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02(수)
 
  • 이선규 목사(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 사무총장)

이선규.jpg

 

본고는 지난 320, 이선규 목사가 사)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 3월 월례회에서 강의한 한국교회 신뢰 회복의 길원고 내용이다. <편집자 주>

 

1. 과거의 교회

 

지하철 1호선 인천항 인천역 부근에 가면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탑이 있다. 이곳에 아펜젤러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역에 발을 내디딘 흔적을 볼 수 있다. 기념탑에 새겨진 내력이나 1908년에 펴낸 조선의 부름이란 책에 나와 있듯이 지금 내 눈에 새로운 조선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장차 이 나라 방방곳곳에 사랑, 화목, 협동의 기독교 정신으로 가르치는 학교들이보이고 도시와 마을마다 자비량으로 운영되는 기독교 병원들이 내 눈에 보인다.

 

이 나라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긍휼을 베푸는 기관들이 세워져 고통당하는 자들을 섬기고 가난과 무속 무지한 자들에게 빛과 기쁨을 주는 모습이 보인다고 적혀 있다.

 

이곳에서 보는 대로 한국교회는 그동안 짧은 역사 속에서 영광과 수치를 이어왔으며. 한국의 수많은 교회당의 터전에는 순교와 봉사에서 영광의 꽃을 피웠고 배신과 분열에서 수치를 남겨 놓은 것도 사실이며 이들이 보인다고 한대로 지금 한국교회는 이들이 보이는 것들을 보고 있다.

 

지금 우리는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삶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라는 신앙고백으로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니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영광을 얻었으나 주의 뜻을 거스려 말할 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는 책망을 듣게 됐다.

 

선교초기의 한국교회는 자립 자족의 전도방법으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었으며 이러한 신뢰를 기반에서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일제의 침략으로 부터 고통과 박해가운데서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독립 운동가를 양성했으며 미신타파와 문명퇴치를 통해 사회의식 개혁을 주도해 왔다. 오늘 한국사회의 발전에는 초기 한국교회의 역할이 그만큼 컸다는 사실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눈물과 기도와 말씀을 실행함으로 선교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발전을 이루었으며 이로 인하여 한국교회는 민족의 희망이었으며 부흥의 꽃을 찬란하게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2, 오늘의 교회

 

이렇게 해서 한국교회는 성장을 이루는 가운데 예전에는 한국교회를 진단 할 때 다음과 같은 담론을 내놓는다. 그래도 한국교회는 희망은 있다는 말로 끝맺음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듣기가 힘든 형편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교회에서만 보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없는 유럽의 풍경은 상상하기조차 어렵고 500년이 안된 교회는 오래 되었다고 말하기조차 꺼려했다고 한다. 이렇게 전통 있는 교회들이 수십 수백 개가 들어서있어 고풍스런 모습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들은 점차 해결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이 되어가고 있다는 가슴 아픈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유럽에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신자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도 한가롭게 다른 나라의 사정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한국교회의 교세가 심각하게 감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출산율 저조에 따른 자연적 감소의 원인도 있고 코로나19의 영향이 신뢰하락을 부축인 측면도 없지 않다. 그렇다 치더라도 현재 신뢰의 추락은 그 정도가 위험 수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지난 2년 사이에 장로교 합동측의 교인이 26만이 감소했고 통합측도 14만 명이 감소했다는 보고도 있다. 이들 교단 뿐 이겠니?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는 한국교회를 비난하고 흉을 보는 사람들이 교회밖에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 안에서 비난하는 세력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무너지는 교회의 책임이 너에게 있고 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하라는 대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너 때문에 교회가 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내가 죄인이라는 목소리는 들어보기 힘든 현실이다. 예전에는 한국 교회 성직자 에게는 예의를 갖추었고 교회 직분 자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신뢰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교회가 사회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목사를 대할 때 성직자로 예의를 갖추었고 교회의 장로나 직분 자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직자로서의 목자상이 퇴색하였고 교인들끼리도 서로 말을 의심하고 불신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리와 도덕은 의미를 잃어 버렸고 기독교는 사회의 조롱거리로 전락 되어가는 상황이다. 전에는 신앙적으로 죄를 지으면 책벌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교회가 ㅇㅇ개를 책벌 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ㅇㅇ교회에서 책벌을 받으면 오히려 다른 교회가면 대 환영을 받는다. 목사와 장로는 면제부를 받는 상태다. 이에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못한다.

 

이렇게 정화능력을 상실하다보니 교회의 신뢰가 이방 종교만도 못하게 추락하고 있는 것은 한국교회의 자업자득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죽은 믿음은 교회의 수치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 추세라고 하지만 그 하향 속도가 가파르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으며. 또한 공동체 의식이 결여 되었다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한 거룩한 공회라고 고백한대로 하나의 교회라고 하면서도 서로 넘나들 수 없는 길을 걷는 것이 교회의 수치다.

 

아람의 대군이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노리고 있는데 그 적군으로 부터 뇌물을 받은 게하시와 같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세속화로 전락하고 몇 푼의 재물과 명예와 권력욕에 기우러져 있는 것도 신뢰 추락의 원인이 되고 있다.

 

3. 미래의 교회

 

현재 한국교회는 140주년을 맞이했다. 이제 우리현실을 올바로 직시하고 교회 본질을 회복 할 뿐 아니라 맛 잃은 소금이 아무 쓸데가 없고 맛을 잃은 교회로 전락해가고 있지 않나하는 의 구 심도 들게 된다. 맛을 잃어 버렸다면 생명을 구원하는 복음의 맛을 회복하는 교회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고 믿는다. 그렇게 되어 질 때 한국교회는 다시 희망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예수 안에는 절망적인 미래는 없다.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우리는 신을 믿는다. (in God we trust)미국의 돈에는 어디에나 이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통합과, 평화를 추구했던 미국은 그 어느 사회보다. 봉사와 기부가 생활화 되어있으며 타인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잊지 않고 존경을 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그 방향이 바뀐 듯 하다. 미국의 이익에 따라 내려지는 지금 우리는 신을 믿는다가 아닌 이제 우리는 머니()을 믿는다로 바뀌어 가고 있다. 미국은 그와 함께 위대하고 특별하게 만들었던 가치들도 그와 함께 빠르게 사라져가는 듯하다. 이제 한국의 교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나? 그래도 우리는 머니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 희망인 나라로 만들어 가는 목사님들 되실 수 있기를 바란다. 교회 신뢰의 추락은 포도나무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져나간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나무 가지가 근원에서 이탈하였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가지는 살아남을 수 있다.

 

교회에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교회의 터전인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그

전체댓글 0

  • 7657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이선규 목사 칼럼] 한국교회 신뢰 회복의 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