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본고는 지난 9월 9일 화평교회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 9월 월례회에서 지형은 목사가 발제한 ‘무섭게 중심으로 그리고 외연(外延)을’의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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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창조, 타락, 구원의 흐름에 내재된 하나님의 섭리다. 현재의 한국 교회가 병들고 타락해 있어서 개혁이 필요한 것이 분명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개혁은 교회의 근본 구조에 뗄 수 없이 연관돼 있다. 개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돼야 하는 주님의 명령이며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근본 과제다. 그래서 교회는 본디 시작될 때부터 늘 개혁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다. 그리고 개혁의 기준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 곧 기록된 말씀이다.

1. 제도의 개혁
한국 교회가 성서적인 교회로 거듭나려면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에 터하여 끊임없이 제도의 개혁에 애를 써야 한다.
(1) 교회연합 기구들이 하나의 조직이 되도록 또 더 넓은 범위에서 한 지붕을 씌우도록 해야 한다.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하나의 기구를 만드는 일에 현실적인 제반 여건을 세심하게 살펴서 결과를 끌어내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이로써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고 영향력도 커질 테다.
(2) 각 교단 신학교육 기관의 입학생과 졸업생 수를 교단 내의 일할 자리와 연관하여 조절해야 한다. 목회자를 길러내는 질적인 수준을 대폭 높여야 한다. 기독교 안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성직의 지도력’을 갖춘 목회자를 길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 신학교육 기관이 자본주의적 대학 경영의 논리를 탈피하고 혁신적으로 시각의 전환을 결단해야 한다.
(3) 총회장(또는 감독회장)을 중심한 개 교단의 선거 및 치리 구조가 세속 정치와 거의 다를 바 없이 돈과 파벌 싸움으로 얼룩진 현실을 어떻게든 개혁해야 한다. 제비뽑기 선거, 총회장의 임기를 1년보다 길게 하는 것, 총회장, 노회장, 지방회장 등을 지낸 후의 특권을 제도적으로 줄이는 것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여 권력 구조를 바꿔야 한다.
(4) 평신도 지도력 특히 장로 직이 계급의식에 물들어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몇 가지 큰 문제 중 하나다. 이런 상황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의식하고 계급과 권력 의식을 없애는 방향으로 교단법 개정을 치열하게 연구하여 실행해야 한다.
(5) 지역 교회에서부터 교단의 총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기독교 관련 모든 기구에까지 돈의 사용에서 적어도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관례’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공식적인 이론’보다 더 높은 기준을 정하고 시행하여 돈 문제에 대하여 거룩한 청렴성을 가져야 한다. 이로써 크든 작든 눈먼 공금을 노리는 정치꾼들이 교회 및 교계 활동에서 배제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2. 심령의 개혁
현실적으로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면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이 작동되면서 발생하는 심령의 변화가 절실하다. 일반적인 용어로는 의식의 개혁이다. 특히 이 점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 본질과 연결돼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와 구원의 섭리가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서 끊임없이 당신의 뜻을 보이셨다. 사람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성자 하나님은 하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우리가 사는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 그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두 가지 방식으로 계시되었다. 하나가 일반계시 또는 자연계시, 다른 하나가 특별계시다.
특별계시의 중심이 기록된 성서의 말씀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말씀으로써 지속적으로 보이셨다. 크게 보면 (1)모세 이전까지는 구술의 말씀으로, (2)모세 때부터는 기록된 말씀으로, (3)그리고 존재하는 시간의 흐름 한가운데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이 사람 몸을 입으신 성육신의 말씀으로, (4)마지막으로는 성령 하나님이 사람 안에 사시면서 기록된 말씀의 성취를 이끌어 가시는 내주(內住)의 말씀으로다.
창세 이래의 하나님 신앙을 잇는 기독교 신앙은 언제나 말씀으로 본질을 유지했다.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시는 말씀의 약속 곧 언약(言約)이 성경 전체를 꿰뚫는 굵은 선이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맺은 언약,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시내산 언약, 모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한 번 갱신된 신명기 언약,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전체 이스라엘을 불러놓고 맺은 세겜 언약, 사무엘 시대의 미스바 언약, 포로기 이후에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받들어 이끈 성전 봉헌식 때의 언약, 예레미야가 예언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명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써 완성되는 최종적인 언약.
말씀이 삶에서 작동함으로써 발생하고 진행되는 개혁은 교회 역사적으로도 아주 분명하다. 기독교 수도원 운동의 시작인 사막교부들의 간절한 염원은 ‘한 치도 어김없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었다. 중세 초기의 베네딕트 수도원 운동의 중심이 성경 말씀이었고 중세 한가운데서 일어난 페트루스 발두스의 말씀 운동과 귀고2세로 대표되는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 말씀묵상)가 그러했다. 14, 15세기의 존 위클리프와 요한 후스, 마르틴 루터와 울리히 쯔빙글리와 존 칼빈 등의 16세기 종교개혁, 한국 땅의 초기 선교 등 기독교의 개혁 운동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심장이었다.

3. 무섭게 중심으로 그래서 외연(外延)을
제도적인 개혁이 현실적으로는 먼저일 수도 있겠다. 교계 현실에서 이 면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말고 여러 모양으로 애써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개혁에서 중심은 늘 심령 곧 속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의 터를 바꾸는 일 말이다. 이 일에서 말씀이 중심이다. 여기에 대한 집중력이 무섭게 강화돼야 한다. 강조해서 표현해 본다면, 현재 한국 교회에서 진행되는 모든 종류의 말씀 운동들보다 순도(純度)와 강도(剛度)가 말할 수 없이 높아야 한다.
말씀이 삶이 되는 운동은 종교성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며, 어느 출판사나 어느 집단의 자본주의적 홍보 전략이 아니다. 어느 한 교회의 목회적인 성취를 위한 것도 아니고 어느 교단의 교세 확장이나 교계 단체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것도 아니다. 개혁은 성령 하나님이 주도하면서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사람이 주연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조금이라도 불순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깊이 살펴 회개해야 한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거룩한 운동은 해보다가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할 일이 절대로 아니다. 사람이 보는 시각에서 열매가 없더라도 해야 한다. 사회적인 성취가 없어도 계속돼야 한다. 효율성과 성과로 따질 일이 결코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이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일이다. 개혁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이다. 사람은 삶과 죽음을 바쳐 오로지 순종할 따름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조금이라도 나약한 생각이 있다면 처절하게 깨닫고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이 무서운 중심(中心)으로부터 비로소 외연(外延)의 힘이 생길 것이다. 한 10년은 잠잠하게 중심으로 들어가야 할 테다. 물론 위에서도 말한 대로 제도의 개혁을 늘 살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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