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은 궁극적 관심
2016/10/12 15:0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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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대의 그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을 시대정신이라 한다면 그 시대의 삶에 대한 태도에서 역사가의 사관(史觀)이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 시대의 시대정신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역사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다시 써야 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하는 점을 전제하고 그리스도인은 여기에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된다. 시대정신은 역사의 과정과 결부시켜 그것을 개개인의 정신을 넘어선 보편적 정신세계가 역사 속에서 삶을 전개 시켜나간다. 고대에서 근세까지 정신의 발전 단계를 신학적, 형이상학적, 실증적 3단계로 나누어 왔다. 그리하여 유물사관적 입장에서 보면 시대정신은 이데올로기로서 각 시대의 경제적 구조에 의존되어 왔다.
시대정신이라는 말은 독일의 J.G.헤르더가 1769년에 맨 처음 사용했다고 하며, J.W.괴테도 《파우스트》 속에서 이 말을 썼으며, 시대정신을 역사의 과정과 결부시켜 그것을 개개의 인간정신을 넘어선 보편적 정신세계가 역사 속에서 자기를 전개시켜나가는 각 과정에서 취하는 형태로 본 것이 G.W.F.헤겔이었다. 헤겔은 그것을 또한 민족정신과 결부시켜 동양·그리스·로마·게르만의 4단계로 구분하였다. 또한 A.콩트는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기까지의 개인의 정신적 성장과정과 비교하여 고대에서 근세까지의 정신의 발전단계를 신학적·형이상학적·실증적 3단계로 나누었는데, 이것도 시대정신을 구분하는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유물사관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대정신은 이데올로기로서 각 시대의 경제적 구조에 의존하게 된다. 여기에 정신적 경향이 무엇을 움직이는가? 하는 점을 갖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 시대의 물질적 생산이나 경제적 풍요한 생활에 거리를 갖게 되는 점을 감안하게 한다. 교회는 인생의 목적에 대한 질문에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의 답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삶’ 혹은 ‘예수를 따르는 삶(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다운 삶, 제자도)’j이라고 일러준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표현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백성(=시민)이라 일러준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삶을 살게 하고 그 첫 번째 열매가 되신 예수를 따르는 삶을 따르라고 가르쳐 준다.
많은 설교자들의 설교에서 궁극적인 언어가 거침없이 선포되지만 그 내용이 전혀 궁극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구원, 창조, 종말, 사랑, 칭의, 하나님나라, 회심, 섭리, 예정, 성령, 삼위일체 같은 궁극적인 용어들이 중구난방으로 선포될 뿐이지 실제로는 그것의 궁극적 현실성을 상실한 설교가 오늘 한국교회 강단을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reality)인가, 관념(idea)인가? 그것은 생명을 담지한 세계인가, 공허한 언어로 가득함을 알게한다.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계획과 통치에 영혼을 의지하는 설교자라고 한다면 현재 잘 살고 못사는 결과만으로 어떤 사상과 정치이념들을 재단할 수는 없다. 다만 “궁극적 관심”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시대정신”은 “궁극적인 관심”이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까지도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지는 못한다. 이 궁극적 관심을 갖느냐 안 갖는가만이 문제 해결이다. 우리의 실존적인 존재 또는 비존재를 결정한다. 세상의 한정적으로 좋은 것 거기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이다. 그러면 신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폴 틸리히’가 보기에 신앙은 어떤 진리 또는 교리에 의식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바른 사고의 방법이나 지식이나 희생이나 교리 같은 괴상한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만으로는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다” 고 하는 신학자 ‘폴 틸리히는 “사람은 직접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 속에서 궁극적이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된다” 고 한다. 이 “궁극적인 관심”이 유한하고 실존적인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철학자는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그 자세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다. 반면에 신학자는 실존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우리를 위한 존재의 의미에 관심을 갖는다.”그러므로 구도자는 ‘자신의 궁극적 관심이 머무는 곳’을 보아야한다. 구도자는 삶에서 일어나는 실존적인 질문과 신앙적인 답변에 의존해서 신앙의 내용으로 삶을 살도록 노력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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