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28
2016/07/16 10:59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이스라엘의 400년 종살이
1-1.jpg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노예살이한 것은 하나님의 저주였는가? 한국의 대중 설교가들 가운데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노예살이 한 것이 하나님의 저주였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창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가져 오라고 명하신 짐승들 가운데 새들을 쪼개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옳지 않다.
아브라함은 소돔 성 근처에 살고 있던 그의 조카 롯이 가나안 왕들의 전쟁에 휘말려 소돔 왕과 더불어 포로로 잡혀가자 많은 군비를 들여 조카 롯을 구출하고, 적군들로부터 빼앗은 전리품을 소돔 왕에게 돌려 주었다. 사람을 구하는 선한 일을 하였지만 아브하함은 손에 얻은 것이 없이 군비만 많이 썼고, 전쟁에 승리는 했지만 적군들과 원수를 맺어 그들의 보복적인 공격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지만 소식이 없어 그의 집에서 함께 살아온 엘리에셀을 양자로 입양하는 문제를 고려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래서 그는 물질적인 손해감, 주변 적군들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 자식이 없이 늙어가는 인생에 대한 염려 등으 로 그의 심정이 가라앉은 상태에 있었다.
바로 이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시어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이고 너희 지극히 큰 상급이다.”(창 15:1)라고 위로의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 가운데 두 가지를 약속하신다. 첫째는 하늘의 별떼와 같이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쉽게 믿었다.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10여년이 되었지만 아직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떼와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여호와를 믿었고 여호와께서는 이를 그에게 의로 여기셨다고 했다 (창 15:6).
그리고 이어서 두 번째 약속을 주신다. 그와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의 광대한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실 때는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는 무슨 징표를 보여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이때에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와 삼년된 수양과 산비들기와 집비들기를 가져오라고 명하셨다. 아브라함은 그 짐승들을 가져다가 쪼개놓았다. 그러나 새는 쪼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쪼개놓으라고 명하시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무슨 목적으로 가져오라고 명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 으려고 하신다는 뜻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일부 설교자들은 아브라함이 새들을 쪼개놓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에서 400년 동안이나 노예살이를 하는 저주를 받게 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고대 근동세계 사람들은 계약을 맺을 때 자기들의 목숨을 담보하고 계약을 맺었다. 짐승을 쪼개놓고 그 사이를 지나가며 계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자기들도 이 짐승처럼 죽음을 당할 것을 피차 맹세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계약을 맺을 때 항상 짐승을 쪼개는 것은 아니었다. 마리에서는 당나귀 새끼를 죽였고, 알라락에서는 양의 목을 쳤다. 새들은 작기 때문에 배를 가르지 않고 그냥 죽여 놓았다. 그래서 고대의 계약서에는 “이 송아지가 쪼개진 것같이 ...도 쪼개어 질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대의 언약은 생명을 담보한 것이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비들기들을 쪼개놓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400년동안 종살이를 하게 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계약이란 목숨을 담보하고 서로 맹세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사체를 두 조각으로 갈라놓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시내 산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을 때는 피를 썼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과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확실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으시고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지키 시겠다고 선언하시고 과시하신 것이다.
밤이 되자 하나님께서 횃불로 임하셔서 그 고기 사이를 지나가셨다. 만일에 아브라함이 벌여놓은 짐승들에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하자가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담보하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께서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사백년 동안 종살이 할 것을 말씀하신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후 손들이 하늘에 별떼와 같이 많이 민족을 이루는 방법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 후손들이 하나의 민족을 이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스마엘이나 에서처럼 가나안 사람들과 통혼하여 다 이방의 피가 섞이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이방신을 믿는 이교도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전혀 이질적인 이집트 땅으로 보내어 그곳에 따로 거주지를 정하여 주고, 그곳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도 록 하신 것이다.
400년 동안 그들은 노예로서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장정만 60만명, 여자와 자식들을 합하면 약 200만명은 족히 되는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신10:22에는 “애굽에 내려간 네 조상들이 겨우 칠십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께서 너를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분명 창 15:5의 여호와의 약속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상기시키는 구절이다.
이스라엘은 고난 당하고, 혹 스스로 저주 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은 바로 그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고난이고, 저주로 보이는 인생살이에도 그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축복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고난과 종살이가 반드시 저주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고난과 종살이는 복을 받기 위한 징검다리이며, 통로이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에 끌려가 머슴살이도 하고, 감옥에 갇혀 무의미한 인생을 산 것 같지만 만일에 그러한 과정이 없었더라면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집트에 내려와 큰 민족을 이루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요셉을 팔려가게 하시고, 감내하기 힘든 여러 과정을 통하여 결국은 이집트의 구원자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민족으로 키우셔서 아브라함과 맺은 횃불언약을 지키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400년 종살 이 한 것을 결코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 징벌적 저주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민족으로 기르시기 위한 섭리이고 지혜이었다.
우리도 우리 인생을 단편적으로 생각하고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요셉이나 이스라엘의 이집트 종살이에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과 축복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고달프고 무의미한 것같은 현실 가운데도 하나님의 심오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네티즌 댓글
김권희 님ㅣ2018.02.12 17:20:07 삭제
 1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