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79
2018/02/09 17:16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우리 속에 경외심을 심어 주시는 하나님 (렘 32:40)
1-1.jpg
 잠언 1:7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다”고 가르친다.  물론 여기서 시작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레시트”()를  사용하고 있는 데 이는 “머리”라는 뜻의 연계형이. 우두머리, 첫 걸음,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모든 지식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다. 특히 성경에서 선과 악에 대한 메리즘으로서 지식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창세기의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따먹은 과일을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부터 나온 열매로 지칭하고 있는데 이 나무를 가리켜 2:17에 보면 “선과악의 지식의 나무”(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한글 번역은 “지식”이라는 히브리어 명사형 “다아트”를 동사형 “알다”로 번역하고 있어서 그 의미를 추측하는 데 도움은 되나 지식이라는 말이 선과 악의 합성어로서 “모는” 혹은 “전체”를 의미하는 메리즘(merism)을 이루어 “지식”이라는 뜻을 가진 동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금하신 것은 선과 악에 대한 모든 지식의 나무 열매이다. 잠언 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선과 악에 관한 모든 지식을 아는 첫 걸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경외하다는 말은“이르아”()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 말은 주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fear)는 의미로 쓰인다.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절대적인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 모든 피조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심판자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뿐 아니라 반대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 없고. 그 앞에서 조심스럽고 그의 뜻을 거스릴 수 없는 마음 가짐을 의미하는 말이다. 말하자면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어려워하고 예의를 지키고, 한 마디 말이라도 더 귀담아 듣고, 빠뜨리지 않고 순종하려고 하며,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마음을 쓰고, 온갖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는 자세를 의미한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afraid 라는 말과는 구별하여 사용한다.  흔히 성경에서는 경외한다는 말과 반대되는 의미로 “오만하다”(scoffer), “경멸하다”(scorn)는 말을 사용한다. 시편 1편에는 복 있는 자를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 오만하다는 말로 히브리어 “레츠”() 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이 말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그에게 돌려드려야 할 영광을 돌리지 않고,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의미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족들이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 오만한 자들이다. 그들은 다 망했다(창 11장)
예레미야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지런히 가르쳤으나 그들은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바빌로니아에 잡혀가 노예 생활을 하게 하였다고 말씀하신다(33).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욕한 오만한 자들이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이유가 그들의 언약의 주,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지 않고 경홀히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리의 도를 버리고 시류를 따라 떠 다니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들이나 나라들은 절대로 그 생명이 길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혹독한 벌을 내리렸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그들의 땅으로 불러 들여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것이다(36). 새언약을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이미 3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새언약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전에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과는 전혀 다른 새언약을 맺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두시겠다는 것이다.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는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을 돌 판에 새겨 주셨지만 새 언약을 맺을 때는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 판에 새겨 넣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렘 31:33). 사람이 죽지 않는 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특단의 장치를 마련하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그의 말씀을 떠나 살기를 원치 않으시며, 그를 존경하고 그를 가까이 하는 그의 벡성에게 복을 쏟아 부어 주시고 싶은 분이시다(41). 그들 뿐 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까지도 기쁘게 복을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사람의 마음에 말씀을 새겨 놓아도 마음 속에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없으면 예전과 다를 바 없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오만한 백성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넣어 두신다는 것이다(40).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 가운데는 말씀이 새겨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약속이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요한 15:4)라고 말씀하신다. 또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그 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이는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고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날에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 것이다.”(요한 14:16-17, 20). 예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되며, 결국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은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뜻이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말씀을 가르치시며 우리 인생들과 함께 하셨으며, 또한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이 일은 성령을 통하여 이루실 일이다.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요 16:12-15).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가운데 머므르시며, 우리 속에 그의 말씀을 경외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순종하며 살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가까이 있게 하심으로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아들 이삭을 주시고 그를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과 능력을 믿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난 자라야 네 씨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믿었고(창 21:12), 메마른 고목과 같은 100 세가 된 자기 몸에서 아들을 낳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가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 반드시 이삭을 도로 살리실 것을 믿었다(창 22:5) 그래서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가서 그를 번제단에 올려놓고 그를 잡으려고 했다. 순간 천사가 칼을 잡은 그의 손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말씀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고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마라. 네가 네 아들을, 네 외아들까지도 내게 아까지 않으니, 이제 나는 네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알았다.”(창 22:1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를 향한 경외심을 인정하신 것이다. 롯과 그의 가족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깊은 경외심을 가졌음을 볼 수 있다. 경외심은 다만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이 아니다.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일을 계획하시고, 그것을 이루시고 계신다. 분에 넘치는 사랑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 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심어 주신다는 것은 밥을 차려 주시며 밤을 먹으라고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아예 밥숟갈로 밥을 떠 먹여 주시는 것과 같다. 사랑하고 경외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첫걸음이라는 말씀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배우고 가르쳐야 첫번째 일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다.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며 하나님께 합당한 예의를 표하는 것이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네티즌 댓글
댓글 작성자명 님ㅣ2019.06.03 11:52:39 삭제
김권희 님ㅣ2018.02.12 13:42:03 삭제
김권희 님ㅣ2018.02.12 12:27:51 삭제
댓글 작성자명 님ㅣ2018.02.09 18:22:13 삭제
댓글 작성자명 님ㅣ2018.02.09 18:13:59 삭제
댓글 작성자명 님ㅣ2018.02.09 17:51:58 삭제
댓글 작성자명 님ㅣ2018.02.09 17:46:06 삭제
 1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