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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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도 눈이 오고 있었습니다. 함박눈이 곱게 내리더니 어느새 아스팔트 길이 하얀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었지요. 가로수도 그들의 뺨에 눈을 잔뜩 바르고 있었지요. 가끔 싸라기눈이 새때처럼 피어올랐다가 먼 산을 넘어갔습니다. 잿빛 하늘 아래  공항으로 가는 길가의 산들이 하양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미국에서 교통 위반에 걸리면 차창을 열어 놓고 운전대에 손을 올리고 있어야 한다더라. 괜히 손짓을 하거나 움직이면 경찰이 총을 쏠 수도 있대요. 초등학교 앞에서는 절대 경적을 울려서는 안 된대. 교통 범칙금이 장난이 아니래.”
나는 운전을 하면서 몇 번이나 U(딸)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실제로 내가 강의하던 대학의 학생은 하와이에서 운전을 하다가 경찰의 정지 신호를 받고 차를 멈춰 따지다가 강도로 오인받아 죽은 적도 있었습니다. U는 미국 미시건주에 있는 M주립대학 근처로 떠납니다. 사위가 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결혼해서 두 달을 신랑과 떨어져 있다가 가는 길이어서인지 U는 마음이 착잡한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도 딸과 식사를 같이 했었습니다.
“아빠. 내 돈가스도 더 먹어.”
미국으로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아서인지 딸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U가 몇 개월 사이에 무척 어른스러워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얘. 미국 가면 애 낳고 당당하게 살아. 한국에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고. 항공비는 염려하지 말고.”
“그래도 절약하며 살아야지.”
“아빠가 그동안 너에게 섭섭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중요한 건 현재니까, 서운했다면 다 잊어 버려라.”
“아니야.”
공항에 도착하자 입국장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습니다. 철제 빔 위의 유리 천장에도 눈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위의 공간이 어전지 휑해 보였습니다. 아내가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혼자서 훌쩍이자, U도 울먹였습니다.
 “엄마. 왜 울고 그래.”
“그래. 서류는 잘 챙겼지. 미리 들어가서 면세점에서 사 갈 것 챙겨.”
U를 보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길에는 앞차의 바퀴 자국만이 선명하게 검정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거북이 걸음처럼 천천히 차를 몰았습니다. 머릿속에는 U가 애를 잘 낳을지, 살림을 잘 할지 등으로 여러 이미지 조각들이 떠다녔습니다. 아내는 차 안에서 코까지 풀어가며 훌쩍였습니다.
“똑똑한 사위 만나 잘 살러 가는데 왜울어?”
내가 한 마디 거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먹입니다.
사람은 헤어질 때를 대비해서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U가 대학 시절 가끔 엄마 몰래 용돈을 안겨 준 것은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주어도 주어도 바닥나지 않는 것이 부모의 정인 것 같습니다.
“에이, 차는 왜 이렇게 막히고 그래.”
괜히 교통 체증에 짜증을 내 봅니다.
“그래도 U를 보내고 나서 막히니 얼마나 다행이예요. U가 갈 때 막혔으면 큰일날 번 했잖아요?”
“하긴 그래.”
아내가 갑자기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당신, U결혼식 때 U를 데리고 들어서는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요? 마치 러시아 근위병이 발을 높게 쳐들고 열병하는 것 같았다니까요.”
“내가 그랬어?”
“그래서 사돈댁하고 나하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U와 사위 앞에서 당당하고 싶었거든. 그래야 U가 시집가서 기 안 죽고 살 것 같았어.”
집에 도착해서도 아내는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며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나는 왠지 잠이 안 와서 서재에 들어가서 U를 위해 썼던 시들을 음미해 봅니다. 직장 일을 끝내고 즐겁게 귀가하던 U의 모습이 천장에 아른거립니다. U가 퇴근하면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즐겁게 하였던 나. 가족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행복하였던 추억을 떠올리며 혼자서 미소를 지어 봅니다. 아침이 되어 늦은 잠을 자려고 서재를 나오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립니다.
“아빠. 나, 잘 도착했어. 수하물 캐로셀에 있던 이민 가방을 옆에 계시던 남자분이 들어 줘서 짐도 잘 찾았어.” “그래. 우리 딸 장하다. 열심히 살아라. 파이팅”
아내도 그제서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납니다. U가 애 잘 낳고 멋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밖에는 함박눈이 춤추듯 내려앉고 있습니다. 행복은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니, U가 행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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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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