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술/ 기윤실 바른가치 세미나 ‘미투와 기독교’
2018/05/10 10:1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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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남성적 이미지, 교회 내 성차별 부추겨
본고는 기윤실이 지난 4월 23일 개최한 바른가치 세미나 ‘미투와 기독교’ 중 최순양 교수(이화여대)가 발제한 ‘#Me Too, 기독교의 시선으로 보다(기독교의 입장에서 살펴본 미투운동)’의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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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층화된 여성과 남성의 관계 ‘평신도와 목회자’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고 비하하거나 대상화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할 때, 한국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여성성폭력의 사례들은 그 층위가 좀 더 복잡해진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가지고 있는 혐오적 생각들에 더하여져서 목회자라고 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평신도 여성에게 성폭력을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1) 교회 여성의 이중적 억압 현실
교회 내에 존재하는 신앙적이고 신학적 기반들이 성폭력을 더 은폐하면서 한 편으로는 강화시키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남성목회자들은 자신이 목회자라고 하는 권위를 근거로 하여 여성들을 이중으로 대상화시키고 있다.(여성이라는 이유와 목회자에게 순종하는 평신도라는 두가지 변수를 이용하고 있다.) 교회 여성들이 주로 당하는 성폭력은 목회자들로부터 행해지는 데, 이 경우 교회의 신조나 믿음체계, 그리고 여성들의 신앙 교육 등을 악용해서 발생할 때가 많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자의 성적 결정권이 교묘하게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규정하는 성역할과 성적 차이보다도 더 교회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이분법적 종속적 관계로 규정하면서, 그 안에서 남성들은 여성들의 ‘머리’이며 지도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게다가 그러한 남성들의 지도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게다가 남성은 지도력으로 여성은 그 지도력에 순종하고 종속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부합된다고 하는 잠재적 동의가 존재한다.
남성 목회자들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한 성폭력의 형태는 대개의 경우 목회적 업무의 일환으로 행해지게 된다. 심방을 가서, 위로해주기 위해서라고 미화한다거나, 본인의 거룩함이 이어지기 위해서, 신체적 친밀감은 필수적인 것으로 해야 된다는 둥, 혹은 아버지가 딸을 돌보는 돌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성폭행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을 대리하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일반 남성을 대할 때처럼 방어적일 수 없고, 즉각적인 거부의사를 표현하기가 더 어렵다는 현실적 자각의식이 있어야 한다.
평신도들이 남성 목회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심리적 상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지고 있는 그것과 같지 않다. 목회자에 대해서 자신을 매우 약하고 의존적 존재로 정의내릴 때가 많다. 목회자가 하는 말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의문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신앙이 깊고, 교회생활을 많이 한 여성 평신도들에게 더 강화되어 나타난다. 실제로 일반남자가 아니라 남성 ‘목회자’이기 때문에 폭행을 당하더라도 저항할 수 없이 무력해졌다는 경험담을 토로하는 피해자들이 있었다.
더군다나 목회자가 성경구절을 인용한다거나 신앙적 조언을 하면서 성폭행을 강요할 경우 그것이 성폭행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심한 경우, 남성목회자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그냥 남자가 아니라 ‘목사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목회자는 모세가 구스 여인을 선택한 것 같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라면서 세 명의 여신도를 자신의 아파트로 불러 성행위를 하고 안마를 요구했다.(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도 바쳐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피해자인 여신도는 그 상황이 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성폭행을 당했고, 자신의 신학적 체계 안에서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었기에 목회자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라이즈업 대표직을 했던 목사의 이야기나 성폭행 양상을 살펴보면, 여성들에게 성폭행을 가하면서도 그 폭력을 ‘목사’이자 권력을 가진 이로서 약자인 여성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로 포장을 하거나 협박을 하면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혹은 그러한 목사(교수)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신앙이 좋은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면서 감행하였다.
이렇듯이 교회 내에서는 남성 대 여성의 이분법적 구조에 덧붙여서 목사와 평신도라고 하는 권력의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구조가 있다. 사회에서의 여성보다 교회내의 여성들은 더 중첩된 이중적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는 셈이다.

2) 교회 내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정형화’된 성역할
교회에서 바람직한 여성신도의 모습으로 제시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이 존재하는 데, 그러한 모습에 대한 내면화가 정작 여신도들이 목회자로부터 성적 폭력을 당했을 때에도 그것을 부당하다거나, 저항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상적인 여성상의 모습은 봉사하고 남성에게 순종하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따라서 목회자가 무엇을 요구하든 –심지어 성폭력을 행사할지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저항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대처능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두 번째 여성상은 자신의 고난을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는 여성상이다. 성폭행을 당하고서도 자신이 감내하고 목회자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겠다, 목회자를 고소하지 않겠다고 하는 대응을 하게 되는 것도 여성은 고난을 감수해야 하며, 그것이 여성의 신앙적 미덕이라고 교육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래도 우리교회 목사님이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존경받고 쓰임 받는 목사님이니까 치유되시길 기도해드릴 뿐 제가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문제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여성은 유혹적이고, 남성보다 본능적이며 악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상이다. 창조설화에서부터 하와는 뱀에게 유혹을 당해서 아담까지 타락시키게 만든 원인으로 투영되어서 비추어졌다. 사마리아 여인이나 막달라 마리아도 성서에서는 유혹적이고 부정적이고 죄가 많은 여성으로 해석되어왔다. 실제로, J목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여신도를(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음성파일을 공개하였다) 일부러 그 목사를 유혹해서 넘어뜨리려고 녹음기까지 준비한 신천지 교인이라고까지 공격하는 일이 있었다.

3) 남성성과 신성함- 하나님의 대리자, 남성 목사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서는 많은 경우, 여성의 종속과 순종을 강요하기 위해 읽혀져 왔다. 성서적 인간이해가 남성의 경험이나 관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성서의 주요 이야기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남성들이고, 여성들이 등장한다고 해도 남성의 관점에서 읽혀진 여성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구약성서의 여성들은 ‘여성은 남성보다 못하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다’ 혹은 ‘여성은 자손을 낳기 위한 성적 도구이다’ 등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한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여 바로 왕의 아내로 삼게 하는 이야기(창 12장), 롯이 소돔 시민들로부터 천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리배에게 자기 딸을 겁탈하도록 내어 놓은 이야기(창 19장), 레위인의 첩이야기 –남편으로부터 방치되어 베냐민 사람들에게 겁탈당하고 문밖에서 비참하게 죽는다(삿19장).– 혹은 입다가 전쟁에서 돌아와 처음 만나는 사람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고서 그 서원대로 딸의 목숨을 앗아가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의 대를 잇게 한다고 자매가 아버지의 침소에 드는 이야기 등등 여성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조차 존중되지 않은 이야기가 성서에는 너무도 많이 등장한다. 또한 이러한 성서의 여성이해는 피해자 여성들이 자신에 대한 성폭력의 경험을 바르게 해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마비시킨다. 많은 경우,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성서를 읽으면서 그 속에서 답을 찾기 보다는 더 좌절하거나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성의 성폭력 경험에서 문제시 되는 신학적 메시지 중에는 기독교 전통 속에서 오랫동안 내면화되어 온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들 수가 있다. 기독교 교육 속에 익숙해있던 여성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나 남편, 혹은 남성 목회자와 더 쉽게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다. 따라서 성폭력 상황에서도 여성은 하나님이 남편이나 남성 목회자의 편에 서서 특별한 방식으로 역사하신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남성 이미지는 피해자 여성들에게 묘한 죄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성폭력 피해를 받은 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신앙이 부족하거나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을 주신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이 남성이라는 것과 남성목회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다고 하는 생각은 목회자의 성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 목회자가 평신도에게 줄 수 있는 수혜라고 착각하게 만들어서, 목회자를 범죄자로 인식하지 않게 만든다.
성폭력으로 기소된 어느 목회자의 경우도 피해자인 20대 여성이 “그 동안 목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죄라고 생각하게끔 훈련을 받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목사님이 대신한다고 믿었다(보이는 목사님을 하나님처럼 믿고 섬겼다).”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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