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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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예루살렘에서 1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엠마오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두 제자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시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관리들이 그를 법정에 넘겨 사형 판결을 받게 하여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속량하여 주기를 바랬다. 그가 죽은 지 사흘이 되었을 때에 그를 따르던 여자들이 우리를 놀라게 한 일을 보았다. 여자들이 그의 무덤에 갔다가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무덤에 나타난 천사들이 “그가 살아나셨다”(<누가복음> 24:23)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우리의 동료 제자들이 무덤에 가서 확인하여 여자들이 말한 것을 확인하였느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예수는 당신이 고난받고 영광의 자리에 가는 것을 선지자들이 그토록 말하였는데도 더디 믿느냐면서 성경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그러자 두 제자는 날이 저물었으니 자신들과 함께 묵고 가자고 그리스도에게 강권하여 함께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가지고 있던 떡을 떼어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리스도가 직접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들과 함께 한 분이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가서 열한 제자와 함께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주께서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에 엠마오를 갔다 온 두 제자도 그들이 길에서 일어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누가복음> 24:35)였습니다.
이와 같은 엠마오 사건을 보면, 주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은 굉장히 멀리 떨어진 별에 계신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태어나서 현재까지 살아오는 동안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앞으로도 함께 동행하실 겁니다. 우리가 선택해서 주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선택해서 함께 하시는 것이지요.  
주님은 당시 이스라엘 민중에게 왕따를 당하던 세리 삭개오의 집에 거하셨습니다. 중풍병자와 소경과 문둥병자를 고치셨으며,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으며, 죽은 후 사흘만에 부활하셨고,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도 동행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젊은 시절에도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1970년대에 42년간의 교직 생활로 얻은 퇴직금을 사기꾼에게 다 날린 후 기존의 살던 집을 팔고 변두리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곳은 서대문구에 있는 ‘기자촌’이라는 곳이었는데, 높은 산을 깎아 만든 마을이어서 비탈길이 가팔랐습니다. 형제들이 거의 결혼하여서, 그 집에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시집 안 간 막내 누님과 총각인 내가 살고 있었습니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 종종 걸음으로 올라가도 20여 분이 걸리는 산 중턱에 있던 집은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었고, 산꼭대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적막감을 더해 주는 곳이었습니다. 전화기가 드물던 때라 직장에서 호출하는 비상 전화는 옆집에서 전달받아야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에서 오는 좌절감을 침묵으로 달래셨고, 나는 쥐꼬리만한 봉급을 쪼개어 집안의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내가 작가로서의 꿈을 접고 묵묵히 직장 생활을 하였던 것은 주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집 없이 공생애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과 복음 사역을 위해 개인의 안일에 머물지 않았던 사도들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현재의 고통은 단지 지나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하여 보면 젊은 시절에 내가 당하였던 고통은 주님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연단시키시기 위하여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감당하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쇠는 뜨거운 불에 달구어져 많이 칠수록 단단하여 집니다. 주님은 구원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시련을 몸소 십자가 보혈로 체험하셨습니다. 이는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또한 죽음 뒤에 영생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매우 허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몸소 부활하셔서 우리들이 영생으로 나아가는 존재임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 나라와 의가 있음을 믿고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는 개인에게 닥친 시련과 고통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옆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더 심한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을 당하셨고, 이를 통해 인류를 향한 사랑을 실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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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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