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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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신교에서는 2017년 6월 4일을 성령강림주일로 정하고 성령 강림의 의미를 특별히 되새기며, 성령세례를 받은 성도들의 사명을 새롭게 하는 특별한 행사를 한다. 필자는 이미 『성령세례 다시 해석한다』는 책을 통하여 오순절 성령세례 사건을 기술하고 있는 본문 사도행전 2:3의 번역상 오류 문제와 이에 수반되는 여러 신학적 잇슈들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들을 제안해 놓았다. 이 지면을 통해서는 물세례와 성령세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도행전 2장 3절은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불처럼 갈라진 혀들이 제자들 위에 임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제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을 하자, 세계 각 곳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자기의 모국어로 사도들의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첫째로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임한 것이 강하고 세찬 바람이 분 것이 아니라 강하고 세찬 바람 소리가 났다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임한 것이 불이 아니라 마치 불처럼 보이는 갈라진 혀들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바람 소리는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출현을 알리는 팡파래와 같은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혀가 임하고, 제자들이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 위에 임한 혀와 제자들 사이에 서로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추측케 해준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를 가리켜 “여호와의 입”이라고 불렀으며,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부르실 때에 이들의 입술에 손을 대시므로 마치 “너는 내 입이다”라고 도장을 찍는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렘 1:9; 사 6:6-8). 부활 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대선지자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명하신 모든 말씀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가르쳐야 할 제자들에게는 (마 28:16-20)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종임을 인증하는 권위와 능력이 필요했다.  따라서 갈라진 혀들이 임하고 성령이 충만한 제자들이 다른 나라 말들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의 입술을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을 직접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며, 예수님의 제자들을 “너희는 입이다”라고 성령으로 인을 치고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말하자면 새언약의 선지자로 이들을 세우는 위임식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이 “방언했다”고 번역하고 있는 헬라어 “그롯사”라는 말은 보통 한글로 “방언”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언어”(language)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날에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자기 본국 말로 들었다고 했고(6), 11절에도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 일들을 우리 자신들의 말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은 분명 사람들이 통역 없이 알아듣고 소통이 가능한 언어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방언이라고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순절에 제자들이 다른 언어로 한 말은 분명 고린도 성도들의 방언과는 다른 것이었다. 성경은 이것을 “은사”, 헬라어로 “카리스마”를 쓰고 있는 데 “선물”(Gifts)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선물이지만 성령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고 그냥 “은사” 혹은 “은사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령의 선물”이라고 할 때는 “도레아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라는 말을 쓴다. 이 때 선물은 중생이나 성화와 같은 구원을 의미하는 말이다(행 2:38).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보통 은사라고 할 때는 “카리스마”, 성령의 선물이라는 말은 “도레아”를 사용한다. 따라서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했던 방언은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언어인 반면, 고린도 성도들이 했던 방언은 은사 가운데 하나였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오순절 성령세례가 제자들을 선지자로 세우는 위임식이라면 첫째는 이것은 의식이기 때문에 반복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둘째는 성령세례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선지자적 사명을 부여하는 일이기 때문에 중생이라고 말할 수 없고, 셋째는 성령세례가 방언을 동반한다거나 방언을 함으로 그것이 구원 받은 자의 표지라고 말할 수도 없으며, 중생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시는 제2의 축복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넷째로 오순절 성령세례가 교회의 시작이라거나 혹은 성령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사 가운데 새로운 성령의 시대가 열리는 새로운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말하는 것도 지나치게 신학적 의미를 과장하는 것이다.
오순절의 성령세례는 새 언약의 선지자를 세우는 위임식인 만큼 성령세례를 받을 때는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의식 가운데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세례를 받을 때 다른 언어로 말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들을 새 술에 취한 사람이라고 조롱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초자연적인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이고, 이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자기들이 요엘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보내신 하나님의 영을 받아 예언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요엘서에 약속된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것을 변증했다(행 2장).
오순절의 방언은 본질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는 사건이며, 제자들 자신도 다른 언어로 말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시고 세우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세례는 본질적으로 신자들 가운데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세례가 영광스럽고 의미있는 의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우리 신자들은 언제 성령세례를 받는가?
우리 신자들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성부와 성자의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존재가 되며,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는 교회의 지체가 된다. 이때 성령은 우리 모든 신자들을 그의 지체로 받아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이고, 띠띠어 묶는 역할을 한다. 사람의 몸에 여러 지체들이 핏줄과 신경으로 서로 연결되어 한 몸을 이루듯이 성령이 지체된 우리를 띠띠어 한 몸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세례 때 성령은 신자들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물세례 때 제자들을 선지자로 위임하는 일도 한다. 예수님은 물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하시며, 메시야로서의 추임식을 하셨다. 그리고 대선지자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셨다. 제자들도 사도행전의 말씀 사역을 시작함에 있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선지자로서의 인증식을 가진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선지자적 사명을 주시며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그가 가르치신 말씀을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명하셨다. 세례와 선지자적 사명은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8.6; 소요리문답 제 91문), 우리는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를 받고, 선지자적 직분과 사명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제자들은 세례를 받음으로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민 11:29; 욜 2:28-29; 행 2:17-18).
그러나 우리 개신교에서는 그동안 신자들에게 물세례를 베풀면서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생각을 못한 것 같다. 또한 물세례를 베풀 때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며, 선지자적 직분과 사명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초신자들이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고, 교회의 일원으로서 주일성수하고 십일조를 내며, 성만찬에 참예하고 공동회의 선거권을 갖는다는 것 정도를 알고 행하는 것 외에는 세례받은 신자로서의 하는 일이 없다. 예수께서 온 세상에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주고 가르치라는 선지자적 사명은 오로지 해외에 선교사로 나아가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으로 생각해왔다. 우리 성도들은 물세례를 받으며, 성령세례를 함께 받는 것이며, 아울러 선지자로서의 직분과 사명을 받는 것이다. 선지자란 입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도록 가르치는 사람이다. 개신교는 모든 성도들이 성령세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짐과 동시에 선지자적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할 때 다시 부흥과 성장의 역사가 이루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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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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