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 강성률 목사(신촌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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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10:40).

 

본문은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한 내용 가운데 발췌한 부분입니다. 자매는 예수님을 초대하였습니다. 그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동석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나사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본문에 등장한 사람은 모두 세 사람이었습니다. 이 때 마르다는 꽤 분주하고 바쁩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형편을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입니다.

 

집안이나 직장이나 군에서 대소사가 있을 때, 나는 이 일 저 일에 매우 분주한데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나 혹은 하급자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다른 사람하고 담소하거나, 어린 자녀들에게 손뼉을 치며 장단을 맞출 때 그것을 먼발치에서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는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입니다. 담대한 사람은 직접 가서 한마디 하지만, 소심한 사람은 말은 못 하고 연이어 속앓이만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대처하는 방법을 우리는 마르다에게 배워야 합니다. 마르다는 직접 말하지 아니하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오늘날로 말하면 마르다는 마리아를 불러 따끔하게 말하지 아니하고 마리아에 대하여 예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주지 아니하고 해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주님, 동서로 하여금 이 바쁜 나를 도와주라 명하소서.”

 

마리아의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마리아가 요구한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0:41-42).

 

이처럼 기도에 대한 응답은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다는 더 이상 주님께 불평도 원망도 늘어놓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동의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마르다가 원하는 방법으로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았지만 마르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복잡한 것보다 일을 단순화 시켜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얼마 후에 두 자매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은 후 나흘만에 살아난 사건이 있었습니다(11:1-44). 그 일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12:1-8). 마르다와 마리아의 위치는 여전히 똑같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잔치의 목적과, 참석한 인원이었습니다. 이 전에는 세 명이었는데 지금은 예수님과 열 두 제자들, 그 집의 주인 시몬과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모두 열 여섯 명이었습니다. 이 때도 마르다는 혼자 일을 봅니다. 그런데 지난 번 상황과 다르게 한 마디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참석 인원이 다섯 배 이상 늘었는데도 잔치상 준비하는 일을 무난히 해 나갑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에 대하여 기도한 마르다에게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는 그가 원하고 바라는 것 이상의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문제가 있으면 상대방에 대하여 원망하거나 섭섭한 마음을 곧 잘 품습니다. 그러다가 홍수를 퍼붓듯 쏟아버리거나 끝내 속 병이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 여러분의 심정을 다 말씀드리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 고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해주시고 또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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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강성률 목사의 ‘마르다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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