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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자연재해를 당한 이웃을 교회가 힘껏 돕자
- 태풍도 없는데,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내린 호우(豪雨)로 전국에서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다. 특히 전국 10곳에서는 200년 만의 ‘물폭탄’이 쏟아져 19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피해도 있었다. 비 피해가 심했던 곳은 한꺼번에 내리는 많은 비로 인한 것인데, 지난 17일에 내린 비만도 300~400mm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재해에 대하여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비의 원인은 ‘기후 변화’ 때문인데, 기존의 통계나 예상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기존의 계절별, 강수량 통계에 의존하지 말고, 새로운 기준을 세워서 풍수(風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이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환경 단체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정비했는데, 이 강들의 본류(本流)에서는 홍수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지류(支流)와 지천(支川)에서는 피해가 컸다고 한다. 이번에 자연재해를 당한 국민들은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상태이다. 그들의 아픔을 모두 위로하기는 어렵지만, 교회가 고난 당한 이웃을 돌봐주어야 한다. ‘물폭탄’으로 물난리를 겪은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어야 한다. 정부도 재난 지역을 특별히 살펴주고, 앞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는 기후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를 예측하여,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자연재해를 줄이는 방법은 자연재해보다 앞서가는 풍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자연재해는 반복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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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자연재해를 당한 이웃을 교회가 힘껏 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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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특검(特檢)이면 무소불위(無所不爲)한가?
- 최근 특검이 무도하게 목사 자택과 교회를 무리하게 수색한 일이 있어,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해병대 병사 순직 사건을 수사 중인 특검이 전 해병대 사단장의 구명 로비가 연결된 정황들이 있다며, 전격적으로 교회와 목사의 자택과 기독교계 방송을 수색한 사건이 벌어졌다. 특검은 목사를 참고인이라면서도, 마치 피의자처럼 변호인의 조력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색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명백하게 교회를 탄압하려는 자세이다. 특검이 아무리 국가의 특수한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 하여도,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뚜렷한 범법 사실이 확인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성직자와 그 신성한 종교시설을 급거 압수 수색한 것은 종교에 대한 존중심은 말할 것도 없고,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못하는 가벼움을 나타낸 것이다. 종교와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분명히 건강한 모습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절반 정도가 종교를 가지고 있고, 기독교는 전체 국민의 약 18%가 된다. 그런데도 특검이 기독교를 무시하고, 기독교를 얕잡아 본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하여 해당 교회 목사는 ‘공직자 청탁은 물론 관련자로부터 기도 부탁을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특검은 무엇을 보고 ‘구명 로비’ 정황이 있다는 것인가? 백번 양보하여 그런 관련 사실이 있다고 하여도, 교회와 목회자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아무리 특검이 권력이 세다고 하여도, 종교를 가볍게 대할 때에는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원하는 국민들을 이기지 못한다. 이 특검팀은 기독교와 해당 교회에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고도로 발전된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 과거의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국민들과 종교인을 대하고, 특히 종교의 사회적, 정신적, 영적 역할에 대한 존중심을 무너트린다면, 이는 스스로에게도 엄청난 역반응의 부메랑이 되어 날카롭게 돌아옴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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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특검(特檢)이면 무소불위(無所不爲)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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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예수님을 아는 지식’ (빌 3:7~9)
-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어떠한 방법으로 이전에 나에게 유익하던 것을 예수님을 위해 전부 다 해로 여길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처해진 상황과 환경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러한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 받아』라는 책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작은 책과 더불어 골방에 앉아 있는 것 외에 어느 곳에서도 결코 휴식을 얻지 못했다.” 즉 이러한 그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어떠한 성정을 지녔으며, 이후에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빠져있는 모습과 그 안에서 하나님의 신비한 권능과 은혜가 그에게 부어졌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심취하는 것은 진정한 휴식이며, 진정한 치유이고, 온전한 미래를 개척하는 빛으로 인도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다가가며, 그 빛을 본 사람은 그 마음에 변화가 생겨납니다. 즉 마음이 겸손해집니다. 토마스는 겸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겸손이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진리의 빛 앞에 비춰 보는 것이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겸손은 외형적인 의식과 행위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께서 앞서가신 고난의 길을 우리도 걸음으로써 형성되는 내면의 틀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음의 겸손은 지식을 추구하려는 경향이나 육신의 정욕, 혹은 더 높아지거나 영향력을 떨치고자 하는 은밀한 욕구를 거부합니다.”[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생명의말씀사, 2018, 9.]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이와 같은 고백을 한 것입니다. 즉 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하던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자기의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가 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처럼, 율법을 지켜서 자기 스스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의는 어디까지나 믿음에 근거한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율법적인 것이나, 자기 공로를 의지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워지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마음과 환경에서 벗어나 골방에 앉아 주의 말씀을 대하고 기도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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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예수님을 아는 지식’ (빌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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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낌없이, 물러섬 없이, 후회함 없이”
- 드디어 폭염의 여름을 뚫고 새에덴의 대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장년여름수련회가 시작됩니다. 해마다 그렇지만, 정말 이번 여름수련회의 말씀은 저의 땀과 눈물과 영혼으로 준비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라기서의 말씀을 전혀 새로운 프레임과 내러티브로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진액을 짜내며 준비했는지 모릅니다. 도저히 안 될 때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지혜와 영감을 간구하며 설교 한 편, 한 편을 준비하였습니다. 저는 문득 지난 신년축복성회 때 말씀드렸던 윌리엄 화이팅 보든(William Whiting Borden)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백만장자 보든가의 상속자였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예수님을 만나 구주로 영접하였고, 부모는 그에게 졸업 선물로 전 세계를 여행할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듣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계선교를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리겠다는 결단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에 "No Reserves(아낌없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예일대학에 진학하여 최고의 교육을 받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 얼마든지 좋은 직장에 취업하여 안락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사로 가기로 결단합니다. 그는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백만장자의 상속권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프린스톤신학교 졸업 후 중국에 있는 모슬렘 선교를 위해 중국 선교사로 떠납니다. 그는 성경에 "No retreats(물러섬 없이)"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모슬렘 선교를 위해 아랍어를 공부하는 도중 척추 뇌막염에 걸려 25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는 제대로 선교도 못해 보고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인생은 너무나 허무하고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사람의 인생보다 더 뜨거운 불꽃으로 타올랐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입니다. 그는 죽기 전 성경 맨 앞장에 "No regrets(후회함 없이)"라고 썼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아간 그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아낌없이, 물러섬 없이, 후회함 없이”일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수련회를 앞두고 소회를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낌없이, 물러섬 없이, 후회함 없이” 정말 아낌없이 물러섬 없이 후회함 없이 준비한 수련회입니다. 특별히 이번 수련회는‘블루타이드 올라타기’라는 주제로 열립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장인 말라기서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어닥친 블랙 타이드(Black Tide, 검은 물결 – 불신앙, 절망, 두려움, 죄와 죽음) 현상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과의 참된 사랑과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욕됨을 당하고 재앙과 심판의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고 치유와 역사의 새판짜기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블루타이드(Blue Tide, 푸른 물결 – 믿음, 은혜, 소망, 축복과 생명)에 올라타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행복과 축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서도 첫사랑의 감격과 예배, 사명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검은 파도에 휩쓸려 고난과 시련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다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향하고 은혜와 생명의 블루타이드에 올라타야 합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하여 우리 삶을 무너뜨리려는 어둠과 재앙이 물러나고 축복과 생명의 푸른 물결이 가득 넘쳐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에덴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성령의 임재와 운행하심 속에서 기도 응답과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죄와 죽음의 블랙타이드를 벗어나 축복과 생명의 블루타이드에 올라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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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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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낌없이, 물러섬 없이, 후회함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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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건전한 성교육 전문가를 공격하는 언론들
- 서울시는 지난달 12일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매뉴얼제작 TF회의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성교육을 진행할 때, 변경해야 할 용어 목록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포괄적 성교육’과 ‘섹슈얼리티’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포괄적 성교육은 동성애를 포함시키는 것이고, 섹슈얼리티는 조기 성애화(性愛化)를 조장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현재 사용하는 용어를 다른 말로 바꾸어서 사용하는 것을 결의하였다. 즉 연애를 이성 교제로, 포궁(胞宮)을 자궁으로, 체험관을 센터교육장으로, 성소수자를 사회적 소수자 및 약자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서울시가 민간 위탁으로 운영하는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운영 매뉴얼을 위하여, 청소년성문화센터의 관계자 4명, 청소년성문화센터장, 공무원 2명, 기존 자문위원 2명, 신규 자문위원 2명 등 총 11명이 모여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자문 위원으로써, 건전한 청소년 성교육 강사로 활동 중이며, 처음 이 회의에 참석한 조우경 대표(글로벌바른가치연구소)가 최근 국내 및 해외에서 논란이 되는 유네스코 포괄적 성교육의 문제점과 국가교육위원회의 방침대로, 섹슈얼리티 등의 단어가 적합하지 않음을 지적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용어들이 수정•보완되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소위 말하는 진보 좌파 언론 매체인 한겨레, 여성신문, 프레시안, 민중의 소리, 오마이뉴스 등의 언론들이 반발하는 기사를 썼고, 여기에 더하여 조우경 대표에 대한 개인정보를 유포하고, 그가 발언한 것도 왜곡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조 대표는 7월 8일 한국교회언론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보도자료를 냈다. 이에 따르면, 첫째, 언론들이 조 대표의 개인 정보를 어떻게 안 것이며, 그의 발언을 왜곡시켜 전달받은 경로가 무엇인가를 밝혀라. 둘째, 자신을 리박스쿨과 연계시켜 명예를 실추시킨 것을 해명하라. 셋째, 이 언론들은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포괄적 성교육’만이 올바른 성교육이라고 하는데, 이는 언론들이 생명과 가정의 가치를 올바로 전하는 성교육을 기독교의 극우 세력에 의한 잘못된 방식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넷째, 조 대표가 교회나 선교회 등에서 강의한 내용을 일반 학교 공교육 현장에서 강의하여, 종교적 편향을 한 것처럼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좌파 진보 매체들이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은, 그동안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외설적이고 부적합한 성교육으로 인해 수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로부터 민원과 항의를 받았고, 한 명이 23년간 대표의 지위를 가졌으며, 동성애가 정당하다는 주장으로 인하여, 서울시가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재위탁이 불투명해지는 상황 속에서 건전한 성교육 기관을 모함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언론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왜곡된 것의 정정보도와 함께, 조 대표에게 끼친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하였다. 조 대표는 부연(敷衍)으로, 자신은 특정 정치인을 당 대표로 출마하라는 것에 동의한 바 없고, 유럽에서도 외면받는 ‘포괄적 성교육’의 현실을 제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포괄적 성교육에 찬성하는 나라는 벨기에, 에스토니아,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의 5개국 정도이며, 강력하게 이를 반대하는 나라들은 12개국이다. 또 반대하는 입장의 나라들은 8개국으로,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아일랜드, 마케도니아, 스위스, 우크라이나, 영국 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유럽에서조차 반대하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성교육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육과정이기에, 건강하고 올바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동성애를 옹호하고, 성을 정치적, 혹은 왜곡된 개념으로 가르치는 것을 옹호하고, 건전하고 바른 성교육을 하는 강사를 집중적으로 언론들이 공격하는 것은 결코 바르지 못하다. 이런 상황들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할 것이다. 자라나는 학생들의 성에 대한 바른 지식과 이해, 그리고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것은 교육하는 사람들의 막중한 책임이다. 그러므로 ‘성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바른 양심과 교육자에 요구되는 합당한 양식이 뒤따라야 한다. 청소년들에 대한 바른 ‘성교육’은 소위 말하는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인격체를 가졌지만, 아직은 미성숙한 청소년 세대가 온전한 인격체로 완성되는 것을 돕는 것이다. 언론들도 이념적 다툼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져 갈 다음 세대를 위한 무거운 채무 의무 의식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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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건전한 성교육 전문가를 공격하는 언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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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15만원씩 받아서 나라 경제가 흔들린다면
- 지난 4일 국회에서는 31조 8천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이 통과되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30조 5천억원보다 1조 3천억원이 더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는 대통령비서실, 법무부, 감사원, 경찰청 등 특활비를 포함한 금액이 포함되어 있다. 추경예산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경기 진작(振作)을 위한 예산이 가장 많아 무려 17조 3천억원이 들어간다. 이 돈으로 전 국민 1인당 15만원에서 55만원까지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전 국민 1인당 45만원 꼴의 국채(國債)까지 발행한다는 소식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렇게 빚을 얻어서 주는 돈을 받아야 할까? 나라에 국고(國庫)가 넉넉하여 나눠준다면 걱정이 안 되겠지만, 빚으로 경기를 부양한다는 것이 영 꺼림칙한 일이다. 또 부자들에게도 15만원씩을 준다는데,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며, 필요할까? 거기에다 정부는 113만 명에 대한 빚을 탕감해 주는데, 16조 4천 억원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여기에는 2,000여 명의 외국인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다 대통령은 앞으로 채무 탕감을 더 해 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재원(財源)은 어디서 나오는가? 결국 빚이 아닌가? 아랫돌을 빼어 윗돌에 고인다면, 과연 그 건축물은 괜찮을까?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중은 49.1%로 매우 높아져, 국가 전체가 위험해진다. 국가 채무가 GDP(국내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버는 돈에서 빚이 절반이라면 위험한 상태가 아닌가?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1,300조 원(국민 1인당 2,600만원의 빚이 됨)에 달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빚이 400조원이 늘어나 사상 최초로 국가 채무액이 1,000조원을 넘었는데, 이렇게 계속 빚이 늘어나도 국가는 괜찮은가? 한때 부요했던 나라들 가운데 지금은 빈국(貧國)이 된 나라들이 있다. 유럽의 그리스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국(富國)이었는데, 과도한 공공 부문 확대와 복지 지출로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스에서는 정부 부채 증가가 신용등급을 하락시켰고, 그것이 국채 금리 상승과 경기 침체, 실업 증가와 사회 불안 요인으로 악순환되고 있다. 중남미의 석유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부패와 비효율적인 국가 운영으로 어려움을 당하였다. 무리한 사회복지 확대와 국유화로 빈곤이 악순환되고 있다. 동남아의 필리핀도 1970년대까지 아시아의 부국이었는데, 부정부패와 정치의 잘못된 엘리트화를 통하여, 경제가 무너진 국가의 사례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막대한 자산가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올해에만 2,400명이 빠져나갈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높은 세금, 투자 기회 때문이라고 한다. 그 숫자는 3년 내, 6배로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물가 상승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상법 개정’(노란봉투법)으로 불법 파업이 확산되고, 고비용으로 공급과 성장 역량은 제한되고, 노조의 임금 투쟁으로 물가만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경제가 성장하지 않거나 정체된 상태에서 물가만 상승하는 현상)이 우려된다고 한다. 정부에서 소비자 쿠폰으로 주는 15만원씩을 받아서 오히려 국가에 부작용이 생긴다면, 어떤 국민이 받기를 좋아하겠는가? 그리고 빚을 얻어서 소비 쿠폰을 준다면, 이는 자녀나 손자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미리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정부는 7월 말부터 소비 쿠폰을 배부할 모양인데, 이제는 국민들이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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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15만원씩 받아서 나라 경제가 흔들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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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방송법 개정이 정치적 중립인가? 악법인가?
- 2일, 국회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방송의 지배구조를 변경하는 소위 ‘방송3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공영방송인 KBS, MBC, EBS를 겨냥한 것이다. 현행 KBS 이사는 11명에서 15명으로, MBC와 EBS는 9명에서 13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 국회 추천은 물론, 시청자위원회, 방송 종사자, 학회, 법조계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거기에다 공영방송과 보도 전문 채널(YTN, 연합뉴스TV)의 보도 책임자를 임명할 때, 직원 과반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사장을 임명할 때도 새롭게 구성된 이사 5분의 3 찬성으로 통과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방송의 지배구조를 현 정권과 노선을 같이하는 노조와 그 세력들이 방송을 지배하도록 하는 구조로 변경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한국의 공영방송은 일방적으로 치우친 이념과 사고(思考)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모자라 방송을 현 정부와 여당이 영구적으로 차지하며, 장악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방송3법을 강행으로 처리하려는 시도는 벌써 세 번째인데, 이미 두 차례는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국회에서 폐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방송3법’을 개정하려는 민주당의 의도는 무엇인가? 방송3법 개정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수 있는가이다. 진영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나 노조가 다수를 점하는 이사회의 지배구조로는 이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본다. 또 다양한 의견이라며, 공영방송의 조직과 운영이 비효율적으로 잘못 나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과 객관성과 진정성은 보장되기 어렵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측에서는 ‘방송이 정권에 의해 좌지우지된 시대를 쐐기 박고, 국민 참여로 방송이 온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진심인가? 오히려 외형적으로는 다양성을 갖췄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편향과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힘을 얻는다고 본다. 어느 권력이든 언론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의 개입 차단을 막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독립과 공정성을 지키고 있는가? 이를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런 식의 방송법 개정으로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괴리감(乖離感)만 더할 뿐이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방송 길들이기’를 위한 입법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사랑하고, 인정할 만한 방송이 되는 길을 보장하도록 힘써야 한다. 다수의 권력으로써, 억지로 방송법을 바꾸려는 태도는 오히려 방송을 망치려는 책동으로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많다. 이것이 잘못된 판단인가? 지금은 방송법 개정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 담보를 위한 거대 여당의 노력이 훨씬 중요하고 필요하다. 정치권이 방송을 내 편으로 만들려고 억지를 부릴 때, 방송의 순기능은 죽는 것이며, 국민들로부터 방송을 아예 빼앗아가는 악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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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방송법 개정이 정치적 중립인가? 악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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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방송법 개정이 정치적 중립인가? 악법인가?
- 2일, 국회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방송의 지배구조를 변경하는 소위 ‘방송3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공영방송인 KBS, MBC, EBS를 겨냥한 것이다. 현행 KBS 이사는 11명에서 15명으로, MBC와 EBS는 9명에서 13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 국회 추천은 물론, 시청자위원회, 방송 종사자, 학회, 법조계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거기에다 공영방송과 보도 전문 채널(YTN, 연합뉴스TV)의 보도 책임자를 임명할 때, 직원 과반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사장을 임명할 때도 새롭게 구성된 이사 5분의 3 찬성으로 통과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방송의 지배구조를 현 정권과 노선을 같이하는 노조와 그 세력들이 방송을 지배하도록 하는 구조로 변경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한국의 공영방송은 일방적으로 치우친 이념과 사고(思考)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모자라 방송을 현 정부와 여당이 영구적으로 차지하며, 장악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방송3법을 강행으로 처리하려는 시도는 벌써 세 번째인데, 이미 두 차례는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국회에서 폐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방송3법’을 개정하려는 민주당의 의도는 무엇인가? 방송3법 개정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수 있는가이다. 진영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나 노조가 다수를 점하는 이사회의 지배구조로는 이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본다. 또 다양한 의견이라며, 공영방송의 조직과 운영이 비효율적으로 잘못 나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과 객관성과 진정성은 보장되기 어렵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측에서는 ‘방송이 정권에 의해 좌지우지된 시대를 쐐기 박고, 국민 참여로 방송이 온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진심인가? 오히려 외형적으로는 다양성을 갖췄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편향과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힘을 얻는다고 본다. 어느 권력이든 언론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의 개입 차단을 막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독립과 공정성을 지키고 있는가? 이를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런 식의 방송법 개정으로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괴리감(乖離感)만 더할 뿐이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방송 길들이기’를 위한 입법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사랑하고, 인정할 만한 방송이 되는 길을 보장하도록 힘써야 한다. 다수의 권력으로써, 억지로 방송법을 바꾸려는 태도는 오히려 방송을 망치려는 책동으로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많다. 이것이 잘못된 판단인가? 지금은 방송법 개정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 담보를 위한 거대 여당의 노력이 훨씬 중요하고 필요하다. 정치권이 방송을 내 편으로 만들려고 억지를 부릴 때, 방송의 순기능은 죽는 것이며, 국민들로부터 방송을 아예 빼앗아가는 악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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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방송법 개정이 정치적 중립인가? 악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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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논평] 하미자 목사의 ‘마땅히 할 일’(신 30:14)
-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은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우리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히 4:12) 둘째, 사람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 속에 깨달음과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시 119:32) 본문을 보면,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는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은 바로 우리의 입에 있고, 마음에 있어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야 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수만 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수만 가지 율법을 써 주었으나, 자기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여겼다.”(호 8: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많은 율법 중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열한 가지로 말합니다. 주님의 장막에서 주님과 영원토록 함께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은, 1)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2)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3)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4)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5)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6)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7)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는 사람, 8)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 9)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 10)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는 사람, 11)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으며,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시 15: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정의와 진리와 이웃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웃과의 약속을 쉽게 파기하거나 뇌물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사야는 그 율법을 여섯 가지로 말합니다. 1) 의롭게 사는 사람, 2)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3) 권세를 부려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지 않는 사람, 4)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 5) 살인자의 음모에 귀를 막는 사람, 6) 악을 꾀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사람입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권세를 부려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는 일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 살인자의 음모에 귀를 막는 사람, 악을 꾀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사람”(사 33:1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안전과 먹거리가 끊어지지 않게 된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산다. 돌로 쌓은 견고한 산성이 그의 은신처가 될 것이다. 먹거리가 끊어지지 않고, 마실 물이 떨어지지 않는다.”(사 33: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가는 그 율법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1) 공의를 실천하며, 2) 인자를 사랑하며, 3)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뜻대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박국은 그 율법을 한 가지로 말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합 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폭력과 다툼과 불의가 판을 치는 상황 속에서 하박국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히 11:6)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행 16:31)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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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논평] 하미자 목사의 ‘마땅히 할 일’(신 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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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여성을 역차별하는 ‘성평등가족부’가 웬말인가?
-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각 부처의 장관들이 내정되고, 청문회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현재 ‘여성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한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국민연합’과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등의 수 많은 시민 단체들은 이를 우려하며, 일제히 반대 입장을 피력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용어의 잘못 사용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가족부 영문 표기에서 ‘여성’이란 말은 찾아보기 어렵다. 거기에다 ‘gender equality’를 ‘성평등’으로 우리말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유엔이 정한 여성을 차별하지 말라는 규정과도 맞지 않는다. 유엔은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에서 의미를 정리하기를, ‘여성에 대한 차별이란 성에 근거한 모든 구별, 배제 또는 제한을 의미 한다’고 명시한다. 즉 성을 의미하는 것은 ‘sex’(생물학적 성)이지, ‘gender’(사회학적 다양한 성)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엔에서도 사회적 성을 나타내는 ‘gender’에 대한 차별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둘째, 이는 오히려 여성을 역차별하게 된다. 이를테면 성평등을 도입한 나라들에서 성평등을 실행한다며, 화장실과 탈의실 같은 곳에 생물학적 남성이 자유롭게 출입하게 되므로, 여성들의 인권과 안전권이 침해를 당하고, 심지어 성폭력과 같은 위험에 노출된다. 그래서 20여 년간 ‘성평등’을 진행해 왔던 영국에서도 대법원에서 ‘여성으로 태어나야 여성’이란 판결을 내렸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성별은 여성과 남성 두 개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여성가족부’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젠더를 더욱 강화시킨 ‘성평등가족부’로 만들려는 것은 세계가 놀랄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가족부가 처음 생긴 것은 2001년 김대중 대통령 당시로 ‘여성부’가 신설된다. 그리고 2005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 부처의 문제점이 계속 노출되었다. 부처 역할의 중복과 비효율성, 남성 역차별 논란, 정치적 논란의 중심, 그리고 정책 실효성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여성가족부’ 혹은 ‘성평등가족부’가 있는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독립된 내각의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처에 소속된 형태이다. 그리고 일부 나라인 프랑스,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는 여성 권리, 여성 권익에 대한 업무로 ‘여성권리부’나 ‘여성평등부’를 두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아예 ‘젠더’에 대한 평등을 실현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많이 노출되고, 세계에 없는 ‘성평등가족부’를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아예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 여성의 권익과 인권 보호를 위한 것이라면, 정부 각 부처에 업무를 할당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장관급의 ‘성평등가족부’를 두어서 국민 간 갈등의 요인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정부의 부처를 만들어 운용하는 것도 국민들의 눈높이와 세계 각국의 수준에 맞춰야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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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여성을 역차별하는 ‘성평등가족부’가 웬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