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84
2018/04/11 14:1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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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리지 마옵소서⑴ (시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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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7:4에 보면 다윗은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한다.
“내가 여호와께 청한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할 것이니, 내 평생 여호와의 집에 살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 성전에서 간구하는 것이다.”
이 시를 보면 다윗이 여호와께 청하는 한 가지 기도가 바로 여호와의 집에서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한 가지를 청한다고 했는데 얼핏 보면 세 가지를 구하고 있다. 다윗은 그가 구하는 것은 그가 지금 처음으로 구한 것이 아니고, 평소에 구해 왔던 것처럼 보여진다. 그래서 본문은 문맥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번역상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경우에는 히브리어 성경을 대조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히브리어 성경과는 번역상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문자적으로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여호와께 청한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할 것이니, 이는 내 평생 여호와의 집에 살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 성전에서 간구하기 위함이다.”
(One thing have I asked of the LORD, that will I seek after: that I may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all the days of my life, to gaze upon the beauty of the LORD and to inquire1 in his temple. (ESV, KJV, NIV, NAS 참조)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윗은 여기서 자기가 여호와께 청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밝히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그 한 가지를 구하는 목적을 말하고 있다. 그 한가지를 구하는 목적이 그가 사는 날 동안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성전에서 구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다윗은 현재 그의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5-8). 그는 여호와의 긍휼을 구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떠나지 마시고, 나를 버리기 마소서”라고 간구한다. 다윗이 구하는 것, 그 한 가지는 바로 구원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다윗은 누 구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서도 여호와를 가리켜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하게 매달리며 간구한 기도 제목이 바로 그를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한 번 구원을 받으면 절대로 그 구원을 잃을 수 없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를 알고 믿는 자들에게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믿음과 더불어 의롭다고 칭함을 받고 입양 관계에 들어간다. 우리는 죄인의 멍에를 벗고, 이제 아들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갖게 된 것이다(출 4:22).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였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크신 구원으로 홍해를 건너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음으로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과 같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다시는 이집트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넘어 하나님의 창조 때의 상황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가 창조하신 세계를 그를 대신하여 다스리는 대리통치자 (vicegerent)로 세우기 위하여 사람을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대왕으로서 사람을 왕으로 세우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다(시 8). 고대 근동의 봉건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대왕과 왕 (suzerain and vassal) 사이에 볼 수 있는 계(언)약 관계를 맺으신 것이다. 따라서 아담과 만물 사이에는 하나님 앞에서 언약적 연대성을 형성하게 되고 생사를 같이 하는 관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만물의 왕이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그의 대왕,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했지만 사탄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권위와 존엄성을 짓밟아버렸다. 결국 아담은 그와 생사의 연대성을 가진 만물과 함께 언약적 저주를 받아, 가죽 옷을 입고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죄인의 신세가 되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기뻐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계속 그의 진노와 심판 아래 놔 둘 수 없어, 구원의 계획을 세우신다. 그것은 아담과 그의 연대성 아래 있는 만물을 정죄하셨던 똑 같은 원리로 구원하시는 것이었다. 아담을 대신하여 새아담을 세우고, 그가 아담이 죄 값을 대신 치르게 함으로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얻고,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되찾게 하는 것이었다(롬 5:14).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의 아들을 새아담으로 보내시고 구원을 완성하셨다. 새아담 예수님은 죽고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왕이 되셨다. 그동안 아담과 연대성을 가졌던 피조물들은 이제 새 왕이 되신 그리스도 앞에 나와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으면 새 아담 그리스도와 함께한 연대성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성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구원받은 새로운 신분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담과의 연대성 때문에 죄의 굴레를 쓰고 죽음을 기다리는 인생들에게 그가  이루신 새로운 왕국, 새로운 연대성 안으로 들어오도록 초청하시고, 계속하여 말씀하신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요 15:4). 그리고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을 위한 기도 가운데,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모두 하나가 되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요 17:21)라고 간구하신다. 이 땅에서의 예수님과의 관계는 이 땅에서 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영원히 계속될 관계이다. 사도 요한의 계시록을 보면 종말에 우리 성도들이 어린 양 예수님과 혼인식을 갖고 하늘에 있는 궁전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그는 하늘로부터 예루살렘 성전이 임하는 것을 보지만  그 성 안에 성전이 없었다고 했다. 그 이유를 “내가 그 성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으니, 주 곧 하나님, 전능하신 분과 어린 양께서 그 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이다.”(계 21:20) 라고 말한다.  구원이나 천국이란 저 세상 어느 곳에 있는 특별한 장소에 들어가는 개념이 아니다.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관계를 갖고 교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시에 사람을 그의 교제의 대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그의 곁을 떠난 죄인들을 다시 예수님의 언약의 울타리 안으로 모아 들이시고 영원한 교제를 누리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아버지와 아들, 신랑과 신부, 왕과 백성과 같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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