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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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의 성지 파티마에 대한 환상으로 마음이 설렌다. 반세기 훨씬 전에 봤던 케돌 베이커와 로저 무어 주연의 한 영화가 파티마를 소재로한 한 영화였지 않나 싶은 생각에서다. 테레사라는 예비수녀가 성모 마리아의 발현으로 각색되어진 기적(The miracle)이라는 영화는 1959년 벤허와 함께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한 나폴레옹 군대에 맞서 싸우다 부상당한 영국군 장교 마이클을 간호했던 테레사의 기구한 운명이 그려진 영화였다. 당대의 거작이었던 벤허에 가리어졌긴 했지만 영화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명화다.
스페인 톨레도를 떠나 포르투갈의 파티마로 가는 길은 참 멀었다. 오후 내내 꼬박 한나절을 넘게 달려 해질 무렵 나무들이 많은 고개를 넘어 포루투갈 땅에 들어섰다. 스페인은 땅이 드넓고 나무가 별로 없는 반면 포루투갈은 나무가 많고 주변이 좁아지는 게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서는 것 같다.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은 주로 포도주병 마개로 쓰이는 콜크 나무로 전 유럽의 50프로가 포르투갈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콜크로는 병마개뿐만 아니라 가볍고 질좋은 신발, 지갑, 가방 등 여러 종류와 모양으로 만들어져 팔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 어디서나 상수리 열매가 열리는 굴참나무의 껍질을 벗겨 콜크로 쓰고 한때는 수출장려품이기도 했다.
해가 누엿누엿 질 무렵 파티마에 들어섰다. 인구가 7천명 정도인데 한 해 찾아드는 순례객과 관광객들이 8백만에 이른다고 하니 이만한 데가 또 있겠나 싶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들 찾아드는가라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요약해서, 1917년 양을 치던 세 아이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였고, 또 발현한 사실을 1930년 포르투갈 주교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작은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대성당을 짓고 수십만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만들어졌다. 세계 3대 성모 마리아 발현지로는 포르투갈의 파티마와 프랑스의 루르드, 멕시코의 과달루페가 기적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요즘도 파티마에는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신 5월 13일과 10월 13일에는 순례객들과 일반관광객 수십만이 드넓은 광장에 운집한다고 한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우리집 복덩이 셋째가 부산 파티마병원에서 밤에 태어난 사건이었다. 아들만 둘이어서 다음에는 딸이 생겼으면 했는데 소원대로 고명딸을 얻게 되었다. 직장생활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느라 아내가 애를 낳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부산 파티마병원에서 딸을 해산했다는 연락이 왔다. 무심한 남편이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경사가 났다고 하여 이름을 경은(慶恩)이라고 지었고, 그 해 아내는 식모에게 아기를 맡기고 남포동에 ‘경은’이라는 양품점을 차렸다.
최고의 해를 누렸던 추억이 파티마의 밤에 솔솔 피어오른다. 일행들은 장거리 이동에 피곤해 있는 밤인데 나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어 홀로 밖으로 나갔다. 일행 17명이 2명씩 짝이 되어 방을 쓰는 고로 내게는 짝을 지어줄 상대가 없어 계속 독방을 쓰게 되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자유스러웠다.
포루투갈의 중부 고원지대에 있는 한적한 마을 파티마의 밤은 청명하기가 그지없어 차갑게 느껴진다. 어디선가 아베 마리아를 찬양하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드넓은 광장끝으로 불이 켜진 대성당의 십자가 아래 수를 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손에는 제각기 촛불을 들고 사제의 강도(講道)를 들으며 선창에 따라 아베마리아를 찬양하고 있다. 이 세상 어디서도 보고 들을 수 없는 천상의 하모니에 끌려 가까이 다가가면서 마치 영화 속, 테레사를 찾으러가는 마이클이 되었다.
사제의 강론이 끝났는지 옆에 있던 또 한 명의 사제가 대형십자가를 메고 나선다. 참여한 순례객들은 손엔 촛불을 든 채로 십자가 뒤를 따라 대성당 앞을 지난다. 이방인인 나는 대열과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경건한 광경을 지켜보고 마음으로는 그들과 함께 하면서 마음에 담아온 서원과 파티마병원에서 태어난 아이슬란드에 살고 있는 딸과 사위 외손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파티마의 밤은 깊어 가는데 누군가가 나와함께 하고 있는 듯 했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던 대성당을 배경으로 직원에게 기념사진을 부탁했다. 왠지 또 한 번 기적이 일어날 것 같다. 저물어가는 내 생애에 마지막이 될런지도 모를 기적이 발생할 것 같다.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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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Fatima)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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