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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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사 도우미 신세로 전락한 것은 명퇴를 하고부터입니다. 명퇴는 나의 간절한 바램과 희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총각 시절부터 글만 쓰는 전업 작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 벤치에 앉아 인간미 있는 존재를 사색하며,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서 잡지사에 보낼 글을 쓰는 일은 나의 로망이었습니다. 그런 로망을 꿈꾸며 집안에서 여유를 찾으려 할 즈음, 아내의 바가지 긁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집에서 삼식이가 되어 비생산적인 글만 쓰지 말고 나가서 단돈 백만 원이라도 벌어와 봐요.” “아, 생활비는 매달 적당하게 들어오잖소. 그거면 됐지 뭘 더 바래요.” “당신 방구석에 들어앉아 글만 쓰면 병날까 봐 그러지요. 좀 나가서 움직여요. 무브(move).”
아내의 바가지에는 묵묵부답으로 있는 게 상책입니다. 딸아이는 이런 내 신세를 『허생전』의 ‘허생’에 비견하였습니다. 7년 동안 아내의 바가지에 시달리다가 홧김에 나가서 돈을 왕창 벌었다는 허생. 그러나 글쟁이는 글만 쓴다고 당장 돈벼락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그야말로 하늘 아래 멍석 깔아놓기입니다. 뭔가 좋은 글이 될 듯 될 듯하다가도,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면 허망한 일에 기운을 소진한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그동안 부지런히 문예지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 시집과 평론집을 한 권씩 출간하기도 하였지만, 문학에 관심이 없는 지인들은 나의 책을 받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이런 무반응을 오랫동안 겪다 보면, ‘야. 이거 내가 작가 맞아?’라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글은 시간이 흘러도 나타나지 않으니, 아내가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볼멘 소리를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아내 뿐만 아니라 코미디 각본을 쓴다는 후배 작가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선배 하나가 “이번 시집은 읽을 만하다”고 하자, 후배 작가 왈 “그걸 읽기는 했어요?” 하고 반문하는 것이 기증 받은 내 시집을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그렇다고 후배에게 직접 물어 볼 수도 없고. 아무튼 명퇴한 지 삼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방구석에서 혼자서 글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은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겠다’ 싶어 신나게 글을 쓰다가도, 열흘이 지나면 ‘에이.’ 하면서 고개를 가로젓던 일이 수십 번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 집안 일을 하라는 아내의 잔소리는 더 심해졌습니다. ‘이렇게 더 버틸 수가 없겠다’는 자조감이 몰려왔습니다. 딸아이까지 “아빠. 직장 그만두면, 가사 도우미 되기로 했잖아.” 하는 데엔 빠져 나갈 구멍이 안 보였습니다.
막상 집안에서 삼식이 노릇을 하다 보니, 아내의 힘이 세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형제들 모임 때, 여자의 힘에 대해 형님께 살짝 의견을 물었더니 형님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건 여자가 폐경기가 지나면 남성 호르몬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야. 여자가 강하게 나올 땐 무조건 엎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간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어.” 아니나 다를까. 형수는 형님이 집에서 그렇게 번쩍이게 가구들을 닦아 놓는 데도 “형님과 같이 살기 싫다”고 투덜대는 걸 종종 본 적이 있습니다. 확실히 여자가 폐경기가 지나면 남편들이 기죽어 지내는 게 보편적인 현상인 모양입니다. 연로하신 은사인 예술원 회원 M시인도 아내 앞에서 아이 취급 당하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신혼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아내가 직장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였지만, 집안 일은 청소하는 시늉만 하면 되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아내가 차려다 준 밥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나서, 아내가 깎아 온 사과를 입에 넣으며 “당신도 들어요” 하면 행복해 하던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남편 공경하라’는 어른들 말씀을 귀가 닳도록 들었는지, 말끝마다 경어체를 붙여 주었습니다.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엔 꼭 내 의견에 따랐었습니다.
그랬던 아내가 언제부턴가 가정에서 왕비로 군림하는 것을 보고, 나는 속으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집안의 대소사에 대하여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아내. 집 안의 소소한 것에 대하여 야무지게 닦달하는 아내의 카리스마에 나는 언제나 기를 죽여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역발상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내의 잔소리를 듣느니,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가사 도우미가 되자. 전철을 타고 가다가 비닐 앞치마를 파는 상인에게 오천원을 주고 두 벌을 샀습니다. 하나는 빨강, 다른 하나는 파랑 꽃무늬가 그려진 것으로 설거지를 할 때 물이 옷에 튀는 것을 예방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파랑 꽃무늬가 그려진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였더니, 처음엔 아내와 딸아이가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봅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을 세척제를 묻힌 수세미로 닦아냈더니, 아내가 내 옆에 다가와 말합니다. “다 씻은 그릇들은 흐르는 물에 놓아 두어야 씻기가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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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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