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 것을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세상의 이치를 알게 한다. 이것은 진리로서 자연의 길이요 질서요 생명이 된다. 이는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터득 하려면 먼저 심어야 나중에 거두게 하는 것을 알게 한다. 또한 여기에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함도 알게 한다. 그리고 씨를 뿌리기 전에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 하기에 씨를 뿌리려면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씨를 뿌려 거두려면 반드시 때가 지나야 거둘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하지만 이는 어떤 씨앗도 뿌린 후 곧 바로 거둘 수 없다는 것도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뿌린 씨가 전부 열매가 될 수는 없다는 것도 알게 하며 모든 일에 이익을 얻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는 것도 알게 한다. 그러나 뿌린 것 보다는 더 많이 거둔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는 모든 씨앗 에서 수확을 얻지 못해도 결국 뿌리는 것 보다는 많이 거둔다는 것을 이치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농사의 법칙은 콩 심는데 콩 나고, 팥 심는데 팥 난다는 이치도 알게 한다. 종자대로 심으면 종자대로 난다. 이것은 소가 돼지를 낳을 수 없듯이 결국 소는 소를 낳고 돼지는 돼지를 낳는다는 것을 깨우치게 한다. 또한 심는 자는 반드시 그 종자를 다음 기회를 갖기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도 주의 하여 알게 한다. 이는 다음 수확을 위해 씨앗 중 일부는 다시 뿌릴 수 있게 종자로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한다. 이렇게 세상만사의 이치가 '심는 대로 거둔다' 사실로 진리인 된다. 이는 반드시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종을 치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 종은 하나도 없다'는 것도 알게 한다.
"감사의 갈무리"는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무리하는 것이요 심는 것만큼 이루어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어떻게 갈무리하여야 함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감사로 하늘의 씨(복음)를 받는 하나님의 몸으로 사람의 인내로 잘 심는 자가 되어 하늘의 감사를 잘 챙기어 간직함으로 "감사의 갈무리"를 알게 한다. 때가 이르면,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이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갈무리'의 의미는 모든 것을 잘 거두어 돌보는 것이다. 이는 창조질서 순응에 대한 감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4계절, 우주 천체의 지속적인 운행은 창조질서의 순응에 대한 이치로 되어진다. 원래 창조질서에 순응 하는 관계를 알게 한다. 이 회복은 말씀 안에서 이루어진다. 세계교회들의 추수감사절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감사절에 연유하면서 자기민족의 역사전통과 문화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접목하여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풍요로움과 넉넉함을 전하는 것은 풍요로운 재물에 대한 현혹됨이 아니고 이렇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늘 기억하게 하는 창조보전을 위한 감사인 것이다. 이렇게 창조질서를 지키고 생명의 감사를 아는 것은 우리나라의 한가위 명절이다. 그리하여 한가위는 우리의 삶과 마음을 나누고 넉넉하고 여유롭게 한다. 느긋하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스스로 의 감사를 알게 한다. 이는 "한가위가 감사를 아는 명절"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한국의 한가위와 구약성서의 초막절은 너무나 공통점이 같다. 초막절은 유대 달력으로 티쉬리월로 7월15일 보름날인데 한국의 한가위도 음력으로 8월 15일이다. 달만 다르지 날짜는 보름으로 항상 같은 것이다. 달밤을 즐기는 행사도 서로 같다. 그리고 조상을 찾아 경배하며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것도 같다. 초막절에는 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조국 땅에 있는 성전을 향해 누구나 순례를 하며 조국과 조상을 기억하는 전통도 같다. 유대인들의 쑤카와 한국의 한가위가 추수한 곡식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도 같은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 전통문화는 지배문화가 아니고 백성의 문화였다. 이 문화는 하늘과 땅, 신령과 인간이 하나로 융합되어 새로운 생명과 문화를 창조하는 원초적인 신앙적인 풍습이었음을 알게 한다. 이렇게 성서는 우리에게 자연속에 깃들인 하나님의 생명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과 만물과의 신비한 관계를 깊이 묵상하고 사색하고 영적 직관과 기도와 체험으로 알아 낸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기독교의 영성을 풍부하게 해준 자연에서 영감 받은 자들임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독교의 영성이 성서 전반에 자연 속에서 흐르고 있음을 알게 한다.
ⓒ 교회연합신문 & 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