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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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토요일 벚꽃이 만개한 자유로를 지나 해이리로 이사간 박강월 친구(주부편지 대표)의 집을 방문했다. 마침 12년 전 첫 수강생이셨던 조장희 목사님도 오셔서 무척 반가웠다. 그 당시 친구는 인천에서 선교문화센터를 운영했기에 목회자를 위한 강의를 하도록 문을 열어준 고마운 친구이다. 그런데 12일 주일 예배시간까지도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아버지 이 기분의 의미는 무엇이죠?' 라고 여쭙고 주보를 보니 말씀은 계2;1~7 설교제목은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교회'였다. '왜 에베소 교인들은 처음사랑을 버렸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혹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신가?' 라는 의문이 들어 집중해서 들으며 적었다.
1주일 전에 계2장 큐티를 했는데 그때 2절과 3절(네 행위와 수고와 참고 인내한 것 다 안다...)에선 은혜를 받았지만 4절(그러나 너를 책망 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은 나와 무관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대로 주의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제였다. 첫사랑의 감사 감격도 없이 습관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은 사탄에게 속은 것이다. 그것이 마치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에 책망을 하신다는 이웅조 담임목사님의 말씀은 정말 큰 충격이었다.
집에 와서 '책망하다'를 영어성경에서는 어떻게 표현을 했을까 궁금해서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NIV성경에 의하면 'Yet I hold this against you.' 여기서 '타이르다 나무라다'의 blame, scold, rebuke 등의 고상한 표현이 아니고 'hold against' 즉 '~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다'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77번씩 용서하라고 하신 주님께서 첫사랑을 버린 자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계신 것이다 '아버지 제가 배신자예요 그런데 무엇에 쓰시려고 다시 살려 주시고 왜 이토록 사랑하십니까?'라고 얼마나 울었는지. 이 사역을 하면서 때로 귀한 만남으로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교계의 몇몇 목회자와 관계자들에게 상처를 받고 실망을 하여 다시는 목회자들에게 강의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주님께서 노하신 것이다.
주님의 일을 마치 나의 일인 양 마음대로 하다니 그런 마음으로 기도를 한들 응답이 있을 리가 없어 답답하고 멀리 계시는 주님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자 그 친구와 목사님을 만나게 하셔서 첫사랑의 그 감격을 불러일으켜 주시곤 주일예배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영어성경으로 보게 하신 이유가 있었다. 나는 물론이고 지금 한국교계의 여러 문제점들로 인해 크게 분노하고 계신 주님의 마음을 확인 시켜주신 것이다.
얼마나 외로우시면 나 같은 죄인에게 하소연을 하시다니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첫사랑을 회복하는 의미로 무엇을 해드리면 좋으시겠습니까? 다시 목회자를 위한 강의를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나는 네가 무엇을 하느냐(Do) 보다 어떻게(How) 어떤 마음의 자세로 임하느냐를 원하는 것이다.' '이 일은 너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다'라고 하셔서 또 엉엉 울면서 나의 자존심, 건강, 명예를 내려놓고 순종하기로 했다. 아직 건강이 완쾌 되지 않아 주위에선 염려를 하지만 요셉이 아버지의 명령에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very well'이라고 기쁜 마음으로 하다 보면 강해지리라 믿는다.
5월 28일 금요일까지도 이 칼럼이 마무리가 되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우연히 나의 작은 서재의 게시판에 써 놓고 잊어버린 기도의 내용을 보고는 너무나 놀랍고 흥분이 되어 여성칼럼 담당 차진태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랫동안 칼럼이 완성되길 기다렸지만 이토록 힘들게 써보긴 처음이며 질질 끌게 하신 이유가 있었다고. 10년 넘게 무료강의를 해도 예상보다 반응이 저조해 자존심이 무너져 내려 배척 당한 느낌과 경제적 압박으로 가족들에게 원망을 받게 되자 슬럼프에 빠졌었다. 차라리 인기와 수입이 많은 방송이나 계속할 것을... 이런 후회를 한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니야. 지금까지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강력한 주님의 이끄심이 있었다'. 그런데 목회자들의 마음이 열리지 않자 몇몇 지인들의 의견을 듣고 강의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주님의 뜻인 줄 잘못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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