법이 불명확해 간첩을 제대로 못 잡는다면
    최근 정치권에서는 ‘간첩법’(間諜法)을 놓고 논란이다. 간첩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여•야가 소위원회에서 합의는 해 놓고, 느닷없이 야당에서 개정안을 국회에서 심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첩 활동은 늘어나고 있는데, ‘간첩법’이 불명확해 간첩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해, 국가 안보와 정보 노출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간첩죄를 적용하는 것은 형법 제98조에 근거한다. 이 법률에 의하면,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그리고 군사상의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 국가보안법도 역시 형법에 근거하여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형법”도 있고 “국가보안법”도 있는데, 무엇이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의 법은 행위 객체를 ‘적국’(敵國)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적국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북한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 사람이 아니면 ‘간첩’으로 적발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게 되고 있다. 2018년 한국의 군무원이 중국과 일본에 군사기밀을 판매했지만, 그는 간첩죄가 아닌, 군사기밀 누설죄로 불과 징역 4년 형에 처해졌다. 간첩죄는 7년 이상의 징역형과 최고 사형까지도 구형할 수 있는 것과 비교가 된다. 지난해 경찰에 적발된 해외 기술 유출 사례는 25건인데, 그중에 18건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고, 여기에는 국가 핵심 기술 유출도 10건이지만, 간첩죄를 적용할 수 없다. 지난해 6월 군무원 모 씨는 우리나라 ‘블랙요원’들의 신상정보와 전체 부대원 현황 등 국가기밀 2, 3급에 해당하는 기밀 여러 건을 조선족에게 전송했다. 북한과 관련있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직접적 연계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간첩죄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또 지난해 6월 중국 유학생들이 부산항에 입항한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공모함을 드론으로 촬영하다 붙잡혔다. 그들은 2년 동안 한국의 군사시설 500여 장을 촬영하였고, 중국 공안의 연락처가 발견되었다. 그들은 부산 소재 국립대학에서 석•박사를 공부하는 유학생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도 ‘간첩죄’를 적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중국인이 국가정보원 건물을 드론으로 촬영하였으나 이를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했다고 한다. 북한 사람이 아니면, 간첩행위를 버젓이 해도 처벌할 수 없다면, 이 나라의 안보상 정보 유출과 국가 기밀은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간첩법’을 신속히 개정해야 하는데, 이제는 애매모호한 ‘적국’이란 표현에서 ‘외국’ ‘외국인’ ‘테러단체’와 같은 말을 넣어 개정해야 한다. 그래야 간첩행위를 하는 누구라도 합당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안이 위중한데도 국회는 지난해 11월 13일 ‘간첩법 개정’에 대하여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의결하고서도, 갑자기 12월 3일 야당에서는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도 간첩법 개정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은 국가 간에 ‘하이브리드전’(Hybrid Warfare) 시대이다. 총칼로 전쟁하지 않아도 국가 기밀인 정보와 핵심을 빼 내가고, 산업기술 정보의 탈취, 허위 선동의 심리전, 정치인 매수와 선거 개입, 디지털 시스템을 공격하는 사이버전, 군사적 시위와 위협을 가하는 호전적 행위, 위장·가짜 언론을 통한 여론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쟁을 치루고 있다. 이에 따른 간첩 행위들도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거대 야당이 갑자기 ‘간첩법 개정’을 미루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는 국회에서 하루속히 간첩법 개정이 이루어져서, 우리 국가 자산의 해외유출과 반국가 세력에 의한 국가 전복과 같은 위험천만한 일들을 막아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는 간첩행위에 대하여 엄격하다. 우방국이라도 봐주지 않는다. 미국은 간첩죄 적용 대상을 ‘외국’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군사, 안보, 경제 안보, 산업, 기술 보호도 포함하고 있다. 독일도 외국에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국가 기밀을 전달하거나 외국 정보기관을 위한 간첩 활동 등을 엄격히 처벌한다. 그 범위도 ‘타국’으로 포괄적으로 유지한다. 일본도 외국에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4년부터 ‘반간첩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고, 2023년에는 더욱 강화된 내용으로 지나칠 정도로 단속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만 뒷짐 지고 간첩들의 활동을 두고 볼 것인지? 국회는 신속하게 ‘간첩법’에 대하여 명확한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간첩은 정치, 경제, 산업, 군가, 안보, 국가의 정체성마저도 무너뜨릴 수 있는 아주 고약한 반국가 행위이며, 세력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신상과 정보의 유출로 인하여 인격과 사생활 보호에도 큰 피해를 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야당이 ‘간첩법 개정’을 미적거리는 이유가 매우 궁금하다. 국민의 대표로 뽑힌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 때문에 국가와 국민을 외면해도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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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8
  • [특별 기고] 북한 노동당 당비서에서 목사로 거듭난 복음 역경
    다음은 지난 4월 7일,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제23회 목사안수식에서 안수자 대표로 인사를 건넨 노희창 목사의 메시지 전문이다. <편집자 주> 존경하는 사단법인 국제독립교회연합안의 목사님들과 함께하시는 모든 참가자 여러분, 그리고 오늘 함께 안수를 받는 동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먼저 이런 귀한자리를 마련해주신 명예회장이신 박조준 목사님, 총회장이신 림택권 목사님, 사무총장이신 임우성 목사님,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목사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귀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며, 북한 복음통일을 준비하는 종으로서 저의 다짐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북한의 ‘정치적 난’으로 치부되었던 장성택사건의 측근으로 낙인되어 해외출장시에 북한을 이탈하여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전 북한노동당 중앙당 행정부 대외건설지도국의 당비서 였습니다. 북한에서 노동당은 종교를 탄압하는 최고의 정치기구이며 저는 바로 그 기구에서 일하면서 종교박해와 탄압을 일삼으며 많은 죄를 지은 자 였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에는 저를 이끄신 주님의 크신 뜻과 크신 노력과 은혜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매 시대마다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종들을 세우셨고, 오늘 이 시간 저희를 주님의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을 각오로 임해야 할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특히, 우리가 서 있는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한반도의 복음 통일을 위해 일하시는 중요한 시기이며, 북한 땅에 갇힌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때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명을 깊이 새깁시다. 이 자리에서 제가 맡은 소명은 북한에로의 복음전파이며 이루어내야 할 결과는 복음통일입니다. 저는 현재 북한선교실천연합 회장으로서 북한선교를 실천함에 있어서 북한선교의 기본을 올바로 이해하고 북한선교에 대한 중심을 올바로 세우고, 북한선교에 대한 방향을 올바로 선택하고 북한선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북한선교의 중심은 요한복음 8장32절··· 진리를 너희가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말씀을 북한에 그대로 알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반대쪽 땅에서 사는 북한주민들은 세상속의 순리와 진리가 모두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 땅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오직 복음으로 이 민족을 하나 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철저히 기도하며, 말씀으로 무장하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과 동역자들앞에서 다짐합니다. - 어떤 환경에서도 복음의 진리를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 한반도의 영적 회복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 북한과 열방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이 전파되는 그날까지 달려가겠습니다. 이 길이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하신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두려움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희를 위해 노력해 오신 사단법인 국제독립교회연합안의 모든 목회자분들과 함께 안수를 받는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기도로 함께하는 모든 참가자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길에 끝까지 함께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세우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리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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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8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논평] 하미자 목사의 ‘보혈의 능력’(벧전 1:18-19)
    우리 신앙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한평생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히 2:14-1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 주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셨습니다.”(갈 1:4) 그 보혈로 예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의 멍에를 다시는 메지 않도록 믿음으로 굳게 서서 보혈의 능력을 전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지배하에 있던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보배로운 피를 값으로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대속하셨습니다.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은 구원은 영원하며 사람의 영혼육 전 존재를 구원하는 것이기에 더욱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죄에서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구속하다’는 ‘전쟁 포로나 노예를 돈을 주고 사서 다시 해방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보혈, 즉 몸 전체를 대가로 지불하여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b)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하게 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죄를 깨끗하게 해주셨습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넷째, 거룩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째, 영생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피를 마신다는 말은 보혈의 능력을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혈의 능력을 찬송해야 합니다. 구약시대 드린 동물의 피는 부정하게 된 사람의 몸을 의식적으로 정결하게 하였으나 양심을 씻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죄로 인해 더러워진 사람의 양심을 정결하게 하고, 죽은 심령을 살려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였습니다. 주님의 보혈은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 하나님을 섬기게 해주셨습니다.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쳐진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히 9: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양의 피로써 속죄함을 얻은 그 기쁨을 영원히 찬송해야 합니다. 찬송가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268장)의 가사를 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은 보혈의 능력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도 보혈의 능력입니다.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 것은 보혈의 능력입니다. 구주의 복음을 전할 제목도 보혈의 능력입니다. 주의 보혈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 보혈을 믿어야 합니다. 스가랴 13장을 보면,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1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샘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와 더러움을 씻어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계획을 실행하시기 위해서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히 9:11-12) 주님의 보혈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으로도 죄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이신 것을 믿기 바랍니다. 바울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빌 3:10)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갈 6:14)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눅 9: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자신이 주인이었으나 이제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평생 주님을 따라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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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새벽 미명처럼, 봄의 햇살처럼”
    다시 한 번 우리는 가슴 아픈 비극의 역사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탄핵, 그리고 파면으로 이어진 극도의 혼란과 분열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저는 지난해 12월 발뒤꿈치에 저온 화상을 입은 이후에 거의 외부 활동을 하지 않은 채 고요한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어수선한 시국과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 갈등과 혼란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특히 한국교회가 사랑과 화해의 중재자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 분열과 대립의 중심에 서는 듯한 모습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보도될 때는 ‘정말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이렇게 각인 되어서는 안 되는데... 교회의 본령과 방향성은 이런 모습이 아닌데...’ 하는 탄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광장에 나와 외치고 저항하는 분들의 그 안타까운 마음이야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습니까? 저 또한 의분이 일어날 때도 있고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십수 년 전부터 ‘한국교회 생태계’라는 말을 처음으로 쓰면서 반기독교 세력의 실체와 전략을 알리고 반이슬람,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아마 대형교회 목사로서는 최초로 수많은 집회와 세미나, 언론 기고 뿐만 아니라 광장에서 반동성애 운동을 이끌면서 저항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교회의 본질과 가치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앞장섰던 것입니다. 결코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인 아젠다를 가지고 어느 진영이나 정파에 서서 외치거나 활동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정관계 지도자들을 만나고 언론인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사회적 외연을 확장해 갔던 공적 사역 역시 한국교회의 영광성과 거룩성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교회가 너무 극단적인 이념과 정치에 매몰되어 있는 현상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다시 한국교회는 복음의 본질과 가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 화해의 정신으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희망의 미래를 열어가야 합니다. 남북으로 나뉜 현실만도 비극인데, 교회가 앞장서서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로 나뉘어 극단적인 분열과 충돌을 계속하면 어떻게 새로운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정치인들 역시 더 이상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거나 선동하지 말고 국민의 안위와 행복, 공공의 선을 이루는 정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보 진영이 되었건 보수 진영이 되었건 간에 국민의 행복과 공공선을 이루기 위한 이상과 가치를 펼쳐가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국가 분열과 혼란의 비극적 역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비전과 상생의 정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의 가장 높은 산이 되어 진리와 가치, 비전을 제시하고 가장 깊은 바다가 되어 사랑과 용서, 화해의 정신으로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진실과 진리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합니다. 결코 지도자의 위치에서 혼란과 분열, 파괴와 갈등을 부추겨서는 안 됩니다. 최근 국민 힐링 드라마라고 불리는 ‘폭싹 속았수다’가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가족 사랑과 인간애의 따스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최근에는 될 수 있으면 슬픈 영화, 슬픈 소설은 안 읽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도 1회를 보고 더 이상 안 봤습니다. 인생의 과정 과정에 너무나 눈물이 많이 나올 것 같고, 그 슬픔을 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결론만 물어봤습니다. 애순이는 요양원에서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관식이는 병들어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고 합니다. 금명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을 겪고 나서 고향 제주도를 찾아왔을 때 아버지가 새벽에 배를 타고 나가자고 합니다. 금명이는 안 그래도 힘든데 무슨 새벽에 배를 타고 나가냐고 짜증을 내지만 아버지의 순애보적 사랑을 거부 못하고 겨우 따라 나갑니다. 아버지는 묵묵히 배를 띄우고 딸 금명이에게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 여명을 보여줍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금명이는 고백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추웠을 때 가장 따뜻했던 사람...” 훗날 아버지 관식은 딸이 힘겨운 여정을 보낼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니다 싶으면 빠꾸, 아빠가 뒤에 있을게.” 한국교회도 집단적 상처와 아픔을 겪으며 가장 차가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우리 사회에 가장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끝내 어둠을 뚫고 밝아오는 새벽 미명처럼, 봄의 햇살처럼 따스한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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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4-06
  • [국제교회논평회 논평] 탄핵 기각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증명해야
    오늘날 대한민국 대통령의 탄핵 여부는 우리나라 국민은 말할 것 없고 전 세계의 관심이 모인 최대 이슈입니다. 탄핵의 기각과 각하, 혹은 인용의 여부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꿀 숨막히는 결정이 될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를 감히 밝히자면, 이번 탄핵이 반드시 기각 내지 각하될 것을 기대합니다. 이는 어느 개인을 지지하거나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닌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법의 상식을 기대하는 당연한 바람입니다. 한 가지 더 기대하는 것은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롭게 각성한 우리나라가 부정선거 이슈를 완전히 정리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현재 다수의 국민들이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혹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더욱 감추려는 듯한 그들의 행태는 오히려 국민들의 의심을 증폭시키고 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먼저 선거관리위원회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 재편해야 합니다. 그 어디보다 신뢰와 공정을 담보해야 하는 선관위가 가족회사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것 자체가 우리 대한민국이 처한 불행이자 국민들의 수치입니다. 미개한 나라에서 존재할 이런 일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가능할까요? 과연 이런 체제 속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떳떳할 수 있습니까? 의혹 앞에 당당하다면 오히려 감추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모든 것을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 선거는 국민들의 대표를 뽑는 국가의 가장 큰 중대사입니다. 국가의 미래와 다음세대의 운명이 선거에 달린 셈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선거가 굳이 편리만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좀 더 번거롭더라도, 혹여 고생스럽더라도 한 점 의혹 없는 공명성을 취할 수 있는 길이라면, 결코 마다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논란 많은 사전선거를 없애고, 개표는 선거함을 이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작업으로 해야 합니다. IT산업 선진국인 대만도, 세계 최고 선진국 중 하나인 독일도 수작업으로 하는 것은 전자개표가 편한 것을 몰라서일까요?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요 기본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탄핵이 기각되면 먼저 이 부분부터 바로 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만에 하나 탄핵이 인용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굳건히 지켜질 것입니다. 그 어떠한 시련과 폭압 속에서도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라고 말한 패트릭 헨리의 절규가 우리의 부르짖음과 같습니다. 지금 광화문을 위시하여 전국 각지에 그 많은 국민들이 모여 우리 대통령을 돌려달라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이 스스로 거리로 나와 정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국민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우리 민족은 그 심성이 착하나, 불의 앞에 결코 주저하지 않는 뜨거움 가슴을 갖고 있습니다. 3.1운동의 치열한 외침과 4.19혁명의 목숨 건 투쟁은 이 나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위대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 낸 이들이 바로 우리 대한의 민족입니다. 지금 대한의 민족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염려하며, 대통령 탄핵 기각을 간절히 부르짖고 있습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저항할 줄 아는 국민이 있는 나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자신을 하야케 한 4.19혁명을 오히려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역사 속에서 불의 앞에 단 한 번도 타협하지 않았듯 이제 그 어떤 시련이 밀려와도 더 푸르른 저항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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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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