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세상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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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외모(外貌)나 품성(品性)이 다 하나님의 형상(形象)을 닮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과 조화되었다. 이 인간 세계는 하나님의 단순한 작품이 아니다. 비록 흙의 성분으로 창조되었을 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다는 사실은 사랑 안에 들지 않으면 모른다. 사람이 하나님의 모양대로 외모와 품성이 닮도록 창조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친자녀라는 이유로 그 의미를 알게 한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은 그들에게 주어진 시공간적 존재로서 자신의 존재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나'라는 주체를 중심으로 여타 생명들과 필수불가결한 연계 고리 속에 살아간다는 이치가 있다. 이는 상호보완적인 관계 속에 다양하면서도 연계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촌에 있는 모든 생명은 미완의 존재이기에 다른 생명과 주고받는 상호의존적인 작용 없이 독립적으로는 결코 존재할 수가 없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죄악 속에서 건지시기 위함이다. 예수를 만나게 해서 그 사랑 안에 거하게 하여 그의 자녀로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이를 이루시기 위하여 죽으시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다. 이는 약속의 증거이며 전능하신 증거이며 하나님이 영원히 살아계시는 증거이며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예수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태초의 자신 형상을 찾을 수가 없다. 사랑의 속성(屬性)은 사물에 근본적으로 딸리어 있으면서 그 바탕을 이루는 성질이기에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는 창조의 의도이기도 한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오게 하심은 바로 그의 자녀들을 죄악 속에서 건지시기 위함이다. 예수를 만나게 해서 그 사랑 안에 거하게 하여 그의 자녀로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이를 이루시기 위하여 죽으시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다. 이는 약속의 증거이며 하나님이 영원히 살아계시는 증거이며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예수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태초의 자신 형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삶의 가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는 사랑을 말하고 사람이 그 가치를 상실한 것이 인간의 타락이라는 것에서 알게 된다. 하나님은 신이신 고로 홀로 역사할 수 없고 자기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을 목적에 두고 천지 만물을 창조한 동시에 사람을 창조한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만물은 사람이 자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일에 돕는 피조물이 되고, 사람은 그 만물의 도움을 받아 일할 수 있는 생활이 있게 된 것이다. 만물이라는 것은 사람의 영광을 위해서 있고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에는 본능이 있다. 생명체에게 본능이 지닌 힘이 사랑의 속성 안에 있다. 삶을 사는 힘이 곧 사랑인 것이다. 예컨대 지표면 아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 미생물의 무게를 합치면 지상에 생존하는 모든 동식물 무게를 합친 것보다 서너 배를 넘는다고 한다. 그 미생물 가운데 추운 지역을 선호하는 미생물이 있고, 그들은 극지를 향하는 자성에 이끌리는 본능을 지녔다고 한다. 남반구에 생겨난 그들은 줄기차게 남쪽으로 향한다. 북반구에서 생겨난 이들은 죽기 살기로 북쪽으로만 향한다. 그러나 지구의 극이 바뀌는 날이 오면 그들은 그들의 본능 때문에 모두 죽는다. 본능은 그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날을 맞게 되는 운명을 지녔다.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자신을 열어 보이시고, 때가 오자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죄와 죽음을 대속하시고 새 인간성을 창조하셔서 만물의 으뜸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거울임을 알게 한다. 흔히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믿음을 가졌을지라도, 성령의 재창조 없이는 새 사람도 새 역사도 없다. 성령의 은혜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이시며, 그 무량한 품속에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현실화 되어있다.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속죄의 죽음을 보고, 부활에서 영원한 생명의 영광스런 영체를 본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은 자유하는 주체적 존재이다.
한편 "예수 세상살이"는 은혜와 진리가 교회의 양식이요 그 터전이다. 예수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이라는 신적차원이 그 모퉁이 돌이 되었다. 교회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종교기관이 아니다. ‘영’으로 탄생한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교회는 하늘의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랑의 공동체이다. 교회는 역사적 현실을 그리스도로서 조형원리로 삼아 창조적으로 변혁해 가는 사명을 지닌다. 기독교인의 최고사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사회에 여실히 실현되는 그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교는 하늘이 땅으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역사 가운데 오신 신앙이다. 땅을 하늘로 올려가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이 땅의 몸이 되어 오심이다.
이렇게 "예수 세상살이"는 성육신의 큰 전제하에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몸, 내 삶으로 고백되어야 한다."예수 세상살이"는 성육신적인 삶으로 말씀의 인간화, 삶의 생활신앙인 것이다. 이 생명의 씨앗은 열매 속에 있으며 새로운 개체가 될 것이다. 생명의 열매로서 씨앗을 통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의 생명이며 나의 주님이 되셨으니, 우리도 또한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거나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죽음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가? 죽으면 존재가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죽음이 두려울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예로써 많은 사람이 영혼이 있다고 믿음으로 믿으면 마음이 평안을 얻는 데에서 그 영향을 안다. 특히 많은 사람이 신앙적인 이유로 영혼을 믿는다. 예수의 죽음은 인간의 죄과(罪過)를 씻기 위한 죽음이지만, 부활은 인간의 죄와 그 결과인 죽음을 이겼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로써 하나님 스스로가 생명과 죽음의 주인이심을 계시(revelation)한다고 성서는 말씀하심에 주목해야 한다. 바울도 "만일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인생의 삶은 헛된 일이며, 그리스도인이 믿는 신앙도 헛된 것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