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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멀리 내다보며 조금만 더 참고 감내해요”
-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초대교회 시대에 이교도들은 전염병에 감염된 환자들을 내쫓아 버렸고 죽은 시신들을 오물처럼 취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염병 환자들을 찾아가서 기도해 주고 돌봐 주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의 돌봄만으로도 사망률을 크게 줄였고 이로 인해 기독교가 로마에 공인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사회학자인 로드니에 의하면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사랑과 봉사 때문에 기독교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팬데믹 시 초대교회는 예배를 드리는 것 못지않게 환자들을 돌보는데 치중을 하였습니다. 종교개혁시대에는 더 그랬습니다. 특별히 제네바에서 칼빈을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자들은 예배 못지않게 목사의 환자 심방을 의무화 하였습니다. 흑사병 감염을 두려워하여 환자의 심방을 거역하는 목사는 면직할 정도로 환자 심방 사역에 치중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때 용기 있는 불랑쉐 목사, 마티우 목사 등이 자원하여 흑사병 환자들을 찾아갔지만 곧 감염이 되어 사망을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제비뽑기를 하여 한명은 병원심방을 하고 또 한명은 코론티난(quarantine, 격리 당해 있는) 가정에 심방을 하게 했습니다. 당시에도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격리를 시켜 놓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위로와 격려, 소망을 주는 심방을 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시대에도 사제들은 허들링 목회를 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영혼만중요시한 것이 아니라 육체의 생명도 존중하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환자들을 시 당국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직접 돌보고 치료해야한다고 주장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전염병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를 한 것이죠.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목회사역의 교훈을 오늘 우리 현실에는 어떻게 반영을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예배가 교회의 생명이고 본질이기 때문에 반드시 예배를 지키면서도 환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의료진들이 환자들을 다 돌보는 현실에서는 교회는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교회에서 확진자를 안 내는 것이 간접적으로 의료봉사에 참여하는 것이고 환자들을 돌보고 이웃을 배려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교회가 우리만의 이너서클, 우리만의 카르텔로만 존재하려고 했을 때 무더기 확진자를 낸 사례가 많았습니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특정 선교회나 단체 등 코로나감염병과의 전쟁 상황에서 무더기 확진자를 내어서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는지요. 광주의 어떤 교회는 계란투척까지 당하였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교회는 다시 자성하고 집단 확진자들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한국교회 브랜드와 이미지를 추락시키면 안 됩니다. 정말 소탐대실의 실수였습니다. 요즘 시대는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기업의 이미지가 추락해버리면 그 회사의 물건을 사지 않습니다. 복음이 유일한 구원의 진리인데 우리의 실수로 복음의 진보를 막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땅을 치고 가슴을 치고 싶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라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우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얻으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보다 조금 절제하며 감내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합니다. 정부의 방역에 미숙함이 있고 교회가 잠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복음의 진보, 넓게 보는 선교전략, 다음세대까지 이어갈 교회 부흥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조금만 더 참고 감내할 수 없을까요. 우리만의 소리를 내고 규탄하는 것보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처럼, 종교개혁자들처럼 국민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며 감동을 주는 교회가 될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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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멀리 내다보며 조금만 더 참고 감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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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허들링 처치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
- 지난 1월 21일 오전에 한교총 신년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지난번에는 제가 ‘영택트’라는 말을 썼는데, 이번에는 ‘허들링 처치(hurddling church)’, ‘찬란한 바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였습니다. 코로나19의 고통과 상처 속에서 우리만의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아픔에 동참하며 치유하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담화를 이어갔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가 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지 답을 찾아본 결과, 가장 큰 요인으로 ‘한국교회의 공교회성 결핍’과 ‘리더십 부재’의 문제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개교회 성장에 집중하는 동안 공교회와 대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리더십의 부재는 위기상황을 대응함에 있어 많은 혼란이 있었을 뿐 아니라 감염병 예방을 위한 실천과 대응에도 허점이 나타났습니다. 이제 한교총은 교계의 분열된 리더십을 원 리더십으로 통합하고, 교단과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함께 연합하여 공교회 세움과 사회적 리더십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대사회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첫째, 윤리와 도덕성 회복, 둘째,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 셋째, 생명존중과 건강한 가정을 기초로 한 국가 비전 제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사회적 신뢰회복을 위해 교회주의의 담 안에만 게토화 되지 않고, 사회적 감수성과 공감능력을 가지고 복음의 사회적 지평을 넓혀가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감염병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뛰어든 것처럼, 종교개혁시대 성도들이 두려움 없이 환자를 돌보는 일에 앞장선 것처럼,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이 백신을 들여오고, 환자들을 돕기 위해 피와 땀을 쏟은 것처럼, 사회적 고통에 동참하며 치유하는 허들링 처치(hurddling church)의 모형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는 겸손을, 한국교회에는 신앙의 본질과 원형교회 회복이라는 시그널을 주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세계사적 축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지만 비대면 온라인 사회로의 전환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현상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교회와 예배의 본질은 더욱 강화하되, 사역의 방식은 언택트를 넘어 영혼과 영혼을 잇게 하는 영택트를 취하는 영적 역설적 슈퍼 처치를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남극의 펭귄들은 영하 50도의 혹한의 추위를 허들링의 사랑으로 이겨냅니다. 그런데 펭귄들이 바닷가에 도착하여 먹이를 구해야할 때 퍼스트 펭귄이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 먼저 뛰어 든다고 합니다. 이어령 교수님의 표현대로, 한국교회는 이제부터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이 되고, ‘찬란한 바보’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이 찬란한 바보가 되고 허들링의 사랑으로 우리 민족과 시대를 섬겼던 것처럼, 이제부터 그들의 신앙과 정신을 이어받아 2021년을 퍼스트 펭귄, 찬란한 바보, 허들링 처치를 시작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말씀을 드렸더니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한국교회가 ‘허들링 처치’, ‘찬란한 바보’의 교회가 되어 사회의 고통에 동참하며 치유하는 새로운 교회의 모형을 제시하였다고 보도를 하였습니다. 이제 정말 시작입니다. 공교회 세움과 원 리더십의 회복, 허들링 처치를 통한 한국교회의 브랜드와 이미지 회복을 위한 새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교회부터 먼저 찬란한 바보가 되어야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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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허들링 처치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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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스트롱맨이었던 제가 소통과 공감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 한교총에서 작년 11월에 어느 전문 여론 조사 기관에 의뢰하여 ‘한국교회의 코로나 대응, 공적 교회 인식, 연합기관의 필요성,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 등에 대한 주제로 비기독교인 1,000명, 기독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2차로 ‘코로나 상황 속 한국교회 예배’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데, 다음 주쯤 발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론조사 기관 대표가 저에게 뜻밖의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작년 한 해 저의 기사나 댓글, 연관어를 수집하여 빅데이터로 분석해 보니까 제가 가장 많이 한 말이 교회였습니다. 11,664건이 나왔습니다. 두 번째가 하나님, 세 번째가 목사, 그 다음이 코로나였습니다. 제가 얼마나 교회와 하나님 중심의 삶을 강조하면서 코로나 방역과 예배 회복을 위해 노력했는가를 보여준 데이터였습니다. 더 기가 막힌 선물은 저에 대한 이미지와 감성 추이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저에 대한 이미지가 가장 좋고 긍정적일 때가 5월이었습니다. 저는 5월에 총회장도 아니었고, 한교총 사회정책위원장일 뿐이었는데 예배 회복을 주도한 것입니다. 그것도 제 멋대로 현장예배를 강행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조율 하고 한교총을 앞세워서 합리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저에 대한 긍정적 감성의 댓글들이 폭발하였습니다. 또 한 번 저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와 댓글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때가 10월이었습니다. 왜 10월에 저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높아졌냐고 하니까, 그때 제가 일간지 기자들 앞에서 공개사과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제가 공개사과를 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사회적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며 코로나에 대한 선제적 방역을 대처하지 못한 것을 자성하며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포스트 팬데믹 처치를 더 영광스럽게 세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걸 어느 기자분께서 제가 공개 사과를 했다고 써 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거기 오지 않는 기자들까지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써 버린 것입니다. 이 일로 저는 일부 유튜버들로부터 오해 아닌 오해를 받고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도 몰랐는데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로부터 최고의 응원과 긍정적인 언어들을 선사 받은 것입니다. 공개사과 해프닝으로 내부의 공격만 받은 줄 알았더니, 사회적으로는 오히려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분노를 중화시키고 저에 대한 이미지가 역으로 상승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여론조사기관 대표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목사님, 오늘 우리 사회는 교회가 과격하게 싸우며 자기 소리만 내는 것보다는 소통하고 공감하며 겸손하게 자성하는 모습, 사랑으로 낮아지는 모습, 양보하는 모습, 희망과 격려, 위로를 주는 모습을 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원래 저는 강인한 사람이고 외골수였습니다. 오죽하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수요저녁예배를 드리기 위해 공수부대가 쫙 깔린 금남로를 죽음을 각오하고 찬송을 부르며 걸어간 사람이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스트롱맨을 역겨워하고 소통과 공감의 사람이 사람을 움직이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저는 원래 스트롱맨이지만, 요즘은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균형감 있는 스탠스를 취하면서 예배 회복을 위해 모든 소통과 공감의 지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 일이 정말 어렵기도하지만 그래도 곧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만족할 순 없지만 그 첫 열매를 금주부터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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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스트롱맨이었던 제가 소통과 공감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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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제 안에는 새 풀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성도들 마음에는 꽃이 피겠지요.”
- 글쎄, 요즘 왜 이러는지, 저는 잠을 설치곤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소풍 가기 전날이나 운동회 전날은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는 모든 면에 긍정적이고 낙관적인데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지금도 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말에도 그랬습니다. 제가 성탄예배와 송구영신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뛰었거든요. 그러나 결실을 맺을 만하면 몇몇 교회와 어느 선교단체에서 확진자를 내 버리는 것입니다. 너무나 분한 마음에 그때도 며칠간이나 잠을 설친 적이 있습니다. 특히 12월 30일 밤은 더 그랬습니다. 생전 처음 맞아보는 송구영신예배를 앞두고 한편에서는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오전 10시 반부터 시간 단위로 화상 줌을 통하여 계속 축복안수기도 시간을 갖기로 계획을 해 놓았기 때문이죠. “과연 성도들이 얼마나 호응을 할 것인가, 진짜 이번에도 온라인을 통해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강력한 영적 역설적 슈퍼 처치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잠을 설치고 나면 몸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10시 30분부터 화상 줌으로 꽉 차게 들어온 성도들을 보면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향하여 모든 진심을 다해서 축복기도를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제가 한꺼번에 기도를 해 줄줄 알았는데, 전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하니까 감동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러기를 7번, 그 뿐 아니라 중간 사이사이 현장으로 기도를 받으러 온 사람들까지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송구영신예배 시간이 되니까 현기증이 확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화상 줌과 유튜브에 참여한 성도들을 바라보고 생각하니 꿈에 젖어서 날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다음날과 그 다음날도 오전과 저녁으로 하는 신년집회 뿐만 아니라 화상 줌으로 축복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회에 미처 들어오지 못한 성도들은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서 부목사님들께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일날도 예배를 여섯 번이나 인도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꿈만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고 나서 저는 바람에 쓰러져 있는 풀잎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자동차 스루를 통해서 기도 받은 분들, 아직도 일일이 제가 기도해 드리지 못한 분들을 생각하면 송구한 마음만 생겨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 되레 작년보다 헌금이 더 많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모일 수 없는 상황,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사실 저는 이번처럼 헌금을 강조안 한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절절포(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신앙만 외쳤거든요. 그랬더니 현장에 모일 때보다 성도들이 더 많은 은혜를 받고 더 예배를 사모하며 더 많이 헌신을 한 것입니다. 몸이 땅으로 빠져 갈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황무지와 폐허에서도 꽃은 피어나는구나. 그러나 그냥은 안 되지. 어려운 상황일수록 목회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땀과 피와 눈물을 흘릴 때 성도들의 역설적 헌신과 희생도 있는 거야. 그리고 이런 상황 중에서도 강력한 영적 역설적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거야. 목회가 이런거지.” 몸은 녹초가 될수록 제 마음의 대지에서는 새 풀이 돋아나는 역설을 느꼈습니다. 제 마음 속에 새 풀이 돋아난다면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꽃이 피어나지 않을까, 그 날 저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속에 꽃이 피는 꿈을 꾸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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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제 안에는 새 풀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성도들 마음에는 꽃이 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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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새해에 드리는 기도 “비가(悲歌)를 그치고 연가(戀歌)를 부르게 하소서”
- 주님, 저 멀리 보이는 깜박이는 등대의 불빛이 보이십니까? 우리는 코로나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밤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불안하고 두려웠고 우울하고 지쳤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암울한 밤바다를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저 바람이 휘몰아치는 바다 어딘가 당신이 서 계시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코로나 팬데믹의 광풍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코로나 팬데믹의 검은 안개가 자욱한 중에도 여전히 동해에서는 붉은 태양이 장엄한 몸짓으로 솟구치고 그 새해의 일출은 신비로운 에덴동산에서 비추던 심원의 빛으로 우리의 지친 영혼을 비춰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사랑과 은혜의 손길은 우리 안에 시들어버린 희망의 화롯불을 다시 살아나게 하여 곧 팬데믹의 광풍을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주님, 이제 우리 모두 2021년의 찬란한 일출과 함께 지난해의 절망과 비난, 혼란과 분열의 비가(悲歌)를 그치고 화해와 포옹의 연가를 부르게 하소서. 또한 다시 하늘순례자의 발걸음으로 신발끈을 동여매며 어둠에 잠긴 산을 넘고 절망의 협곡을 지난 후 새벽 하얀 서리 내려앉은 강물 소리를 따라 가슴 벅찬 희망과 화해의 행진을 시작하게 하옵소서. 어두울수록 별은 빛이 나고 절벽 끝에 피어난 꽃은 잔인할 정도로 향기를 발하는 것처럼, 지난해 거친 광야의 절망과 어둠의 시간을 이겨내고 맞은 우리의 새해는 더욱 더 눈부신 꿈으로 빛나게 하옵소서. 주님, 2021년은 팬데믹의 절망과 잿빛 저항을 물리치고 새로이 비상하는 원년이 되게 하옵소서. 민족의 들녘에 상처를 조장하는 파괴적 외침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연모하고 그리워하는 세레나데의 소리가 메아리치게 하옵소서. 길을 잃은 청춘의 별들과 불 꺼진 도시의 텅빈 거리, 도탄에 빠져 신음하는 상처 입은 꽃들의 눈물을 닦으며 다시, 첫 새벽의 심장 박동을 깨우게 하옵소서. 반달리즘으로 인하여 파괴되어 버린 음악, 예술, 문화 공연이 살아나서 산성화된 국민들의 정서가 다시 순환되게 하시고 감성이 말라버린 우리의 사회가 다시 회복되게하소서. 이를 위해 한국교회가 먼저 가슴을 치며 주의 제단에 눈물을 쏟고 회개와 통곡소리로 신 사도행전의 아리아를 부르게 하옵소서. 주님, 2021년 새해, 팬데믹의 어둠을 깨우는 눈부신 아침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거친 황무지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는 잔인한 생명과 사랑의 소네트가 차가운 산야의 쓰러진 나무와 꽃들을 깨우며 울려 퍼집니다. 한국교회가 그 생명과 부활의 한 중심에서 다시 한 번 세계 위로 비상할 무지갯빛 높고 푸른 나래를 펼치게 하옵소서. 올해는 반드시 한국교회가 하나됨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코로나의 파고를 당당히 이겨내며 열방 앞에 새 역사, 새 날의 아침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다시 한국교회 안에 뜨거운 감격과 통회, 눈물과 헌신의 역사가 이어지며 예배 회복의 폭풍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성령의 임재사건을 통하여 예배를 향한 사모함과 부흥의 영성이 활활 타오르게 하옵소서. 코로나의 위기를 넘어 한국교회의 연합과 세움의 대역사를 이루는 대반전의 역전드라마가 펼쳐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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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새해에 드리는 기도 “비가(悲歌)를 그치고 연가(戀歌)를 부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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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마세요. 또 포기하지 마세요.”
- 한국교회가 비상상황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송구영신예배마저도 비대면으로 드려야 하는 위기입니다. 저는 교단의 총회장으로서,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시대적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백방으로 뛰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어떤 경우도 성탄절예배와 송구영신예배만큼은 좀 더 완화된 현장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몸부림 쳤습니다. 그런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확진자가 1000명이 넘어가며 방역수칙은 더 강화되고 심지어 몇몇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며 여론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저는 무력한 제 자신을 돌아보며 맥이 빠지고 한동안 깊은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우울증을 그냥 혼자 앓고 있으면 그것도 행복할 텐데, 저를 찾는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기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닌 것입니다. 마음은 우울한데 꼭 위선자처럼 아무런 일도 없는척 사람을 만나야 하고 이런 저런 모임을 이끌어가야 하니,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다른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도 비상상황인 것입니다. 다른 교회도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겠지만, 우리 교회는 송구영신예배가 최고의 영적 축제요, 1년의 첫 농사입니다. 첫 출발부터 흐지부지하게 되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다시 한 번 ‘절.절.포’ 신앙을 떠올렸습니다. 윈스턴 처칠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졸업식 축사를 하게 되었을 때 이렇게 딱 한 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Never give up! 여러분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청중들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을 때 처질은 다시 이렇게 외쳤습니다.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나서 처칠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Never give up!” 일곱 번의 Never give up, 그것이 처칠이 했던 축사의 전부였습니다. 육군 7보병사단 사단장이셨던 우리 교회 서정열 장로님도 부대원들에게 ‘절절포 정신’을 역설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사비로 모든 부대원들에게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머플러를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비상(非常)시기에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비상(飛上)해야 합니다. 제가 송구영신예배를 드릴 때, 예년처럼 성도들을 모이게 하면 중대본의 지침도 어길 뿐만 아니라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목사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확진자라도 나오면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대본의 지침을 지키면서도 송구영신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오전 10시 반에 20명 이내의 인원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그때부터 제가 하루 종일 가족단위로 오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 주려고 합니다. 그때 기도도 받고 약속의 말씀도 받고 신년소원예물도 드리고 가는 것입니다. 물론 순간순간 철저하게 소독하고 방역을 지키면서 할 것입니다. 그리고 11시 반에 송구영신예배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때 온라인으로 다 참여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때는 CBS TV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도 합니다. 우리 모두 힘든 겨울 광야를 걷고 있지만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얼마나 고귀합니까?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많습니까? 코로나는 누구도 예견할 수 없었던 재앙이었습니다. 내년도 알 수 없는 미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뿌려야합니다. 변함없이 축복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심어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송구영신예배를 포기하지 말고 약속의 말씀도 포기하지 말고 신년소원예물을 심는 것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더 비상 신앙, 비상 기도, 비상 헌신을 하며 더 높이 비상하고 웅비해야합니다.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작년 송구영신예배에서 본당을 가득 메운 성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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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마세요. 또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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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비상(非常)시기입니다. 그럴수록 더 비상(飛上)해야 하지 않을까요?”
- 지금은 정말 대한민국의 비상시기이고 한국교회의 비상시기입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성탄절 예배까지 포기한다는 것은 너무나 굴욕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지지난주부터 예배를 회복하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하였습니다. 중대본과 협의 할 때 우리 쪽에서 2.5단계에서도 공간의 10% 인원이라도 예배를 드리도록 조정 했어야 하는데 이것을 대비 못한 게 발등을 찍고 싶을 정도입니다. 사실은 모두들 2.5단계까지는 안 가리라고 생각 했거든요. 솔직히 우리 교회는 당분간 온라인예배를 드려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워낙 결속력이 강하고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강해서 유튜브와 화상 줌으로 해도 엄청 많은 성도들이 참여합니다. 그러나 저는 예배 회복을 위한 시대적 소명감을 가지고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그러자 지난주 토요일 오전에는 방역단체에서 교계에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주려고 회의를 하려다가 갑자기 국내 확진자가 900명, 1000명으로 올라가 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일부 교회에서 무더기 확진자가 나와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다른 교단이 아니라 우리 교단 교회에서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회의가 취소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정말 맥이 풀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통보를 받은 금요일 저녁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철야기도를 인도한 후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요즘은 어느 말 많은 선교단체가 규칙을 어기고 숨어서 집회를 하다가 무더기 확진자를 내버렸지 않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확진자 수가 더 많이 올라가고 교회마저도 가세를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도 사람인지라 힘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놈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항상 탐욕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숙주 자체가 인간의 탐욕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교회도 육신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선교집회나 예배도 신앙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면 안되지요. 중세적 사고로 세를 과시하거나 인간의 교권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집회나 예배에서 대부분 집단 감염이 이루어졌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 제가 예배회복을 위하여 뛰고 노력하는 것도 저의 탐욕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누구와 경쟁할 일도 없고, 세 과시를 할 일도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 안에는 인간의 탐욕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주님과 공교회를 위한 거룩한 욕망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뛰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한교총 두 대표회장님과 함께, 때로는 교단 총회장님들과 함께 정부의 주요 지도자들을 만나서 반 사정을 하고 반 공갈을 하면서 설득하고 소통을 하였습니다. “성탄절 예배는 우리 기독교뿐만 아니라 천주교도 열망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기독교 2000년의 역사, 한국교회 140여 년 동안 지켜온 기독교 최대의 성일입니다. 성탄절만큼은 제한적으로라도 예배를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비상시기에 일을 하다보면 맥도 풀리고 지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 하루 종일 저와 함께 다니던 한 분이 저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소 목사님, 어떻게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아갑니까? 그 많은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해 내세요? 그러고도 건강이 버텨지나요.” 저는 이런 대답을 하였습니다. “비상(非常)시기 일수록 우리가 더 비상(飛上)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잘 버텨왔는데 왜 포기합니까, 비상시기일수록 우리가 더 비상하고 웅비해야죠. 저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절규하면서 우리의 신앙이 다시 비상하고 또 비상하면 하나님께서 코로나의 기승도 꺾어주시고 확산세를 막아주신다고 믿으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록다운된 한국교회를 다시 열어 주옵소서. 무너진 한국교회를 세워주시고 대한민국도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이런 비상 시기일수록 우리 모두 희망의 날개를 펴고 더 비상하고 웅비하겠습니다. 아무리 맥이 풀리고 지쳐도 다시 날갯짓을 하며 또 한 번 비상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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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비상(非常)시기입니다. 그럴수록 더 비상(飛上)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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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겨울산과 바다가 그립습니다. 품기도 하고 뿜어내야 하기 때문이죠.”
- 저는 어릴 때부터 야행성이 강해서 시험을 앞두고 밤을 새워 벼락공부를 하던 습성이 있었습니다. 시험만 앞두면 밤도깨비가 되었죠. 그런데 지금은 시험 볼 일도 없지만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습니다. 요즘 제가 수많은 항의전화와 문자를 받기 때문이죠. “소 목사 당신은 정부와 싸워 현장예배를 지키도록 해야지 왜 중대본의 지침에 협조만 하려고 하느냐”고 말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거니와 저는 앞으로도 한국교회가 현장예배를 목숨처럼 지키면서도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는데도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항의전화를 해 온 분들의 심정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교계에 대한 중대본의 방역지침이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관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중대본이 교회 예배 인원 숫자를 획일적으로 20명으로 제한하는 것은 교계에 대한 깊은 배려가 부족했다고 할 수 있지요. 당연히 중대본은 한국교회에 최소한 공간 대비에 맞는 비율을 배려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들의 항의전화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당연히 제가 그런 항의도 받아야하지요. 그런데 또 일부에서는 이런 문자를 보내오기도 합니다. “이번 2.5단계에서 예배 상황을 확 바꾸기가 힘들다면 차라리 전적으로 중대본에 협조한다는 것을 국민 앞에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자칫 국민들에게 교회가 지나친 이기집단으로 보도가 되고 비춰질까 싶은 우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의견도 큰 틀에서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분에게는 또 그런 분대로 설득을 해 주었지요. 그래도 한국교회가 중대본의 방역지침에는 기본적으로 협조하더라도 표적화(선별화)된 방역의 모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은 전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계 내부의 일치된 목소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월요일에 우리 교단 목회자 세미나에서 이런 때는 일치된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연합기관이 논평, 혹은 입장문을 내면 여기에 합리적인 의견을 표출해 주시거나 일치된 의견의 댓글도 달아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러한 저의 표현을 어느 교계 방송은 꼭 집어서 논란의 발언으로 보도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어떤 분은 우리 총회본부와 우리 교회 앞에 와서 “정부가 입안해 놓은 교회폐쇄법에 왜 항의를 하지 않느냐”고 시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정부와 싸우지는 않고 맨날 이 정부에 협조만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법은 교회폐쇄법이 아니라 여야가 합의해서 만든 ‘감염병 시기의 집회’에 관한 법안이었습니다. 그런데 9월 총회를 준비하는 기간에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 일은 저도 모르고 박요셉 목사님도 몰랐습니다. 그 이후로 그와 비슷한 60개 이상의 법안이 올라왔는데 제가 이사장으로 있고 서헌제 박사님이 대표로 있는 한국교회법학회를 통하여 문제되는 요소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제되는 법안 개정을 위해서도 국회와 열심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늘 정부와 싸우라고만 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 법이야말로 코로나 상황 중에도 과격한 집회의 강행 때문에 입법이 된 것인데요. 그러나 저는 항의하고 시위하는 사람들까지도 다 품어야 합니다. 하나됨의 사명을 이루어야하니까요. 오히려 저는 그들을 향해서도 끊임없이 산소를 뿜어주는 산이 되어야 하고 흘러오는 강물을 정화시키는 바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겨울산과 겨울바다가 그리워 잠들지 못하는 밤을 경험합니다. 언젠가, 깊은 겨울산과 바다를 한 번 가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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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겨울산과 바다가 그립습니다. 품기도 하고 뿜어내야 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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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길이 없어도 걸어가겠습니다. 그러다보면 길이 될 거라 믿습니다”
- 저는 지난 12월 3일 한교총 대표회장에 취임하였습니다. 한교총 대표회장은 세 명인데, 법적 대표는 이사장 한 명입니다. 그런데 백석 교단 총회장이신 장종현 목사님께서 세 명이 대표회장을 하는 것을 반대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교총과 연합 활동하는 것을 행정보류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저는 그 어른을 찾아가서 사정사정을 하였습니다. “총회장님, 한국교회가 리더십의 부재로 얼마나 고초를 겪었습니까? 한국교회는 목사님 같은 큰 지도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행정보류를 푸시고 한교총에 들어와 대표회장을 맡아주십시오.” 저 혼자만 그런 말씀을 드린 것이 아니라 김태영 직전 대표회장님과 함께 만나 간곡하게 말씀 드렸습니다. 저의 진정한 목표는 장종현 총회장님을 이사장 겸 실제 대표회장으로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현존하는 지도자 가운데 가장 통 큰 지도자요, 섬김과 희생을 몸소 보여주셨던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었는데, 장종현 총회장님께서 갑자기 저에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저더러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장종현 총회장님께서 맡아주시라고 또 간곡하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교계 연합기관을 통합하려면 온 몸으로 뛰며 반대 여론을 설득하고 소통과 공감을 해야 합니다. 또한 많은 오해와 비난의 화살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종현 총회장님을 잘못 앞세웠다가 공연한 오해를 받게 하거나 명예를 실추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의 한교총으로도 좋은데 왜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느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돌이켜 볼 때 한국교회가 연합기관의 분열로 엇박자 리더십과 메시지를 냄으로써 얼마나 큰 데미지를 입었습니까? 연합기관과 단체들이 서로 엇박자 소리를 내고 다른 행동을 하니까 국민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부정적 여론의 프레임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코로나 팬데믹 처치 시대에 원 리더십을 행사하지 못하고 원 메시지를 내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더 큰 참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저는 내면에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윗사람을 모시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장종현 총회장님을 대표회장님으로 모셔야 하는데 또 현실을 감안하면 장종현 총회장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밀고 당기기를 여러번 하였습니다. 결국 어찌어찌해서 등 떠밀려 제가 이사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인사말을 하는 순서도 장종현 총회장님이 제일 먼저 하시게 하고 사진을 찍을 때도 가운데로 모시고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를 할 때도 한 중앙으로 모셨습니다. 그래도 아쉬워서 오는 길에 장종현 총회장님 사무실을 들려서 이렇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총회장님, 정말 송구합니다. 저는 어르신의 그림자도 밟지 않겠습니다. 한국교회가 연합을 이룰 때까지만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그 이후에 더 크게 섬겨주십시오.” 앞으로 제가 걸어야 할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잠 못 이루는 밤을 많이 겪었는데 얼마나 더 많은 잠 못 드는 밤을 보내야 할지요. 저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 그러나 오직 포스트 팬데믹 교회를 세우고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는 음부의 권세와 싸워나가기 위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걸어갈 것입니다. 길이 없어도 걸어가다 보면 곧 길이 될 것을 믿으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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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길이 없어도 걸어가겠습니다. 그러다보면 길이 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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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싸움의 대상을 바로 정해야 합니다. 싸움의 기술은 더 중요한 거구요.”
- 저는 젊은 시절에 중국 무협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저의 영적 전쟁으로 오버랩을 시키며 기도해봤습니다. “주여, 저의 영혼이 저렇게 민첩하고 용기 있게 하시고 잠을 자면서도 사탄과 싸우게 하옵소서.” 그러나 요즘은 그런 무협 영화를 보지 않습니다. 영춘권, 태극권의 고수들이 격투기 선수들에게 1분도 안 되어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이따금씩 삼국지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삼국지에도 좀 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조자룡이 20만의 진을 뚫었다든지, 관우의 오관 돌파의 전설이라든지 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역사 소설인 것만은 분명하거든요. 그런데 삼국지를 보면 군사의 수나 용맹보다도 싸움의 전략과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싸울지도 모르는 어설픈 군사들이 먼저 나가 싸우다가 전쟁을 망쳐버리는 것을 봅니다. 마속 같은 경우는 제갈량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소신을 앞세우다가 촉나라의 군대를 무참하게 희생 시켜버리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적벽대전에서는 다르죠. 제갈량은 바람의 방향을 이용하는 면도 있었지만, 먼저 조조 진영의 군대를 이간질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조조의 군사들이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80만의 대군이 대패를 하게 만들어 버렸지요. 요즘 반기독교 진영에서는 한국교회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워서 공격을 합니다. 어떻게든지 한국교회로부터 공격의 빌미를 잡아서 파상적인 공세를 취한 후 분열을 시키려고 합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각자의 의분을 가지고 내부총질을 하고, 기관마다 자기 소리를 내며 각개전투를 합니다. 한국교회가 원 리더십, 원 메시지를 낸 것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각자 따로 메시지를 내고, 따로 행동을 합니다. 코로나를 대응하는데 있어서도 여러 소리가 나왔습니다.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것은 정부에 굴복하는 것이라느니, 중대본의 수칙을 지키는 것도 정부에 항복하는 것이라느니, 사회적 거리두기 하는 것이 성경 몇 장 몇 절에 있느냐는 등 각자의 소리를 내며 오히려 싸움의 대상을 우군으로 정해버리는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예배를 생명처럼 여겨야 합니다. 전염병 중에도 구약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상번제를 끊지 않고 드렸습니다. 그러나 멀리 있는 백성들은 전염병 중에 성전으로 모이지 못할 것을 전제하고 성전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했잖아요.(대하6:28-30) 그러니까 전염병 중에는 당연히 건강한 중직자들은 현장예배를 드리되, 노약자와 고위험군은 집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다가 조그마한 실수로 교회에서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와 버리면 반기독교 세력은 온갖 부정적 프레임을 씌워서 모든 언론과 국민 여론이 교회를 공격하도록 하지 않겠습니까? 코로나를 거치면서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싸움의 본질을 알고 싸움의 전략과 기술을 터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기독교 진영이 프레임을 걸어오면 우리는 그 프레임에 말려들지 말고 오히려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며 새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교회와 예배의 본질을 붙잡되, 꼰대가 아닌 새로운 교회 모습을 보이고 새 술을 담는 새 교회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하나로 뭉쳐 힘을 축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략가들을 세워서 싸움의 전략과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더 견고하게 될 것이고 시대의 정신적, 영적 방역의 기능을 하고 거룩한 항체와 저항인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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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싸움의 대상을 바로 정해야 합니다. 싸움의 기술은 더 중요한 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